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쌤..

작성자
작성일
2023-07-11 14:31
조회
641








살기 위해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죽은이들의 철학에 마음을 기대어보기도 하고, 산 자들의 뜨거운 박동에 파묻혀 사회운동을 해보기도 하고요.

기후의 급격한 변화는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모든 사회운동은 아주 느리게 좋은 쪽으로 바뀌고, 물론 기후운동도 그러하지만 다른운동과 달리 기후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없다고 계속 경고해요. 

모든걸 알고서도 죽음을 향해 달리는 트롤리의 선로를 바꾸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가요.

 전생이라는게 있다면, 활동가들은 가장 큰 죄를 진 사람들이 아닐까요.

슬픈엔딩을 알면서도 무고하게 죽어가는 이들을 한명이라도 구하려고 밑빠진 독 안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삶을 살아요. 이런 삶은 끊임없이 정신적 외상을 주지요. 그런데 그 모든걸 알면서도 이 삶을 멈출수가 없어요.

멈추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계속하면 나는 '미친사람'이 되요.

할 수 있는 모든 선택이 다 나에게 해를 끼치고 정신을 좀먹어요.

당신은 나에게 무슨 말이 듣고싶어서 나에게 감히 '기후 우울증'에 대해, '마음의 위기'에 대해 강연해 달라 부탁했었나요. 답없이 방황하는 나에게 무슨 얻을것이 있다고 계속해서 글을 쓰라고 그렇게 나를 졸랐나요.

당신이 가버린 지금, 더이상 나에게 글을 써내라 조를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아무런 그림도 그리지 않아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만 같아요.

늙어간다는 것은 스포츠카를 몰다 일어나보니 경운기로 바뀌어 있는 상황과 같아요.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바꿀 수 없죠. 과학이 혁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가정아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공평한건 어쩌면 노화와 죽음이에요. 누구나 매일매일 몸이 망가지고, 죽음과 가까워지죠. 같은날 같은시에 죽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너무 어리나이에, 누군가는 아주 많은 나이에 삶의 끝을 맞아요.

인간이 신석기시대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부를 축적하기로 마음먹은)순간부터 생태 균형은 붕괴되고, 인간 종은 멸종을 향해 조금씩 걷고 있었어요. 돈이 많은 사람들은 기후 재난에도 삶을 끈덕지게 영위하고 번식할거고, 그 소수의 인간들은 자신을 '자연의 피해자'로 정의하고 삶을 영위해가겠죠. 어쩌면 인간 종을 유지하는 '생존자'로 스스로를 영웅시 할지도 몰라요.

살아있는 한 부정의라던가, 무고한 죽음을 방관하는 사람이 되고싶지 않아서 노력했어요. 사회운동은 일종의 악인에 대한 PTSD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이라는것이 너무나 갑자기 찾아온다는것을 경험한 지금, 정의롭게 산다는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작은 방에 조용히 앉아 그림을 그리고, 타미를 보듬으며 살다 가면 안되는 걸까요.

평범하게 나쁘게 살면 안되나요. 그냥 나만 잘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거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언제쯤 슬픔이 무뎌지나요. 죽음이 나를 따라잡기 전에 내가 평안해질 수 있을까요.

인간이란 하찮은 존재가 그리되기는 어렵겠지요.

저는 오늘도 반쯤은 도피한 세상에서 붓질을 하고,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나를 욕하거나 원망할 사람도 없겠죠.

죽기전에 저는 공황장애를 고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숨을 쉬어야만 살아가는데 그 가장 기초적인것조차 잘 되지 않네요.

삶이라는 존재의 경계가 한없이 옅어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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