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조각모음] ⑱ 탈성장과 유교적 무의식

지금의 한국문화의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적 전통의 일부인 유교는, 유교가 국교화되었던 500여 년에 걸친 조선조 시기를 거치면서, 유교적 무의식으로 한국인의 심성 속에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을 출발점으로 하면서 탈성장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 탈성장의 전개와 아울러 유교적 무의식을 시론적(試論的)으로 살펴본다.

『성장의 한계』

도넬라 H. 메도즈 외, 『성장의 한계』, (갈라파고스, 2021)

경제성장을 제1의 가치로 생각하기보다는 환경 조건이 허락하는 적정한 정도로 경제성장을 축소하거나 지양하려는 경향성이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이와 유사한 경향성이 대두되는 일은 역사 속에서 되풀이 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기술과 욕망 위에서 생산·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경제성장이 가능하여졌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여졌고, 거기에 인구 증감과 이동 그리고 자원 약탈과 교환이 맞물렸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인구·생산·소비·자원 사이의 부정합이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시점이 멀지 않았다는 비관적 전망이 대두하였다. 1972년 3월 출간된 『성장의 한계, 인류의 위기에 관한 로마 클럽 프로젝트 보고서』1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전망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세계 환경에는 양적 한계가 있고, 과도한 경제 성장이 계속되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는 인식은 인간 행동과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

② 세계의 인구 압력은 이미 우려할 만한 상태에 이르렀고, 인류는 지구상에서 균형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

③ 개발도상국의 경제 수준이 절대적으로, 혹은 선진국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향상돼야 세계의 균형이 실현된다.

④ 경제 성장은 다른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환경문제 등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반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⑤ 인류 사회와 그 주거지인 지구 사이의 균형이 존재해야 한다.

⑥ 우리는 현재 불균형 상태에 있고, 위험한 방향으로 악화해 가고 있는 세계의 상황을 급속히 또 근본적으로 시정하는 것이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기본적 과제다. 사회 목표를 성장에서 균형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 방법과 노력이 필요하다.

⑦ 이러한 노력은 우리 세대가 맡아야 할 도전이며,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이 노력은 결단코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또 중요한 방향 전환을 이제부터 10년 동안에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⑧ 인류가 만약 새로운 진로를 향해 내디딘다면 전례가 없을 정도의 규모와 범위로, 국제적으로 일치된 행동과 공동의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

⑨ 인구성장과 경제성장의 악순환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 발전의 상황을 동결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⑩ 계획적이고 합리적이며 영속적인 균형 상태에 도달하려면 개인과 국가, 세계의 각 수준에서 가치관과 목표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2

이 전망은 양적 한계의 인식을 가장 먼저 거론하면서 인간 행동과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을 제안[①]한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국가의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는 향상되어야 한다고 주장[③]한다. 이 전망은 인구 증가를 우려[②]하면서 동시에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인구 규모의 유지가 필요함[⑨]을 주장한다. 이는 소비 대중과 시장을 결정적인 조건으로 가능해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상정한 결과 같다. 이 전망이 이러한 노력을 결단코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또 중요한 방향 전환을 이제부터 10년 동안에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단언하였다[⑦].

탈성장

앞서 말한 『성장의 한계』가 출판된 1972년, 앙드레 고르3(André Gorz, 1923~2007)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지구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질 생산에 있어서 무성장, 나아가 탈성장이 필요조건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균형은 자본주의 시스템과 양립할 수 있는가?” 여기에 프랑스어 ‘décroissance(데크로아상스)’가 ‘탈성장(脫成長, Degrowth)’으로 번역되어 있다. 탈성장 개념은 이렇게 고르에 의해서 제안되었다. 또한 여기에서 고르는 ‘지구의 균형은 자본주의 시스템과 양립할 수 있는가?’4라는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같은 해 출간된 『성장의 한계』와 유사한 입장에 서면서도 향후 전 세계를 아우를 정치·경제적 체제 즉 자본제를 문제 삼는 데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성장의 한계』의 후속 작업에도 반영되었다고 한다.5 이렇게 등장한 탈성장 개념을 고르는 1977년에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한다; “희소한 자원을 계속 소비하면 결국 자원이 완전히 소모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상식을 가진 경제학자는 니콜라스 조르제스쿠-뢰겐(Nicolas Georgescu-Roegen, 1906~1994)이 유일하다. 이런 상황은 성장이 없는 성장 제로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문제는 더 많은 소비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아직 남은 자원을 보전하는 길은 이것뿐이다. 이것이 생태적 현실주의이다, …… 성장없는 평등에 관한 고민을 거부하는 급진론자들은 ‘사회주의’가 또 다른 방법을 통한 자본주의의 연장이라고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오늘날 비현실적인 주장은 탈성장을 통해 더 많은 복지를 이루고,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삶의 방식을 전복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경제 성장이 여전히 인간 복지를 증진하고, 물리적으로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이 바로 비현실적이다.”6

니콜라스 조르제스쿠-뢰겐과 앙드레 고르는 지구를 자원 사용의 찌꺼기가 축적될 수밖에 없는 닫힌 세계로 본 듯하다. 한 정치체에서 경제 성장이 없이 구성원들이 존재하기만 하는 데에도 에너지의 사용이 필요하므로, 성장 제로 상태에서도 자원은 소비되면서 찌꺼기를 남길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듯하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존재 자체를 위한 소비마저 없앨 수는 없으므로, 소비를 줄여 덜 쌓는 것 외의 선택이 없는 것이 된다. 성장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는 사람들은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고 경제 성장만이 인간 복지를 증진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니콜라스 조르제스쿠-뢰겐과 앙드레 고르는 이것이 비현실적인 생각이라고 단언한 셈이다. 오히려 그들이 보기에는, 탈성장을 통해 더 많은 복지를 이루고,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삶의 방식’을 전복하자는 주장이야말로,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이는 ‘일반인’ 특히 보통의 한국인에게는 많이 생소한 정서이며 사고방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 행성의 현단계

『성장의 한계』가 출판되고, 앙드레 고르가 제안한 탈성장 개념을 제안하고, 『성장의 한계』의 저자들이 고르가 제안한 탈성장 개념을 즉각적으로 공유하는 일7이 일어난 1972년으로부터 2026년까지, 23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행성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역병 코로나-19[COVID-19]의 유행이 이 행성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 역병의 유행은 경제성장의 중심에 있던 산업들보다 사양산업들이나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산업들 혹은 하위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산업들이 인류의 기본적 복지와 생존에 더 중요하다는 체험의 계기가 되었다. 화장실용 휴지 제조업이 약해진 ‘선진국’의 국민 가운데 상당수는 물티슈로 변기가 막히는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의사 못지않게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한데도 그들이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하게 된 사람들도 있었던 듯하다. 나아가 요양보호사의 질이 낮다고 불평해 왔음에도 그들의 돌봄이 모든 사람의 생애주기의 어느 단계에서 결정적일 수 있음을 새삼 인정한 사람도 증가한 듯하다. 택배 노동이 없다면 삶의 지속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든 사람도 적지 않았던 듯하다. 요컨대 역병의 유행은 이러한 산업과 직업들을 주변화하는 것을 조건으로 유지되는 경제성장이 인류의 기본적 복지와 생존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인식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인류의 극히 일부는 탈성장을 제안하며 고르가 보여준 인식에 상당히 접근하였다고 추정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러한 추정이 타당하다면, 어쩌면 경제성장을 제1의 가치로 생각하기보다는 환경 조건이 허락하는 적정한 정도로 경제성장을 축소하거나 지양하려는 경향성이 조금 강해질 수도 있을 듯하다.

역병의 유행에 연이어 외부 인식·사고 장치(Conversational AI·AI Companion)와 생각하고 교제하는 사물(Artificial Intelligence of Things, AI of Things, AIoT)이 정교해지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사태8가 닥쳐왔다. 이 사태는,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대량 실업과 기술 발달에 따른 이익의 극단적 독과점(獨寡占)9의 전조(前兆)로 인식되기도 한다. 외부 인식·사고 장치와 생각하고 교제하는 사물이 노동력을 대체함에 따라, 인구문제를 노동력 재생산 차원에서 바라보는 관점 역시 수정될 수 있을 듯 하다. 반면 자본가들에게는 소비 대중의 규모 변동과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급선무가 될 수 있을 듯하다. 현 단계에서 외부 인식·사고 장치와 생각하고 교제하는 사물은 인류에게 명암을 동시에 드리우고 있다고 해야 할 듯하다. 외부 인식·사고 장치와 생각하고 교제하는 사물은 트랜스휴먼(Trans-human) 담론 그리고 포스트휴먼(Post-human) 담론과 겹치게 되면서, 그것들과 호모 사피엔스 사이의 관계 설정 문제와 윤리적·정치적 책임 부여의 기준과 한계는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쟁점이 되었다.

외부 인식·사고 장치과 생각하고 교제하는 사물은 인류에게 명암을 동시에 드리우고 있다. 사진 출처: Steve Johnson

2025년에서 2026년으로 넘어오는 시기에는 미합중국이라는 일극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체제의 동요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각국에 적나라한 각자도생을 강요하여 각 국가 단위의 힘의 결집과 힘의 추구가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저류에서는 외부 인식·사고 장치와 생각하고 교제하는 사물을 정교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기술-자본10의 급성장이 기술과 자본으로 모든 국경을 곧 허물어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며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효용(效用, utility)과 이윤(利潤, profit)이 22세기 말에서 21세기 초 사이에 중시되었던, 다양성(Diversity)·형평성(Equity)·포용성(Inclusion)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적 교정(政治的 矯正, Political Correctness, PC)을 세계에서 지워가려고 하고 있는 듯하다.

요약하자면, 탈성장의 제안 이후 53년간, 특히 21세기에 들어서서, 역병이 유행하였으며, 외부 인식·사고 장치와 생각하고 교제하는 사물이 빠르게 정교화되면서 트랜스휴먼 담론 그리고 포스트휴먼 담론과 겹치고 있으며, 각 국가 단위의 힘의 결집과 힘의 추구가 강화되는 경향과 효용과 이윤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며 행성 전체에 침투하는 경향 사이의 긴장이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의 복합을 이 행성의 현 단계라고 할 때, 탈성장을 이 현 단계 위에서 자리매김하는 일은, 탈성장이 처음 제안된 1972년과는 다른 자세로 행하여져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크게 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닌 듯하기도 하다. 21세기 들어서 이 행성이 겪은 변화가 크긴 하지만, 이전의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의 역사를 거울삼아 보면, 변화들 사이의 본질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특성도 강고해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주목하여 볼만한 몇 가지 가운데 하나는 사람 하나하나의 마음의 움직임 달리 말하자면 욕망과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탈성장을 제안하며 고르가 보여준 인식에 접근이라도 한 사람은 극소수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점점 더 발달하고 있는 미디어를 통한 설득 기술들을 살펴보면, 탈성장보다는 성장을 선호하도록, 강력한 의식화가 행하여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탈성장과 유교적 무의식

한편, 이 행성 속 정치체들은 각자의 사정이 있으며, 한국 역시 그러하다. 한국이 처한 특수성 속에서 ‘유교적 무의식’에 주목하여 볼만하다. 유교적 무의식은 아직 학적으로 정의되지는 않은 개념이다. 유교적 무의식은, ‘다양한 경로를 거쳐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 개인에 내재화된 행동 방식과 사고방식과 가치관’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해당 개인이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개인의 삶 전반과 개별 행위와 선택에 결정적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특히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용하였을 경우 그 작용 결과 이해에 어려움을 주어 해당 개인을 총체적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경우, 유교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자신의 행동 방식과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더욱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통제·조정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상준이 그의 논문과 저서에서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양자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11 유교는 철학사상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정치론으로 분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본다. 중국 송나라 시대에 형성된 주자학의 이론가들이 『맹자』로부터 인용·변형한 후 해설을 부가하여 자신들의 수양론의 주요한 부분으로 삼은 ‘알인욕존천리(遏人慾存天理)’라는 말이 있다. 이는 ‘욕망을 절제하고,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기’라고 번역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유교의 핵심 사상에 의거하여 탈성장을 실천할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다. 유교문화가 짙게 배어있는 사회에서 성장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생활상의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행동의 과정에서도 자신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성찰을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들보다 강하게 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때의 성찰은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이 하도록 만들지 않기’[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12라는 행동 방침에 따라서 행하여지게 된다. 이 행동 방침은 ‘입장 바꿔 생각하기’[역지사지(易地思之)]와 동일시된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는 『맹자』〈이루〉하에 보이는 ‘서로 처지를 바꿨어도 하는 행동은 같았을 것이다’[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라는 기록13을 행동방침으로 정리한 것이다. 중국 송대에 이르러 주희는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이 하도록 만들지 않기’[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을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타인의 마음에 다가가기’[추기급인(推己及人)]라고 해설하였다.14

〈성균관에서 석전대제를 거행하는 유림들 Korean Confucian scholars pay respects to sages at the semi-anual ceremony with sacrificial offerings to Confucius〉(1948) 사진 출처: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국사편찬위원회.

이렇듯 유교적 교양인들의 기본적 행동 방침에 의거하여 탈성장을 실천할 가능성이 큼에도, 유교문화 내에는 능력주의[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와 연결될 수 있는 요소도 있어서, 유교적 교양인들이 탈성장을 혐오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국 한나라 시대에 유교가 국교화된 것을 바탕으로 5대10국시대 후주에서 만들어진 과거제도를, 고려가 받아들였고, 유교를 국교화한 조선에서 더욱 중시되면서, 유교경전연구는 과거시험공부[과거지학(科擧之學)]에 기울고, 과거제도에 의하여 ‘능력’을 보증받는 사대부는, 향촌 사회에서는 모범의 위상을 가지고, 왕에 대해서는 스승의 위상을 가지면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법제화되지 않은 계층 구분으로 양인들을 모두 동등한 존재로 보는 양천제(良賤制)15를 형해화하였다. 이렇듯 한국의 유교적 전통 속에는 ‘실력’을 근거로 한 계층을 당연시할 수 있는 경향성이 강하였고, 이러한 경향성이 현재 한국인들 내면 속 유교적 무의식의 일부가 되었을 수 있다는 면을 적절히 고려하지 않으면, 한국인들이 탈성장을 바라보는 태도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어려울 듯하다.

한국을 출발점으로 하면서 탈성장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 한국 내부에서 만연하는 성장주의의 궤적과 제도적 조건 중 하나로 수출주의16를 탐색할 때에도, 한국에서의 실업, 일자리, 소득, 고용안전 등의 과제들을 ‘전환의 사고’와 결부시켜 통찰17하는 데 있어서도 한국인의 내면 속 유교적 무의식을 결부시키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이다.


  1. 이 책의 원제는 “The Limits to Growth, A Report for the CLUB OF ROME’s Project on the Predicament of Makind”이다. 번역본 정보는 다음과 같다; 도넬라 H. 메도즈 외, 『성장의 한계』, 김병순 역, 홍기빈 해제, 서울: 갈라파고스, 2021.

  2. 강찬수, “로마클럽 ‘성장의 한계’ 발간 50주년…그들의 예언은 맞았나,” 『중앙일보』, 2022년 3월 5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3139.

  3. ‘앙드레 고르츠’가 공식적이 한글 표음인 듯하나, ‘앙드레 고르’라는 한글 표음이 넓게 사용되고 있다.

  4. Gorz, André (1972) “Technical Intelligence and the Capitalist Division of Labor”, Telos: Critical Theory of the Contemporary, 1972(12), pp. 27-41. 혹은 Gorz, André (M. Bosquet) (1972) “Proceedings from a public debate organizeded in Paris by the Club Du Nouvel Observateur”, Nouvel Observateur, Paris, 397, 19 June 참조.

  5. 자코모 달리사 외 편저, 『탈성장 개념어 사전』, 강이현 역, 고양: 그물코, 2018, 21쪽.

  6. Gorz, André (1977) Écologie et liberté, Paris: Galilée ; Gorz, André (1980) Ecoiogy as Politics, Montréal: Black Rosa Books, 13p, 『탈성장 개념어 사전』, 22쪽에서 재인용.

  7. 『탈성장 개념어 사전』, 21쪽.

  8. 여기에 20세기 말에 쓰였던 대가속(大加速, Great Acceleration)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 듯하다.

  9. 독점(獨占, monopoly)과 과점(寡占, oligopoly)

  10. 빅테크(Big Tech)

  11. 김상준,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The Political Unconscious of Confucianism)」, 『다산학』 2013, vol., no.22, 재단법인다산학술문화재단, pp. 193-227; 김상준,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글항아리, 2014.

  12. 『논어』, 「위령공」

  13. 『맹자』, 「이루 하편」: “우와 후직, 안회의 사람 됨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치수(治水)에 능한 우는 백성들이 수재를 만나면 내 일처럼 안타까워했고, 농법 개발에 능한 후직은 굶주린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안타까워했다. 안회의 어진 마음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우와 후직, 안회가 서로 처지를 바꿨어도 하는 행동은 같았을 것이다[易地則皆然].”

  14. 주희 편찬, 『논어장구집주』, 「위령공」.

  15. 『위키백과』 ‘양천제’: “양천제(良賤制)는 모든 백성을 양인(良人)과 천민(賤民)으로 나누는 동아시아의 신분 제도이며, 한국의 조선 시대에는 양인만 벼슬에 나갈수 있었다. 양천 신분제의 기본 골격은 유교 도덕성에 따라서 모든 인민을 양·천이라는 두 집단으로 구분하고 양자의 법제적 지위를 대칭적으로 설정하여 각각 상이한 권리·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한반도에선 삼국시대 때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도덕적 질서였기 때문에 실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16.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편저, 『탈성장을 상상하라: 성장 신화의 종말과 이후 시대』, 서울: 도서출판 머시는 사람들, 2023, 6쪽.

  17. 위의 책, 6쪽.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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