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과 건강] ③ 건강지상주의에 내재된 성장주의

건강을 ‘현재에서 더 나아가야 하는 어떤 것’으로 지나치게 이상화할 때, 건강을 추구하는 것은 성장주의의 한 형태가 된다. 이는 국가가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건강한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백라임씨는 60세가 되어 아픈 곳이 많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체력도 저하되어 가는 것을 나날이 느낍니다. 백라임씨는 20대의 몸을 그리워하면서 회춘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백라임씨는 젊었을 때 벌어둔 돈이 많아서 몸 나이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 그동안 많이 투자해 왔습니다.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로 관절을 교체하여 노화된 관절 대신 젊은 관절을 가지게 되면서 허리와 무릎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백라임씨는 영양사, 헬스 트레이너, 의사와 간호사, 요가 강사 등 30명 이상의 각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식이요법과 운동, 수면시간 등을 철저히 관리하고 매일 검사기기의 도움을 받아 몸 상태를 확인하면서 실제로 몸 나이를 45세까지는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백라임씨는 연간 20억을 지출하였습니다.1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출처 : John Arano

진신아씨도 백라임씨와 비슷하게 60세가 되어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체력도 저하되었습니다. 디스크도 있고 유방암 수술도 했습니다. 디스크도 무릎 관절염도 병원에서는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진신아씨는 수술을 정말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고혈압과 당뇨도 있어 매일 먹는 약도 많아 속도 쓰립니다. 유방암 수술 후 추적 관찰을 위해, 고혈압과 당뇨약을 받기 위해, 디스크와 무릎 관절염 치료를 위해 주기적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합니다. 그러나, 진신아씨는 약을 먹는다고 치료를 받는다고 수술을 한다고 해서 몸이 건강해질지 의문이 듭니다. 거기에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건강보험으로 보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추가적으로 들여야 하는 비용이 적지 않은데 젊은 날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은 없는데 그만한 비용을 들이면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회의감이 듭니다.

완벽한 건강? 현실 가능한 건강?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백라임씨에게 건강은 젊은 몸으로 되돌아가서 질병이 없고 아프지 않은 것을 의미할 것이다. 진신아씨에게도 건강은 질병이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를 의미할 수 있지만, 백라임씨와는 달리 진신아씨에게는 도달 가능하지 않은 상태로서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당장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 상태를 건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단지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것뿐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아마도 백라임씨처럼 연간 20억을 들이고 수많은 검사장비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몸을 관리하고 신체의 일부를 노화가 일어나기 이전의 것으로 교체할 수 있다면 이 상태에 도달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백라임씨가 몸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해 다른 사회적 활동이나 사회적 관계도 제한되고 몸 관리를 위해서 하루의 반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게 과연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백라임씨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WHO의 건강 정의와 같은 상태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상태일 것이다. 물론, 이상적인 상태는 그 자체로 지향점으로써 의미를 가지지만, 동시에 그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없는 몸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의 몸 상태를 비정상으로 여기게 만들고 끊임없이 더 나은 건강을 추구해야 할 것 같은 욕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건강 관념의 과거와 현재

건강 개념이 처음부터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를 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건강 개념은 크게는 두 가지 관점으로 구분되는데, 크리스토퍼 부어스(Christoper Boorse)로 대표되는 건강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과 레나르트 노던펠트(Lennart Nordenfelt)로 대표되는 건강에 대한 규범주의적 관점이다. 건강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정의는 “질병이 없는 상태”인데, 이렇게 보는 관점이 자연주의적 접근의 대표적인 관점이며, 규범주의적 접근에서는 건강을 개인에게 가치 있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자유이자 역량으로 간주한다. 자연주의적 접근에서는 신체적으로 병리적인 상태를 기준으로 질병이 없는 상태를 건강하다고 보고, 규범주의적 관점에서는 단지 질병이 없는 상태를 넘어서 사회적으로도 온전히 개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건강하다고 보는 것이다. 즉, 규범주의적 관점의 건강 정의에서는 빈곤, 장애, 특정 심리적 상태 등으로 인해 온전한 삶을 사는 데 지장이 있다면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규범주의적 접근의 종류 중 하나로 환경론적 접근이 있는데, 환경론적 접근에서는 건강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으로 간주한다. 또한, 사회구성주의적 접근에서는 건강과 질병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라고 여긴다. 즉, 어떤 것이 건강한 상태인지, 무엇을 질병이 있는 상태로 간주할 것인지 등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비만이나 주의력결핍장애(ADHD)와 같은 상태를 질병이라고 간주할 것인지, 몸의 일상적 상태 중 하나로 간주할 것인지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건강 개념에 내재된 성장주의

건강을 추구하는 것은 국가가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건강한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진출처 : Pixabay

건강을 바라보는 이 여러 가지 관점은 현재도 논쟁적이다. 개념적으로만 논쟁적일 뿐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논쟁적이다. 예를 들어, 자연주의적 접근에서는 건강을 ‘질병이 없는 상태’로 간주하므로 질병을 치료하는 게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된다. 규범주의적 접근에서는 건강을 ‘가치 있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역량’으로 간주하므로 가치 있는 것을 성취할 수 없는 모든 상태를 가치 있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상태로 개선하는 것이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 물론, 개인의 신체를 개선하는 방향과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이 있으나, 대체로는 개인의 신체에 대한 의학적 개입을 통해서 이루므로 의료화2의 문제가 생긴다. 환경론적 접근에서는 건강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으로 간주하므로,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등 적응력을 강화하는 게 건강해지는 방향이 된다. 사회구성주의적 접근에서는 건강과 질병을 사회적 실재로 간주하므로, 어떤 상태를 건강하거나 건강하지 않다고 간주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WHO의 건강 정의는 대표적으로 규범주의적 관점에서 나온 건강 정의이다. 건강을 어떤 ‘완전한 상태’로 정의할 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도달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자연주의적 접근에서도 건강을 ‘질병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므로 이상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상태로 두지만, 부어스는 한 사회의 건강 상태 분포의 중간의 상태를 표준적인 건강상태로 간주함으로써 보편적인 몸 상태 또는 노화와 같이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를 질병에서 제외한다. 그럼으로써 인구의 다수의 보편적인 몸 상태를 비정상으로 여기게 되는 문제를 피해간다. 건강을 어떻게 간주하든 건강을 ‘현재에서 더 나아가야 하는 어떤 것’으로 지나치게 이상화할 때, 건강을 추구하는 것은 성장주의의 한 형태가 된다. 이는 국가가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건강한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건강을 추구하는 목표 자체는 필연적으로 성장주의가 내재되어 있을뿐더러, 이를 도달하는 과정 자체도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또 과도한 에너지 소비를 야기하며 탄소배출량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도 성장주의적이다.

참고문헌

  • 조병희. (2015). 질병과 의료의 사회학. 서울: 집문당.
  • Boorse, C. (1975). On the distinction between disease and illness. Philosophy & public affairs, 49-68.
  • Boorse, C. (1977). Health as a theoretical concept. Philosophy of science, 44(4), 542-573.
  • Larson, J. S. (1999). The conceptualization of health. Medical care research and review, 56(2), 123-136.
  • Nordenfelt, L. Y. (1995). On the nature of health: An action-theoretic approach. Springer Science & Business Media.
  • Nordenfelt, L. (2007). The concepts of health and illness revisited. Medicine, Health Care and Philosophy, 10, 5-10.

  1. 이 사례를 각색했습니다.

  2. 기존에는 의료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 의학적 개입의 대상이 되어가는 현상

이 원고는 2023년 8월 30일에 제 9차 국제 탈성장 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Lee, Do Yeon. (2023). Health Commons for Degrowth. 9th International Degrowth Conference. (2023.08.30.)

이도연

보건학 석사, 보건학 박사수료, 탈성장 석사과정 중. 건강돌봄의 생태적 전환에 대해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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