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詩] 샤넬지갑이 내게로 왔다

어머니는 눈물 젖은 비밀통장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딸들은 ‘엄마처럼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겠다’며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백만원짜리 샤넬지갑을 샀지만 얼굴은 이미 눈물콧물 범벅되어 있었다.

느닷없이 막내동생은 백화점엘 갔다

막내가 아는 명품 중의 명품, 샤넬!

배짱좋게 들어서긴 했지만

이내 가격표에 주눅들었다

쫄지 말자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매장에서 가장 작은 카드지갑을 고르고

당당하게 백만원을 결제했다

마치 이렇게 쉽게 살 수 있다는 듯

그렇게 명품지갑은 내게로 왔다

엄마의 장례식 후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와

이런 거 왜 샀냐며 야단맞을 두려움이 섞인

눈물콧물 범벅된 얼굴과 달리

샤넬쇼핑백은 품위있고 화사했다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을 견디며

우린 배시시 웃었다

그래 우린 울엄마아빠와 달라

돈, 없어서 못쓰지 다 쓰고 살 거야

샤넬 카드지갑이 반짝 빛난다

마지막 엄마 눈물처럼

김현미

노동이 존중되고 해방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오랜 시간 동안 바람 속에 노동현장을 헤매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혁명은 오지 않았고, 정작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자본과 국가가 아닌 내 안의 또 다른 나이며 우리라는 현실에 절망했지만 책을 많이 읽고 사람을 조금 만나면서 아주 약간의 희망만은 버리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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