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신승철학의 시작

작성자
장윤석
작성일
2024-06-30 19:23
조회
234
은사님의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늘 그랬던 모습 그대로 활짝 웃고 계신 그분의 영정사진을 보고, 전 아내와 가족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이 한 번뿐인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지요. (중략) 일상에 파묻혀 서로의 존재를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끝이 있다는 것이 더 절실한 사랑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은사님의 장례식은 그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그분은 허무를 남긴 것이 아니라,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습니다. 무엇이 최선일까요? 바로 사랑과 욕망, 정동이 최선이 아닐까요? 지위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그저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존재가 된 그분에게 삶이라는 소풍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 신승철,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중

1년 전 이맘때를 기억합니다. 신승철 선생님의 부고를 받아들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날, 장례식장의 해맑은 영정사진 앞에서 절하며 망연자실하던 날, 먼발치의 순례길을 걷다 신 샘이 꿈에 나와 아침에 왈칵 눈물이 고였던 날. 왜 하늘은 좋은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가, 왜 죽고 나서야 너의 의미를 알 수 있는가, 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왜 늦고야마는가 하고 차오르는 물음들. 오년이란 길지도 짧다고도 못하는 시간 속에서 맺어진 인연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맘때 이후로 몸과 마음의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신 샘이라면 분명 낯간지러워 할 말이겠지만 선생님은 제 스승이었습니다. 신승철 선생님에게 삶이라는 소풍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래도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는 늘 숙제인 것 같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몇 달 뒤 그 숙제를 풀고자 먼발치로 훌쩍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지만, 돌아간 사람을 애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더군요. 어느날인가 신 샘이 꿈에 나와 저에게 경을 쳤는데 도저히 그 영문을 모르면서도 제가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채감과 미안함과 같은 정동을 되돌이키며 여한을 쌓아가는 것이 좋은 애도는 아니라는 것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생물학적 유기체는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생태적지혜연구소와 철학공방 별난이라는 사회적 몸체와, 고양이,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이 이룬 정동적 몸체가 남아 이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고.” 먼발치에서 후회와 자책을 키우기보다, 지금-여기-가까이에 남아있고 살아가는 우리로서의 신 샘과 그 공동체에 함께하겠다고. 애도의 숙제는 함께 풀어갈 때 그 사이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생태적 지혜가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이어지고 이어받는 순간들을 사랑합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지금 죽어도 참 괜찮은 것 같아.”라고 말했더니 신 샘도 “너, 나랑 생각이 똑같다. 나 자신으로 아무 후회나 미련이 없어.”라고 답한 적이 있더랍니다. 매일 아침이 단 한 번뿐이라는 시간의 유한성을 진실히 깨달을 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는 무한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같이 기후생태위기에 절절히 슬퍼하면서, 동시에 그 특유의 상상력으로 우리에게 길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해맑은 미소를 기억합니다. 그 기억을 이어서 신승철학을 시작합니다.

어쩌면 아침이 늘 올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색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故 신승철 1주기 추모(축)제에서 발표한 “신승철학(申承澈學)의 시작 – 세 가지 생태학의 렌즈로 살펴본 반복, 이음, 맑음”의 앞단으로 작성했습니다.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정성과 평화 담아

윤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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