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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생태적지혜</title>
		<link>https://ecosophialab.com</link>
		<description>모두의 혁명을 위한 모두의 지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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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자동차보험비교]]></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50]]></link>
			<description><![CDATA[<div style="height:0px;width:0px;">

<span style="letter-spacing:-100em;"><a href="https://sambowoonsu.co.kr/"> 자동차보험료비교견적사이트</a></span>

</div>]]></description>
			<author><![CDATA[김소영]]></author>
			<pubDate>Sat, 21 Feb 2026 15:27:0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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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오랜만입니다 선생님]]></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43]]></link>
			<description><![CDATA[추모 게시판을 일찌감치 알았지만 여지껏 아무런 인사도 드리지 못했네요. 일주기 때는 추모제에 갈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어요.

인연이 닿았던 학부생 시절부터 제게 많은 위로와 영감을 주셨죠. 문화학 수업에서 인연이 닿아 나중엔 부전공이지만 철학과 후배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윤경 선생님께서 저를 후배로 기억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ㅎㅎ 그것도 맞지만 전 사실 제자랍니다.

선생님을 철학자이자 농부 같은 시인으로 기억합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로 넘쳐나는 철학과는 가끔 숨이 막혔는데,  문화학 수업에서 부엌의 흐름 식탁의 흐름...같은 걸 말씀하실 때면 숨통이 트이곤 했습니다. 영락없는 시인이셨으니까요. 철학도에게 소설가와 시인이 품는 함의와는 별개로 저는 그런 면 때문에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동국대에서 하셨던 강의는 나름 거의 다 수강했던 것 같네요. 자랑입니다 ㅎㅎ

모임에도 자주 늦었고 성실히 참여하지도 못했었고... 연락에 재깍재깍 답장을 못 드린 적 많았죠.  졸업 후 안부 물어주던 사람 많지 않던 시절에도 자주 전화 주셨어요. 어디에도 글 한 번 올려본 적 없던 제게 선생님께서 이곳에 기고해볼 생각 없냐고 하셔서 썼던 글도 가끔 들여다봅니다. 그게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로는 코로나 때문에 몇 년 인사도 못드렸죠. 선생님 수업 듣고 학림관 복도에서 담배 피우며 농담하던 시절이 지금도 자주 떠올라요. 수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제가 냉정한 자본주의자의 악역을 담당해서 따뜻한 맘 지닌 학우들의 열띤 토론 참여를 이끌어낸 적도 있었는데 ㅎㅎ

늘 현실의 벽에 치이며 살던 저를 응원해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셨고요. 사실 뭐 제가 누구에게 도움되는 걸 하고 싶어 꿈꾸는 멋진 사람 아니었는데도요. 참 감사했습니다. 선물로 주셨던 책들도 바로바로 읽지 못해서 얘기 나누지 못했던 게 많이 후회가 돼요. 뒤늦게나마 책들에서 들리는 선생님 목소리에 모습이 그려져 웃음 짓기도 하네요.

지금도 힘들 때마다 숲길을 걸으면 종종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은 저를 장세현 씨~ 이렇게 불러주셨는데. 짧고도 긴 인연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평생 간직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은 데, 그 중 하나가 선생님과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는 요즘

시를 한 편 써 봤습니다. 혼자 간직하려다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서 꺼내봅니다. 시로 쓰다보니 예의에 어긋나기도 하지만 선생님 가슴에도 분명 시인이 살았다고 봐서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어봅니다.

 

&lt;외시경의 해바라기 &gt;

 

대낮에 잠꼬대하던 고양이도 같았지만

실은 철학자 겸하는 카운슬러였죠

 

그것만으론 부족해요

 

뭐든 뻔하게 보지 않아서

너머의 것 볼 수 있던 사람

닫힌 문의 외시경 거꾸로 들여다보던 사람

 

어느 안전이든 늘 같았고

 

감히라는 낱말을 몰랐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감히 입에 올리지는 않던 사람

 

살면서 다시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두 번 다시 없을테죠

 

정오에도 그림자 길었지만

대낮에 꾼 고양이의 꿈 말할 땐

근육의 지성 키운 시인이었죠

 

하나 안에서 여럿을 보았다면

믿겠어요?

 

가슴에 꽃무리 품은 해바라기처럼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흔적 남기러 올게요.]]></description>
			<author><![CDATA[장세현]]></author>
			<pubDate>Tue, 22 Apr 2025 20:49: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너무 늦은 연결은 없다.]]></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42]]></link>
			<description><![CDATA[ 

오늘 아침 경주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지난 토요일, “지금 여기 가까이”라는 말이 나를 서울까지 데려왔다. 막상 열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 타자 긴장되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생전에 얼굴도 만나 뵌 적 없는 내가 가도 되는 자리일까. 신승철 1주기 추모축제라니, 추모도 하고 축제도 하자는 말을 두고 어떤 마음으로 향해야 할지 고민도 되었다. 특히 가까이에서 아무것도 같이 준비하고 도운 것도 없는데 이렇게 행사에 참석만 해도 되는 걸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

처음 가보는 공간, 실제로 처음 만나는 조합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놓일 수 있다는 감정은 마치 숲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과도 같다. 수많은 나무들 사이에서 어느새 호흡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신승철 선생님과 연결된 사람들이 곧 그런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멀리서 희미하고 가늘게라도 신승철 선생님과 연결되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갑작스러운 죽음에 더 이상 감정적으로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다시금 두 손을 꼭 잡아끌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고마웠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

남편이 선생님과 공부모임을 가지며 몇 번 같이 가보자고 할 때, 나중으로 미룬 걸 이렇게 후회한다. 정말 후회한다. 서로의 안부도, 이야기 건너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아직 내가 직접 연결될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한 다리 건너 있어도 괜찮을 줄 알았다. 남편과 선생님의 카톡 창에서 내게도 선생님 특유의 "화이팅!!!!"이라는 말을 전해줬다. 늘 그 자리에 계실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인사를 미뤘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적극적으로 가닿지 못하고 닿을락 말락한 아쉬운 거리감 속에서 내가 애도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했다. 감히 슬퍼할 수도 없는 막연한 감정이 컸다. 어디다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는 감정들이 떠돌고 있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

추모축제는 그동안 다른 일상에 치여 애도의 길이 잠시 멈춰져 있던 시간을 다시 연결시키고, 그 다음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현장이었다. 내게 찾아온 알 수 없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더 가까이 직면하게 만들었다. 이 감정들을 따라 버섯의 포자처럼 '지금 여기 가까이' 모인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내가 '되어 간다'. 신승철 개념어 지도 그리기 이야기를 듣다가 얼떨결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같이 식사를 준비하고, 야채를 자르며, 음식을 맛보고, 그릇을 씻으며,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조금씩 신승철 선생님의 존재를 그려보았다. 그 속에서 뭐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추모와 축제 사이, 슬픔과 기쁨을 넘어 '유한자의 무한결속' 속에서 묘한 균형감을 느낄 수 있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

추모축제를 준비해 주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를 전하고 싶다. 울어서 두 눈이 벌겋게 된 채로 웃고 있는 얼굴들을 보았다. 수줍게 말을 건네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들을 만났다. 줌에서 만난 사람들을 실제로 봐서 좋았다. 이토록 슬프면서 이토록 따뜻할 수 있다니,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삶을 그저 더 사랑하게 만들다니. 가까이 있지 않다고 여겼던 마음이 가까울 수 있다고 만들다니. 우리 각자의 삶이 더 깊은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3부가 하이라이트인데 함께 못하고 온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나는 생태적지혜 사람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자리에서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고 싶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

.

.

.

그러니까 오늘도 모두 화이팅!!!!<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description>
			<author><![CDATA[윤경]]></author>
			<pubDate>Tue, 02 Jul 2024 20:43:2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일 년... 다시 이어져...기쁘고도 슬프고, 슬프고도 기쁜..]]></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41]]></link>
			<description><![CDATA[공생공락

국지적 절대성

앎과 삶이 맺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즐거움과 사랑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

모두의 혁명법

떡갈나무 혁명

상대를 뻔하게 보지 말고 그의 깊이와 잠재성을 들여다보라

반복,이음,맑음 신승철학

어떻게 이야기는 만들어지는가?

...

신승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듣는 신승철의 이야기...

기쁘고도 푸근한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다시 밭으로 나갔지요.

살랑이는 여름 바람 속에서 새소리에 감응하며 춤추는 옥수수를 담았습니다.

신승철님을 오래도록 함께 기억할 수 있기를,

그 기억의 새로움으로  생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를...

<img src="https://ecosophialab.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407/6681c4c3e1bc63275969.png" alt="" />

 

 ]]></description>
			<author><![CDATA[최수미]]></author>
			<pubDate>Mon, 01 Jul 2024 05:49: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승철학의 시작]]></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37]]></link>
			<description><![CDATA[“<em>은사님의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늘 그랬던 모습 그대로 활짝 웃고 계신 그분의 영정사진을 보고, 전 아내와 가족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이 한 번뿐인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지요. (중략) 일상에 파묻혀 서로의 존재를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끝이 있다는 것이 더 절실한 사랑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은사님의 장례식은 그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그분은 허무를 남긴 것이 아니라,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습니다. 무엇이 최선일까요? 바로 사랑과 욕망, 정동이 최선이 아닐까요? 지위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그저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존재가 된 그분에게 삶이라는 소풍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 신승철,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중</em>

1년 전 이맘때를 기억합니다. 신승철 선생님의 부고를 받아들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날, 장례식장의 해맑은 영정사진 앞에서 절하며 망연자실하던 날, 먼발치의 순례길을 걷다 신 샘이 꿈에 나와 아침에 왈칵 눈물이 고였던 날. 왜 하늘은 좋은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가, 왜 죽고 나서야 너의 의미를 알 수 있는가, 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왜 늦고야마는가 하고 차오르는 물음들. 오년이란 길지도 짧다고도 못하는 시간 속에서 맺어진 인연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맘때 이후로 몸과 마음의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신 샘이라면 분명 낯간지러워 할 말이겠지만 선생님은 제 스승이었습니다. 신승철 선생님에게 삶이라는 소풍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래도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는 늘 숙제인 것 같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몇 달 뒤 그 숙제를 풀고자 먼발치로 훌쩍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지만, 돌아간 사람을 애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더군요. 어느날인가 신 샘이 꿈에 나와 저에게 경을 쳤는데 도저히 그 영문을 모르면서도 제가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채감과 미안함과 같은 정동을 되돌이키며 여한을 쌓아가는 것이 좋은 애도는 아니라는 것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생물학적 유기체는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생태적지혜연구소와 철학공방 별난이라는 사회적 몸체와, 고양이,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이 이룬 정동적 몸체가 남아 이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고.” 먼발치에서 후회와 자책을 키우기보다, 지금-여기-가까이에 남아있고 살아가는 우리로서의 신 샘과 그 공동체에 함께하겠다고. 애도의 숙제는 함께 풀어갈 때 그 사이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생태적 지혜가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이어지고 이어받는 순간들을 사랑합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지금 죽어도 참 괜찮은 것 같아.”라고 말했더니 신 샘도 “너, 나랑 생각이 똑같다. 나 자신으로 아무 후회나 미련이 없어.”라고 답한 적이 있더랍니다. 매일 아침이 단 한 번뿐이라는 시간의 유한성을 진실히 깨달을 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는 무한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같이 기후생태위기에 절절히 슬퍼하면서, 동시에 그 특유의 상상력으로 우리에게 길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해맑은 미소를 기억합니다. 그 기억을 이어서 신승철학을 시작합니다.

“<em>어쩌면 아침이 늘 올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색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em>

* 故 신승철 1주기 추모(축)제에서 발표한 “신승철학(申承澈學)의 시작 – 세 가지 생태학의 렌즈로 살펴본 반복, 이음, 맑음”의 앞단으로 작성했습니다.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정성과 평화 담아

윤석 드림

 ]]></description>
			<author><![CDATA[장윤석]]></author>
			<pubDate>Sun, 30 Jun 2024 19:23:1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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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Re:녹색당을 애정한 승철샘의 녹색당 강령 전문 주해본]]></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36]]></link>
			<description><![CDATA[<b>&lt;</b><b>녹색당 강령 전문</b><b>(</b><b>前文</b><b>) </b><b>주해</b><b>&gt;</b>

<b>우리는 </b><b>‘</b><b>녹색당</b><b>’</b><b>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b><b>. </b>

녹색당을 씨앗이라고 본 것은 늘 싹을 틔우는 형성과 구성과정 중에 있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어떤 완성된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발아하고 창안하며 늘 씨앗처럼 잠재성과 깊이를 가진 상태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한 목표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에 수단과 도구를 설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이 아닌 늘 사안에서 형성되는 사람들에 주목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방식에 주목하는 것이다. 즉, 녹색당이라는 씨앗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삶을 재창안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셈이다.

<b>이 씨앗을 싹틔워 인류가 지구별의 뭇 생명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초록빛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b><b>. </b>

녹색당은 동물실험실과 공장식 축사 등에서 생명이 처한 열악하고 절박한 상황을 극복하고 생명평화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동시에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로 인해 생명과 자연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실천에 나서는 정당이다. 지구별의 생명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세상은 지구의 역사 속에서 생명들이 서로 공생하고 협동하면서 진화해 왔던 바와 공명한다. 이러한 공생진화의 과정처럼 생명과 만물이 연대하고 협동하는 미래로 향한다.

<b>우리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이며</b><b>,</b>

생태계는 서로 연결된 판과 배치이기 때문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면 그와 연결된 주변과 가장자리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시 말해 작은 변화를 강건히 반복하고 지속하는 한, 그 가까이에 있는 사물, 인간, 생명은 함께 변용하거나 적어도 태도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녹색당은 이런 점에서 생태혁명, 네트워크혁명, 연결망 혁명과 같이, 작은 도토리로부터 시작하여 온 산을 뒤덮을 떡갈나무 혁명을 만들어낼 주체성이다. 녹색당의 정치는 의식적으로 세를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통해서 점차 스며들 듯 주변과 가장자리의 변화를 촉발하는 방식을 따른다.

<b>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입니다</b><b>. </b>

녹색당은 연고, 학연, 지위, 권위 등에 따라 조직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성의 판위에서 구성되는 ‘자유인들의 연합’이다. 자유인들의 연합은 association으로 불리며 협동조합에서는 결사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권위에 대한 예속은 슬픔과 무능력으로 향하는데 반해,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기쁨과 사랑이라는 행동능력으로 향한다. 기존의 예속부터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고립된 개인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합, 협동, 연대의 시작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사람들이 아닌 채 연합하는 형태도 아니고, 자유롭지만 연합을 안 한 고립된 경우도 아닌, 해방과 자유와 함께 우애와 협동이 결합한 판과 구도가 바로 녹색당이다.

<b>우리는 지구별의 생명을 지키는 지구의 아이들입니다</b><b>. </b>

녹색당은, 인간중심주의와 같이 인간이 미리 주어진 전제조건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불변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구에서의 인간의 역할은 생태계의 특이점, 자연의 시중꾼, 대지의 양육자, 생명의 대리인으로서 끊임없이 생성하고 구성되어야 존재일 뿐이다. 이렇듯 구성과정에 있는 인간의 역할은 지구의 아이들로서 생명과 자연을 양육하고 돌보는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하는 것에 있다. 녹색당은 지구별이 유일한 우리의 집이자 고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지구를 약탈하고 착취하거나 떠나려는 생각들의 확산을 막고자 한다.

<b>우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나침반이자 등대이며</b><b>,</b>

녹색당은 누구도 불편해서 얘기하기를 꺼릴 때 홀연히 나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외칠 수 있는 1%의 용기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그런 점에서 녹색당은 1%도 안 되는 땅뙈기를 차지하고도 99%를 밝힐 수 있는 등대정당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녹색당의 가치와 진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지지층을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헤게모니나 세 과시가 목적이 아니라 늘 용기를 내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 나설 수 있는 등대가 되는 것 즉, 뜻과 지혜를 가지고 용기 있게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주체성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b>녹색전환의 씨앗을 심는 농부입니다</b><b>. </b>

녹색당은 가래와 삽을 든 농부정당이다. 농업은 앞으로 다가올 전환사회의 가장 중요한 비전이기 때문이다. 특히 녹색전환이 갖고 있는 일관된 방향성이 농업에 있다는 점은 농민정당으로서의 위상을 의미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민의 지혜가 발휘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씨앗을 심는 농부의 마음에 기반하여 미래적 지혜를 발휘하고자 하는 대지와 생명의 양육자로서의 태도를 녹색당은 갖고 있다. 돌보고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과 태도를 견지하며 녹색당은 씨앗을 심는 부드러운 농부의 마음에 기반한다.

<b>우리는 보이는 것과 함께</b><b>, </b><b>공기의 순환이나 에너지의 흐름</b><b>, </b>

<b>그리고 생명의 고동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b><b>.</b>

보이지 않는 거대한 생태계의 판과 관계망을 응시할 때 우리를 둘러싼 생태적 연결망의 일부로 자신이 위치함을 깨닫게 된다. 이는 가시적이고 실물적인 질서의 배후에 우주와 자연, 생명의 관계망의 있고 그 속에 자신이 일부임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과의 관계에서나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윤리와 미학을 중시하게 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태도를 기반으로 하여 생태계의 순환, 흐름, 반복의 고동, 율동, 화음 등에 대해서 감응하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녹색당이다.

<b>우리는 공동체 돌봄과 살림경제</b><b>, </b><b>협동과 연대의 경제 속에서 대안을 발견합니다</b><b>. </b>

녹색당은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에 대해서 주목하며 이를 적극적인 생활양식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는 협동과 연대를 통한 우애의 경제가 경쟁사회나 성장주의의 대안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의 판 위에서 사랑과 욕망, 정동의 흐름 위에 자원과 부, 에너지의 흐름을 순환시킬 때, 공동체와 생태계는 더욱 지속가능할 수 있고 다양하고 풍부해질 수 있다. 일자리와 복지의 문제 전반을 사회적 경제가 모두 책임질 수는 없지만, 사회적 경제는 기술과 과학혁명이 해낼 수 없는 정동, 사랑, 욕망, 살림, 보살핌, 돌봄, 모심, 섬김에 기반한 보다 인간적인 경제를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녹색당은 전환사회의 가능성을 싹트는 생명과도 같은 사회적 경제에서 찾는다.

<b>우리는 성장과 물신주의</b><b>, </b><b>경제 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정당이며</b><b>,</b>

우리의 행복은 GDP로 측정될 수 없으며, 성장주의 시대의 모습인 자기계발, 성공주의, 승리주의로는 우리의 고독, 외로움, 양극화,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탈성장 사회의 구상은 양적이고 실물적이고 외양적인 성장(Growths)가 아닌 질적이고 내포적이고 관여적인 발전(development)의 전략으로부터 촉매될 수 있다. 발전 전략은 커뮤니티의 내부자거래를 활성화하는 내발적 발전이나 미래세대의 욕구를 고려해서 현재세대의 욕구를 배치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탈성장전략은 자발적 가난이나 빈 그릇운동, 음식물쓰레기 제로 운동, 미니멀리즘과 같은 영적이고 심미적인 운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개인적인 차원의 빈곤은 해결해야겠지만,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여 윤리적이고 심미적인 ‘더불어 가난’을 만들어내야 하는 숙제도 등장하고 있다.

<b>화석연료와 핵에너지를 넘어선 태양과 바람의 정당</b><b>,</b>

기후변화, 미세먼지, 플라스틱 대란 등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며, 동시에 미래세대에게 해결할 수 없는 쓰레기와 위험부담을 남기는 핵에너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녹색당은 에너지전환에 있어서 가장 탄력성, 지속가능성, 안전성 있는 에너지가 바로 바람과 태양의 에너지임을 분명히 한다. 재생에너지가 갖고 있는 보다 민주적이고 분산된 에너지로서의 위상처럼, 에너지민주화와 지역분권화를 통해서 에너지전환을 이끄는 것이 바로 녹색당이다.

<b>문명사적 전환을 만드는 녹색정당</b><b>, </b>

TV문명, 아파트문명, 자동차문명, 육식문명, 일회용품문명, 마트문명 등은 모두 관계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되도록 설계되어 있는 문명의 현주소이다. 자신과 관계도 없는 사람과 거래를 하고, 자신과 관계도 없는 사람의 소식을 들으면서 고독하고 외로운 1인 가구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문명의 전환은 생명, 자연,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 속에서 새로운 대안과 희망을 말하는 것에 있다. 위생적이고 탈색된 관계가 아니라, 우애와 협동, 연대가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를 만드는 정당이 바로 녹색당이다.

<b>반정당의 정당입니다</b><b>.</b>

<b>따라서 우리의 대안정치는 기성정당과 같을 수 없습니다</b><b>.</b>

이제까지 이 땅의 정치사에 들고난 수많은 정당들은 수권정당의 목표로 하면서 성공과 승리를 향한 물신화되고 권력화 되는 과정을 겪어 왔다. 녹색당은 권력 장악이라는 정치적인 동기에 기반해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태계와 공동체, 시민사회의 파견부대로서의 역할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녹색당은 반정당의 정당으로서 정치물신주의, 정당권위주의 와 같은 기성정치의 틀로부터 벗어나 내부에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하나의 공동체의 판과 구도를 내부에 가지고 운영되는 방향성으로 향하고 있다. 즉, 이념과 의미, 가치로 모인 정당의 성격이 경직되고 딱딱하고 권위주의적인 질서를 만드는 데 반해, 공동체의 파견부대이자 자신이 바로 공동체이기도 한 녹색당은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질서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 자체가 물신화되어 있는 기존 정당과 녹색당은 완전히 다른 구도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겠다.

<b>우리는 보편적 인권을 넘어 생활정치ㆍ다양성 정치ㆍ녹색정치를 통해 소수자와 생명과 자연을 옹호합니다</b><b>. </b>

녹색당은 공동체의 다양성의 판 위에서 자율성을 확장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없이 재창안하여 왔다. 이는 생태시민성과 공동체성의 연결지점 즉, 권리주의와 자율주의의 교집합에 놓여 있다. 역사적으로 보편적인 인권을 넘어서 생명권으로 생태권으로 난민과 소수자, 여성의 권리로 도시에서의 주민의 권리로 권리주의를 확대해 왔던 것은 공동체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과정과 공명한다. 녹색당은 생명과 자연의 권리와 자율성이 확대하는 녹색정치를 지향하면서도, 정치와 생활세계를 별도로 두는 것이 아니라 부엌에서도 직장에서도 인터넷, 미디어, 게임 등에서도 이루어지는 생활정치를 구성하려고 한다. 즉 가정의 민주화, 직장의 민주화, 커뮤니티의 민주화라는 삶과 가장 친밀한 생활 속 민주주의를 구성하려고 한다. 이는 미시적인 삶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상 속에서의 민주화부터 바꾸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b>우리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과 낙관을 잃지 않으며</b><b>, </b>

<b>비폭력과 평화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b><b>.</b>

폭력과 투쟁, 저항만이 유일한 사회변혁의 방법론이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그 일을 해낼 수 있고 색다른 생활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성의 변화에 달려 있다. 우리는 사회생태계의 변화가 늘 구성 중에 있고 주체성이 늘 생산 중에 있다는 낙관 속에서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활동할 것이다. 이는 비폭력직접행동이자 평화의 행동, 즉 폭력에 맞선 폭력이나 증오에 맞선 증오가 아닌 증오를 사랑으로 감싸 안아 더 큰 사랑으로 만드는 비폭력과 평화의 힘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포기할 수 없으며, 평화와 비폭력은 우리가 적으로 규정한 상대방에게도 내면에 울부짖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는 것에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랑, 우애, 평화의 힘이 세상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깊은 믿음이 녹색당에 있다.

<b>우리는 세계 녹색당과 함께 지구 곳곳에서 녹색전환을 실현할 것이며</b><b>,</b>

<b>이 길에 당신을 초대합니다</b><b>.</b>

녹색당은 일국정당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당이다. 현재 전 세계 60개 국가에 녹색당이 있으며,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기에 공동으로 연대하여 행동하고 있다. 이는 녹색당이 국가주의정당이 아닌 연방주의정당 즉 세계시민사회에 기반한 정당임을 보여준다. 이 길은 열려 있으며 환대와 우애의 장(場)이기에 모두를 초대하며 누구나 함께 할 것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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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장윤석]]></author>
			<pubDate>Fri, 28 Jun 2024 08:29:5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승철 선생님께(2023.7.2)]]></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35]]></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translate-tooltip-mtz blue sm-root translate hidden_trans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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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header-controls">신승철 선생님께</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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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샘, 제가 받은 은혜가 참 많은데 갚을 길도 없이 이리 가셔서 황망합니다. 실은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제가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저는 신 샘을 제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그에 결맞게 모시진 못한 것 같지만, 신 샘을 정말 존경했어요. 신 샘처럼 곁을 믿고 품을 내주는 사람이 있었나 싶어요. 아무 것도 없던 제게 글을 써보라 책을 써보자 권해주셔서 부족하나마 이것저것 해볼 수 있었어요. 생태적지혜연구소가 그런 공간이었죠. 신 샘이 격의 없이 젊은 이들을 대하고 온갖 기회를 넘겨주고 장을 열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덕으로 한이 차고 말이 넘치던 이들이 지면에 글을 싣고 강의와 콜로퀴움에서 목소리를 내며 같이 커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참 감사한 일인데 제가 표현이 서툴러 많이 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제라도 감사합니다, 하고 늦게 말을 올립니다. 제가 기후 이야기 녹색당 이야기 이것저것 고민을 털어놓으면 신 샘은 가만히 듣고 이것저것 해주셨어요. 녹색당 자문위원도 맡아주시고, 공론장에 이분 저분 추천한다고 소개해주시고, 이것 저것 읽어보라고 주시고. 가장 감사했던 건 크고 작은 조언들입니다. 그 중 생태학과 마음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하신 말씀이 저에게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생태학에는 사회생태, 자연생태, 마음생태 세 가지 생태학이 있고 마음에는 넓이, 높이, 깊이의 마음이 있다고. 그리고 이들은 서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어 불화하거나 상충되지 않고, 설령 그렇더라도 연결된 하나이자 셋으로 있을 거라고. 그린뉴딜은 가속주의, 탈성장은 감속주의, 양자가 길항작용을 일으킬 때 전환은 빚어진다고. 그러니 넓게 보고 가자고. 신 샘의 생태철학은 모든 녹색을 아우를 수 있는 넓이, 높이, 깊이의 품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주 서로 뾰족하게 자기 말만 맞다고 속좁게 아웅다웅 다투는데 그 속에서 계속 함께하고 같이갈 수 있는 그림을 그려주셨어요. 신 샘의 뜻을 잊지 않을게요. 잘 이어가 볼게요. 사람들이 많이 슬퍼하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신 샘 답다 싶었어요. 마침 오늘 달도 이상하리만큼 환합니다. 이번 생에 짧은 만남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문래동에서 커피 내려주시던 신 샘과 고양이 안부도 묻고 이것저것 나누던 대화가 너무 그립습니다. 부디 편하게 가세요. 가시는 길 위기고 전환이고 그런 것 없이 소박하게 풀밭이길 바라겠습니다.

정성과 평화를 담아,

윤석 올림

*1여 년 전 신 샘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긴 추도사를 늦게 추모 게시판에 올립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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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author><![CDATA[장윤석]]></author>
			<pubDate>Fri, 28 Jun 2024 08:11:4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천근성 작가 경향신문 인터뷰 링크(소장님과의 우정)]]></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34]]></link>
			<description><![CDATA[ 
<h4 id="article_title" class="headline">“뒤와 옆을 자주 돌아보며, 사각지대 존재들과 연결 회복하겠다”</h4>
<b class="quote">- 고립된 노인에 그리운 사람과 풍경 전달하고,버려진 물건 되살려 환경과 인간 다시 잇기
- 생태민주주의 주장한 고 신승철과 우애 쌓으며 공동체 만드는 방법 배우고 행동 나서
- 노숙인들의 집 고쳐주며 그들이 시혜 대상 아닌 호혜관계의 이웃인 것을 깨달아
화랑 안 전시도 좋은 예술이지만, 화랑 밖 사람들 변화 만나는 것도 큰 기쁨</b>

 

<a href="https://www.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2401232023005">[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뒤와 옆을 자주 돌아보며, 사각지대 존재들과 연결 회복하겠다” - 경향신문 (khan.co.kr)</a>]]></description>
			<author><![CDATA[이승준]]></author>
			<pubDate>Wed, 24 Jan 2024 18:34:0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故 신승철 박사를 기리며]]></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33]]></link>
			<description><![CDATA[<h5>본 글은 지난  9월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학술대회 발표의 서두에서 故신승철 박사를 추도한 글로 늦게나마  이렇게 올려봅니다.</h5>
우리는 그를 보내고 한 동안 슬픔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그를 다른 세상으로 보냈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저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처음엔 지금이라도 전화하면 오빠의 음성이 들릴 것만 같았습니다.

의료진이 심장마비와 상황을 설명할 때는 현실인지 아닌지 스스로 중얼거리며 묻기까지 했다가 장례를 마치고, 또 얼마 전 49제가 되어 오빠를 용인에서 마주하면서야 비로소 그가 그곳에서 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보내며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그의 지인들이 알고 보니 그의 인생과 생각을 함께 나눈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형제들은 젊은 시절 인생을 각자 고군분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생물학적 가족이 아닌 마음의 가족들과 사랑을 나누며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갑자기 많은 언니, 오빠, 동생이 생기게 되었고 오랜만에 삶이 살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오빠의 학문에 대해 배우고 알아가면서 그의 생각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여러가지 말들이 떠오르면서 그가 저에게 전하려 했던 생각들을 이제야 겨우 하나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래서 “오빠가 알려주고 싶어하던 것이 이런 것이었다니!” 라며 감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의 말과 글과 실천들은 모두 그의 삶이자 활기찬 생명력 그 자체였습니다.

무엇보다 세 번째로 이렇게 그에 대해 다시 알아가면서 저는 스스로 몰랐던 저 자신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어떤 삶을 꿈꾸고 있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스스로 원했는지 조금씩 알아가면서 지금은 내 속에서 부활한 그와 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다쟁이 오빠를 매일 만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서로 모른체하지 말고 함께 행복하자.”

지금 그는 매일매일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저라는 항구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어리석었던 과거의 자신을 탓하면서도 그를 통해 사랑이 무엇이고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인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뜬금없는 고백을 하자면 누구나 어두운 터널을 혼자 걸어야 하는 시간이 있듯이 저에게도 그런 시간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압니다.

그가 저에게 생명과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저를 돌보아 주고 있다는 것을요.

그가 떠난 이후에 깨달은 생명, 그가 떠난 이후에 알게 된 내 안의 사랑, 너무도 모순되지만 이제야 오빠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오빠는 '나'라는 세상에 갇혀있던 저를 항상 안타까워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물리적 공간과 세상에서는 더 이상 그를 만날 수는 없지만 또 우리는 잘 압니다. 그의 글과 생각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그와 호흡하고 만나고 있다는 것을요.

우리의 삶 속에서 그는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를 돌보고 있으니까요.

일상이 파티와 소풍이라 기뻐하던 그의 소박함은 우리들이 있다면 항상 존재할 것이고,

아직 우리가 못 다 이해한 진행 중이자 진화 중인 그의 철학은 앞으로도 우리의 글과 실천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모두의 마음을 담아 감사의 마음으로 글을 갈음합니다.

신세리 올림]]></description>
			<author><![CDATA[신세리]]></author>
			<pubDate>Tue, 05 Dec 2023 21:49: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Re:신승철을 읽는 삶]]></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32]]></link>
			<description><![CDATA[선생님, 감사합니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저를 가만히 토닥여주네요.

함께 신승철을 읽으면서, 서로 기억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description>
			<author><![CDATA[생태적지혜]]></author>
			<pubDate>Sun, 26 Nov 2023 19:52: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승철을 읽는 삶]]></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31]]></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g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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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class="tit">&lt;떡갈나무 혁명을 꿈꾸다&gt; _ 신승철 읽기모임에서</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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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user_wrap"><a class="thumb" href="https://m.cafe.naver.com/ca-fe/web/cafes/31046917/articles/39?tc=article_bottom_article_list#"><img src="https://ca-fe.pstatic.net/web-mobile/static/default-image/user/cafe_profile_77.png?type=c77_77" alt="프로필사진" width="40" height="40"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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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info"><span class="date font_l"><span class="blind">작성일</span>2023.11.21. 06:43</spa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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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id="SE-3d571d47-0019-4b0e-b4f3-5957cf421738"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fbcb80f5-bbf7-4270-be53-9b625b217888" class="se-fs- se-ff-">제게 '신승철' 선생님은 삶의 '기호'가 되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죽음'이 늘 그렇듯, '죽음'의 차원이 된 존재는 모두 그렇게 제 삶의 '기호'와 '상징'이 되었지요. </span></p>
<p id="SE-b7e879da-dbf9-4b7d-bad7-0b289cf2688c"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7671ba83-6aa2-418f-85c9-cee4415b8e21" class="se-fs- se-ff-">​</span></p>
<p id="SE-47641b40-d014-4f27-b41f-2a7d08efa05f"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3641e008-b3f7-4634-bb12-4dcd7d25b789" class="se-fs- se-ff-">그를 잘 모르는데도, 그를 잘 아는 사람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span></p>
<p id="SE-4b91479c-18b1-457f-bc3d-ec895db17483"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26e9305f-90e0-4251-aea9-a1b1f1441193" class="se-fs- se-ff-">그와 만난 적이 없는데도, 그와 깊이 만나고 있는 것 처럼 그립습니다. </span></p>
<p id="SE-97752536-fe04-47cb-9512-3c71a2e66d5d"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ad091e4b-9f43-4572-8f8d-93c46f70e8c2" class="se-fs- se-ff-">​</span></p>
<p id="SE-3be9d8ba-642e-4926-b1a4-2afd84098513"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ec443532-101a-498d-b4ea-794b72999e1c" class="se-fs- se-ff-">그런데 이상할 것은 없지요. </span></p>
<p id="SE-270671b4-a1cd-4a22-b4d6-369974dda955"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58085f80-f4cb-4d25-beaa-3bef1c458ac9" class="se-fs- se-ff-">존레논과 존덴버, 그리고 이루 말 할 수 없는 존재들과도 이렇게 인연을 맺어가고 있으니까요. </span></p>
<p id="SE-24b81822-1044-4459-8f00-847a06af0cd0"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224c4e0e-3aea-473c-a2e0-dfe9b1f5392d" class="se-fs- se-ff-">​</span></p>
<p id="SE-6d8ca5b8-12dc-4bf9-9f62-0d6ddcebaf52"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9723a916-da39-4807-8690-4a1ad498b108" class="se-fs- se-ff-">어제 8시부터 어튠먼트 모임이 있었기에, 한 시간만 참여할 수 있다고 알리고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span></p>
<p id="SE-2e381fe5-6804-4301-899c-f050237c3326"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cde1f1f4-1618-42ce-9238-4e9a7ae1a5fb" class="se-fs- se-ff-">​</span></p>
<p id="SE-390349dc-b1d5-46a6-9aa3-0524dc68cb49"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0a1e2d4a-2d48-4047-9a90-32b5f2d5532c" class="se-fs- se-ff-">'마주 본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읽게 합니다. '온라인'에선 모든 이가 서로 마주볼 수 있도록 자리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서클'의 자리 보다 더 중심을 향한 모습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모두와 마주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렇게 '마주'하는 것 같지만, 그 가운데 정말로 '마주 보는' 이가 있지요. 때론 나 자신이기도 하고, 어제 처럼 신승철 님의 곁지기였던 이윤경 선생님이기도 하지요. </span></p>
<p id="SE-059f8168-d1f2-40b2-b810-3783137c891f"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275a74f2-7c63-4ab0-84d2-bfe014249b29" class="se-fs- se-ff-">​</span></p>
<p id="SE-a92da948-2791-48d6-8e6f-f06fc3e88071"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0428233f-f676-4e4c-ba08-0d1f5dfd722f" class="se-fs- se-ff-">이름이 맞는가 모르겠어요. '이윤경', 신승철 선생님 부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다음 이메일을 통해서였어요. 그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가 이 분이셨고, 한번은 뵈로 가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옆에서 뵈어 눈을 마주하지는 못 했습니다. </span></p>
<p id="SE-3a41394e-7abc-4d57-84b5-63603ec3088b"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d740daab-d1a2-4c8f-b366-66b0702285e6" class="se-fs- se-ff-">두 분이 책을 '맹렬히' 내신다고 들어서, 아주 강한 분일 거라는 생각을 왜 했을까요? 강한 사람이 책을 '맹렬히' 낸다고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윤경 쌤은 '배움'에 진심인 학생처럼 느껴졌습니다. 두 분은 공부하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공부의 기록, 여정을 책으로 담으셨겠구나. 이런 가벼운 직감들이 연결되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안부를 물어주셨어요. </span></p>
<p id="SE-69bb1225-b414-4b36-ad90-292be17fbebb"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1b41267f-fab7-4525-806d-f422b8221d94" class="se-fs- se-ff-">마침내 거기 얼굴이 등장한 모두의 안부가 연결되고, 저는 가장 궁금한 윤경쌤의 안부를 여쭤보게 되었지요. </span></p>
<p id="SE-fa092aa6-6342-4dee-ad8b-b711b683322f"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ccf2fe01-d7af-4fc8-ad82-6e533837fd63" class="se-fs- se-ff-">​</span></p>
<p id="SE-c5a99c67-2853-4a14-ba8b-0fb4a2e86bb3"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2837d225-de84-4365-8fe9-5b9e34b53eef" class="se-fs- se-ff-">사실 우리는 벌써부터 울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부는 그 눈물이 밖으로 흘러나와 우리를 떠나고 있었지요. </span></p>
<p id="SE-771ba935-eb16-4a39-893b-bd93367a8a55"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40703d31-e63b-4334-97d6-eedd27f7b59d" class="se-fs- se-ff-">이 글을 쓰는 지금 한 몸이었던, 한 공동체였던 존재들이, 그 공동체를 떠나, 우주로 흘러간, 다른 차원으로 흘러간 </span></p>
<p id="SE-e9db8699-9d94-4249-be0b-163b9a9e24c4"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2dc9a9bc-d633-4546-bfbf-a3973a96424c" class="se-fs- se-ff-">'신승철'이란 눈물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듭니다. 어느 땐 그저 흐르는 대로, 어느 땐 손수건으로 닦기도 하고, 어어느 땐 참아내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참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더 울고 싶었거든요. 이 울음은 어떤 목적을 향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고, 따로 애도하는 장을 열지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제안에는 여전히 '신승철'에 대한 눈물이 있습니다. 한번도 만나지 않은 저조차도 이런데, 그 분과 함께 먹고 자고 살고,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했던 곁지기는 어떨까요. </span></p>
<p id="SE-578c1741-4904-4373-a508-0ca55be75305"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36a050d2-f8af-48c0-85c1-43a474af46e5" class="se-fs- se-ff-">​</span></p>
<p id="SE-9a02beeb-44a1-4b2b-816d-c698ae50d4bd"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376fd24a-bfad-4df2-9cf1-839ab1f71d24" class="se-fs- se-ff-">사실 어제 만난 이들이 익숙한 이들이었다면, 저는 이렇게 말했을 거에요. "우리 오늘은 좀 울면 어때요..." 이미 지난 시간이라고, 이미 이런 거 했다고, 이미 보냈다고 .....괜챦다고 하지 말고...우리 눈물에게 시간을 좀 주면 어때요.....</span></p>
<p id="SE-6b558766-03b5-4c7a-926d-123c62b40f64"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5aa7240f-9a8c-449b-a93d-1428a6ce5bd5" class="se-fs- se-ff-">​</span></p>
<p id="SE-5f2848f2-0743-4272-bf63-d71d3d928cb1"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4a11932b-2dcb-4de2-b7ae-0b5e25149647" class="se-fs- se-ff-">​</span></p>
<p id="SE-b9e25cea-3a36-451d-bd1e-e24d5ec765ac"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2a829b04-eac0-46bc-a894-416a3517d341" class="se-fs- se-ff-">* ( 쓰다보니 존댓말을 안하고 있다 )</span></p>
<p id="SE-fc7e01d7-f17d-4fc6-9317-ccc2f4e37b49"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4b15dce4-387e-4105-80b8-2eb9ee5833a2" class="se-fs- se-ff-">그러나 우리는 눈물을 훔치며 '신승철'을 읽었다. 지금 생각하니, 신승철 선생님이 원하시는 바 대로 한 것 같다. 울면서 공부하기, 울음을 참으면서 공부하기, 우는 이를 바라보면서 공부하기, ......공부하기. </span></p>
<p id="SE-013cd509-39e3-4ee0-b7ec-3e164fcb66d4"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9e134ab7-cb88-42ce-a344-745c17cc8522" class="se-fs- se-ff-">​</span></p>
<p id="SE-b8f2ccc5-ffd4-4a5c-a821-54a38d6025dc"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b79b054f-f694-426d-8e2c-7fb30d4dfe91" class="se-fs- se-ff-">공부 함께 해요? 였던가? 공부 같이 해요 였던가? </span></p>
<p id="SE-f7369036-ad10-48e4-b6b9-cfeb371f85a9"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7bb7561d-cdbd-4703-8ba5-32461665ba5f" class="se-fs- se-ff-">​</span></p>
<p id="SE-8f4180a1-3f9f-4f3e-84dd-41f05133863d"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e7a75417-6a35-4353-9b01-7a0e6cf1db19" class="se-fs- se-ff-">아주 잠시였지만 나는 그에게서 '동료애'를 느꼈다.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사실 더 사실적으로 나의 상태를 공유했던 것 같다. 그는 '기다린다'고 표현했다. 나는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내가 내 움에서 나가는 날 그를 찾아가리라 결심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span></p>
<p id="SE-f19db2a2-bfc5-41ed-8b84-72621cf90f93"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41632c51-43d7-464f-8544-ad6ceccaa625" class="se-fs- se-ff-">​</span></p>
<p id="SE-c8b3eb83-db79-4c84-8713-5941bbabaf32"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p>
<p id="SE-d2f8fbbc-0983-4700-b519-bebbae63af15"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ff010e1f-a6d9-45e2-869d-22a5d7ad438b" class="se-fs- se-ff-">​</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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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class="se-fs- se-ff-">​</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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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div>]]></description>
			<author><![CDATA[아프리카]]></author>
			<pubDate>Tue, 21 Nov 2023 21:58: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고 신승철 박사님 추모글 작성중 (한국광학회 K-Light)]]></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30]]></link>
			<description><![CDATA[여러분 안녕하세요 ~

저는 한국광학회 학술이사겸 광학회에서 년간 4회 발간하는 K-Light 매거진 편집장이었었던 광주과학기술원 유난이 입니다.

2018년부터 2023년 2월까지 K-Light 발간을 맡아오면서

우연히 생태적지혜연구소 소장이셨던 고신승철 박사님의

주옥같은 글을 K-Light에 연제하게 된 인연이 있습니다.

 

급작스런 부고에 사단법인 한국광학회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조문을 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 이사회의 의논끝에

추모의 글을 다음호인 10월에 전편집장인 제가 쓰기로

지면을 할애받았습니다.

저희는 광학과 물리학의 공통적인 연구집단으로

이런분야의 내용들이 친숙하지는 않았지만

신박사님의 글이 3년이상 꾸준히 연제되면 많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혹시 추모의 글에 동참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짧게 3-4분의 글을

인용하는 형태로 제가 올리고자 합니다.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은 A4용지 1/2 정도의 분량의 글을 자유형식으로

(기념 사진포함가능 &amp; 신박사님과 함께한)

작성하시어

 

neyu@gist.ac.kr로

9월 10일까지 전달해 주시면 제가 간략한 편집을 거쳐서 저의 추모원고와

함께 광학회에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난이 드림

 ]]></description>
			<author><![CDATA[유난이]]></author>
			<pubDate>Tue, 05 Sep 2023 08:43: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갑작스러운 부고]]></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29]]></link>
			<description><![CDATA[&lt;신승철박사의 갑작스러운 부고&gt;

저는 어제 밤에 일본에 도착하였습니다.
침략의 역사적 책임을 참회하시고 일본에 반출된 1천여점이 넘는 한국의 문화재와 자료들을 구입해서 한국으로 보내주셨고 1년에도 9-10회넘게 만나온 이치노헤 쇼코스님께서 지난 3월말 입적을 하셨고 오늘 추모제를 갖기로 하여 일본에 왔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황망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생태철학자인 신승철박사가 뇌출혈과 심정지로 운명했다는 부음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기후위기와 생태주의에 대해 4-50권의 책을 쓰고 다양한 강좌와 여러 연구자와 단행본을 기획하고 많은 연구모임을 조직할 정도로 대단히 부지런하고 성실한 학자였고, 필요로 되는 기후환경운동에 혼신으로 참여하고 지원해온 실천적인 철학자였습니다.

10여년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주의 연구소를 만들때 내가 강력히 연구소 책임자로 추천했던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인연이 깊어졌습니다. 이후 수시로 의논했고, 도움을 청하면 언제나 순박하고 순수한 그 특유의 목소리로 혼신의 힘으로 도와주고, 하루에도 몇번씩 통화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입니다.

생태적지혜연구소를 협동조합방식으로 운영하면서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생태주의자들의 거점이자 사상적 의지처가 되었던 곳입니다. 아침에 기도를 하면서 그의 두툼한 얼굴의 선한 눈빛이 떠오릅니다.

2005년 40대의 젊은 생태정치학자 문순홍박사님도 일찍 보내야했고, 이제 신승철박사까지 없다니 가슴이 구멍이 난듯 정말 헛헛한 마음입니다. 기후위기시대 정말 소중하고 아까운 큰 분이 내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더욱이 조금뒤 12시에 동경 신바시근처에서 이치노헤 스님을 보내드리는 추모제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 너무도 슬프군요.
<blockquote>신승철박사 잘가시게...,
하늘에서도 기후위기의 해결을 위해 함께 애써주시길...</blockquote>]]></description>
			<author><![CDATA[유정길]]></author>
			<pubDate>Fri, 01 Sep 2023 12:41:2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기후위기와 마음의 생태학]]></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28]]></link>
			<description><![CDATA[원고 마감을 하다가,, 바람과 물이 1호를 시작할 때 마음을 주제로 신 샘께 부탁드려 받은 글인데, 다시금 읽을 수록 남아서 생지연 여러분께 공유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을의 초입, 주말을 잘 갈무리하며 마음 살피시기를

"수많은 기후위기 선언, 탄소중립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것은 마치 절박하고 파열된 우리의 마음에 주는 일종의 진통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친구, 가족, 이웃과 만든 관계와 배치가 던져주는 마음의 생태계에서 진정으로 출발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설명할 때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현실의 변화가 없는 무의미한 선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와 배치의 변화를 통해서 마음의 성좌를 바꿔나갈 때 현실의 변화는 느린 거북이처럼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탈성장 전환사회는 우리의 가난한 마음, 연결의 마음, 연대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웃과 친구와 가족과 더불어 가난해질 때, 우리는 온갖 가식과 허위를 벗고 마음의 깊이와 높이, 넓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이 기후위기 상황에 입체적이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 속에서 희망의 이야기를 다시 나누어볼 수 있는 여지도 생겨날 것이다. 희망은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져버린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작은 목소리지만 여전히 울림이 되는 마음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신승철(2021),「기후위기와 마음의 생태학」『바람과 물』1호 기후와 마음

<img src="https://ecosophialab.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308/64eb3473a43cc5782353.jpg" alt="" /><img src="https://ecosophialab.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308/64eb3473edda45535211.jpg" alt="" />

<img src="https://ecosophialab.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308/64eb3474241518577338.jpg" alt="" />
<div>
<div class="css-diqpy0"></div>
</div>]]></description>
			<author><![CDATA[장윤석]]></author>
			<pubDate>Sun, 27 Aug 2023 20:33: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이어갑니다]]></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27]]></link>
			<description><![CDATA[읽고 새기고 전파하겠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배성희]]></author>
			<pubDate>Tue, 08 Aug 2023 11:42: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故신승철 소장 추모 관련 언론 보도]]></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26]]></link>
			<description><![CDATA[① 【추모】 “새로운 세상 꿈꾸며 왕성하게 활동한 실천적 혁명가” by 이승준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이사장 2023-07-18

<a href="https://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1100532.html?_ga=2.209385623.469373727.1690708974-1269321670.1661486812"><u>https://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1100532.html?_ga=2.209385623.469373727.1690708974-1269321670.1661486812</u></a>

 

​

② 【추모】 ‘독립연구자’ 신승철·정태인을 기리며 by 한윤정 전환연구자 2023-07-22

<a href="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7220300035?utm_source=urlCopy&amp;utm_medium=social&amp;utm_campaign=sharing#c2b"><u>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7220300035?utm_source=urlCopy&amp;utm_medium=social&amp;utm_campaign=sharing#c2b</u></a>

 

​

③ 【추모】 “고립된 저에게 온기 나눠줬던 따듯한 연구자” by 김종희 전남 강진군 칠량면사무소 주무관 2023-08-01

<a href="https://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1102468.html"><u>https://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1102468.html</u></a>

​

​

④ 【부고】 [한겨레] 신승철 생태적지혜연구소 소장 별세 2023-07-03

<a href="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98560.html"><u>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98560.html</u></a>

​

​

⑤ 【부고】 [경향신문] 생명권·탈성장 연구한 학자이자 소수자와 연대한 활동가 신승철 소장 별세 2023-07-03

<a href="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7031944001"><u>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7031944001</u></a>

​

 

⑥ 【부고】 [연합뉴스] 신승철 생태적지혜연구소장 별세 2023-07-04

<a href="https://www.yna.co.kr/view/AKR20230704022700005"><u>https://www.yna.co.kr/view/AKR20230704022700005</u></a>]]></description>
			<author><![CDATA[생태적지혜]]></author>
			<pubDate>Thu, 03 Aug 2023 17:50: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과거로부터 온 봉투]]></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25]]></link>
			<description><![CDATA[조의금 봉투를 정리하다보니, 아주 많은 분들이 봉투에 짧게 애도의 마음을 적어 주셨더군요.
적어주신 메시지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눈물 버튼이었지만, 특히 그중 하나가 저를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혹시라도 이름이 알려지는 걸 꺼리실 수 있어서 부분적으로 가렸습니다.

<img src="https://ecosophialab.com/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307/64b094ef96c9e4621022.jpg" alt="" />

<em><strong>*앞면</strong></em>
<em>날날 님께</em>
<em>삶도, 사랑도, 공부도,</em>
<em>늘 정진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em>
<em>철학공방 별난의 이름으로</em>
<em>장학금을 드립니다.</em>
<em>- 2016년 가을에 철학공방 별난</em>

<em><strong>*뒷면</strong></em>
<em>존경하는 스승님</em>
<em>저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em>
<em>사랑으로 받았고</em>
<em>사상으로 갚겠습니다.</em>
<em>철학에도 유전자가 있다면</em>
<em>물려받고</em>
<em>또 퍼뜨리겠습니다.</em>
<em>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em>
<em>종종 용인에서 뵙겠습니다.</em>
<em>-영원한 포틀래치와 함께 이○○</em>

앞면은 분명 내 글씨인데 싶어 어리둥절하다가,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 한조각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즈음 저희 철학공방 별난에서 기거하면서 함께 세미나도 하고 책도 쓰면서 연구원으로 있던 신승철 소장님의 제자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한분은 유학길에 오르고 또 한분은 군대에 가면서 소원해졌더랬지요.
그뒤로 소장님은 종종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그때 이런 이야기를 더 해 줄 것을....' 하며 아쉬움을 담아 회상하곤 하셨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셨네요.
멀리 계셔서 아마 본인은 오지 못하고 지인을 통해 봉투만 전달하신 듯합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 봉투를 이토록 오랫동안 깨끗하게 보관하고 계시다가 돌려주신 것입니다.
제가 며칠동안 가방속에 가지고 다니다가 구겨졌을 뿐 처음에는 더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신선생님이 시작한 '영원한 포틀래치'가 날날 님을 통해, 그리고 철학공방 별난과 연결된 모든 사람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날날 님, 한국에 돌아오시면 철학공방 별난에도 들러주세요.]]></description>
			<author><![CDATA[이윤경]]></author>
			<pubDate>Fri, 14 Jul 2023 09:24: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Re:신승철 선생님 연구, 저술 목록]]></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24]]></link>
			<description><![CDATA[<ul>
 	<li>정리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향후 있을 신소장님 책읽기 모임의 기본 데이터로 사용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래는 수정할 사항입니다.</li>
 	<li></li>
 	<li><strong>II. 학술(잡)지 5번 "교군꾼 속의 키다리 - 친구 재영에게." 실천문학 -.139 (2021): 147-164. 은 동명이인의 글입니다.</strong></li>
 	<li>학술잡지 목록에 이번에 발간된 &lt;시대와 철학&gt; 34권 2호(통권 103)(2023)에 "성장의 ‘자본’과 탈성장의 ‘화폐’ "가 수록되었습니다.</li>
 	<li><strong>III. 저술 25번에 두권의 책이 겹쳐져 기록되었어요.</strong></li>
</ul>]]></description>
			<author><![CDATA[이승준]]></author>
			<pubDate>Tue, 11 Jul 2023 15:49:4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쌤..]]></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23]]></link>
			<description><![CDATA[<div id="post-view223150350260" class="wrap_rabbit pcol2 _param(1) _postViewArea223150350260">
<div class="view">
<div class="se-viewer se-them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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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SE-0caa9356-c4f0-472d-8217-56467cc5165d" class="se-component se-text se-l-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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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se-section se-section-text se-l-default">
<div class="se-module se-module-text">
<p id="SE-0f1e8d17-b7c2-4630-acee-c650aae4908e"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dae2c367-e53f-4718-901c-ad26acc1205c" class="se-fs- se-ff-">살기 위해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span></p>
<p id="SE-e7ef8f85-52e1-428c-9b6c-ec62fe4231a8"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0c3b4569-208e-4824-81db-3c971ed11e3d" class="se-fs- se-ff-">죽은이들의 철학에 마음을 기대어보기도 하고, 산 자들의 뜨거운 박동에 파묻혀 사회운동을 해보기도 하고요. </span></p>
<p id="SE-bdd3319e-7e00-49bc-bdbf-6dcf15cf2706"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43a5f505-0ff3-4d38-ba17-c77ce7f719e8" class="se-fs- se-ff-">기후의 급격한 변화는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span></p>
<p id="SE-589f2c38-e483-4dd5-a743-6fa110ed0bf8"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814eefe5-3b19-45cb-ba52-ecc3e6b22f07" class="se-fs- se-ff-">모든 사회운동은 아주 느리게 좋은 쪽으로 바뀌고, 물론 기후운동도 그러하지만 다른운동과 달리 기후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없다고 계속 경고해요. </span></p>
<p id="SE-4e10d561-f609-46ee-9c98-8c1e1e816584"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ff477346-2042-448b-972e-17856ddcb118" class="se-fs- se-ff-">모든걸 알고서도 죽음을 향해 달리는 트롤리의 선로를 바꾸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가요. </span></p>
<p id="SE-b81e1258-1172-428c-b6cc-74fc63c0def4"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a8253f75-34f2-485b-983c-a38ec4f0cd40" class="se-fs- se-ff-"> 전생이라는게 있다면, 활동가들은 가장 큰 죄를 진 사람들이 아닐까요. </span></p>
<p id="SE-d20a580e-a5a0-4ded-be17-c702b6fa0ec7"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b55b780f-287b-454f-af19-855678612a6f" class="se-fs- se-ff-">슬픈엔딩을 알면서도 무고하게 죽어가는 이들을 한명이라도 구하려고 밑빠진 독 안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삶을 살아요. 이런 삶은 끊임없이 정신적 외상을 주지요. 그런데 그 모든걸 알면서도 이 삶을 멈출수가 없어요. </span></p>
<p id="SE-3ef14f62-1434-46a0-a01a-ca809b77e448"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f10bf509-6c4d-464b-bf08-8f6ad66822eb" class="se-fs- se-ff-">멈추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계속하면 나는 '미친사람'이 되요. </span></p>
<p id="SE-353e20ac-38e0-40bd-9146-4e0496322972"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dc2d7110-5189-4b09-9122-86798f501602" class="se-fs- se-ff-">할 수 있는 모든 선택이 다 나에게 해를 끼치고 정신을 좀먹어요. </span></p>
<p id="SE-24fe63c6-bfe3-4c5b-9000-78dfff6f0070"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981df842-496a-41d8-943c-037a218c24d2" class="se-fs- se-ff-">당신은 나에게 무슨 말이 듣고싶어서 나에게 감히 '기후 우울증'에 대해, '마음의 위기'에 대해 강연해 달라 부탁했었나요. 답없이 방황하는 나에게 무슨 얻을것이 있다고 계속해서 글을 쓰라고 그렇게 나를 졸랐나요. </span></p>
<p id="SE-8e018c7a-664a-4fc5-a8e3-01b36a55a944"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b0e8f942-e699-4f77-84aa-f31ef86e1aab" class="se-fs- se-ff-">당신이 가버린 지금, 더이상 나에게 글을 써내라 조를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span></p>
<p id="SE-4f57e211-fe1f-4ded-a5c1-76a8da623132"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e382184f-2ec4-4356-8565-96f89ffbb0b5" class="se-fs- se-ff-">어느 순간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아무런 그림도 그리지 않아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만 같아요. </span></p>
<p id="SE-8669adf1-8017-44e9-8516-c04cbca2f8a1"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4fbcd027-fdfd-4765-909a-4cbf00aae549" class="se-fs- se-ff-">​</span></p>
<p id="SE-a0cc899d-c419-4413-b6b3-94f8f0706ba1"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8a0ee7f6-3b40-4be4-89c0-589352ffe9da" class="se-fs- se-ff-">늙어간다는 것은 스포츠카를 몰다 일어나보니 경운기로 바뀌어 있는 상황과 같아요.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바꿀 수 없죠. 과학이 혁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가정아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공평한건 어쩌면 노화와 죽음이에요. 누구나 매일매일 몸이 망가지고, 죽음과 가까워지죠. 같은날 같은시에 죽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너무 어리나이에, 누군가는 아주 많은 나이에 삶의 끝을 맞아요. </span></p>
<p id="SE-9c572672-666a-4c34-a4c0-bc1b429e0adf"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b065fa73-57cb-41d2-893e-b850ac74f868" class="se-fs- se-ff-">인간이 신석기시대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부를 축적하기로 마음먹은)순간부터 생태 균형은 붕괴되고, 인간 종은 멸종을 향해 조금씩 걷고 있었어요. 돈이 많은 사람들은 기후 재난에도 삶을 끈덕지게 영위하고 번식할거고, 그 소수의 인간들은 자신을 '자연의 피해자'로 정의하고 삶을 영위해가겠죠. 어쩌면 인간 종을 유지하는 '생존자'로 스스로를 영웅시 할지도 몰라요. </span></p>
<p id="SE-27b1d510-ec0f-4884-88a2-adcb4aa730b0"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35189523-ece1-46b1-a3db-278d4e339bf3" class="se-fs- se-ff-">살아있는 한 부정의라던가, 무고한 죽음을 방관하는 사람이 되고싶지 않아서 노력했어요. 사회운동은 일종의 악인에 대한 PTSD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이라는것이 너무나 갑자기 찾아온다는것을 경험한 지금, 정의롭게 산다는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작은 방에 조용히 앉아 그림을 그리고, 타미를 보듬으며 살다 가면 안되는 걸까요. </span></p>
<p id="SE-e9015e9f-9def-4739-a0a5-70e53fee6137"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8a087e74-d68c-4fea-8398-44e6864f13c0" class="se-fs- se-ff-">평범하게 나쁘게 살면 안되나요. 그냥 나만 잘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거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언제쯤 슬픔이 무뎌지나요. 죽음이 나를 따라잡기 전에 내가 평안해질 수 있을까요. </span></p>
<p id="SE-8628a9c3-864d-414e-b74a-066b1ef4ef5b"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f30418c3-f9d1-43a0-a5a8-118fe1e49b56" class="se-fs- se-ff-">인간이란 하찮은 존재가 그리되기는 어렵겠지요. </span></p>
<p id="SE-9dcf67ee-a255-477e-a600-b29de58a2c34"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09aea7f5-e839-4f31-b1c0-d33d3aabf3a0" class="se-fs- se-ff-">저는 오늘도 반쯤은 도피한 세상에서 붓질을 하고,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span></p>
<p id="SE-f568f445-5322-421e-af21-a605c726c002"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3a7e9cbe-f658-45cc-82ac-1763d9ebb73f" class="se-fs- se-ff-">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나를 욕하거나 원망할 사람도 없겠죠. </span></p>
<p id="SE-f3f1ba12-6d04-46bf-800d-9bca6c1e5dc2"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f2e4cae4-b09b-4bac-bdb3-927f3180e1a2" class="se-fs- se-ff-">죽기전에 저는 공황장애를 고칠 수 있을까요. </span></p>
<p id="SE-d32f89ad-8dce-4ec0-a236-940f7bd23a85"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b457c27d-cb8a-436f-a270-84854c1da87b" class="se-fs- se-ff-">인간은 숨을 쉬어야만 살아가는데 그 가장 기초적인것조차 잘 되지 않네요. </span></p>
<p id="SE-147cce36-27aa-4bfe-bbc7-987d1cf1f1d8"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2b9bf901-56e1-4763-a6ef-19253d815a8a" class="se-fs- se-ff-">삶이라는 존재의 경계가 한없이 옅어지는 날입니다. </span></p>
<p id="SE-05af0864-c109-493b-acae-d034b64a9a9e" class="se-text-paragraph se-text-paragraph-align-"><span id="SE-3817881d-1f38-4729-a56b-0212ab524d02" class="se-fs- se-ff-">​</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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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랑]]></author>
			<pubDate>Tue, 11 Jul 2023 14:31:1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신승철 선생님 연구, 저술 목록]]></title>
			<link><![CDATA[https://ecosophialab.com/?kboard_content_redirect=22]]></link>
			<description><![CDATA[신승철 선생님께서 집필하셨던 논문, 저술 목록을 올리는 것으로 삼가 추모의 뜻을 표합니다.

<strong>신승철 선생님의 연구, 저술목록</strong>

<strong>I. 학위논문 </strong>
<ol>
 	<li>2004. 석사학위논문.
<p class="title"><a href="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amp;control_no=3f5c90caaf846233ffe0bdc3ef48d419&amp;keyword=%EC%8B%A0%EC%8A%B9%EC%B2%A0">들뢰즈/가타리의 욕망론과 신체론에 대한 고찰 : 『천개의 고원』6장 '기관 없는 신체'를 만드는 법을 중심으로</a></p>
</li>
 	<li>2010. 박사학위논문.
<p class="title"><a href="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amp;control_no=b36a94a41ef26097ffe0bdc3ef48d419&amp;keyword=%EC%8B%A0%EC%8A%B9%EC%B2%A0">가타리의 분열분석과 미시정치 = Felix Guattari's Philosophy and Theory of Schizoanalysis and Micropolitics</a></p>
</li>
</ol>
<strong>II. 학술(잡)지 </strong>

(공저일 경우 필자 표시, 이외 신승철 단독 저술(서평, 리뷰 등 포함))

1."인플레이션과 탈성장", 문화과학 112호 2022 겨울 (2022): 185-197.

2. 김효영, 신승철. "영성 · 정치와 현실의 거리." 뉴 래디컬 리뷰 2.2 (2022): 19-31.
3."들뢰즈 가면의 배후 인물, 가타리 - 질 들뢰즈, 『들뢰즈 다양체』, 서창현 옮김, 갈무리, 2022.." 뉴 래디컬 리뷰 2.3 (2022): 270-276.
4. "인류세와 기후 정의, 왜 지금 당장의 문제인가?." 뉴 래디컬 리뷰 2021.2 (2021): 179-192.
5."카오스모제 다시 읽기, 생태적 주체성 생산을 위하여." 뉴 래디컬 리뷰 -.87 (2021): 209-236.
6. "그린워싱, 녹색과 진보를 위장하다." 뉴 래디컬 리뷰 2021.1 (2021): 72-95.
7. 신승철(서평자). "어셈블리, 더불어 가난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어셈블리』, 알렙, 2020.." 뉴 래디컬 리뷰 -.84 (2020): 267-277.
8.  "가치의 변화." 비정규 노동 141.- (2020): 14-17.
9.  "생태맑스주의: 성장을 넘어선 맑스주의 -『자본론 1장』과 생태경제학의 가능성과 도전-." 뉴 래디컬 리뷰 -.86 (2020): 135-164.
10. "스피노자와 생태주의 -『에티카』를 통해 본 ‘생태적 지혜’(ecosophia)-." 뉴 래디컬 리뷰 -.85 (2020): 216-243.
11. "[기고] 떨어지는 비행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심과 살림 -.13 (2018): 163-178.
12.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본 오염과 재생." 오늘의 문예비평 -.110 (2018): 18-36.
13. "생태계 위기와 탄소자본주의." 가톨릭 평론 17.- (2018): 105-112.
14. "[기고] ‘한 사람’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모심과 살림 -.9 (2017): 107-118.
15. "혼자 살아도 괜찮아?." 가톨릭 평론 7.- (2017): 21-30.
16. "[기고] 저성장 시대에 행복 만들기." 모심과 살림 -.11 (2017): 119-133.
17. "‘투명인간 되기’의 비밀 :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공동체 만들기." 가톨릭 평론 10.- (2017): 69-77.

18.  "[함께읽기] 소농, 미래로 돌아가다." 모심과 살림 -.8 (2016): 145-153.
19. "[자유기고] 마트문명 넘어서기." 모심과 살림 -.7 (2016): 163-175.
20. "[특집] ‘욕망’과 공동체." 모심과 살림 -.4 (2014): 33-47.
21.  "욕망 논의에서 라캉의 구조와 가타리의 기계의 차이점." 시대와 철학 24.1 (2013): 115-145.
22. "논문 : 경계언어와 특이성 생산 -피진에 대한 가타리의 다층기호론적 분석틀 적용을 중심으로-." 시대와 철학 22.2 (2011): 197-228.
23. "사이버스페이스, 그 철학적 쟁점들." 철학·사상·문화 0.5 (2007): 54-88.
24. "칸트의 도덕철학의 논리적 구성과 들뢰즈ㆍ가따리의 비판적 계승 - 정언, 가언, 선언 논리적 구도와 오이디푸스 삼각형의 구성을 중심으로 -." 철학·사상·문화 0.4 (2006): 153-186.

25. "들뢰즈 / 가타리의 욕망론과 신체론에대한 고찰－『천개의 고원』제6장 ‘기관 없는 신체’를 만드는 법을 중심으로－." 철학·사상·문화 0.1 (2005): 133-173.

<strong>기타. 학술잡지에 실린 신승철 선생님에 대한 글</strong>

1.주요섭. "도표, 자기와 세계를 구하는 기술 - 신승철, 『생태계의 도표』(신생, 2020)." 오늘의 문예비평 -.117 (2020): 242-248

2.편집부.  "일상과 관계를 회복하는 공동체를 꿈꾸는 생태철학자 신승철." 가톨릭 평론 5.- (2016): 62-71.
<ul>
 	<li>신승철 선생님을 기리는 글: 경향신문 2023.07.22.자.</li>
</ul>
<a href="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7220300035/?www">한윤정, [세상읽기] 신승철, 정태인을 기리며 (경향신문)</a>

<strong>III. 저술</strong> (공저의 경우 공저자명으로 표시, 이외 단독 저술)

1.권범철 외, 돌봄의 시간들. 서울:모시는 사람들, 2023

2.공규동 외, 탈성장을 상상하라.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3.
3.권희중, 신승철, 기후 전환 사회.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2.

-&lt;&lt;기후 전환 사회&gt;&gt;에 대한 소개 기사: 교수신문, 2023.7.7.자

<a href="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06912">'탈성장 인내해야 기후위기 막는다'</a>

4. 떡갈나무 혁명을 꿈꾸다. 서울: 한살림, 2022.
5. 정동의 재발견.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2.
6.이태영, 신승철, 낭만하는 공동체 넘어서기. 서울: 알렙, 2022.
7.고은광순 외, 지구적 전환 2021.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1.
8. 지구살림, 철학에게 길을 묻다.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1.
9. 묘한 철학. 서울: 흐름출판, 2021.
10. 권희중, 신승철, (10대와 통하는) 기후 정의 이야기. 서울: 철수와영희, 2021.

11. 포스트 코로나 시대, 플랫폼 자본주의와 배달노동자. 경기도: 북코리아, 2021.
12.권희중 외, 우리의 욕망을 공유합니다. 서울: 한살림, 2020.
13. 생태계의 도표. 부산: 신생, 2020.
14. 가난의 서재. 서울: 한살림, 2020.
15. 누가 방안의 코끼리를 꺼낼까?. 부산: 신생, 2019.
16. 모두의 혁명법. 경기도: 알렙, 2019.
17. 구도완 외, 세상의 밥이 되는 공동체운동. 서울: 한살림, 2019.
18.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서울: 사우, 2019.
19. 탄소 자본주의. 서울: 한살림, 2018.
20.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 서울: 삼인, 2017.
21. 구성주의와 자율성. 서울: 알렙, 2017.
22. 신승철, 이윤경, 체 게바라와 여행하는 법. 경기도: 사계절, 2017. (ePub., 2018)
23. 신승철,이윤경, 철학의 참견. 경기도: 서해문집, 2016. (ePub., 2017)
24.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 경기도: 위즈덤하우스, 2016.
25. 스마트폰과 사물의 눈. 서울: 자음과모음, 2015.

26.철학, 생태에 눈뜨다. 서울: 새문사, 2015.
27. 욕망 자본론. 서울: 알렙, 2014.
28. 이윤경, 신승철. 달려라 청춘. 서울: 삼인, 2014.
29.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 경기도: 서해문집, 2013.
30. 녹색은 적색의 미래다. 서울: 알렙, 2013.
31. 눈물 닦고 스피노자. 경기도: 동녘, 2012.
32. 식탁 위의 철학. 경기도: 동녘, 2012.
33. 루저의 심리학. 서울: 삼인, 2012.
34.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충청남도: 그물코, 2011.
35. 분열과 혁명의 영토. 서울: 중원문화, 2011.
36. 대한민국 욕망보고서. 서울: 당대, 2011.신승철.

37.사랑과 욕망의 영토. 서울: 중원문화, 2011.
38.김경일 외. 인문학박물관에서. 서울: 인물과사상사, 2010.
39. 대한민국 욕망공화국. 서울: 해피스토리, 2008.
40. 에코소피. 서울: 솔, 2008.

41. (눈 밖에 난 철학) 디지털로 본 철학. 서울: 랜덤하우스중앙, 2005.

42. 디지털로 본 철학. 서울: 리좀, 2005.

<strong>*번역</strong>

Dyer-Witheford, Nick. 사이버-맑스. 류현, 신승철 공역, 서울: 이후, 2003.
<ul>
 	<li><strong>출간 저술 상세사항</strong></li>
</ul>
-인터넷 서점에 안내된 저술 소개:<a href="https://www.aladin.co.kr/author/wauthor_product.aspx?AuthorSearch=@165657" target="_blank" rel="noopener">신승철</a>

위 내용 중에서 의도치 않은 실수로 잘못 기재되고, 누락된 저술에 관해서 너그러운 양해 구합니다.  보완이 거듭되어야 할 1차 자료로 목록을 삼가 올려봅니다. 향후 검토와 개정을 거쳐 저술 목록이 완비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말씀.

댓글을 통해 적어주신 내용을 읽고 반영하였습니다. (2023.7.11.)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제가 계속 업데이트를 못할 지도 몰라, 미리 양해 말씀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생태적 지혜 연구소 선생님들께서 위 자료를 사용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신승철 선생님께서 걸으셨던 학문적 행로를 돌아보며 삼가 추모의 뜻을 전합니다. 아마 다른 분들의 마음이 대부분 그러할 듯이, 생태적 지혜 연구소에 응원 드리고 싶은 뜻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후학]]></author>
			<pubDate>Mon, 10 Jul 2023 18:02:1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ecosophialab.com/?kboard_redirect=1"><![CDATA[추모 게시판]]></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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