기후위기 상황에서 돌봄모듈의 사회적 행동지침 –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대한 단상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탈성장과 순환경제 등 거대 담론에 묻힌 기후위기에서 공동체와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시카고 폭염의 사례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상호의존적 돌봄관계를 통해 일상적 재난 사회에서의 행동지침을 되짚어 본다.

이제 모든 극단적인 날씨가 기후위기로 설명되는 시대가 되었다. 북극곰과 해수면 상승을 걱정하던 지구온난화는 이제 폭염과 산불, 태풍과 홍수로 도시를 옥죄는 기후위기가 되었다. 기후위기는 2020년을 기점으로 전지구적 현상이 되었다. 이 전지구적 재난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여름을 맞이하며 바캉스보다 날씨를 걱정한다. 폭염과 폭우 중 올 여름을 장식할 타이틀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여름을 준비한다. 기본값이 된 이 반복적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현재 기후위기 담론은 탄소중립과 그를 위한 대전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구의 온도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사회 체계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지가 그 핵심인 것이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몫은 부정의한 시스템에 저항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거대 담론이 일상과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은 부재하다. 그런 공백 속에서 기후와 환경의 문제가 뒤엉켜있다. 이런 모호함은 기후행동의 상위에 쓰레기 분리배출을 올려놓는다. 물론 기후위기 선언을 하고 생태적 전환을 말하고 에너지 정의를 말하는 시민과 단체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탄소배출량과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제어를 위한 거대 담론일 뿐이다. 적응의 영역, 특히 시민들과 밀접한 삶터에서 재난 상황에 우리가 어떤 행동 지침을 가져야 할지는 이와 다른 결을 지닌다. 지난 2년을 보내며 기후위기가 현실로 드러나는 이 극단적 기상현상의 일상화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1995년 7월, 시카고는 최고 기온 41℃에 이르는 폭염으로 한 달동안 7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폭염 이후 미국의 질병관리본부는 이 재난의 원인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런데 이를 사회적으로 분석하며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평균 연령, 빈곤률, 일인 가구 비율 등 폭염으로 인한 사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건이 비슷하던 시카고 지역의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의 사망자 수가 10배 이상 차이를 보인 것이다. 원인은 이전부터 지역에 깃든 공동체의 붕괴였다. 지역 경제의 붕괴는 치안의 불안정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사람들을 집에 머물도록 했다. 사회적 취약층, 특히 노인들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불안해했다. 실제 1950년대, 노스론데일 지역은 더운 여름 밤이 되면 가까운 공원에서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였으나 1995년에는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에 큰 불안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불안은 사회 취약 계층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고 재난은 그들의 주검을 사회로 돌려주었다. 이와 같은 면밀한 연구를 통해 시카고시는 폭염 대응 메뉴얼을 설계했다. 1997년 다시 찾아온 폭염에서 시카고시는 폭염중앙통제센터를 열었고 쿨링센터 운영 및 이동 수단 제공과 함께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 방문과 건강 점검 등의 방법으로 대응한 결과 사망자는 110명에 그치게 되었다.

시카고 폭염 사례는 재난 상황에서 기술적 접근이 아닌 사회적 접근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국의 경우 에어컨을 충분히 가동하기 위한 전기요금 인하 외 뚜렷한 대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에너지 사용량 증가와 탄소배출 증가라는 모순을 만들며 기후악당 국가로의 위상만을 드높일 뿐이다. 쿨링 센터와 같은 공동 공간 운영과 함께 사람들이 서로의 건강을 일상적으로 확인하며 필요시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관계망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메인 포스터.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메인 포스터.

위와 같이 상호 안전하며 근접거리에서 필요한 돌봄을 바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돌봄모듈로 칭한다. 기후위기 상황에서 이 돌봄모듈은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보이지 않는 큰 역할을 한다. 위기를 감지하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선별하며, 즉시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사회의 복지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이 상호의존적 돌봄이라는 돌봄모듈의 핵심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파견직 사원 이지안(배우 이지은)은 우연한 계기에 회사 내의 권력 다툼에 끼어들게 되고, 박동훈 부장(배우 이선균)을 해고시키기 위해 그에게 접근한다. 스마트폰을 해킹으로 도청하며 박동훈 부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갈등을 만들지만 결국 그의 진정성으로 지안은 삶의 다른 가치를 발견해 간다. 드라마 상에서 충돌하는 지안의 감시와 동훈의 포용은 돌봄의 관점에서 우리의 행동지침에 영감을 준다.

1. 일상적 연결

스마트폰 도청으로 동훈의 모든 것을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게 된 지안은 동훈 또한 가정 내의 위기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게 된다. 동훈 또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지안에게 저녁을 사주기 시작하지만 곧 그녀의 삶에 개입하게 된 자로써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드라마 속 지안은 도청을 통해 동훈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받고, 동훈은 늘 지안을 살피며 아무도 말 걸지 않는 파견직 사원을 살핀다. 이런 일상적 연결과 관찰은 직접 개입이 가능한 시점을 알아채도록 만드는 단초가 된다.

폭염 상황에서 건강, 특히 홀로 고립된 노인들에게도 이런 일상적 연결망이 필요하다. 사회는 근거리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관계망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연일 지속되는 폭염이라는 기사에 반응하여 연락을 취하고 건강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듈. 그것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지역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작은 관계들을 통해 가능하다.

2. 물질적 호혜

“밥 좀 사주지!” 초반에는 동훈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지안의 계략이었으나, 이는 곧 진정성 있는 관계로 전환된다. 회사에서 가지고 나온 믹스커피로 저녁을 때우는 지안에게 동훈은 밥을 사주기도 하고, 빚을 갚아주려 사채업자와 싸움을 하기도 한다. 이는 돌봄에서 적절한 물질의 나눔과 물리적 지원이 만들어내는 정동을 보여준다.

때로 돌봄은 공감과 같은 마음의 문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돌봄은 마음을 너머에 있다. 물리적으로 도움을 주고 물질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돌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물질적인 것을 주고받으며 관계가 지속되며 이 지속되는 관계 속에서 일상적인 관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3. 공유 공간

함께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공간은 그 자체로 안전한 공간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ub_quiz_Finnish_championships_2019.jpg)
함께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공간은 그 자체로 안전한 공간이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동훈의 형제와 친구들은 동훈의 동창 정희가 운영하는 작은 주점에 늘 모인다. 그곳은 하루 동안 쌓인 감정을 내어놓는 공간인 것이다. 그들에게 정희의 주점은 술과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닌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곳이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팔이를 하며 웃음을 나누지만, 비언어적 소통으로 상대의 곤란을 알아채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연결된 관계로 서로를 알아채고 이해하며 포용한다.

이렇게 함께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공간은 그 자체로 안전한 공간이다. 공유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유지를 위한 노력은 지역 사회의 안전을 위한 노력과 같다. 더불어 이와 같이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은 그 재난의 상황에 그 공간으로 오지 않은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드러나도록 한다.

4. 제도적 복지로 안내

동훈은 지안의 할머니를 요양보호소로 안내한다. 국가복지제도에 대한 안내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지안에게 할머니가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가르쳐주고 동행한다. 실제 취약계층, 혹은 고립에 처한 노인들에게 복지제도는 연결망 없이는 해당 내용을 알 수도 없기에 제도까지 다다를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돌봄모듈은 연결망임과 동시에 직접 돌봄의 수행하기도 하지만 극과 같이 제도로 안내하는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이 돌봄모듈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며 물질적 호혜를 통한 일상적 연결, 그리고 그 연결에서의 위기 감지와 직접 개입을 통해 삶의 지속성을 보장한다. 한편 함께 공유하는 공간에서 물리적 시간을 보내며 감정을 나누고 위기를 감지하기도 하며 직접 개입이 어려운 큰 문제일 경우 시스템으로 접속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기도 한다. 코로나19는 다시금 재난이 사회의 약한 고리를 드러내는 매개임을 증명하였다. 코로나19를 넘어 기후위기가 보여주는 극단적 기상현상과 일상적 재난에서 삶을 지속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원인을 제어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현재 사회적 연결망을 활성화시켜 작은 연결망들을 촘촘히 구성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참고

  • 『폭염사회』, 에릭 클라이넨버그, 글항아리, 2018
  • 《나의 아저씨》, TvN 드라마, 2018

리노

사유를 ‘좋아하지만, 조금 부족한 사람.
가르치기 위해 배우고 자르치며 배우는 사람.
성미산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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