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후배와 함께 산을 타기로 했다. 스스로 부끄러워서 산을 떠났던 후배는 다시 산으로 돌아와 묵묵히 함께 걷고, 술을 마시고, 또 걷는다. 주고받는 침묵이야말로 진짜 대화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을 담담하게 살아간다는 언어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만삭의 몸으로, 때로는 깁스를 한 채로 마주했던 기묘하고도 치열했던 세계. 성적, 학생관리, 학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돈 관리. ‘선생님’이라는 고용자가 되어 홀로 맞닥뜨리게 된 키워드들이다. 생존을 위한 그 장은 내 안의 새로운 감각도 열어 젖혔다.
모시는 사람들에서 출판한 『생태슬픔』을 읽고 내 안에 켜켜이 쌓였던 일상의 상실과 슬픔을 풀어나간 길 찾기 이야기부터 하려고 한다. 사회적 재난에서 시작해서 기후 재난, 기후 위기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상실에 대한 애도의 과정을 천천히 곱씹으며 적었다. 사회적 재난이 터지고 어쩔 수 없는 상실감에 정처 없이 헤매기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상실부터 살피고 돌보는 여행이 이 땅 곳곳에 시작되길 바란다. 슬픔을 다룰 수 있어야 건강하게 삶터에 생명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촌을 강타하던 때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비영리단체인 ‘거북구조연맹 본부’에서 인턴으로 일한 2년간의 기록물이다. 우리는 현재를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역병과 폭력의 시대, 기후를 위기에 몰아넣는 오염의 시대, 탐욕과 인구 폭발의 시대에, 자연 생태계와 인류의 정신을 회복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느림을 통해 역경을 이겨내고 있는 거북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돌봄의 공간들』 북토크를 통해 도시계획과 먹거리, 커먼즈, 자기돌봄의 논의는 돌봄이 삶의 조건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었고, 특히 기후위기 시대에는 폭염·먹거리·주거·재난 대응이 서로 연결되면서 돌봄이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돌봄은 선의나 희생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예방적이고 지역적이며 생태적이고 공공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며, 공동체적 생활권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돌봄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복지의 범위를 넓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티머시 모튼의 ‘생태적 사유’와 다윈의 ‘불신의 유예’를 지나 당대의 상식 너머를 신뢰하는 힘을 들여다 본다.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 거리는 오토바이를 탄 노동자들로 가득찼다. 이들은 정치권의 부조리와 생활난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오졸 오토바이 노동자이자, 20대 청년인 아판의 죽음은 그들의 봉기에 더욱 불을 지폈다. 인도네시아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들의 투쟁은 불평등을 끝낼 수 있을까.
공장식 축산 시스템 속에서 닭들은 어떻게 살아가다가, 어떤 방식으로 도축되어, 우리 눈앞에 ‘치킨’의 형태로 도착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