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의 『목매달린 자들의 런던: 18세기 영국 노동계급 공통장의 죽음과 삶』을 소개하는 글이다. 특히 인클로저를 통해 시골의 공유지(커먼즈)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18세기 대도시 런던에서 어떻게 새로운 커먼즈를 구성해나갔는지, 생산 재료를 전유하는 그 구성 방식에 지배 계급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런던의 다중은 어떻게 마침내 타이번의 교수형으로 대표되는 죽음통치를 위기에 빠뜨렸는지, 그러나 임금은 어떻게 새로운 훈육의 장치로 등장했는지를 살핀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거치는 자연의 질서다. 자연에서 꽃이 피고 지며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듯, 죽음도 소멸만이 아니라 순환의 한 과정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아도 삶과 죽음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변화의 흐름이다. 따라서 죽음을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기보다,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남은 시간을 더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 과정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왔다가 머물고 다시 돌아가는 존재다.
티머시 모튼의 ‘생태적(ecological)’이라는 말을 ‘삶터의 이야기’로 재해석하며 ‘마을에서 철학하기’를 써내려가는 과정을 되짚어보니 나의 지난 시간, 음악, 영화, 고요라는 비인간 존재와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원과 부를 있는 힘껏 축적함으로써 그들은 숙주와 우리, 그리고 다음 세대의 피까지 모조리 빨아 먹는다. 그러나, 부패에, 악취에, 쉽게 변할 것 같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축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그 '무엇'이 있다.
탈성장 전환시대를 맞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한다고 할 때, 첫 발을 디딜 수 있는 바닥을 찾고 고르는 일이 쉽지는 않을 듯하다. 왜냐하면 성장 지향의 사회가 너무나도 강고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강고한 사회도 변화하여왔다는 역사적 교훈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희미하고 작은 상징 속에서까지도 변화의 계기를 찾아왔다. 그런 변화의 계기들에 관하여 살펴본다.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는 꽃을 피웁니다. 그러면 꽃을 피우는 모든 나무는 열매를 맺을까요? 지금 숲에는 나무들이 남의 기대와 상관없이 각자의 역할과 자신의 시간을 따라 많든 적든 자기만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거둘 열매가 없는 나무도 있겠지요. 이 가을, 혹시나 보여줄 결실이 없는 것 같아 쓸쓸한 마음이라면 가까운 숲을 찾아 거닐어 보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2026년 10월 7일, 누리호 5차 발사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내세우는 ‘우주 주권’은 우주를 인류 공동의 공간이 아니라 국가·군대·자본의 경쟁과 이윤을 위한 영역으로 전환시키는 논리일 뿐이다. 한화 등 무기기업 중심의 우주산업 확대 과정에서 지역의 환경 훼손과 주민 피해, 우주쓰레기와 기후·생태 위기가 심화되고 있으며, 우주산업의 군사화는 전쟁과 무기산업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우려를 담아 우주군사화와로켓발사를반대하는사람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병실동지 선영언니의 말버릇은 “그러지 그러지”하며 맞장구치는 거다. 그 추임새는 상대방을 북돋는 중독적인 주문이었다. 나보다 딱 스무 살이 많은 언니는, 내 친구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나는 언니의 친구 중에 가장 어리다. 그녀가 나와 죽이 잘 맞는다는 걸 만나자마자 알아차렸다.
앞선 「① 생태미학 관점에서 본 한국무용」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생태미학과 재즈춤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 역사와 즉흥성, 리듬, 음악과의 상호작용을 지닌 솔로 재즈가 생태미학과 만날 때 어떠한 동시대적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고찰한다. 나아가 이러한 접점에 한국 전통춤의 호흡·굴신·정중동과 같은 신체 원리를 함께 사유함으로써, 기존 장르의 단순한 결합을 넘어 새로운 생태적 재즈 움직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한편의 詩] 빈자리new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건강한 삶을 격려하는 시 한 편.
허깅 페이스 해킹 사건은 ‘AI 반란’이라기보다, AI가 인간이 만든 기술생태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AI의 위험은 지능 자체보다 인터넷, 데이터, 서버, 다른 AI와 연결되면서 커지는 자율성과 연결성에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AI가 인간을 공격하는가?’가 아니라, ‘인간과 AI가 함께 살아갈 기술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이다. 기술생태학은 기술을 고립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사회, 산업,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관계망으로 바라본다. AI 시대의 과제는 더 강력한 AI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인간과 기술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생태계를 설계하는 데 있다.
세계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에로스 효과와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정부가 국민과 이민자들을 탄압하는 타나토스 효과가 일어났다. 트럼프의 첫 임기에는 신파시스트 들이 시민들을 위협했다. 2025년에는 ICE(이민세관집행국)와 같은 공권력 조직이 시민들을 탄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사회는 공동체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권력에 조직적으로 맞서고, 파업으로 정부와 자본을 마비시키면서 새로운 사회 구상 작업을 한다.
근대 의식이 억압한 무의식을 들여다 본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생각은 놀이를 하듯 춤을 추듯 뻗어 나가 생태적 사유로 이어진다.
투병의 시간을 통과하며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된 순간을 담은 시입니다.
기후위기와 생태적 상실이 심화되는 오늘날, 예술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다. 특히 생태미학은 자연을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닌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함께 관계 맺는 세계로 바라보며, 그 관계를 감각과 신체의 차원에서 탐구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생태미학의 개념과 의의를 살펴보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 및 신체적 감응을 중시해 온 한국 전통춤의 미학적 원리와 어떤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