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핀 소금꽃 – 쿠팡물류센터에서 보낸 여름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노동, 그 노동의 공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면 어떡해야 하는 걸까. 기후위기시대, 우리의 ‘노동’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 어쩌다 백수 생활을 했다. 채용 공고를 게시한 몇몇 회사에서 면접까지 봤지만 백수 벗어나기에는 실패를 거듭했다. 이런 사정으로 대게는 집에만 있었다. 면접 날 혹은 단기 알바를 갈 때면 그제야 바깥 풍경을 보았다. 쨍한 햇빛, 눈 뜨기도 쉽지 않았는데 더 무서운 건 매섭게 내리쬐는 햇볕이었다. 그 햇볕 아래 아스팔트는 마치 달궈진 프라이팬 같았다.

‘덥다’라는 상투적인 말로는 이 더위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진출처 : Dan Cook

해바라기도 뜨거운 햇볕에 고개를 숙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3년 만에 열린 강화 해바라기 정원 축제가 개최 사흘 만에 축제를 종료했다고 한다. 이상기온으로 기온 예측이 쉽지 않다 보니 예상했던 바와 달리 일찍 개화하고 낙화한 모양이다. 해바라기의 마음이 이해되는 날씨다. ‘덥다’라는 상투적인 말로는 이 더위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뭔가 달랐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신체적 변화가 있다. 땀띠. 온몸이 가려워서 잠을 자다 깨기 일쑤였다. 바르는 약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에 더해 무릎과 발 통증이 심해졌다. 걷는 게 힘들어 화장실까지 이동하기가 고역이었다(참고로 원룸). 몇 발짝 가기만 하면 되는데 침대를 벗어나 움직이는 게 힘들었다. 밖을 나가게 될 때면 최대한 저상형 버스를 골라 타려고 노력했다. 말이 쉽지, 더워서 기다리기 힘들 때면 저상형 버스를 포기했다. 버스의 계단이 험준한 산 같았다. 타면서도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며 계단에 올랐다. ‘저상형 버스로 전면 교체하란 말이야!!’(순화의 순화의 순화를 거쳐 많이 보정된 버전)

이런저런 이유로 누군가의 돌봄이 절실히 필요해졌다. 그렇게 13년 만에 통영으로 향했다. 13년이란 숫자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그 시간 동안 가지 않은 이유는 지금은 설명하고 싶지 않다. 결론은 이런 사정으로 올해 5월부터 서울을 벗어나 통영에서 지내고 있다.

자연식을 하고 운동(사회운동 말고..)을 하며 지내다 보니 통증이 점차 줄어들었다. 걱정 하나 줄이고 나니 슬슬 먹고살 걱정이 들었다. 통장을 들여다보다 통장이 지르는 비명에 새로운 통증이 생겼다. 긴급하게 알바 할 곳을 찾아보았다. 처음엔 통영으로 설정하고 검색을 해보았으나 공고가 뜬 곳이 하나도 없었다. 지역을 확장하여 고성, 통영, 거제로 설정한 후 단기직을 검색해 보았다. 알바 사이트를 아무리 들여다보고 새로 고침을 해보아도 단기로 구하는 곳이 없었다. 지역을 더 넓혀보았다. ‘경남’. 그러자 한 곳이 떴다. 창원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알바를 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뿐의 선택지인 쿠팡에 지원했다.

근무 첫 날 작성하는 건강상태 확인서와 일용직 명찰 그리고 출입카드. 사진제공 : 난설헌

쿠팡이 인력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쿠펀치’라는 앱을 깔고 창원 쿠팡물류센터에 지원했다. 지원이 확인되었다는 문자가 날라왔다. 이것은 지원 확인일 뿐 근무 확정 여부는 아니었다. 확정 여부는 오후 3시 전에 알려준다고 했다. 그 후 몇 시간 뒤에 ‘오늘 마감’이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며칠간 상황을 반복하다 일요일에 드디어 확정 연락을 받았다. 이게 뭐라고, 괜히 엄청나게 성공한 기분이었다.

내가 지원한 오후조는 오후7시부터 오전4시까지 근무한다. 세금 떼고 입금되는 금액은 102,600원이다. 출근 2시간 전인 5시에 셔틀을 타고 통영에서 창원으로 이동한다. 도착하면 줄을 서서 일용직 명찰과 출입카드를 받는다. 첫날에는 작성해야 할 게 있었다. ‘건강상태 확인서’ 기저질환이 있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다음으로는 법정의무교육이 진행된다. 교육에서 강조한 것은 핸드폰 반입 불가였다. 왜인지 그것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마켓컬리도 핸드폰 반납은 하지 않았는데 쿠팡은 고객들의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을 들먹이며 노동자의 인권침해를 서슴지 않았다. 켕기는 게 얼마나 많길래 이러나 싶었다.

안전화로 갈아 신고서 업무를 배정받았다. 파지를 수거하여 안전칼로 테이프를 자르고 펼치는 작업이었다. 속으로는 ‘편하겠는데’라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한 나를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있는 곳이 찜질방인지 구분이 가지 않기 시작했다. 얼음방 같은 쉼터도 있겠다. 식혜만 제공된다면 완벽한 찜질방이다. 땀이 비가 오듯 왔다. 이러다 안 될 것 같아서 쉼터로 갔다. 문을 열자, 한기가 느껴졌다. 쉼터에는 에어컨과 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다들 잘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온다 해도 물만 마시고 나갔다. 쉼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에어컨만 열심히 돌아간다.

박스가 끝도 없이 나왔다. 어떤 박스가 가장 많나 보았더니 섬유유연제 단어가 적혀있었다. 섬유유연제와 더욱 대비되듯 내 땀 냄새가 더 짙게 느껴졌다. 뽀송했던 머리가 축축하게 젖었다. 온몸이 끈적거리고 찝찝했다. 그보다 문제는 배가 너무 고팠다. ‘대체 몇 시지’ 핸드폰도 시계도 없다 보니 지금이 몇 시인지 그조차 알기 어려웠다.

쿠팡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근무시간 오후 7시~ 오전 4시에서 저녁 시간은 10시 20분~11시 총 40분이 주어진다. 쪼개기 수법. 그 20분은 나중에 오전 2시에 20분간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이 무슨 신박한 방법인가. 쿠팡이 혁신을 그렇게 떠들어대더니 이것이 그들이 말한 ‘혁신’일까.

게시판에 있는 게시글들. 사진제공 : 난설헌

게시판에 붙여진 안전보건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물, 바람, 휴식” 지키지도 않을 내용을 보란 듯이 붙여둔 심리가 뭘까 싶었다.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리더”라는 단어였다. 여기저기 스크린에 리더 어쩌고 저쩌고의 내용이 밝은 빛을 내며 자신을 과시했다. 요약하자면 리더의 마음가짐으로 임하라는 자기계발서에 적힐 법한 글들의 모음집이었다. 기업이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은 흔적들을 마구 내비치면서 노동자들에게 리더 타령하며 “열심히”를 강요하는 듯했다.

파지가 쌓인다. 박스를 봉하던 테이프를 분리하지 않고 어떻게 재활용되는지 궁금했지만 질문하지 않았다. 비닐이며 테이프며 온갖 쓰레기가 실시간으로 생산되고 있는 현장에서 그 질문은 무의미할 것 같았다. ESG 경영을 표방하는 쿠팡은 E(Environmetal), S(Social), G(Governance) 중 글자 어느 것 하나 충실히 이행하지 않건만 대놓고 광고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모두의 직무유기가 있어 가능할 터다. 고급 어휘로 짝짜꿍.

손수건은 더는 수분을 머금을 수 없다며 아우성쳤다. 닦아도 닦아도 땀이 흘렀다. 땀 닦는 걸 포기할까 싶었지만 땀이 눈에 들어가니 눈이 너무 따가워서 멈출 수는 없었다.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은 박스 위로 떨어지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점점 편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 급히 HR사무실로 향했다. 상비약이 있는지 물으니 그런 건 없다고 한다. 게시판에는 붙여둔 응급 어쩌고 저쩌고의 게시글이 현재 상황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박스 위로 떨어진 땀방울을 보다 누군가 떠올랐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은 오랜 시간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는 파워공(그라인더 작업자)이다. 가끔 그곳의 노동 환경을 듣는다. 환경영향평가마저 할 수 없는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피스복과 여러 장비를 차고 일을 한다고 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냉매 도구도 없단다. 땀이 눈으로 들어오면 그냥 눈을 질끈 감고 뜨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심지어 물도 지급하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지급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라인’에서는 폭염 경보 때 휴식을 권한다. 다만, 권고일 뿐이다. 지켜지지 않는다. 폭염으로 조선소에서도 온열질환으로 산재사망하는 사건이 계속 발생했다. 죽음의 냄새를 온몸으로 감각하며 노동 현장으로 들어가는 가족구성원 A 씨는 동료의 죽음을 들을 때면 보험설계사에게 전화를 걸어 여러 상해보험을 가입했다. 보험사만 배부르다. 상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라는 이유로 보험료도 더 비싸게 받는다.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회는 생명을 담보로 또 다른 이윤을 챙기는 기업이 몸집을 불리며 자본을 축적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에 폐지 수집 노동자들이 보였다. 그 풍경 뒤로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이주노동자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거리마다 흩뿌려진 수많은 이들의 땀방울 위로 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핸드폰으로 행정안전부의 경고 메시지가 왔다. 폭염! 폭염!! 메시지만 보내면 뭐 어쩌자는 걸까. 대책과 대응은 개인의 몫인가. ‘메시지 보냈다. 알아서 잘 해라’ 그건가?

연일 폭염이 이어지자, 뉴스에서도 폭염 소식을 계속 전했다. 화면에는 생동하지 않는 숫자들이 넘실댄다. 폭염지수, 체감온도, 온열질환자 숫자, 사망자 숫자 등등. 누군가의 죽음을 건조한 지표와 함께 읊어댄다. 그렇게 숫자 뒤로 누군가의 삶이 지워진다. 우리의 삶이 그림자가 된다.

난설헌

안녕하세요. 지구의 방랑자 난설헌입니다. 중학생 때 허난설헌을 좋아해서 활동명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허난설헌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이름으로 인해 웃지 못할 상황도 생기는데요. 아이돌 그룹 AOA 설현과 이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설현으로 잘못 보고 부르기도 합니다. 처음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분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는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식혜와 좀비를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즐겁게 살고 싶은 지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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