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③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비조마을회관

비조마을회관 공간조성(리모델링) 이야기입니다.

빛나는 시간들 빛바랜 사진

비조마을 소녀들
비조마을 소녀들

옛날 사진을 받았습니다. 비조마을 소녀들의 모습입니다. 사진을 찍는 게 어색하고 쑥스러운지 웃음기 없는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맨 오른쪽은 계촌 할머니 큰 딸(요즘도 종종 마을에 오십니다), 그 옆에는 본동 할머니 시누(본동 할머니는 본래 이 마을 살아서 본동댁인데 옆집 오빠랑 결혼하셨지요), 그 옆에는 누구누구라고 얘기해주시는데 50년도 넘은 흑백사진 속에서 지금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조마을 청년들의 사진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어찌나 멋지던지요. 그 시절 미역골 저수지 공사를 하며 사진을 찍었고 고고도 즐겼습니다. 빛나는 시간들이 빛바랜 사진에 들어 있었습니다.

비조마을 청년들
비조마을 청년들

지난 토요일(2020. 11.14) 마을회관에서 조촐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몇 달 동안의 리모델링 공사가 끝난 것을 기념하는 준공식입니다. 1층 경로당에서 고사를 지내고 2층에서 다과회를 하며 마을이야기 슬라이드를 감상했습니다. 마을총무님께서 슬라이드에 쓰라고 앨범에서 사진을 찾아주셨습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일 테니 마을의 옛날 모습과 지금 모습을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사진을 고르면서 몇 년 동안 찍은 것들을 보니 그새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습니다. 슬라이드를 같이 볼 때 화면에 나온 아이들이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옛날 사진 속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어른들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일이 있어 준공식에는 못 온 본동할머니가 오후 늦게 2층에 오셨습니다.

“잡고 올라오는 거 있으니까 오기 숩네(쉽네).”

하십니다. 2층 공사를 하며 벽에 핸드레일을 달았습니다. 그래도 무릎이 아파서 올라오기 힘드셨을 겁니다. 새롭게 단장한 2층을 보려고 일부러 와주신 본동할머니를 위해 슬라이드를 한번 더 틀었습니다.

“아이고! 저거는 옛날 사진이네.”

할머니 눈이 촉촉해진 걸 보고 덩달아서 살짝 울컥했어요. 기분이 좋아 마신 술 한 잔의 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깨끗하게 잘 꾸며놨네. 헌집이 새집 됐다. 한다고 고생 많이 했다.”

격려도 해주십니다. 비조마을 걸크러쉬 본동할머니의 무뚝뚝한 듯 부드러운 말투는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라고 쓸 수밖에요.

해도해도 표가 조금만 나는 청소

2016년 마을회관 2층
2016년 마을회관 2층

제가 마을회관 2층에 처음으로 올라가봤던 때는 2016년이었습니다. 미닫이 유리문을 열자 먼지가 뽀얗게 앉은 탁구대, 겹겹이 쌓인 오래된 의자, 케케묵은 책이 있는 책장,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체육대회 트로피, 표창장, 뒤를 돌아보면 벽 위에는 옛날 이장님들의 사진이 주욱 걸려있는 넓직한 교실 같은 곳이었습니다. 뾰족한 모양의 창문으로는 치술령 산자락이 보이고 마을풍경도 멀리까지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2층에서 마을회의도 하고 마을문고도 운영했지만 마을사람들이 나이 들어가며 1층만 쓰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 온 새댁들이 차도 마시고 아이들이 책을 읽고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써도 될지 마을노인회와 운영위원회의 허락을 얻어 청소부터 시작했습니다.

2016년, 마을회관 청소 후 밤만디에 앉아 시원하게 수박을 먹는 아이들.
2016년, 마을회관 청소 후 밤만디에 앉아 시원하게 수박을 먹는 아이들.

마을회관 바로 옆집에 사시는 어른이 컴프레셔를 가지고 오셔서 먼지를 불어 날려준 것을 시작으로 물청소를 했습니다. 2층에는 수도가 없어 1층에서 긴 호스를 연결해 계단까지 청소했습니다. 그때는 5년 동안 해도 해도 표가 조금만 나는 -절대로 안 나는 건 아닌- 청소를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청소하고 아이들과 엄마아빠와 밤만디에서 먹은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맛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헌집이 새집 됐다

공간조성 축하그림 by 김시경(두동초1)
공간조성 축하그림 by 김시경(두동초1)

마을회관 2층은 울주군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의 보조금으로 해마다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2017년에는 방충망을 달았고, -그 전에는 더워서 창문을 열면 말벌이 윙윙거리며 들어왔어요- 2019년에는 석면천정을 제거하고 수도가 들어왔고, 드디어 2020년 올해는 공간조성을 해서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이전리 애지골에 사는 건축가부부가 공간설계 주민워크샵을 하며 디자인을 도와주고 은편리에 사는 시공사 사장님이 공사를 맡았습니다. 낡고 크기가 다른 액자에 있던 이장님들 사진은 새 액자에 넣어 한쪽 벽에 포토존을 만들었습니다. 트로피도 깨끗하게 닦아 진열장에 장식했습니다. 시공사에서 거래하던 액자가게에 이장님들 사진을 들고 새로 액자를 맞추러 갔을 때, 액자가게 사장님이 이 사진들 어디서 났냐고 이 사람들 자신이 다 아는 사람들이고 본인도 이 마을 출신이라고 했다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을어른들이 2층에 오셨을 때 이장님들 사진을 보고 액자도 새로 했네 라고 하시면, 달동에 있는 〈한아름 액자〉에 갔는데 비조마을분이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래? 한ㅇㅇ잖아. 그 사람 잘 알지. 그런 일이 있었어! 하고 신기해하셨습니다.

비조마을에 놀러오며 몇 년 동안 마을회관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축하한다고 그림을 그려줬습니다. 비조마을에 살며 옛날과 지금이 겹치는 순간을 많이 만납니다. 만화리 통신에서는 그 순간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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