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작별을 고할 수 없는 마음

작성자
주호(황선영)
작성일
2023-07-09 11:00
조회
531
제가 처음 선생님을 만난 건 한3년 전일거에요.

당시 말과 활에서 기후위기와 생태철학을 주제로 시민 강좌를 열었는데 그때 강사를 맡으신 분이 신선생님이셨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때까지 저는 기후위기나 환경운동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다만 활동가로서 교양을 한번 쌓아 볼까, 혹은 당시 활동하던 도시재생 사업에 연결고리를 발굴할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한번 참가해 본 강의였는데, 그때 만남이 제 삶을 많은 부분 바꾸어 놓았습니다.

10주차 가까이 되는 강연을 거의 빠짐없이 들은 건 신선생님의 강의 역량과 한명 한명 이끌듯 손잡아주는 강의 방식, 거기서 비치는 진득한 열정에 감동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그때의 깊은 인상 때문에 즐겁게 공부를 했고, 생태 철학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 그 후 수강생들과 세미나 모임을 이어가자고 하셨을 때, 생태적 지혜 연구소에 가입해 보라고 하셨을 때, 다른 공부모임으로 초대를 해 주셨을 때, 편집위원이 되어 보지 않겠냐고 하셨을때 믿고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은, 제가 다시 글을 쓸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막연히 글을 쓰겠다, 쓰고 싶다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 목표 없이 몇 년을 헤매고 있던 저에게 읽고 공부한 걸 쓸 수 있도록 권유해주셨고, 생태적 지혜 연구소에 첫 졸고를 보냈을 때 감동적이라고 과분한 칭찬을 퍼부어주셨고, '황선영님은 책을 내셔야겠다, 잘 쓰시니까...'라고 늘 칭찬하고 격려해주시는 덕에 계속해서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 따뜻한 관심과 인정을 받아본 적이 처음이었고 큰 힘이 되었었는데, 그래서 가을에는 책을 쓰겠다고 약속도 했었는데...

엊그제 장례식장을 다녀왔음에도 제 마음에서는 아직도 선생님께 작별인사를 고하지 못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시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저 무심한 하늘을 원망하고 무력한 인간의 처지를 한탄하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좋은 사람을 잃을 수 없다고 인간이 아무리 뇌인들 뭘 어찌할 수 있을까요. 이 슬픔과 무력함을 무엇으로 씻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이끌어주신 생태주의 활동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며 공부하고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한편으로 이끌어주는 분이 안 계신데 과연 할 수 있을까 두렵고 막막합니다...

선생님의 미소가 다정한 말씀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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