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72시간의 ‘봉사형벌’을 마주합니다. 무분별한 소비의 대가로 타인의 무책임을 본보기가 되는 방식으로 수습하기로 했습니다.
한창 밭에 김을 매야하는 바쁜시즌에 프랑스에 작은 마을 ‘두아르네즈’라는 곳에 갔더랬습니다.
티모시 모튼이 말한 생태적 사유는 ‘한번 열림, 닫힘 없음’이다. ‘무엇’이라는 관념을 추구하며 닫힐 때 아이들의 솔직한 대답 앞에서 다시 열렸다. 정답을 강요하던 조급함마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시선, 생태적 사유는 정답 없는 틈새에서 자라난다.
기후 환경 위기, 좁혀 말하면 자원 소모에 대처하기 위한 여러 모색은, 자본주의의 전개에 어떤 방식으로든 엇박자를 놓는 ‘몸짓’ 같아 보인다. 그것은 욕망과 싸우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겠다. 그런데 그 몸짓 그 춤사위가 왠지 뻣뻣하고 딱딱해 보인다면, 그 원인은 아마도 어디엔가 숨어있는 욕망의 발목잡기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남한에서 탈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한국 문화 전통 특히 유교가 그런 욕망을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보아야 한다.
다시 따뜻한 봄이 찾아오고, 새로운 생명이 틈새에 자리 잡는다. 실외기 사이에 둥지를 튼 물까치도 그 중 하나이다. 부재는 존재의 자리가 되고, 새 존재와의 마주침은 또 다음번 만남을 기대하게 한다.
나뭇잎을 뜯으며 사랑점을 치던 추억이 있으신지요? 떨어지는 잎 하나와 함께 감정 떨리던 그 시절, 손에 꼭 쥐었던 나뭇잎은 아마도 아카시아잎이었을 겁니다. 이제는 아까시나무라고 하는 것이 맞겠네요. 아는 듯 모르는 나뭇잎의 관찰 포인트 중의 하나를 통해 그이가 날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알아볼까요?
사고가 나던 날 CCTV에 담긴 언니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했다. 화면 속 언니는 웃는 얼굴로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그가 세 걸음을 떼었을 때 트럭이 숨 가쁘게 좌회전한다. 눈 깜빡할 사이에 언니가 넘어간다.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건강한 삶을 격려하는 시 한 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