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회자되었던 적이 있다. 한 프로게이머의 인터뷰 영상으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이 표현은 그즈음 있었던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활약으로 널리 알려졌다. 줄여서 ‘중꺾마’의 태도는 주저하기 쉬운 취약한 상태, 회의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목표한 결과나 이루고자 하는 바를 향해 나아간다면 결국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꺾이지 않는 마음’은 어디서부터 올까.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어려운 일이나 실패를 겪은 후에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거나,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하고 건강한 상태를 일컫는다. 이를 뜻하는 영단어 ‘리질리언스'(resilience)는 ‘되돌아온다’, ‘다시 튀어 오른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resilir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바닥에 던지면 다시 튀어 오르는 고무공처럼 어떤 어려움을 겪을 때 그 힘을 받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이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할 수 있는 탄성’, 돌아올 수 있는 능력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데에도 그만한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삶을 바라보고 있자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지속할 수 있는 탄력성이 부족하진 않은지 염려될 때가 있다. 꺾이지 않으려 각오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도무지 일어나 보려고 해도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경험이 있다. 우리는 이를 ‘실패’라고 흔히 부른다. 실패한 현실. 처음의 기대와 달리 회복할 수 있는 용기도 없고, 꺾이지 않을 것만 같던 마음도 꺾일 때 우리는 더 큰 좌절에 허우적댄다. ‘돌아올 수 있는 능력’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내보려 애써도, 새로운 시작을 할 기회를 찾기 어려워 삶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실패는 한 사람을 취약하게 하기 쉽다. 아무리 옆에서 ‘회복탄력성’의 의미를 말해주거나, ‘중꺾마’의 용기를 북돋우더라도 자신의 몸으로 경험한 실패가 낸 생채기가 아물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2021년 카이스트에 한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연구소 이름은 ‘실패연구소’. 연구자들은 3년 이상 학교 안팎의 여러 사람들과 ‘실패’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로 나온 책 『실패 빼앗는 사회』에서 연구자들은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여전히 실패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2024년 위 연구소가 실시한 ‘도전과 실패에 관한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패가 성공에 도움이 된다’는 이는 73.5%인 반면 ‘실패가 성공의 장애물’이라고 응답한 이는 26.5%에 그쳤다. 그런데 ‘한국 사회 전반이 실패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서는 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77.2%가 ‘한국 사회가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라고 답했고, ‘한국 사회는 한 번 실패하면 낙오자로 인식된다’는 데엔 58.2%가 동의했다.1

사진 출처 : WenPhotos
조사에 따르면, ‘실패’는 개인의 문제보다 사회의 문제로 봐야 하지 않을까. 같은 연구소에서 펴낸 책 『실패 빼앗는 사회』는 한국 사회의 실패에 대한 이해도를 ‘실패 결핍’과 실패의 공동체 차원, 사회적 차원에서 찾는다. 저자들은 ‘실패’ 자체가 삶에 두려움을 주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실패 결핍'(failure deprived)2로 인한 실패의 질적 부재에 주목하고 있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실패는 건설적인 도전이나 경험이 아니라 도태와 성공 서사, 실패에 대한 비교의식과 도태감 등 자신의 ‘취약성’이 드러나는 민망한 현실이 되어 있었다. 특히 ‘실패’했다는 낙인은 한국 사회 특유의 입시 문화로부터 시작된 성장기의 과도한 두려움에 기인한다. 비교와 낙오가 자연스럽게 실패를 ‘경험’이 아닌 거절감과 도태로 인식하게 만든다. 실패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실패’라는 무게를 짊어질 여력이 없는 ‘결핍’이 이들을 ‘실패하지 못하도록’ 한다.
자신의 실패담을 진솔하게 공유할 수 없는 사회, 실패란 시간 낭비에 불과하며, 자신의 부족과 한계를 증명하는 현실이라는 서사가 작동되는 동안 우리는 과연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책의 저자들은 이런 ‘결핍’이 단순히 실패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런데 ‘실패 결핍’은 단순히 실패 경험이 부재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패를 건설적으로 경험하고 그로부터 배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입시 과정에서 많이 실패했다고 해서 이러한 능력이 자연스럽게 계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시라는 단일한 목표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이 실패를 건설적으로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3(『실패 빼앗는 사회』, 139.)
실패에 대한 시선 전환은 실패를 부추기거나 그 결과를 합리화하는 태도가 아니다. 다만, 누군가의 절망과 좌절에 은근한 자기 우월감을 보이지 않는 사회, 인생 전체가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지지 않음을 안전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사회를 향한 것이다. 실패를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는 희망하는 태도 역시 변할 필요가 있다.
신승철은 『눈물 닦고 스피노자』에서 우리 사회, 특히 청년 세대가 열병처럼 앓고 있는 불안과 피해망상, 신경증, 강박증, 공포를 풀어낼 방법을 스피노자의 『에티카』로부터 길어 올리며 외부의 힘에 맞서는 새로운 방식의 지혜를 ‘사랑과 변용’으로 풀어낸다. 그에 따르면 잘못된 관념과 파국의 위기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에게 필요한 것은 ‘신체 변용에 따른 되기의 흐름'(『눈물 닦고 스피노자』, 209)을 재배치해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실패’도 이 변용과 재배치가 필요해 보인다. ‘성공 혹은 부와 권력의 획득 유무’가 ‘실패’가 가리키는 전부인 오늘날 사회에서 시급히 요청되는 것은 실패를 다시 생각해보는 변용의 태도와 ‘실패-하기’의 기회를 마련하는 기회이지 않을까.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교육 기회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실패’를 긍정하는 시도는 어리석다. 실패가 특정 계층이나 여유를 가진 이가 거머쥔 카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점차 더 계층 이동성이 좁아지고 있고, 과열된 교육과 불평등의 문제가 고착화된 우리 사회에서 ‘실패할 수 있는 기회’라는 카드를 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실패’ 자체를 변용해보는 일이다. 누군가의 실패에 속으로는 흐뭇한 표정을 짓는 비겁함을 넘어서는 다정한 배려와 사랑의 격려, 도전에 대한 인정과 받아들임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변용 말이다. 이런 사회에서 ‘실패-하기(되기)’는 결핍되기보다, 오히려 가능한 많은 실패를 통해 스스로의 행복을 함께 찾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도록 도울 것이다. 실패할수록 스스로의 능력과 욕망을 오롯이 발견하며 공동체와 새로운 접촉을 시도하고, 그로부터 그려낸 접촉 경계면은 성공과 실패, 합격과 불합격, 환대와 배제의 이분법을 넘어선 새로운 삶의 모습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과 거기서부터 도태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회에서 ‘실패’란 입에 담기도 버거운 단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과 사회의 실패를 성찰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파훼할 새로운 ‘실패’의 상상력, 기꺼이 실패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결심하면 우리의 사회가 빠져 있는 깊은 불안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맺으며 깊은 사유와 성찰로 지금껏 깊은 울림을 주는 故 신영복 선생의 글을 소개해본다. 그는 옥중에서 아버지께 써보낸 편지에서 ‘존재의 관계’를 성찰한다. 실패를 너그럽게 품는 붓글씨처럼 우리도 너그럽게 서로의 실패를 응원하고 품어내는 용기를 내보기를 바란다.
붓글씨 쓸 때 획도 흡사 사람과 같아서 독존(獨存)하지 못하는 ‘반쪽’인 듯합니다. 마찬가지로 한’자’가 잘못된 때는 그 다음 자 또는 그 다음다음 자로써 그 결함을 보상하려고 합니다. 또 한 ‘행'(行)의 잘못은 다른 행의 배려로써, 한’연'(聯)의 실수는 다른 연의 구성으로써 감싸려 합니다. 그리하여 어쩌면 잘못과 실수의 누적으로 이루어진, 실패와 보상과 결함과 사과와 노력들이 점철된, 그러기에 더 애착이 가는, 한 폭의 글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얻은 한 폭의 글은, 획, 자, 행, 연 들이 대소, 강약, 태세(太細), 지속(遲速), 농담(濃淡)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양보하며 실수와 결함을 감싸주며 간신히 이룩한 성취입니다. (신영복, 「서도의 관계론」(1977.04.15.),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101) 중에서

*참고문헌
- 신승철, 『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읽기』 서울: 동녘, 2012.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서울: 돌베개, 1998.
- 안혜정, 조성호, 이광형, 『실패 빼앗는 사회』 서울: 위즈덤하우스, 2025.
이지은,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는 법 [이지은의 신간: 실패 빼앗는 사회]」, 『더스쿠프』, 2025. 04. 25. ↩
자세한 내용은 ‘캠퍼스에서 실패는 강의 계획서에 있다.’ ‘On Campus, Failure Is on the Syllabus’. 〈뉴욕 타임스〉(2017.06.24.)를 읽어보시기를 제안드립니다. ↩
안혜정, 조성호, 이광형, 『실패 빼앗는 사회』, 위즈덤하우스, 2025., 1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