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Re:녹색당을 애정한 승철샘의 녹색당 강령 전문 주해본

작성자
장윤석
작성일
2024-06-28 08:29
조회
188
<녹색당 강령 전문(前文) 주해>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녹색당을 씨앗이라고 본 것은 늘 싹을 틔우는 형성과 구성과정 중에 있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어떤 완성된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발아하고 창안하며 늘 씨앗처럼 잠재성과 깊이를 가진 상태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한 목표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에 수단과 도구를 설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이 아닌 늘 사안에서 형성되는 사람들에 주목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방식에 주목하는 것이다. 즉, 녹색당이라는 씨앗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삶을 재창안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셈이다.

이 씨앗을 싹틔워 인류가 지구별의 뭇 생명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초록빛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녹색당은 동물실험실과 공장식 축사 등에서 생명이 처한 열악하고 절박한 상황을 극복하고 생명평화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동시에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로 인해 생명과 자연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실천에 나서는 정당이다. 지구별의 생명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세상은 지구의 역사 속에서 생명들이 서로 공생하고 협동하면서 진화해 왔던 바와 공명한다. 이러한 공생진화의 과정처럼 생명과 만물이 연대하고 협동하는 미래로 향한다.

우리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이며,

생태계는 서로 연결된 판과 배치이기 때문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면 그와 연결된 주변과 가장자리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시 말해 작은 변화를 강건히 반복하고 지속하는 한, 그 가까이에 있는 사물, 인간, 생명은 함께 변용하거나 적어도 태도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녹색당은 이런 점에서 생태혁명, 네트워크혁명, 연결망 혁명과 같이, 작은 도토리로부터 시작하여 온 산을 뒤덮을 떡갈나무 혁명을 만들어낼 주체성이다. 녹색당의 정치는 의식적으로 세를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통해서 점차 스며들 듯 주변과 가장자리의 변화를 촉발하는 방식을 따른다.

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입니다.

녹색당은 연고, 학연, 지위, 권위 등에 따라 조직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성의 판위에서 구성되는 ‘자유인들의 연합’이다. 자유인들의 연합은 association으로 불리며 협동조합에서는 결사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권위에 대한 예속은 슬픔과 무능력으로 향하는데 반해,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기쁨과 사랑이라는 행동능력으로 향한다. 기존의 예속부터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고립된 개인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합, 협동, 연대의 시작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사람들이 아닌 채 연합하는 형태도 아니고, 자유롭지만 연합을 안 한 고립된 경우도 아닌, 해방과 자유와 함께 우애와 협동이 결합한 판과 구도가 바로 녹색당이다.

우리는 지구별의 생명을 지키는 지구의 아이들입니다.

녹색당은, 인간중심주의와 같이 인간이 미리 주어진 전제조건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불변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구에서의 인간의 역할은 생태계의 특이점, 자연의 시중꾼, 대지의 양육자, 생명의 대리인으로서 끊임없이 생성하고 구성되어야 존재일 뿐이다. 이렇듯 구성과정에 있는 인간의 역할은 지구의 아이들로서 생명과 자연을 양육하고 돌보는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하는 것에 있다. 녹색당은 지구별이 유일한 우리의 집이자 고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지구를 약탈하고 착취하거나 떠나려는 생각들의 확산을 막고자 한다.

우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나침반이자 등대이며,

녹색당은 누구도 불편해서 얘기하기를 꺼릴 때 홀연히 나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외칠 수 있는 1%의 용기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그런 점에서 녹색당은 1%도 안 되는 땅뙈기를 차지하고도 99%를 밝힐 수 있는 등대정당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녹색당의 가치와 진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지지층을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헤게모니나 세 과시가 목적이 아니라 늘 용기를 내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 나설 수 있는 등대가 되는 것 즉, 뜻과 지혜를 가지고 용기 있게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주체성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녹색전환의 씨앗을 심는 농부입니다.

녹색당은 가래와 삽을 든 농부정당이다. 농업은 앞으로 다가올 전환사회의 가장 중요한 비전이기 때문이다. 특히 녹색전환이 갖고 있는 일관된 방향성이 농업에 있다는 점은 농민정당으로서의 위상을 의미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민의 지혜가 발휘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씨앗을 심는 농부의 마음에 기반하여 미래적 지혜를 발휘하고자 하는 대지와 생명의 양육자로서의 태도를 녹색당은 갖고 있다. 돌보고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과 태도를 견지하며 녹색당은 씨앗을 심는 부드러운 농부의 마음에 기반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함께, 공기의 순환이나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생명의 고동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생태계의 판과 관계망을 응시할 때 우리를 둘러싼 생태적 연결망의 일부로 자신이 위치함을 깨닫게 된다. 이는 가시적이고 실물적인 질서의 배후에 우주와 자연, 생명의 관계망의 있고 그 속에 자신이 일부임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과의 관계에서나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윤리와 미학을 중시하게 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태도를 기반으로 하여 생태계의 순환, 흐름, 반복의 고동, 율동, 화음 등에 대해서 감응하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녹색당이다.

우리는 공동체 돌봄과 살림경제, 협동과 연대의 경제 속에서 대안을 발견합니다.

녹색당은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에 대해서 주목하며 이를 적극적인 생활양식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는 협동과 연대를 통한 우애의 경제가 경쟁사회나 성장주의의 대안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의 판 위에서 사랑과 욕망, 정동의 흐름 위에 자원과 부, 에너지의 흐름을 순환시킬 때, 공동체와 생태계는 더욱 지속가능할 수 있고 다양하고 풍부해질 수 있다. 일자리와 복지의 문제 전반을 사회적 경제가 모두 책임질 수는 없지만, 사회적 경제는 기술과 과학혁명이 해낼 수 없는 정동, 사랑, 욕망, 살림, 보살핌, 돌봄, 모심, 섬김에 기반한 보다 인간적인 경제를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녹색당은 전환사회의 가능성을 싹트는 생명과도 같은 사회적 경제에서 찾는다.

우리는 성장과 물신주의, 경제 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정당이며,

우리의 행복은 GDP로 측정될 수 없으며, 성장주의 시대의 모습인 자기계발, 성공주의, 승리주의로는 우리의 고독, 외로움, 양극화,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탈성장 사회의 구상은 양적이고 실물적이고 외양적인 성장(Growths)가 아닌 질적이고 내포적이고 관여적인 발전(development)의 전략으로부터 촉매될 수 있다. 발전 전략은 커뮤니티의 내부자거래를 활성화하는 내발적 발전이나 미래세대의 욕구를 고려해서 현재세대의 욕구를 배치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탈성장전략은 자발적 가난이나 빈 그릇운동, 음식물쓰레기 제로 운동, 미니멀리즘과 같은 영적이고 심미적인 운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개인적인 차원의 빈곤은 해결해야겠지만,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여 윤리적이고 심미적인 ‘더불어 가난’을 만들어내야 하는 숙제도 등장하고 있다.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를 넘어선 태양과 바람의 정당,

기후변화, 미세먼지, 플라스틱 대란 등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며, 동시에 미래세대에게 해결할 수 없는 쓰레기와 위험부담을 남기는 핵에너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녹색당은 에너지전환에 있어서 가장 탄력성, 지속가능성, 안전성 있는 에너지가 바로 바람과 태양의 에너지임을 분명히 한다. 재생에너지가 갖고 있는 보다 민주적이고 분산된 에너지로서의 위상처럼, 에너지민주화와 지역분권화를 통해서 에너지전환을 이끄는 것이 바로 녹색당이다.

문명사적 전환을 만드는 녹색정당,

TV문명, 아파트문명, 자동차문명, 육식문명, 일회용품문명, 마트문명 등은 모두 관계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되도록 설계되어 있는 문명의 현주소이다. 자신과 관계도 없는 사람과 거래를 하고, 자신과 관계도 없는 사람의 소식을 들으면서 고독하고 외로운 1인 가구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문명의 전환은 생명, 자연,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 속에서 새로운 대안과 희망을 말하는 것에 있다. 위생적이고 탈색된 관계가 아니라, 우애와 협동, 연대가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를 만드는 정당이 바로 녹색당이다.

반정당의 정당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정치는 기성정당과 같을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이 땅의 정치사에 들고난 수많은 정당들은 수권정당의 목표로 하면서 성공과 승리를 향한 물신화되고 권력화 되는 과정을 겪어 왔다. 녹색당은 권력 장악이라는 정치적인 동기에 기반해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태계와 공동체, 시민사회의 파견부대로서의 역할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녹색당은 반정당의 정당으로서 정치물신주의, 정당권위주의 와 같은 기성정치의 틀로부터 벗어나 내부에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하나의 공동체의 판과 구도를 내부에 가지고 운영되는 방향성으로 향하고 있다. 즉, 이념과 의미, 가치로 모인 정당의 성격이 경직되고 딱딱하고 권위주의적인 질서를 만드는 데 반해, 공동체의 파견부대이자 자신이 바로 공동체이기도 한 녹색당은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질서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 자체가 물신화되어 있는 기존 정당과 녹색당은 완전히 다른 구도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보편적 인권을 넘어 생활정치ㆍ다양성 정치ㆍ녹색정치를 통해 소수자와 생명과 자연을 옹호합니다.

녹색당은 공동체의 다양성의 판 위에서 자율성을 확장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없이 재창안하여 왔다. 이는 생태시민성과 공동체성의 연결지점 즉, 권리주의와 자율주의의 교집합에 놓여 있다. 역사적으로 보편적인 인권을 넘어서 생명권으로 생태권으로 난민과 소수자, 여성의 권리로 도시에서의 주민의 권리로 권리주의를 확대해 왔던 것은 공동체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과정과 공명한다. 녹색당은 생명과 자연의 권리와 자율성이 확대하는 녹색정치를 지향하면서도, 정치와 생활세계를 별도로 두는 것이 아니라 부엌에서도 직장에서도 인터넷, 미디어, 게임 등에서도 이루어지는 생활정치를 구성하려고 한다. 즉 가정의 민주화, 직장의 민주화, 커뮤니티의 민주화라는 삶과 가장 친밀한 생활 속 민주주의를 구성하려고 한다. 이는 미시적인 삶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상 속에서의 민주화부터 바꾸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과 낙관을 잃지 않으며,

비폭력과 평화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폭력과 투쟁, 저항만이 유일한 사회변혁의 방법론이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그 일을 해낼 수 있고 색다른 생활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성의 변화에 달려 있다. 우리는 사회생태계의 변화가 늘 구성 중에 있고 주체성이 늘 생산 중에 있다는 낙관 속에서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활동할 것이다. 이는 비폭력직접행동이자 평화의 행동, 즉 폭력에 맞선 폭력이나 증오에 맞선 증오가 아닌 증오를 사랑으로 감싸 안아 더 큰 사랑으로 만드는 비폭력과 평화의 힘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포기할 수 없으며, 평화와 비폭력은 우리가 적으로 규정한 상대방에게도 내면에 울부짖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는 것에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랑, 우애, 평화의 힘이 세상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깊은 믿음이 녹색당에 있다.

우리는 세계 녹색당과 함께 지구 곳곳에서 녹색전환을 실현할 것이며,

이 길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녹색당은 일국정당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당이다. 현재 전 세계 60개 국가에 녹색당이 있으며,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기에 공동으로 연대하여 행동하고 있다. 이는 녹색당이 국가주의정당이 아닌 연방주의정당 즉 세계시민사회에 기반한 정당임을 보여준다. 이 길은 열려 있으며 환대와 우애의 장(場)이기에 모두를 초대하며 누구나 함께 할 것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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