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에는 로봇 천재 소녀 연재와, 무릎 연골이 닳아 퇴역의 기로에 있는 경주마 투데이, 경주마 기수인 휴머노이드 콜리가 등장한다. 대회 주로에서 달리고 있던 콜리는 투데이가 이 상태로 완주했다가는 영영 다리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다. 콜리는 짧은 순간 완주해야 한다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투데이를 살려야 한다는 고민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하여 스스로 낙마한다. 그렇게 고장이 난 콜리가 창고에 방치되었을 때, 연재는 콜리를 수리하고 안락사가 예정된 투데이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투데이와 같이 실제 오늘날의 경주마들은 퇴역 후 어떻게 될까?
말산업정보포털 통계에 따르면 21년 기준으로 무려 67%의 경주 퇴역마는 폐사당했다. 그리고 5년 동안 꾸준히 산업 전반에 걸친 ESG 흐름과 여러 동물단체의 지속적인 노력은 폐사율이 승용보다 낮아지는 데 영향을 주었고, 25년 기준 퇴역마는 승용 47%, 폐사 24%, 번식용 14%, 기타 9% 등이었다. 그러나 24년 공주시 폐마목장에서 발생한 말 학대 및 방치 사건은 우리 사회의 동물복지 인식과 제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올해 초까지도 논의되었던 말 등록 및 이력제의 의무화 관련하여, 농림축산식품부는 「말 복지 제고 대책(’25~’29)」을 마련하여 발표했다. 이를 통해 말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복지 지원 등을 향후 5년간 추진하게 된다.

한국마사회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말 복지 지원체계를 실무적으로 정립하는 중에 있다. 나아가 투명한 ESG 경영을 위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시하고 있으며, 환경 측면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준수하게 이행했다. 미국의 Kentucky Derby를 운영하는 Churchill Downs Inc. 등 세계 경마시장을 주도하는 기관들은 어떤 상황일까? 글로벌 ESG 평가기관인 Sustainalytics가 매긴 Churchill Downs Inc.의 ESG 점수는 24.19로 경마산업 평균에 속한다. 그러나 경마산업 자체가 타 산업 대비 동물복지와 환경 등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기에 리스크가 높은 편에 속한다. 말에 대한 복지는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왔지만 여전히 탄소 배출량이 많으며, 이외에도 에너지 관리 미흡, 사행성 경고 미흡(베팅의 위험성 미화), 도박 중독 예방 및 보호 시스템 미흡 등 문제로 지적되는 점들은 많다.
다음으로 콜리와 같이 인공지능(AI) 로봇의 권리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AI는 현행법상 물건으로 취급되지만, 고도의 자율성과 추론 능력 및 행동을 갖추게 되면 기존의 법적 틀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실제 로봇으로 인해서 손해가 발생했을 때 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부담할 법적 리스크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전자인격(Electronic Person)’이라는 새로운 법적 지위 도입이 논의되었다. 이미 EU는 2017년 2월, 타인과 독립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고도의 지능형 로봇에게 전자인격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도록 하는 권고를 결의안으로 채택했다. 이는 로봇과 인간을 동등하게 대우하란 의미가 아닌, 인간의 필요와 편의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를 통해 로봇 스스로가 책임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재산이나 보험으로 손해를 배상하게 함으로써 법적 공백 등을 메우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로봇의 생성, 관리, 폐기 단계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미래 사회를 고려한다면, 로봇 등록제와 보험제도, 로봇세 도입 등이 검토되어 ‘로봇기본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이 로봇과 공존 시 느낄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법적 과제다.
나아가 이에 대해 마크 숄의 에코휴머니즘 관점을 적용해 볼 수 있다. 비인간 존재인 콜리가 보여준 자기희생적 태도는 단순히 인간의 덕목을 닮은 ‘인간다움’이 아닌,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생태적 연결망 속에서 각 주체가 가져야 할 ‘상호의존적 책임’의 실천이다. 에코휴머니즘에 따르면 인간의 경험은 생물 공동체라는 층위 속에 중첩되어 있으며, 이러한 윤리적 온기는 생물학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태적 네트워크 안에서 관계 맺는 모든 존재의 잠재력이다. 따라서 콜리의 행위는 인간을 닮아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내부에 위치한 존재로서 서로의 생존을 지탱하는 ‘맥락적 책임’을 수행했기에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인간·비인간·동식물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태적 그물망 안에서 상호 의존하는 존재임을 깨닫는 과정이다. 책의 내용을 이 관점에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 동물(투데이): 연골이 닳아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경주마가 되어 버려질 위기에 처한 존재
→ 비인간(콜리): 칩이 잘못 끼워진 로봇이자, 낙마로 훼손되어 폐기처분 대상이 된 존재
→ 인간(연재와 은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은혜)와 가난·외로움(연재)이라는 결핍을 가진 존재
→ 연결의 지점: 에코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이들의 취약성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생태계 내부에서 서로를 보살피고 의존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결국, 에코휴머니즘은 개인의 책임을 공동체의 책무로 확장하여,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가 자연의 일부로서 함께 발달해 나가는 지속가능한 생태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소설의 마지막, 경주의 기회를 다시 얻은 콜리와 투데이. 그러나 투데이가 예전처럼 빠르게 뛰지 못해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게 되자, 콜리는 본인의 무게 때문에 더 힘들어하는 투데이를 위해 또 한 번 낙마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 하늘을 바라보며 ‘천 개의 파랑’이라는 명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필자에게 영화 《국보》의 마지막 장면인, 주인공이 예술의 정점에서 그토록 찾았던 빛을 발견하게 된 장면과 오버랩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콜리와 투데이의 삶의 2막 경주 장면은 어찌 보면 인간보다 더 높은 그 무엇인가의 꿈과 이상이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시 달리게 된 투데이의 행복을 감정으로 느낀 로봇 콜리는 또 낙마를 하면 자신이 되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자를 위해 희생하는 선택을 했다. 인간·비인간·동식물·자연이 서로의 취약함을 책임지는 이 연대의 윤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휴머니즘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콜리가 남긴 파란 조각들을 모아, ‘지배’가 아닌 ‘보살핌’이 언어가 되는 세상을 함께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천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 『천 개의 파랑』 中
참고자료
•Scholl, M. 2012. Humanistic perspectives on contemporary counseling issues. Taylor.
•James M. Cochran. 2022. ‘They Carried the Land Itself:’ Eco-Being, Eco-Trauma, and Eco-Recovery in Tim O’Brien’s The Things They Carried
•심현주. 2021. 포스트휴머니즘의 기회와 위기: 포스트휴먼 시대의 생태적 대항담론 구상
•백수원. 2019. 전자인간 및 전자인격 인정에 따른 법적 논의와 시사점 고찰
•신현탁. 2018. 인공지능(AI)의 법인격 – 전자인격 개념에 관한 소고 –
•Bloomberg Terminal. 2025. ESG of the Churchill Downs Incorporated
•Churchill Downs Incorporated. 2025. ESG Presentation
•농림축산식품부. 2025. 말 복지 증진을 위해 말 의무 등록제, 말 보호센터 추진한다
•말복지수립대책위원회. 2025. 말 복지의 현주소와 과제 좌담회
•한국마사회. 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