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척, 나와 한겨레 – 『그 존재만으로』를 읽고 인간세 너머를 상상하다

인간의 기본적 특성은 외부 의존성과 지구 기숙성 또는 취약함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자족성과 무오류성이라 착각하며 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소비지향 트렌드와 과잉생산의 인간세의 위기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근대의 조각품인 ‘그런 사람’의 소멸, 그리고 새로운 인간의 탄생으로 과연 시대적 위기 극복은 가능할 것인가?

“하나의 귀신이 인간을 쫓아다니고 있다- 비인간이라는 귀신이… 21세기인의 결정적 정체성은 쫓기는 자이다. 인류 전체가 쫓기고 있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유명한 첫 문장,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를 변주한 것일까? 게다가 정처없이 배회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쫓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귀신이. “인간이라는 귀신은 너무 오래, 집요하게 비인간을 쫓아 다녔다”

인간세라고까지 불리는 이 지경에도(!) 인간은 사태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전히 “비인간의 현실과 처지를 말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저자는 이렇듯 서문에서 집필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존재만으로』 (p.38)dp 실린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인간, 우주의 통제자〉(1938)

첫 장, 〈1장 리베라〉를 보자. 1930년대 초 멕시코 민중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에 얽힌 비사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개 당시, 레닌의 초상이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특징적인 게 있다. 우선 좌우대칭적인 대비가 흥미롭다. 머리를 맞댄 4인의 조용하고 사색적 분위기가 좌측 중앙부에 자리 잡고 있고, 우측에 레닌을 중심으로 민중이 결연한 표정으로 웅성이는 소란함이 느껴진다. 그림의 아랫부분은 전체의 1/3 정도의 비중으로, 꽃과 열매 그리고 뿌리와 잎사귀가 풍성히 그려져 있다. 끝으로 중앙에 거대한 기계장치와 조종하는 사람과 여러 시계가 그려진 은색 구체를 움켜쥔 거칠고 검은 손이 배치되어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인간, 우주의 통제자〉다. 들여다볼수록 20세기 독보적인 인간중심주의, 기계주의, 이성만능주의의 향연이 아닐까 싶은 거다. 하지만, 화가 리베라의 아내가 ‘프리다 칼로’임을 떠올린 순간 생각은 옆길로 샌다. 처제를 비롯한 리베라의 여성편력은 아픈 프리다를 끝까지 괴롭혔기 때문에 툭하고 한 마디가 새어 나간다. “시끄럽고!” 이 대목에서 그의 명작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음에도 결국 시끄러운 소음이 되고야 만다.

다음으로 〈3장 마티스〉를 보자. 화이트 헤드의 존재들의 연대, 관계맺음과 과정철학. 『그 존재만으로』의 핵심줄기라 여겨지는 장이다.

“하나의 현실 존재물의 잠재성은 다른 현실 존재 안에서 실현되기 마련이다. 화이트 헤드는 그와 같은 존재 실현 양식을 ‘객체화’라고 부른다” (초주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두 가지 면을 보유한다. 즉 자기의 개별적 자아와 그것의 우주 내 중요성이 그것이다… 현실 존재물은 객체로서 서로에게 필연적으로 내화된다. (증여)” “현실 존재물은 계속 소멸한다. 그러나 객체적으로 영원하다.”

우석영 저, 『그 존재만으로』, 종이와빵, 2025

예컨대 나라는 주체는 시간이 쌓이면서 타인의 환경과 경험이 된다… 정도로 이해해 본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주변인의 고난, 힘겨움에 대해 위로를 전하며 서로 의지가 되는 새로운 관계로 재정립되기도 하니 말이다.

저자가 사물들과의 관계를 한마디로 “나의 친척, 나와 한겨레”라 언명한 것이 특히 좋았다.

〈5장 뒤러〉는 밥상과 돌봄 그리고 여성노동에 관한 얘기다.

“지구에 태어난 모든 생물의 숙명. 결여를 짊어지고 생겨나 제 결여를 채우려 애쓰는 가여운 자들이다… 지구의 모든 유동체들과 물질들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무심한 듯 돌본다.”

“할머니의 상차림은 ‘올리는’ 행동이었다…거룩한 노동이자 필수노동… 말하자면 무급 돌봄 노동자들이었다.”

곡식을 신으로 생각한 옛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조앙신은 부엌신 혹은 아궁이신이었다. 조리에 필요한 불과 물도 신령한 존재 즉 영물이자 조앙의 화신이었다.” 조앙은 여성으로 상징되었는데 터주, 성주, 조앙 신앙은 한민족만의 신앙은 아니지만 비근대 조선인의 마음새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해석된다.

생겨남과 돌봄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순환으로 나아간다.

마지막, 〈6장 조선 사발〉이다.

“이 그릇 역시 무르익은 것만이 드러내는 미감” “무르익음의 뒷면에는 낡음과 늙음”

“오늘날 20세기 북반구에서 나타난 독특한 문화, 정신적 지향을 젊음 지향이라 불러 보자”

저자가 양극을 호명한다.

“젊음(안티-에이징), 새로움, 건강, 관리, 쾌락(비고통), 온존, 정상(비장애), 잘남(잘 생김), 무언가를 잘 수행함(생산성), 깨끗함(위생)”

다른 편에 놓이는

“낡음, 질병, 못남, 더러움…쓰레기, 못난이..중고”

저자는 ‘수리’라는 의미를 repair에서 upair로, 즉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향상을 지향하는 개념으로 재해석한다.

끝으로 저자의 생각을 따르자면, 인간의 기본적 특성은 외부 의존성과 지구 기숙성 또는 취약함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자족성과 무오류성이라 착각하며 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소비지향 트렌드와 과잉생산의 인간세의 위기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근대의 조각품인 ‘그런 사람’의 소멸, 그리고 새로운 인간의 탄생으로 과연 시대적 위기 극복은 가능할 것인가? 책을 닫으며 함께 상상해 본다.

마이티

‘마이티’는 ‘힘센’이라는 뜻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던 카드놀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우누리 시절, 나의 아이디였다.

한살림 조합원 오 년 차.
녹색당원 육 년 차.
생태적지혜 연구소 조합원 이 년 차.

나는 스러지는 불처럼 살고,
흐르는 물처럼 글 쓰며,
상처입은 나무처럼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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