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금이라는 토종벼가 있습니다. 다마금에 관한 연원을 살피고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토종벼 농사는 어떻게 짓는지 살펴봅니다.
언니의 병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가고, 의료의 냉정함과 가족으로서의 무력함을 겪으며 나는 삶이 붕괴되는 시간을 통과한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언니는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고 세계 곳곳에 스며든 생명 그 자체로 내게 감각된다. 아니 오히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언니의 일부가 아닐까.
진짜 삶의 고수는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할수록 평범하고도 안 평범하다. 의욕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하수가 아닐까. 바로 나처럼.
펠릭스 가타리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정치 철학자, 기호학자, 사회활동가, 시나리오 작가다. 그는 ‘분열분석’을 발전시키며 독자적인 생태 철학을 개진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건강한 삶을 격려하는 시 한 편.
다른 달과 달리 왜 2월은 삼일이나 짧을까요? 2월을 지나 기다리던 봄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나무의 본래 모습을 보기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아직 춥지만 함께 나가보실까요?
한국 정부는 1995년 이후 영문으로는 'Gender Equality'를 표방하면서도 한글로 '양성평등'으로 번역해왔다. 이는 젠더(Gender)가 함축하는 사회문화적 구성성과 다양한 성정체성의 인정이라는 급진성을 무력화하려는 정치적 선택이다. 번역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적 의미뿐 아니라 수사적 층위인데, Gender의 수사성을 완전히 제거하여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동성애자 등 성별이분법으로 포섭되지 않는 존재들을 정책적으로 배제했다. 젠더(Gender)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수행되고, 전유되고, 퀴어하게 재가공되며, 이분법을 전복하는 과정 속에서만 존재하므로, 완전한 번역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를 온전히 번역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타자를 향한 윤리적·정치적 책임의 문제다.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경고합니다. 이산화탄소 농도, 지구평균기온, 지구위험한계선(행성경계), 잠재적 티핑 요소 16가지, 생물종 멸종의 속도와 규모 등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들이, 이대로 가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그런데 2차 대전의 사례에서 대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묘연(妙衍)은 완전/불완전, 개체/전체의 경계에서 우연적 생성·변화 과정을 뜻하며, 합리적 인과론이 아닌 과정철학·생성론적 특성을 가진다. 혼돈의 정막함, 흰 그늘, 차이·겹침·마찰이 창조성을 낳는 조건이며, 예술가는 이를 배치해 새로운 변화를 만든다. ‘활동하는 무(無)’는 고정 자아를 흔드는 텅 빈 가능성의 에너지로 모든 사건을 창조 사례로 전환한다. 인간은 우주 생명의 순환 속 무한한 묘연한 창조성을 해체·재배치로 드러내며, 질서와 혼돈 사이를 오간다. 위기의 시대, 규정 불가능한 이 창조성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이건 아니다’를 자각하는 각비(覺非)의 마음이 필요하다.
지금의 한국문화의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적 전통의 일부인 유교는, 유교가 국교화되었던 500여 년에 걸친 조선조 시기를 거치면서, 유교적 무의식으로 한국인의 심성 속에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을 출발점으로 하면서 탈성장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 탈성장의 전개와 아울러 유교적 무의식을 시론적(試論的)으로 살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