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맥을 따라 떠나는 여행- 전시 《약속》

6월 29일부터 7월 18일까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 《약속》과 이연우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5월 말쯤 아는 기획자에게 연락이 왔다. 남북 교류에 관한 전시를 준비 중인데, 내가 속한 예술가 그룹 콜렉티브92291가 참여해줄 수 있겠냐는 전화였다. 북한? 통일? 평소 큰 관심을 두지 않던 분야라 망설여졌지만, 연륜 있는 작가들과 함께 신진작가인 우리를 초대하려는 이유도 궁금하고 새로운 도전이 기대되기도 하여 우선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줌으로 만난 통일부 소속이자 이번 전시의 수석 큐레이터인 박계리 선생님은 남북관계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고자 하는 비전을 갖고 계셨다. ‘분단’, ‘정치’, ‘아픔’ 등 역사와 기억에서부터 비롯되는 시선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젊은 세대의 작업도 함께하여 더욱 풍부한 전시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우리는, 너무 깊게 생각하면 어려워지는 이 주제를 좀 더 가볍고 ‘우리답게’ 접근할 수 없을지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산맥을 따라

콜렉티브9229는 올 9월 바캉스를 주제로 단체전2을 준비 중이다. 코로나 속 우리가 잃게 된 것과 그것으로 인해 다시 조명하게 되는 삶에 관한 전시인데, 이 주제를 전시 《약속》에서도 펼쳐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북한으로 떠나는 바캉스’. 단순한 말 같지만, 꽤 오랫동안 불가능했던,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것을 작품으로 꺼내 보면 어떨까. 그렇게 콜렉티브9229 작가 4명(김예솔, 이연우, 이향아, 한승욱)은 ‘4부 먼저 온 미래’ 속 작은 전시관 〈산맥을 따라〉를 선보였다. 다음은 전시관에 대한 소개다.

〈산맥을 따라〉는 전쟁과 분단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세대의 작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네 작가(김예솔, 이연우, 이향아, 한승욱)는 북한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을 여행하는 상상을 해본다. 비록 실체를 본 적 없지만, 북한과 남한은 백두대간이라는 하나의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장소인 ‘그곳’은 새하얀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작가들의 작업은 산맥을 통하여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이고 있다.

너를 만나면 무슨 춤을 출까?

〈산맥을 따라〉 속 내 작업을 소개한다. 총 4점으로, 콜라주 기법으로 만들어진 평면 작업이다. 어린 시절 친구에 대한 아주 작은 기억으로부터 출발했다.

작품 소개 전문

말레이시아 유학 시절, 우리 학교에는 북한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그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빼면, 우리는 여느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동급생이었다. 동그란 얼굴에 평범하게 자른 머리, 매우 낯가림이 심했던 그 친구와 겨우 인사를 나누는 사이쯤 되었을 때, 그는 북한에 돌아간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과 헤어질 때면 “Let’s keep in touch! (계속 소식 주고받자!)”, “Let’s invite each other(서로 초대해주자)”라는 인사를 했지만, 그 친구와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건강하라”는 말과 확신할 수 없는 미래로 흔들리는 눈빛뿐이었다. 될지 안 될지 모를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으며, “통일이 되면 보자”는 슬픈 농담으로 보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한때 알던 친구가 있다는 것 외에 나는 분단 상황에 대한 큰 관심도, 북한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내 안에 존재하는 그들을 향한 애석함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와 같은 큰 단어에서 오지 않았다. 너와 나, 가족, 이웃이 울고 웃고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기억과 경험에서 전해지는 감정이다.

「너가 울면 나도 넘쳐」는 북에 연고도 없고 분단의 아픔을 직접 겪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북한을 떠올렸을 때 드는 개인의 시선을 솔직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엄청난 슬픔이 담기지도 않았지만, 마치 미지의 실 가닥이 우리를 잇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무시할 수 없는 연대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너가 울면 나도 넘쳐, 60.5*91.2cm, 종이판넬에 콜라주, 2021
너가 울면 나도 넘쳐, 60.5*91.2cm, 종이판넬에 콜라주, 2021
너를 만나면 무슨 춤을 출까, 41*53cm, 종이판넬에 콜라주, 2021
너를 만나면 무슨 춤을 출까, 41*53cm, 종이판넬에 콜라주, 2021
백두산에서 5G, 31.7*40.9, 종이판넬에 콜라주, 2021
백두산에서 5G, 31.7*40.9, 종이판넬에 콜라주, 2021
기차타고 압록강으로,36.5*51.5cm, 종이판넬에 콜라주, 2021
기차타고 압록강으로,36.5*51.5cm, 종이판넬에 콜라주, 2021

「너를 만나면 무슨 춤을 출까」, 「백두산에서 5G」, 「기차타고 압록강으로」는 제목 그대로, 끊어진 ‘너’와 다시 이어지는 날이 오면 우리는 무엇을 나눌지에 대한 상상이 담긴 작품이다. ‘분단’이라는 거대한 상황에 가려져 이야기되지 않았던 개인의 소소한 생각을 유쾌하게 풀어내고자 했다.

북한에 대해 생각했을 때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그 친구가 떠오른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게는 그가 ‘그곳’에 대한 유일한 ‘실체’였기 때문이다.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친구지만 상상을 펼쳐낼 수 있도록 시동을 걸어주기엔 충분했다.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나눌까? 통일이 되었다며 기쁨의 춤을 추려나? 말로만 듣던 유라시아 횡단 열차가 열리면 어떤 것들을 보게 될까? 통일되면 독도처럼 백두산에서도 5G가 터지려나? 하는 단순한 생각들이 재료가 되었다. 가장 큰 작품이었던 ‘너가 울면 나도 넘쳐’는 백두산과 한라산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두 곳 모두 종지 그릇 같은 산꼭대기에 맑은 물이 담겨 있는 것이 매우 닮아 보였는데, 역사와 문화, 언어 등을 함께 나누고 있는 남북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남북이 한배를 타게 되듯이 우리는 결국 연결되어있음을 위(천지)에서 아래(백록담)로 흐르는 물로 표현했다.

상상이 아닌 미래

박계리 큐레이터와 가진 첫 미팅에서 나는 “사실 북한에 대한 시선이랄 게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아는 것도 없고 큰 관심도 없어요. 그게 젊은 세대의 현실인 것 같아요.”라고 솔직히 털어놓았었다. 정말이었다. 이번 전시가 아니었으면 남북 사이에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마 쭉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어릴 땐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곤 했지만, 점점 통일에 대한 희망도 희미해졌으니까.

남북 관계에 대한 전시에 참여했다고 해서 내 생각이 무척 바뀐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를 살기 바쁘고, 통일이란 미래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나 자신과 주변 그리고 관람객이, 잊고 있었던 ‘약속’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미미하겠지만 작은 관심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상상이 아닌 미래가 되지 않을까?


  1. 콜렉티브9229(Collective 9229) : 콜렉티브9229는 92년생 아티스트들이 29살이 되던 해에 만들어진 예술가 그룹이다. 현재는 90년대 전반으로 대상을 넓혀 연대하고 있으며 시각, 무용, 영상, 음악, 건축,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소속되어있다. 작가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매년 전시를 기획하고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활동을 한다. (인스타그램 : @collective9229)

  2. 콜렉티브9229의 두 번째 단체전 《탈출 가능한 우물》은 을지로 OF에서 9월 3일부터 9월 26일까지 개최된다.

이연우

생물과 무생물을 모두 좋아한다. 직업은 시각예술작가이자 출판/콘텐츠/문화기획자, 한마디로 프리랜서다. 독립출판물 가지가지도감과 장롱다방:대화집, 방산어사전 등을 엮었으며, 〈Portrait in Plastic〉과 〈정서적고향〉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동물권과 환경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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