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컴퍼니] ⑰ 더 인간적인 얼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벌어졌던 아파르트헤이트는 단순한 제도적 차별을 넘어 인간을 등급화하고 내면의 열등감을 조작한 ‘합법적’ 폭력이었다. 이 역사가 종식되었다고 착각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차별과 배제의 현실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미등록 이주 노동자 뚜안의 죽음과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은 인간을 수단화하는 파시즘적 징후가 여전히 우리 일상에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제국주의 시즌 2', 파시즘이 일상화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웃을 '단속 대상'이나 '도구'가 아닌 온전한 '시민'으로 바라볼 글과 삶을 꾸준히 마주해야 한다. 그 일만이 우리를 '더 인간적인 얼굴'을 회복하는 몸부림을 지속하도록 돕는다고 생각한다.

1994년 4월 27일,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 대통령으로 당선된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완전 폐지를 선언한다. 1948년에 법률로 공식화된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공에 정착한 백인들을 가리키는 아프리카너(Afrikaner)의 말로 ‘분리’, ‘차별’을 뜻한다. 이 정책이 합법이던 시기에 남아공에서는 모든 사람이 인종으로 구분되었다. 백인, 흑인, 유색인, 인도인 등으로 분류된 서로 다른 인종은 각기 구별된 거주지에 거주해야 했으며, 통혼 금지, 출입 구역 분리와 같은 차별, 배제 제도가 유효했다.

스티브 비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분리되어 있을수록 국가가 발전한다”는 해괴망측한 논리가 차별을 정당화하고, 분리로 제도화된 인종차별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남아공의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만연했던 당시 이에 맞섰던(Anti-apartheid) 활동가 스티브 비코(Steve Biko)는 견고한 인종차별의 장벽이 만들어낸 차별 의식을 깨고자 사력을 다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제도화된 인종차별이 백인과 흑인의 평등함을 증명할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는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남아공의 인종 문제는 단순한 피부색의 구분을 넘어서는, 보다 복잡하고 깊은 차원에서 권력과 부를 탐하는 이들에 의해 조작된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비코는 흑인들이 스스로를 열등하고 나쁘다고 믿게 만드는 인종 차별의 편견의 기저에 깔린 무의식적인 차별과 분리의 권력을 발견한다. 그리고서는 흑인들에게 내재된 열등감과 무기력함을 파훼할 ‘흑인 의식(Black Consciousness)’의 중요성을 남아공 전역의 흑인들에게 일깨웠다. 흑인 의식이란 본질적으로 마음의 태도이자 삶의 방식으로서 비코는 아파르트헤이트란 ‘피억압자의 마음이 억압자의 손에 쥐어져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일갈한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흑인들이 이들 안에 잠재한 진정한 힘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분명히 그들을 억누르고 배제하는 그 손의 힘을 단호히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비코의 급진적인 ‘흑인 의식 운동’은 1976년 타운십(흑인 거주구역) 주민들과 정부 보안군 간의 대규모 폭력 충돌로 번진 ‘소웨토 항쟁’의 사상적 토대가 되기도 했고, 흑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히 경제적, 인종적 빈부격차와 차별이 만연한 남아공의 인종 문제를 풀어낼 정신으로 남아있다.

스티브 비코라는 낯선 사람을 불러낸 이유는 그가 이미 경고했던 차별과 배제의 폐해가 여전히 우리 삶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28일, 법무부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출입국) 단속반은 대구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미등록 이주민’ 단속을 했다. 그 현장에 있었던 베트남 청년 뚜안은 한 제조업 공장에서 일한 지 채 2주가 되지 않았다. 뚜안은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했고, 그의 가족 역시 한국에 산다. 그러나 아직 취업 비자가 미비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뚜안은 “불법적”으로 일하고 있던 상태였다. ‘불법’이라는 신분상의 낙인이 얼마나 그에게 부담이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는 당시 현장에서 단속반을 피해 숨어있다가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흑인 의식 운동은 저항의 토대가 된다.
사진 출처: PDBVerlag

단속반에 잡히는 순간 어떠한 해명이나 설명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뚜안은 도망쳤을 것이다. ‘체류 자격’ 앞에서 그들은 언제나 ‘잡혀도 되는’ 사람들로 전락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 사실이 불안으로, 두려움으로, 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스스로를 ‘법치’의 바깥으로 무비판적으로 몰아세운다. 그에겐 한 발자국 물러나도 버텨줄 땅이 없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초법적 행정, 법 집행으로 곳곳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ICE 요원의 총에 맞아 37세 여성 르네 니콜 굿이 숨지면서 ICE를 둘러싼 미국 내외의 비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신쌤1은 1930년 말 나치라는 파시즘이 발호하고 융성했는지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연구를 소개하며, 그 연구의 결론으로 나온 도구적 이성을 문제 삼은 적이 있다. 자연과 생명이 도구화하면 인간 상호 간에도 도구화되는 경향성이 나타난다. 도구화된 인간은 소수자를 차별하고, 이주민을 혐오하고, 장애인을 분리하고, 노동자를 착취하다가 결국 증오와 혐오의 파국으로 소수자 모두를 절멸하는 끔찍한 선택까지 한다. 인간이 도구가 되는 순간 극단주의와 파시즘은 아무렇지 않게 우리 일상에서 실현된다는 뜻이다. 도구적 이성의 잣대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서슴지 않고 벌이는 차별은 비코의 지적처럼 그 안전보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소수 기득권자에게 종속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날이 갈수록 설마 했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파시즘의 출현은 이제 경고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심각한 것은 오늘날 시스템이 주입하는 무시무시한 통제에 서서히 길들여지고 있는 무기력함이 곳곳에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냉전 시대의 이념 갈등을 통해 그렇게 끔찍한 몸살을 앓고도 또 다시 인간을 도구적 이성으로 바라보는, 타인의 존엄과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시스템 안으로 모두가 빨려 들어가고 있다.

분리와 차별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국인과 외국인, 남성과 여성, 다수와 소수자, 인간과 자연… 수많은 갈라치기를 자각해야 할 때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제국주의가 시즌 2를 막 시작한듯하고, 파시즘의 광기는 너무 가혹하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며 자신의 인간성조차 훼손한 지 오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글과 삶의 얼굴은 어떠해야 할까.

비코는 자신의 투쟁이 남아공의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에게도 “더 인간적인 얼굴”(a more human face)을 선물하리라 믿었다. 더 인간적인 얼굴, 그 누구도 ‘단속 대상’이 아닌 ‘이웃’으로, 노동자를 ‘기계’가 아닌 ‘시민’으로 바라보기 위해 우리의 글은, 우리의 정치는, 우리의 우정은 지금 어떤 얼굴로 서 있느냐고 물어야 할 때다.

참고자료

• 신승철, 『떡갈나무 혁명을 꿈꾸다』, 한살림, 2023

• Steve Biko, Black Consciousness and the Quest for a True Humanity(1978). Ufahamu: A Journal of African Studies, 8(3). http://dx.doi.org/10.5070/F783017354 Retrieved from https://escholarship.org/uc/item/01k1c0vf

• 우혜림, “미등록 이주민? ‘불법체류자’라고 하면 안 되나요?”, 경향신문(2025.11.15.) https://www.khan.co.kr/article/202511150800021 (2026.01.17. 접속)

• 류석우, “누가 25살 뚜안을 죽였나…실적 채우기 단속에 희생된 베트남 청년”, 한겨레21(2025.11.14.)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360.html (2026.01.18. 접속)


  1. ‘생태철학자 신승철’을 살갑게 부르는 말로, [소울컴퍼니] 시리즈 전편에 등장하는 호칭.

김준영

세상에 여러 얽힘, 연결망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세계기독교와 상호문화를 공부하고 있고,달리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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