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문제라고 합니다. 자녀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라기를 바라며 보호하고 간섭하는 부모의 사랑이 자녀가 독립적이고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지구 생태계의 근간을 제공하는 식물들은 어떻게 자식을 대하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마침 풀과 나무들이 열매를 맺는 계절이자 가을학기가 시작되었고 한가위도 있는 달이니 자녀와 함께 숲을 거닐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한국어의 ‘학부모’는 유독 부모를 ‘학교라는 제도 안의 존재’로 명명한다. 한마디로 부모는 관계의 이름이고, 학부모는 교육제도에서 역할의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눈앞에 언니가 누워있지만, 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종종 언니가 움직이지만, 언니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때마다, 핸드폰에 기록된 언니와의 대화를 다시 읽고, 메시지를 보내본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한편의 詩] 일 년new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건강한 삶을 격려하는 시 한 편.
이 책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를 잘 아는 친구처럼, 우리 시대의 공동 과제인 환경과 경제와 관계의 어그러진 상태를 잘 설명했고, 이에 대한 인식과 대안적인 실천들의 최신 흐름을 알려 주었다. 어떤 원고는 오래 묵은 질문을 기억나게 해서 치유해 주었다.
최근 가자지구 학살에 맞서 전 세계 대학에서 벌어진 시위 운동에는 새로운 측면이 많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해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1970년 미국 전역 대학 파업과 놀라운 유사점을 보인다. 두 운동 모두 극심한 공권력의 탄압 속에서도 사회적 통념을 깨뜨리는 ‘에로스 효과’를 보이며 대중에게 이스라엘과 미국의 국가적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과거 반전 시위가 결국 베트남 전쟁 종식에 기여했듯, 현재의 연대 운동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제 사회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리며 변화를 이끌어낼 잠재력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공동체이다. 누군가 탐욕스럽게 살면 반대쪽의 누군가가 그만큼의 피해를 입고, 결국엔 함께 사멸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무지와 탐욕이 전 개체를 죽게 만든다. 이것이 기생동물 공동체의 운명이다. 숙주 없이는 기생동물도 없다.
지금 여기에서 탈성장 사회로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규모를 지금의 1/10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탈성장 지향은 어떤 태도 어떤 화법으로 행하여져야 할지를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