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과거로부터 온 봉투

작성자
이윤경
작성일
2023-07-14 09:24
조회
518
조의금 봉투를 정리하다보니, 아주 많은 분들이 봉투에 짧게 애도의 마음을 적어 주셨더군요.
적어주신 메시지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눈물 버튼이었지만, 특히 그중 하나가 저를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혹시라도 이름이 알려지는 걸 꺼리실 수 있어서 부분적으로 가렸습니다.



*앞면
날날 님께
삶도, 사랑도, 공부도,
늘 정진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철학공방 별난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드립니다.
- 2016년 가을에 철학공방 별난

*뒷면
존경하는 스승님
저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받았고
사상으로 갚겠습니다.
철학에도 유전자가 있다면
물려받고
또 퍼뜨리겠습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
종종 용인에서 뵙겠습니다.
-영원한 포틀래치와 함께 이○○

앞면은 분명 내 글씨인데 싶어 어리둥절하다가,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 한조각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즈음 저희 철학공방 별난에서 기거하면서 함께 세미나도 하고 책도 쓰면서 연구원으로 있던 신승철 소장님의 제자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한분은 유학길에 오르고 또 한분은 군대에 가면서 소원해졌더랬지요.
그뒤로 소장님은 종종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그때 이런 이야기를 더 해 줄 것을....' 하며 아쉬움을 담아 회상하곤 하셨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셨네요.
멀리 계셔서 아마 본인은 오지 못하고 지인을 통해 봉투만 전달하신 듯합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 봉투를 이토록 오랫동안 깨끗하게 보관하고 계시다가 돌려주신 것입니다.
제가 며칠동안 가방속에 가지고 다니다가 구겨졌을 뿐 처음에는 더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신선생님이 시작한 '영원한 포틀래치'가 날날 님을 통해, 그리고 철학공방 별난과 연결된 모든 사람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날날 님, 한국에 돌아오시면 철학공방 별난에도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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