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강렬한 예술적 가능성 ①

2년 여 동안 지속한 미술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발표하기 위한 준비로서 글을 써 봤습니다.

일상적인 소비재에 예술적 가능성이 있을까? 매달 내는 월세부터 저녁 반찬으로 쓸 두부 한 모까지. 소비재의 실용적 쓰임 뒤에 감춰진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고 거부하는 일을 매일 한다면 삶을 지속하는 것 자체를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미대 졸업전시 후 전시장이라는 인큐베이터가 없이는 자생할 수 없는 미술이 멋져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불량한 기업 하나 정도는 부수는 힘을 가진 미술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든 기업이나 기관을 고객으로 만드는 미술만이 생존하는 게 현실이었다. 난 작가로서 스스로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脫rent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술로 돈 버는 모든 일을 그만두었고 지원금이나 기금도 받지 않았다. 일용직 건설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미술을 대하는 태도를 가꾸어 나갔다. 최근 1여 년 동안은 모든 소비 내역을 기록하면서 소비재 속 숨겨진, 알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가치를 항목으로 드러내 소비에 점수를 매겼다. 그리고 나쁜 것들을 줄여나가거나 거부하는 태도를 통해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작동하는 미술을 만들고 싶었다.

이 태도를 유지하며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예술적 행위인 환경을 만들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난 것이 비건이었다. 비건 생활을 하면서 인간의 인간 중심적 창조 행위가 어떻게 이 세상을 망쳐놨는지를 자주 접했다. 창작에 대한 회의감이 더욱 증폭됐고 시각예술 전공자인 나는 물질을 다룰 수 없게 됐다. 그런 상태가 이어져 보여줄 만한 것을 만들지 않는 상태로 2년을 보내고 말았다.

스펙터클 없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시각예술, 거창한 포장 없이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기만 해도 환대받는 미술이 가능할까? 난 이런 고민 속에 갇혀서 혼자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어리석게 반복하는 것 같았다. 동료도 없었고 그나마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의 제안도 태도와 맞지 않다고 거절했다. 그저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삶을 유지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이상한 실험을 덤덤하게 이어가는 동안 습관이 되어 익숙해졌고 이후엔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마저 시간의 밀물에 희석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다 보니 꽤 많은 기록이 쌓이게 됐고 이제는 이 기록을 해석해서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위의 고민을 안고 창작하려면 어떤 매체를 발명해야 할까? 매체를 발명하기 위한 시행착오는 정당한 것일까? 딜레마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내 마음속엔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이 있었다. 그래서 5월 말에 무언가 하나 하기로 마음먹고 찝찝함을 가진 채 우선 영상 몇 개를 찍었다.

〈당근을 먹기엔 이상한 곳〉
〈당근을 먹기엔 이상한 곳〉

매대에 당근이 진열된 모습을 보자. 당근들은 각자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 다양한 장소로 뿔뿔이 흩어지고 비슷한 방식으로 쓰일 것이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이 들고 있는 당근 하나는 조금 다르게 쓰였다. 이 당근은 28점의 높은 예술점수를 받았다.

단순하고 당연하지만 간과하고 있었다. 1575번의 소비 끝에 만난 961원짜리 당근을 통해 뒤늦게 체감한 것은 물질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움, 정동, 신념-의심, 진솔함-기만, 나의 의무-단순화, 어리석음-경제적, 보편성-고독, 자유-망아를 담아 당근을 대하고 이런 태도를 일상적 물질들로 확장하면 내가 그리는 예술이 가능하지 않을까?

〈슬픔을 모르는 슬픔〉
깨진 기왓장을 들고 10시간 동안 배회
배회 10분에 1장의 사진, 총 60장
사진 1장에 30초의 영상, 총 30분
〈식탁 위에 오래된 빵이 놓여 있다〉
〈식탁 위에 오래된 빵이 놓여 있다〉

※ 다음 달로 이어집니다.

탈렌트

여러 해 동안 미술을 하다가 짧은 호흡으로 전시장을 전전하는 자신의 작업에 무력함을 느꼈다. 2020년부터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단위들을 미술화 하기 위해 어리석어 보이지만 배움이 있는 경험을 인위적으로 하고 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16 − 1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