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벌어졌던 아파르트헤이트는 단순한 제도적 차별을 넘어 인간을 등급화하고 내면의 열등감을 조작한 ‘합법적’ 폭력이었다. 이 역사가 종식되었다고 착각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차별과 배제의 현실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미등록 이주 노동자 뚜안의 죽음과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은 인간을 수단화하는 파시즘적 징후가 여전히 우리 일상에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제국주의 시즌 2', 파시즘이 일상화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웃을 '단속 대상'이나 '도구'가 아닌 온전한 '시민'으로 바라볼 글과 삶을 꾸준히 마주해야 한다. 그 일만이 우리를 '더 인간적인 얼굴'을 회복하는 몸부림을 지속하도록 돕는다고 생각한다.
한창 밭에 김을 매야 하는 바쁜 시즌에 프랑스의 작은 마을 ‘두아르네즈’라는 곳에 갔더랬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전국의 절반에 불과한 지역에서만 전기가 공급되었고, 학교와 일자리,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조차 거의 이용 불가능했던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2022년 젊은이들의 기대와 엘리트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치명적인 고통 사이의 격차는 점점 커져만 갔다. 폭발은 유일한 합리적 해결책이었다. 밤새 이어진 조용한 촛불 집회는 2022년 3월 31일 수백 명의 군중이 대통령 관저를 점령하는 사태로 번졌다.
본 웹툰은 2016년 말 시행된 조류독감 살처분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5극3특 지역통합’으로 정치권의 기대와 같이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가균형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까? 전환과 대안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개발과 성장 중심의 낡은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고, 주민의 당사자성, 민주적 과정, 지역고유성은 배제된 채 속도와 효율에 치우쳐 추친되고 있다.
『생태적 사유』를 읽으며 ‘ecological mind’와 ‘ecological thought’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느낌적인 느낌은 있지만 깊은 사유의 길을 찾지 못한 실천은 지속적이지 않아 무력한 현 상황을 인식했다.
속도의 차이에 따라, 지역공동체 간 연대 모습은 느림 속에서 피어나는 공동체들의 결속과 빠름 속에서 확장되는 네트워크 방식의 연합으로 나타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속도의 차이는 상호 단절과 분리를 벗어나, 다양한 층위의 협업과 유대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 조건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까지 느림과 빠름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 관계의 장벽을 쌓고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과감히 그 벽을 허물고 두 흐름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는 없을까?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건강한 삶을 격려하는 시 한 편.
저자는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파리 기후 협약과 같이 특정 수치 범위 내로 지구 온도를 조절하겠다는 목표는 광범위한 복지에 대한 열망보다 앞서게 만들어 정말로 중요한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등한시하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