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토론회 특집] ③ 오래된 미래의 삶, 부엔비비르 –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을 읽고

이 글은 2022년 12월 22일에 '탈성장 전환에서의 생태헌법정신'을 주제로 한 [탈성장 대토론회] 발제문으로 발표된 내용이다. ‘좋은 삶’이란 뜻을 가진 ‘부엔 비비르’는 탈성장 사회를 상상할 때,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구성한다. 자연의 권리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부엔비비르에 대해 알아보자.

[탈성장토론회 특집] ④ 부엔 비비르 사상과 지구의 권리, 그 불편한 동거 그리고 그 너머

이 글은 2022년 12월 22일에 '탈성장 전환에서의 생태헌법정신'을 주제로 한 [탈성장 대토론회] 논평문으로 발표된 내용으로,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착한책가게, 2018)에 대한 서평형식을 띠고 있다. 생명은 개별적 존재가 아니며 상호의존적인 유기적 존재로서, 모든 것은 연결된 하나라는 부엔 비비르의 세계관을 우리는 얼마나 체화하고 삶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담고 있다.

재생산 기반 적정세계의 지속을 믿게 하는 시 읽기의 어제와 내일 – 기후 위기 속에서 『시경』 「국풍 주남」 ‘관저’ 다시보기

사람의 의식을 강하게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대개 터무니없이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진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와 그 바탕이 되어주는 허약한 기반을 가급적 빨리 알아차리는 것은 사람들의 삶을 평안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시경』의 첫머리를 장식한 시 ‘관저’에 대한 해석의 변천을 살펴보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다루는 힘을 키워줄 듯하다.

마이너리티 정동 해방 혹은 다른 기쁨의 배치 – 극단 ‘지금 아카이브’의 2020-2022 코미디캠프 감상기를 겸해

이 세계가 안정되고 균형적으로 보일수록 거기에는 무언가, 누군가를 보이지 않게 은폐하는 구조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마이너 필링스, 마이너리티 정동, 정동적 소외 등은 그것을 느끼는 이의 탓이 아니다.

[듣기의 윤리] ① 너도 말하라

김애령 선생님의 저서 『듣기의 윤리』를 읽고 쓴 서평을 앞으로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연재할 예정이다. 매회 『듣기의 윤리』 1부, 2부, 3부의 내용을 각각 정리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번 글은 시리즈의 첫 번째로, 1부에서는 말하는 주체와 서사 정체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누구나 지역에 살고 있다 – 『지역의 발명』을 읽고

『지역의 발명』에서 발견한 “사람과 공간과 시간이 곧 지역문화”라는 구절이 나를 사로잡았다. 지역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일은 그 지역을 나만의 특별한 곳으로 보고 만들어 가는 것이며, 그 지역의 사람이 스스로 이웃과 같이 지역이라는 공간에 켜켜이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발견했다.

피로한 인간과 상상하는 이미지 – 『소진된 인간』을 읽고

사무엘 베케트는 말한다. 자신도 고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소진된 인간'의 들뢰즈 식으로 말하자면 고도는 '무'에 가깝다. 존재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없다. 고도는 소진된 인간일 수도 있고 다른 무엇과 엮여 신이 나 자유 혹은 다른 무엇이 된다. 그 연결성이 중요한 것이다.

아무도 숲과 나무를 보지 않는다-『오버스토리』를 읽고

자연은 수많은 공생 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것은 더 큰 부분에 포함되어 전체를 이룬다. 이러한 자연관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자율성을 가질 수 없으며,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미국의 자본에 종속되어 버린 원시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9명의 어느 미국인들의 삶을 다룬 것으로, 아무도 숲과 나무를 보지 않는 시대를 고발하는 생태 소설이다.

역사 속 어떤 돌봄과 지금의 돌봄 – 기후 위기 속에서 『삼국유사』 「효선」 ‘대성이 전생과 이생의 부모에게 효도하다’ 읽어보기

돌봄은 자본주의 세계를 유지시켜 주면서도 홀대받고 있는 동시에 무척 부족하기도 한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돌봄을 홀대받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노동으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자체가 곤란해질 수 있다. 돌이켜보면 지금과는 다르지만 다양한 돌봄들이 역사 속에서 명멸하였다. 역사 속의 돌봄에서 지금 미약한 돌봄을 창대하게 할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도, 세계를 곤란으로부터 구하는 노력의 하나가 될 것 같다.

기표적 얼굴성 – 청년은 어떤 얼굴을 가지는가?

들뢰즈,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얼굴성’을 통해 얼굴과 연결된 권력 배치물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청년의 얼굴은 어떻게 생산되고 주어지는지 고민하며 청년으로서 내가 느끼는 ‘불안’을 바라본다. 끝으로 색다른 얼굴성의 생산은 어떻게 가능할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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