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컴퍼니] ⑦ 단호한 결심

타인의 세계를 향한 관심이 나를 더 안전하고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이를 통해 비겁함이나 위선에 빠지지 않으려는 결심을 다진다. 욕망이 고정된 것의 분출이 아니라 타인과 얽힘을 통해 새로운 질문과 지혜를 발견하며 나아갈 가능성이 되기를 바란다. 타인의 세계와 접촉하지 않는 개인은 결국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려 사회가 점점 타인의 세계를 협소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자신의 욕망을 타인의 세계로 향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인 약함을 극복하는 길임을 탐색한다.

다큐멘터리 피디이자 번역가 김현우는 그동안 그가 만났던 신발 공장 노동자,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 학교폭력 가해자들과의 경험과 그의 독서 기록을 연결해 독서 에세이를 펴냈다. 그는 타인의 세계와 굳이 접촉하지 않아도 살아갈 만한 세상, 타인을 이미지와 숫자로만 접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세상에서 기어코 ‘타인들의 세계’를 알고 싶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로서는 타인들의 세계를 알고 싶은 마음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다. 내가 다른 세계를 알고 싶은 이유, 그리고 직업인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가능한 한 그 다른 세계를 보여 주고 싶은 이유는,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 없는 개인, 다시 말해 확장되지 않는 개인은 결국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약함은 여러 다른 이름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비겁함, 망상, 근본주의 같은 것들, 그리고 (권력과 부를 얻은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안락함을 지키는 과정 혹은 (아직 얻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안락함을 얻으려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든 추악함은 약함의 다른 모습이다.”1

우리 사회는 점점 나의 세계를 넓히고 타인의 세계를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 사진 출처 : cottonbro studio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 없는 개인은 결국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믿음. 그 믿음 위에서 그는 새로운 질문을 찾고, 마주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얽힌다. 낯설고 불편하고, 때론 내가 만들어낸 고유한 삶의 경계가 침범당하는 일이 있음에도 그는 타인과 접촉하지 않을 때의 결과가 그 무엇보다 나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실시간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나는 오랫동안 나만의 뉴스 큐레이팅 서비스를 만들어 놓았다. RSS(Really Simple Syndication, Rich Site Summary)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여러 신문사와 매체의 소식을 모아 읽는데, 거기엔 나만의 원칙이 있다. 성향이 다른 3~4개 국내 주요 언론을 구독할 것, 외신과 전문지는 사건이나 팩트 체크를 중심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고를 것. 지방 언론사를 2개 이상 구독할 것.

몇 년 동안 이런 기준을 갖고 뉴스를 접하면서 배운 점은 언론사마다의 성향이 보수나 진보 같은 이념적인 이분법으로 선명하게 나눠지기보다,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방식과 집중하는 관심사의 차이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언론학이나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독해하는 전문성은 부족할지 몰라도 언론사마다 대표되는 성향은 고정적이기보다, 그 기사를 읽는 독자의 문해력(리터러시)과의 연결되면서 그 논조가 확장될 수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물론 사실 확인조차도 불명확한 기사를 무책임하게 쓰는 언론의 무책임과 비윤리적 태도에 분노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사를 내 입맛에 맞는 언론사를 통해서만 접한다면 그 역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체감을 한다.

본업에 집중하기도 바빠 점점 더 시간에 쫓기고, 내가 필요한 ‘정보’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뉴스를 접하면 쉽겠지만, 그렇게 타인과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읽다 보면 기사가 전달하는 사실과 텍스트를 가지고 질문과 사유를 하기보다 더 편협하고 타인의 세계와는 멀어질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김현우가 지적한 대로 타인과의 세계로 확장하지 않을 때 비겁함, 망상, 근본주의 같은 것들 그리고 안락함과 이를 누리기 위해 벌이는 추악함만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크다.

우리 사회는 점점 타인의 세계를 향해 자신의 인식과 삶을 넓히기보다 나의 세계를 넓히고 타인의 세계를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 보수와 진보 같은 진영논리를 넘어서 그 어느 쪽도 각자의 세계를 타인과 공유하기보다,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혈안이 된 것 같다. 한 발짝도 물러섬이 없는 대치 속에서 대화와 타협, 관용이라는 단어 자체는 무색하기만 하다. 이미 연결된 있는 세계만을 공고히 구축하면서 욕망은 더 분명해지고, 완결적인 곳으로만 향하고 있다. 고정된 욕망, 정해져 있는 욕망 투사와 인정 방식이 만들어내는 현실의 모습에 번번이 아뜩해진다.

신승철은 우리가 욕망을 품게 되면 “삶의 무의식적인 기반의 지향성과 방향성이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상황을 만들며, 그렇기 때문에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묻는 것은 언제나 타당하고, 그 질문이야말로 삶에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 질문2”이라고 소개한다. 또 욕망을 “미리 결정된 역할, 기능, 직분 등에 따라 책임 주체로서 행동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소진되고 고갈된 텅 빈 상태로 빠지거나 폐색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3”고 지적한다.

결국 혼자가 아니라 타인의 지혜와 용기, 경험과 얽히는 동행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진출처 : Arina Krasnikova

우리가 타인의 세계를 배제한 채로 우리가 욕망의 고삐를 자기중심적인 책임과 효율적인 방향으로 당길 때 미래로 투사되는 욕망 역시 다른 사람을 철저히 외면하거나 소외하는 길로 뻗어가지 않을까.

도무지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타인’이 점점 늘어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내가 꾸려가고 일상까지도 침범 받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위기감이 들고, 신속하게 전달되는 소식에서 자꾸만 물러서고 싶다. 분노를 넘어 모욕감과 슬픔이 밀려오는 세상 속에서 내가 구축하고 싶은 세계만이 더 많은 사람의 동의와 지지를 얻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기어코 내 욕망의 고삐를 내가 아닌 타인의 세계를 향해 당기는 것은 결국 (나)약해지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한 번도 직면하지 못했던 타인의 세계를 향해 내 삶을 던진다는 말이 얼마나 쉽게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말이 될 수 있는지를 안다. 하지만 타인의 세계를 알고 싶은 이유를 찾는 데에는 내가 꾸준히 품고 싶은 가치가 비겁함과 망상, 안락함과 추악함이 아니기 때문이며, 여전히 명쾌한 답이 없는 채로 찾는 길 위에서는 결국 혼자가 아니라 타인의 지혜와 용기, 경험과 얽히는 동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타인의 세계를 알고 싶은 마음의 이유 그 자체가 나를 좀 더 안전하고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결심을 단호하게 이어가 보면 어떨까.


  1. 김현우, 『타인을 듣는 시간』, (서울: 반비, 2021), 23.

  2. 신승철, 『모두의 혁명법』, (서울:알렙,2019), 310.

  3. 신승철, 310.

김준영

세상에 여러 얽힘, 연결망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세계기독교와 상호문화를 공부하고 있고,달리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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