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선생님
작성자
장세현
작성일
2025-04-22 20:49
조회
206
추모 게시판을 일찌감치 알았지만 여지껏 아무런 인사도 드리지 못했네요. 일주기 때는 추모제에 갈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어요.
인연이 닿았던 학부생 시절부터 제게 많은 위로와 영감을 주셨죠. 문화학 수업에서 인연이 닿아 나중엔 부전공이지만 철학과 후배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윤경 선생님께서 저를 후배로 기억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ㅎㅎ 그것도 맞지만 전 사실 제자랍니다.
선생님을 철학자이자 농부 같은 시인으로 기억합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로 넘쳐나는 철학과는 가끔 숨이 막혔는데, 문화학 수업에서 부엌의 흐름 식탁의 흐름...같은 걸 말씀하실 때면 숨통이 트이곤 했습니다. 영락없는 시인이셨으니까요. 철학도에게 소설가와 시인이 품는 함의와는 별개로 저는 그런 면 때문에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동국대에서 하셨던 강의는 나름 거의 다 수강했던 것 같네요. 자랑입니다 ㅎㅎ
모임에도 자주 늦었고 성실히 참여하지도 못했었고... 연락에 재깍재깍 답장을 못 드린 적 많았죠. 졸업 후 안부 물어주던 사람 많지 않던 시절에도 자주 전화 주셨어요. 어디에도 글 한 번 올려본 적 없던 제게 선생님께서 이곳에 기고해볼 생각 없냐고 하셔서 썼던 글도 가끔 들여다봅니다. 그게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로는 코로나 때문에 몇 년 인사도 못드렸죠. 선생님 수업 듣고 학림관 복도에서 담배 피우며 농담하던 시절이 지금도 자주 떠올라요. 수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제가 냉정한 자본주의자의 악역을 담당해서 따뜻한 맘 지닌 학우들의 열띤 토론 참여를 이끌어낸 적도 있었는데 ㅎㅎ
늘 현실의 벽에 치이며 살던 저를 응원해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셨고요. 사실 뭐 제가 누구에게 도움되는 걸 하고 싶어 꿈꾸는 멋진 사람 아니었는데도요. 참 감사했습니다. 선물로 주셨던 책들도 바로바로 읽지 못해서 얘기 나누지 못했던 게 많이 후회가 돼요. 뒤늦게나마 책들에서 들리는 선생님 목소리에 모습이 그려져 웃음 짓기도 하네요.
지금도 힘들 때마다 숲길을 걸으면 종종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은 저를 장세현 씨~ 이렇게 불러주셨는데. 짧고도 긴 인연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평생 간직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은 데, 그 중 하나가 선생님과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는 요즘
시를 한 편 써 봤습니다. 혼자 간직하려다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서 꺼내봅니다. 시로 쓰다보니 예의에 어긋나기도 하지만 선생님 가슴에도 분명 시인이 살았다고 봐서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어봅니다.
<외시경의 해바라기 >
대낮에 잠꼬대하던 고양이도 같았지만
실은 철학자 겸하는 카운슬러였죠
그것만으론 부족해요
뭐든 뻔하게 보지 않아서
너머의 것 볼 수 있던 사람
닫힌 문의 외시경 거꾸로 들여다보던 사람
어느 안전이든 늘 같았고
감히라는 낱말을 몰랐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감히 입에 올리지는 않던 사람
살면서 다시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두 번 다시 없을테죠
정오에도 그림자 길었지만
대낮에 꾼 고양이의 꿈 말할 땐
근육의 지성 키운 시인이었죠
하나 안에서 여럿을 보았다면
믿겠어요?
가슴에 꽃무리 품은 해바라기처럼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흔적 남기러 올게요.
인연이 닿았던 학부생 시절부터 제게 많은 위로와 영감을 주셨죠. 문화학 수업에서 인연이 닿아 나중엔 부전공이지만 철학과 후배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윤경 선생님께서 저를 후배로 기억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ㅎㅎ 그것도 맞지만 전 사실 제자랍니다.
선생님을 철학자이자 농부 같은 시인으로 기억합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로 넘쳐나는 철학과는 가끔 숨이 막혔는데, 문화학 수업에서 부엌의 흐름 식탁의 흐름...같은 걸 말씀하실 때면 숨통이 트이곤 했습니다. 영락없는 시인이셨으니까요. 철학도에게 소설가와 시인이 품는 함의와는 별개로 저는 그런 면 때문에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동국대에서 하셨던 강의는 나름 거의 다 수강했던 것 같네요. 자랑입니다 ㅎㅎ
모임에도 자주 늦었고 성실히 참여하지도 못했었고... 연락에 재깍재깍 답장을 못 드린 적 많았죠. 졸업 후 안부 물어주던 사람 많지 않던 시절에도 자주 전화 주셨어요. 어디에도 글 한 번 올려본 적 없던 제게 선생님께서 이곳에 기고해볼 생각 없냐고 하셔서 썼던 글도 가끔 들여다봅니다. 그게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로는 코로나 때문에 몇 년 인사도 못드렸죠. 선생님 수업 듣고 학림관 복도에서 담배 피우며 농담하던 시절이 지금도 자주 떠올라요. 수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제가 냉정한 자본주의자의 악역을 담당해서 따뜻한 맘 지닌 학우들의 열띤 토론 참여를 이끌어낸 적도 있었는데 ㅎㅎ
늘 현실의 벽에 치이며 살던 저를 응원해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셨고요. 사실 뭐 제가 누구에게 도움되는 걸 하고 싶어 꿈꾸는 멋진 사람 아니었는데도요. 참 감사했습니다. 선물로 주셨던 책들도 바로바로 읽지 못해서 얘기 나누지 못했던 게 많이 후회가 돼요. 뒤늦게나마 책들에서 들리는 선생님 목소리에 모습이 그려져 웃음 짓기도 하네요.
지금도 힘들 때마다 숲길을 걸으면 종종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은 저를 장세현 씨~ 이렇게 불러주셨는데. 짧고도 긴 인연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평생 간직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은 데, 그 중 하나가 선생님과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는 요즘
시를 한 편 써 봤습니다. 혼자 간직하려다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서 꺼내봅니다. 시로 쓰다보니 예의에 어긋나기도 하지만 선생님 가슴에도 분명 시인이 살았다고 봐서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어봅니다.
<외시경의 해바라기 >
대낮에 잠꼬대하던 고양이도 같았지만
실은 철학자 겸하는 카운슬러였죠
그것만으론 부족해요
뭐든 뻔하게 보지 않아서
너머의 것 볼 수 있던 사람
닫힌 문의 외시경 거꾸로 들여다보던 사람
어느 안전이든 늘 같았고
감히라는 낱말을 몰랐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감히 입에 올리지는 않던 사람
살면서 다시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두 번 다시 없을테죠
정오에도 그림자 길었지만
대낮에 꾼 고양이의 꿈 말할 땐
근육의 지성 키운 시인이었죠
하나 안에서 여럿을 보았다면
믿겠어요?
가슴에 꽃무리 품은 해바라기처럼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흔적 남기러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