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개인·가족 안의 보살핌을 넘어 학교, 마을, 사물, 자연, 미래세대의 삶의 조건까지 살피는 언어로 확장된다. 생태민주주의는 지금의 결정에서 배제된 인간 아닌 생명, 미래세대, 보이지 않는 돌봄을 민주주의 안으로 들여오는 과정이다. 결국 돌봄의 확장은 더 많이 떠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살게 하는 관계와 책임을 더 넓고 섬세하게 감각하는 일이다.
‘결국 어떻게든 된다.’ 내가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얻은 무수한 경험들은 결코 내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험들이 누군가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선택하고 만들어낸 것이라 더욱 기쁘다.
아픈 몸을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는 그 사람을 돌보는 이의 마음까지 돌본다.
2020년대에 자연재해로 주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은 모로코에서 정부는 관료주의적이고 무능하게 대처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 중에서, Z세대는 온라인에서 항의하고 토론했다. 이들의 활동에는 진보적 요구와 보수적인 요구가 혼재하는데, 이는 과거의 트라우마적 경험으로 인해 자유를 향한 욕구와 제한된 정치적 상상력이 불협화음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흔히 낭만화되는 우주 개발의 역사 뒤에는 언제나 전쟁이라는 잔혹한 출발점이 있었다. 오늘날 AI 표적 선정 시스템과 우주 정찰 인프라가 결합한 현대전은 필연적으로 민간인의 희생을 낳는 구조적 폭력이 되었으며, 그 책임은 비인격적인 시스템과 국가, 자본(기업) 뒤로 은폐된다. 이 위험한 흐름 속에서 한국 정부 또한 한화 등 민간 기업과 결탁해 ‘안보와 미래’라는 명목으로 우주 산업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 산업은 결코 ‘친환경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대기권 안팎 모두에서 보통의 삶을 파괴하고 기후 붕괴를 가속화하는 군사-자본 복합체의 확장에 불과하다.
세상의 모든 나무는 처음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수십 년, 수백 년을 살아갑니다. 군산 하제마을의 팽나무는 600년을, 용문사 은행나무는 1,100년이라는 시간을 넘겨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나무는 왜 움직이지 않을까요? 가만히 서있는 나무 앞에서 겸손히 살아야겠습니다.
티머시 모튼의 사유를 따라가며 ‘사유와 행동’이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모습을 탐구한다. 기후위기 앞에서도 취향을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고 영화 ‘2026년 지구‘에 주인공이 아닌 단역으로 출연 중임을 인식하고 마주한 위선과 의심의 기록이 되었다.
[한편의 詩] 쥐며느리new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건강한 삶을 격려하는 시 한 편.
팔레스타인 출신 선생님에게서 아랍어를 배운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배운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말하고, 듣고, 팔레스타인을 향해 움직인다. 부족하고 작게라도 움직이며 팔레스타인 해방을 향해 간다.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건강한 삶을 격려하는 시 한 편.
지금 여기에서 기후환경위기를 걱정하다 보면, 모든 것들의 영성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사고를 전개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20세기 내내 영성을 합리적 사고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사(前史)가 오늘날 영성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일에 복잡성을 더하는 듯하다. 여기에 경원과 요청이라는 개념들을 더하여, 영성이라는 말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보고자 한다.
해마다 약 250만 마리의 동물들이 동물실험으로 희생된다. 이들도 인간처럼 슬퍼하고, 고통받고, 두려움에 고통받는 생명이다. 비윤리적인 동물실험에 반대한다면, '대체실험' 혹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상품을 사용하고, 동물권을 위해 노력하는 정당이나 NGO를 후원하는 등 대안에 대해 고민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