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詩] 희망사항

아이의 순수한 꿈 선언 속에서, 돌봄노동자의 슬픔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그린 시.

‘선생님, 나도 커서 돌봄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 또래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그렇듯

신나게 떠들고 놀다가 갑자기 뛰어와

땡글땡글한 눈동자를 빛내며

천진난만하게 소리치는 아이의 선언에

가슴이 철렁,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흔히 닳아빠진 속물 어른들이 그렇듯

최저임금 비정규직 여성청년과

존중받지 못하는 돌봄노동자가

지치고 힘들고 슬픈 형상으로

눈앞에 빙글빙글 떠올랐지만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잡고

‘정말? 우리 00이는 멋진 돌봄선생님이 될 거야’

억지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고맙구나. 헐값 내 노동에 의미를 부여해줘서.

기쁘구나. 암울한 내 노동의 희망을 보여줘서.

찔끔 눈물까지 나오려는 순간,

‘근데 선생님, 저는 의사도 되고 싶어요

선생님, 저는 요리사도 되고 싶어요

있잖아요 선생님, 화가도 되고 싶어요

선생님, 또 저는 태권도 사범님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선생님, 저는……’

아이가 알 만한 모든 직업들이

한참 동안 내 귓속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사진 출처 : Laura Rivera

김현미

노동이 존중되고 해방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오랜 시간 동안 바람 속에 노동현장을 헤매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혁명은 오지 않았고, 정작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자본과 국가가 아닌 내 안의 또 다른 나이며 우리라는 현실에 절망했지만 책을 많이 읽고 사람을 조금 만나면서 아주 약간의 희망만은 버리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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