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함께 달라진 것들 – 《쌀의 행방: 1946》 전시를 돌아보며new

대구 10월항쟁 80주년을 맞아 예술무리 별난은 쌀을 매개로 항쟁의 기억을 오늘의 삶과 연결하는 전시 《쌀의 행방: 1946》을 선보였다. 전국의 여러 사람에게서 모은 쌀은 작품이 되었고, 다시 관람객의 손을 거쳐 전시장 밖으로 향했다. 쌀의 행방을 따라가며 우리가 발견한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그 기억이 서로 다른 관계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쌀은 무엇이 되는가: 행위적 실재론으로 읽는 《쌀의 행방: 1946》new

《쌀의 행방: 1946》은 대구 10월항쟁 80주년 전시 《살아지고, 살아지는》에서 예술무리 별난이 선보인 참여형 작업이다. 이 글은 전시장 벽면에 게시된 남미자의 텍스트 작품으로, 캐런 바라드(Karen Barad)의 『우주와 중간에서 만나기』(Meeting the Universe Halfway, 2007)를 경유해 전시의 작업 구조를 읽으려는 시도다. 바라드의 개념을 전시에 덧입히려는 것이 아니라, 쌀을 모으고 담고 엎고 섞고 나누는 이 물질적 실천을 언어로 옮겨 보려는 것이다.

[소울컴퍼니] ㉑ 잘못된 배출new

세상은 날마다 무언가를 쏟아낸다. 전쟁의 소식과 기후의 경고, 서로를 향한 짜증과 시기가 쉴 새 없이 밀려 나오지만, 정작 터져 나와야 할 것은 마음 어딘가에 끈적하게 고여 있는 것만 같다. 오늘날 세계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날들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사랑과 돌봄, 모심으로 정동을 긍정해 온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말은 어쩌면 더 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조용히 건네는 이 한 문장일지 모른다. 그런 마음을 담아 무엇을, 어떤 태도와 감정을, 배출할지, 또 그렇게 드러난 것들과 어떻게 얽힐지 고민해 본다.

[쉼멜페니히의 《안트로폴리스》 보기] ① 오이디푸스- 목격자 혹은 동반자new

2026년 9월 30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안트로폴리스Ⅲ] 오이디푸스〉라는 제목의 연극이 상연되었다. 안트로폴리스는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테베 왕가의 연대기를 동시대적 관점으로 엮어낸 5부작 연극 연작이다. 이 가운데 세 번째인 〈오이디푸스〉를 이루는 이야기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속의 이야기와 같은 듯 조금 다르다. 이 차이를 실마리로, 작가 쉼멜페니히가 대변한 독일의 오늘을 만나본다.

[서로의 용기가 되어] ③ 희망배를 만드는 무지개 조선소new

2025년, 노동자를 가두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에 맞서 싸운 한화오션 노동자들과 연대 밥상을 나누었다. 채식으로 차린 평등한 밥상을 모두 맛있게 먹어주어 감사했다. 앞으로도 꼭 시간을 내어, 이 땅에서 생명과 평화, 평등을 위해 싸우는 자리에 평등한 채식 밥상으로 찾아가고 싶다는 꿈을 꾼다.

[마을에서 철학하기] ⑰ 21세기 조선통신사 패치 완료! – AI는 모르는 찐 여행new

울산 울주군 두서면의 두광중학교는 매년 전교생이 수학여행을 떠난다. 작은 학교의 여정에 동행하며 교육의 본질을 돌아보았다.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역할을 나누어 자료를 조사하고 모둠활동을 구상했고 교사와 학부모가 사전답사를 갈 때도 몇몇은 참가했다. ‘배움의 주체가 되는 것 이상의 교육 목표가 어디에 있을까!’하는 마음을 이 여행기에 담았다.

[슬기로픈 병실생활] ③ 뻘짓 총량의 법칙new

어느 날 귀가한 남편의 손에 모두 열 두 개의 백화점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는데, 큰 애가 “내 껀 없어?” 물었다고 한다. “그 많은 물건봉투들에 죄다 자기 것만 있었던 거 있지? 내참, 어이가 없어서.”

타인의 이야기가 나를 바꾼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읽고new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닌 이들로 장애인을 가진 부모, 어부, 시장 상인, 세월호 유가족,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 9·11 테러 유가족, 미국 총기사건 생존자 등 아픔을 간직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슬픈 이야기는 기쁜 말이 되어 우리를 기쁜 세상으로 인도한다.

목매달린 자들의 도시: 18세기 런던, 커먼즈의 범죄화와 죽음통치

이 글은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의 『목매달린 자들의 런던: 18세기 영국 노동계급 공통장의 죽음과 삶』을 소개하는 글이다. 특히 인클로저를 통해 시골의 공유지(커먼즈)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18세기 대도시 런던에서 어떻게 새로운 커먼즈를 구성해나갔는지, 생산 재료를 전유하는 그 구성 방식에 지배 계급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런던의 다중은 어떻게 마침내 타이번의 교수형으로 대표되는 죽음통치를 위기에 빠뜨렸는지, 그러나 임금은 어떻게 새로운 훈육의 장치로 등장했는지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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