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⑪ 그때가 살기 좋았다, 요새보다.new

앞집 계촌 할머니댁 평상에 앉아 요즘 날씨이야기를 시작으로 옛날 마을이야기를 나눕니다. 앞집 아저씨는 몇 번이나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하십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인플레이션new

유럽정부는 탄소국경세의 내용을 일부 발표했다. 탄소 배출량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은 유럽 내 물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2026년에도 여전히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의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는 배출될 것이고, 여기에 부과되는 비용은 물품 가격에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1톤당 30유로의 탄소비용은 향후 200유로 이상을 예상하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상당한 수준의 인상이 예상된다. 대중들의 구매력 하락에 따라 상품 소비는 감소될 것이다. 소비 감소에 따른 생산 위축이 곧 탄소배출량 감소임을 2020년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경험했었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달성되기를 희망한다.

‘놀아 주는’ 게 뭐가 문제야.new

아이와 ‘놀아 주는’ 것이 아이를 놀이의 객체로 전락시키고, 아이가 놀이 주도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는 항간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놀아 주는’이 문제가 되는 건 실제로 아이와 놀(아 주)면서 어른들의 돌봄과 교육의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표현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표현 주체의 문제이다. 아이들과 같이 논다고 하면서 잘못 놀(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잘 놀(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진짜 문제가 되어야 한다.

기초지자체의 기후위기 대응 그린 뉴딜 정책 분석 ③new

탄소중립은 가능한가? 그린뉴딜은 녹색전환을 이루고 있을까? 탄소중립은 불확실한 기후위기 앞에서 사회가 이뤄내야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고, 그린뉴딜은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 해소,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탈탄소 경제사회 대전환이나, 이대로라면 모두 요원하다. 본 글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전환을 화두삼아 기초지자체의 그린뉴딜 정책 현황을 살펴보고, 경향성을 분석한 후, 녹색전환 이행을 위해 제언한다. 총 3회 시리즈 중 이번이 마지막 글이다.

버린 쓰레기, 주운 쓰레기new

우리는 흔히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양심을 버리는 것으로 표현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심코 혹은 일부러 버린 쓰레기, 내 양심 중에 몇 번은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버려진 쓰레기를 줍지 않고 지나친 것은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무심코 지나친 쓰레기는 내 양심일까? 버린 사람의 양심일까?

[지역의 발명] ⑭ 지역의 발명에 필요한 사람들new

오랫동안 도시재생이나 마을사업을 등을 해오면서, 결국 지역사업은 주민들 사이에서 발명되고 만들어져 사회적 자본으로의 관계를 쌓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있는 중이다. 성공적인 지역사업을 위해서는 전문가보다 사회적 자본으로 관계를 쌓아갈, 지역을 발명할 안내자, 영향자, 촉진자가 필요하다. 지역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들을 발굴하고 양성해야 한다.

들뢰즈의 욕망을 통한 탈주new

사회는 욕망을 좌절시키라고 명령한다. 개인의 욕망보다 사회의 흐름에 맞추는 것이 순리라고 가르킨다. 정말 그럴까? 욕망은 단순 좌절의 대상일까. 들뢰즈는 순리를 부정하고 욕망을 긍정한다. 들뢰즈의 욕망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새로운 현실로 인도한다. 욕망을 통한 자본주의에서의 탈주와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세탁기는 왜 인류의 1위 발명품인가? – 세탁기를 통한 가사노동의 해방과 허리다침의 과정을 반추해보기new

세탁이라는 큰 노동이 사라지면 여가시간이 늘 거라 기대하지만 인간은 더 낳은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 또 다른 가사노동을 만들어냈고, 결과적으로 세탁기는 제 역할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의 해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기술의 발전이 무엇으로부터의 무조건적인 해방이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고민하던 것들이 해결되면 또다른 무언가로 고민하고 또다른 무언가가 갖고 싶고, 인류는 늘 발전해 왔지만 발전한 만큼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예전보다 많은 수입을 얻고 더 많은 일들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 여전히 부족하다 생각하고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느끼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해 반추해본다.

생태 슬픔을 넘어 전환의 축복으로

날로 심각해져가는 기후위기는 지구의 파괴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무기력, 불안, 우울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생태 슬픔 또는 기후 우울은 심리적, 정신적 차원의 병리적 현상이기만 한 것일까? 모든 생명과 긴밀하게 연결된 우리의 존재에 대해 멈추어 바라보자고 초대하고 싶다.

ESG, 파도 아닌 바람을 보자

전 세계적으로 ESG가 붐이다. 우리나라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요란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피상적 대응에 머물고 있다. 왜 지금 ESG가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지, 이 현상이 진정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ESG 시대에 기업과 금융기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논쟁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게임의 룰을 재구축하고 있으며, 이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 키워드가 ESG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업과 금융기관에 근본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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