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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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범철
작성일
2023-07-08 15:15
조회
712
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2008년 즈음 문래동에 친구들과 함께 공간을 만들어서 대략 10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철학공방 별난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궁금했지만 찾아가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가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그렇게 이름만 알던 신승철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한참 이후였습니다. 작년 봄 어떤 연구모임을 통해 줌으로 처음 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신승철 선생님은 저에게 전화를 하셨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생태적지혜미디어에 글을 쓰고, 학술위에 들어가고, 급기야 부소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경험하셨겠지만 선생님은 전화를 참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고, 사건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선생님이 작년에 쓰신 책, <정동의 재발견>에는 지도그리기라는 말이 참 많이 나왔는데 선생님은 그 말을 텍스트로만 쓰는 게 아니라 직접 구현하려 애쓰신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은 생태철학 이론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열정적인 활동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떠나시던 날 저는 빈소에서 선생님 전화기로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자메시지로 부고를 보냈습니다. 그건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고,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주소록에는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고,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도 끝나질 않았습니다. 아마도 함께 무언가를 하자는 메시지를 받았을 그 사람들에게 난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직 끝난 건 없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아직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쓰신 수많은 책뿐 아니라 놀랍게도 앞으로도 나올 여러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말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답하는 한 우리는 적어도 계속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떠나시긴 했지만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우리가 대답하는 한, 함께 하기는 계속되니까요. 지금도 우리를 슬프게 하고 우울하게 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계속 움직이고 있잖아요. 우리는 그러면서, 선생님의 말에 대답하고 또 어떤 기운의 변화를 느끼면서 계속 변해갈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지금은 이렇게 우리를 슬프게만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분명히 또 다른 기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심지어는 우리를 즐겁게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했던 선생님과의 함께 하기를, 앞으로 더 길게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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