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일기] ③ 내 사주엔 나무가 많단다

내 사주엔 나무가 많다 그랬다. 근데 직업운엔 “금이나 토의 기운 혹은 화의 기운에 해당하는 직업으로 이를 중화시켜야” 한댄다. 심지어 마지막 문구는 이렇게 쓰여있기도... “목재나 제지 혹은 가구 등 나무와 관련된 모든 직종은 좋지 않습니다”. 왜 그런 거지? 나무의 기운이 으뜸으로 존재하면 목수가 천직이어야 되는 거 아닌가?

성장과 소비 속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아서 – 『성장 이후의 삶』을 읽고

성장이 우리에게 정말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 성장은 그 결과를 골고루 나누지도 않는다. 소비를 통해서만 그 결과를 아주 약간 맛볼 수 있다. 그 소비로도 행복이 보장되지 않으며, 성장으로 인한 환경 파괴는 전 지구적 위기를 불러온다. 소비주의에 대한 반성과 대안적 즐거움을 상상해 본다.

[어쩌다 이장] ④ 어쩌다 사장이라니, 좀 울고 싶다.

마을회가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내에 임대한 가게는 10년 간 前 이장들의 인척들과 지인들에게 재임대되었고, 그 수익은 고스란히 이들에게 돌아갔다. 논의 끝에 마을가게를 직영으로 하기로 결정했고, 자영업을 한번도 꿈꾸어 본 적이 없던 나는 어쩌다 사장이 되었다.

기후위기 상황에서 돌봄모듈의 사회적 행동지침 –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대한 단상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탈성장과 순환경제 등 거대 담론에 묻힌 기후위기에서 공동체와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시카고 폭염의 사례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상호의존적 돌봄관계를 통해 일상적 재난 사회에서의 행동지침을 되짚어 본다.

경계면의 흐릿함, 가장자리효과와 생태계

생명, 사물, 인간 간에는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무수한 영역들이 있다. 경계를 분명히 하는 과학적 시선에서 보자면, 경계의 모호함, 중간현실, 혼합현실이 인간사에 늘 붙어 다닌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이 모호한 지점을 해석학자 가다머는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고, 들뢰즈와 가타리는 사이주체성이라고, 전남대 김상봉 교수는 서로주체성이라고 불렀다. 그러한 모호하고 흐릿한 지점들을 없애기 위해서 합리적인 사유방식이나 과학기술의 객관적 진리론은 노력해 왔지만, 삶을 살다보면 우리는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있는' 모호한 지점과 더 자주 조우한다.

자원순환을 위한 청년의 역할: 마을공동체와 대학을 중심으로

자원순환과 지속가능한 사회가 화두이다. 일반적으로 이는 소비자, 산업계, 정부 등 큰 단위와 경제적 구조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번 글은 청년이라는 세대와 지역성에 집중하여, 마을공동체와 대학을 통해 발휘될 수 있는 청년의 역할을 고민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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