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사람의 이름 원천강이 많은 것들의 대명사가 되다
중국 당나라 초기 사람 원천강(袁天綱)은 관상을 아주 잘 보았다고 한다. 그의 명성은 이웃나라에도 널리 퍼져서,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에도 그 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그 이름을 점술을 대표하는 책의 이름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제주도 무교 속에서 원천강은 ‘춘하추동이 공존하는 곳’·점술서·점쟁이·무당 등 다양한 것들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제주도 심방[무당]들이 전하던 서사무가 ‘원천강 본풀이’에서 원천강은, 춘하추동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특이한 장소의 이름이기도 하고, 절에 반드시 한 권 있어야 하는 책의 이름이기도 하고, 길흉화복을 점치고 특히 후손의 재생산을 점치는 데 근본이 되는 책을 보호하고 보급하는 어려운 임무를 떠맡은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1 한낱 사람의 이름이 많은 것들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그것이 근거가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한때 원천강은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안에 답을 주는 사람이었다. 즉 알 수 없는 앞날들에 대하여 예언하는 점술가였던 것이다. 이런 역사가 그의 이름을 미래와 시간에 관한 궁금증에 답하는 행위들의 대명사가 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1930년대에는 박춘봉 심방이, 1960년대에는 조술생 심방이, 각기 다른 연구자들 앞에서 각각 자기가 아는 원천강 본풀이를 구술하여, 그 기록이 오늘날 전하고 있는데, 두 원천강 본풀이의 구조와 내용이 같지 않다. 지금은 이 원천강 본풀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굿과 무교의 전승은 끊기고 이야기들만 남아있다. 그러니까 이 노래들은 종교의 차원에서는 ‘죽은 노래’라고 할 수 있다.2 더 이상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노래들이 그냥 죽은 노래들은 아니다. 박춘봉 심방이 남긴 원천강 본풀이는 변형을 거쳐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생태학적 운명관을 시사하는 구복여행설화
1930년대에 박춘봉 심방을 대상으로 조사, 채록한 원천강 본풀이3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어느 날 강님들에서 옥 같은 여자아이가 솟아났다. 그때부터 어디선가 학이 날아와 한 날개로 깔고 다른 날개로 덮고 야광주를 입에 물리며 그 여자아이를 키웠다. 동네 사람들은 그 여자아이에게 이름과 나이를 물었으나 모른다고 하자 ‘오날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오날이가 박이왕의 어머니 백씨 부인을 만나 부모가 원천강에 있음을 알고 부모를 찾아 길을 떠났다. 오날이는 도중에 장상이라는 사람을 만나 원천강으로 가는 길을 묻자, 장상은 서천강 가의 성 안에서 글만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오날이가 연꽃을 만나 길을 묻자, 연꽃은 제일 윗가지에만 꽃이 피고 다른 가지에는 꽃이 피지 않는 이유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또 큰 뱀을 만나 길을 묻자, 큰 뱀은 야광주를 세 개나 갖고 있는데도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매일이라는 처녀를 만나 길을 묻자, 매일이는 자신이 항상 글만 읽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마지막으로 옥황의 세 시녀를 만나 길을 묻자, 시녀들은 자신들이 잘못을 저질러 그 벌로 물을 푸고 있는데 바가지에 큰 구멍이 뚫려 있어 물을 퍼낼 수가 없다며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오날이는 정당풀과 송진으로 바가지의 구멍을 막고 옥황께 축도한 후에 물을 대신 퍼 주었다. 시녀들은 크게 기뻐하며 오날이에게 백배사례하고는 원천강까지 동행하며 길을 인도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오날이는 원천강에 도착하지만, 문지기가 오날이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오날이가 서럽게 울자 냉정하던 문지기가 동정의 눈물을 흘리며 오날이의 부모에게 가서 고하였다. 오날이를 부른 부모는 왜 여기에 왔는지 물어 자기들의 딸이 분명한지 확인한 뒤, 오날이를 낳은 날에 옥황상제로부터 원천강을 지키라는 명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러고는 춘하추동 사계절이 모두 존재하는 원천강의 성 안을 구경시켜 주었다. 며칠 후, 오날이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원천강으로 오는 도중에 부탁받은 것들을 부모에게 물었다. 부모는 장상과 매일이는 부부가 된다면 만년 영화를 누릴 것이고, 연꽃은 윗가지의 꽃을 따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면 다른 가지에도 꽃이 만발할 것이며, 큰 뱀은 야광주 두 개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면 용이 되어 승천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오늘이가 연꽃과 큰 뱀을 처음 만난 사람이니, 그 야광주와 연꽃을 받으면 신녀가 되리라고 알려 주었다. 되돌아오는 도중에 부탁받은 일을 모두 마친 오날이는 백씨 부인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보답으로 야광주 하나를 선사한 후에 옥황의 신녀가 되어 승천하였다. 승천한 오날이는 옥황의 명을 받들어 인간 세상에 강림하여 절마다 다니면서 ‘원천강’이라는 책을 목판으로 적는 일을 맡게 되었다.”4

강권용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박봉춘본 〈원천강본풀이〉의 전체적인 서사 내용은 이계(異界)여행담이다. 각 화소(話素)를 거론하면 본토의 설화, 제주도 본풀이가 혼합되어 있는 형태이다. 제주도 본풀이 속성을 보이는 부분은 탄생, 천상으로의 상승, 군문열림·연유닦음이다. 탄생은 남자 당신(堂神)들의 지상용출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천상으로 올라가는 부분은 〈세경본풀이〉의 부분과 일치하고 있다. 군문열림·연유닦음 부분은 이계여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본토 설화의 속성은 구복(求福)여행담이 주를 이룬다. 학이 내려와 보살펴 주는 화소는 주몽과 바리공주가 동물들의 보살핌으로 생명을 연장해 가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다.”5 강권용은 이 본풀이에 제주 본풀이의 속성 외에 세계 여러 곳의 신화나 설화들을 이루고 있는 화소인 구복 여행이나 동물의 보살핌에 의지한 생존 등이 결합되어있다고 설명하여주었다.
최원오도 박춘봉 심방이 남긴 원천강 본풀이의 내용과 구조가 ‘구복여행설화’와 유사하다고 주장하였다.6 이야기 속에서 오날이[오늘]는 부모를 찾아 어려운 길을 갔지만, 우여곡절 끝에 “옥황의 신녀가 되어 승천”하였으니, 큰 복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부모를 찾아 어려운 길을 간 것이 ‘엄마 찾아 삼만 리’ 류의 이야기를 연상시키고, 실제로 초등학교 국어 3-1에 속하는 교과서 《읽기》에 ‘오늘이’ 라는 이름으로 박춘봉 심방이 남긴 원천강 본풀이 앞 부분 즉 오날이[오늘]가 부모를 찾아 어려운 길을 가는 부분이 실렸던 적이 있다고 한다.7 박춘봉 심방이 남긴 원천강 본풀이 앞부분을 제주판 ‘엄마 찾아 삼만리’로 읽고 가족애를 느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고, 어린이들에게 권해볼 만한 일일 수도 있겠다.
최원오는 이 이야기가 ‘생태학적 운명관’을 시사한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인간의 운명이 인간뿐만 아니라 연꽃 같은 식물이나 큰 뱀 같은 동물 등 자연만물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결정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8
늘, 하루하루, 오늘
한편 원천강 본풀이에서는 원천강이라는 이름 못지않게 그 뜻이나 유래를 궁금해 하게 하는 이름들이 등장한다. 장상이[장상]와 매일이[매일]가 그러하고 심지어 오날이[오늘]라는 주인공의 이름도 그러하다. 이 이름들은 원천강 본풀이를 접하는 이들이 세상사를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영감(靈感)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혼자였던 ‘오늘[오날이]’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명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오늘이 된 것 같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오늘은 그저 명멸하는 한 순간을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오늘이 장상[장상이]과 매일[매일이]을 만난다. 최원오에 따르면, 장상과 매일은 1572년에 발간된 《금합자보(琴合字譜)》에 실려있는 시에 나온다고 한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오ᄂᆞ리 오ᄂᆞ리나 ᄆᆞㅣ일에 오ᄂᆞ리나 졈므디도 새디도 오ᄂᆞ리 새리나 ᄆᆞㅣ일 댱샹의 오ᄂᆞ리 오쇼셔”9
오늘날 〈오늘이 오늘이소서〉 라는 제목으로 유명해진 이 시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중엽까지 일반서민들이 명절 등 즐거운 날을 맞아 불렀던 노래라고 하기도 한다.10 이를 지금 쓰이는 글을 사용하여 표기한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으시고 새나마 주야장상에 오늘이 오늘이소서”
좀 더 알아보기 쉽게 ‘의역’한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고 한다.
“매일 오늘만 같아라 해가 저물지도 날이 새지도 말고 날이 새더라도 항상 오늘만 같아라”11
이런 번역에 따른다면, 당샹은 장상이며 장상은 지금의 항상(恒常) 즉 ‘늘’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ᄆᆞㅣ일은 지금의 매일(每日) 즉 ‘하루하루’를 뜻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까, 원천강에 있다는 부모를 찾아 길을 떠난 오늘은 도중에 ‘늘[장상]’을 만나 원천강으로 가는 길을 묻자, 그는 서천강 가의 성 안에서 글만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하루하루[매일]’라는 처녀를 만나 길을 묻자, 그는 자신이 항상 글만 읽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오늘은 늘[장상]과 하루하루[매일]의 궁금증을 짊어진 채 계속 길을 간다. 그들로부터 큰 도움은 받지는 못한 듯하다. 옥황의 시녀들의 바가지에 난 구멍을 메워주고서야 오늘은 누군가로부터 도움다운 도움을 받게 된다. 시녀들은 원천강까지 동행하며 길을 인도해 주었다. 오늘은 부모를 만나고, 자신이 혼자였던 연유를 알게 되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모두 존재하는 원천강의 성 안을 구경하고, 장상과 매일 등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얻고, 장상과 매일이 부부가 된다면 만년 영화를 누릴 것임을 알려주고, 신녀가 되어 점술서 원천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린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처음에 오늘이 그저 명멸하는 한 순간이었다면, 여러 어려움을 거치고, 늘[장상]과 하루하루[매일]가 부부가 되도록 만들어 그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에 궁금증을 가지는 어려움을 겪지 않고 ‘늘’ ‘매일매일’ 글을 읽는 일을 계속하게 한 후, 오늘은 옥황의 신녀가 되어 승천하였다가 인간 세상에도 강림하는 존재가 되었다. 춘하추동 사계절이 모두 존재하는 원천강의 성 안을 구경하였다는 것은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파악하였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같다. 왜냐하면 오늘은 나중에 세계의 변화를 미리 알려주는 기술 즉 점술에 관한 책을 세계에 널리 퍼뜨리는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부부가 되어 글을 읽는 일을 계속한 ‘늘’과 ‘매일매일’이 예전에 품었던 궁금증은 결혼에 이어지는 재생산[자녀의 출산]을 통하여 희석된 듯하다. 그들이 매일매일 늘 읽어야했던 책은 아마도 점술서나 예언서였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불안에 답하는 기술을 담은 책을 매일 읽는 것은 자부심을 가질만한 행위인 듯한데도, 늘과 하루하루는 그런 행위의 의미를 갈구하였던 것인데, 막상 재생산을 하고 난 후에는, 왜 매일매일 늘 그 책을 읽어야 하는지 하는 의문보다는 재생산에 이은 돌봄에 바쁜 오늘에 녹아들어가 버린 듯하다. 이런 늘과 매일매일의 오늘에 비하면, 오늘의 오늘은, 천상과 지상을 오가는 볼만한 장관을 연출하면서, 점술서를 무한복제해서 세상에 퍼뜨리는 나날이었다고 해야겠다.
아이러니
1960년대에 조술생 심방을 대상으로 조사, 채록한 원천강 본풀이12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한 남자가 왕이 되려고 하자, 나라에서 그 남자를 잡아서 죽이려고 사령을 보냈다. 그 사실을 안 남자가 아내에게 아무 날, 아무 시에 누가 자신을 찾아오면 모르겠다고 하면서 버티라고 말했다. 그러고서 남자는 장독대를 만들어 거기에 독을 놓은 뒤 그 속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사령이 남자를 잡으러 왔지만 번번이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사령이 꾀를 내어, 한 여자에게 세 살 난 아기를 업혀 남자의 부인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아내에게 자기 남편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라고 시켰다. 그 여자를 본 남자의 아내는 남편이 외도한 줄 알고 장독대에 있는 독을 열어 남편을 밖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그때 사령이 나타나 남자를 잡아갔다. 남자가 붙잡혀 가면서 부인에게 원천강이나 볼 팔자라고 말했다. 그 후로 남자의 부인은 원천강이라고 불렸다.”13
강권용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조술생본 〈원천강본풀이〉는 육지의 아기장수 후반부의 변이형으로 볼 수 있다. 제주도의 아기장수가 힘센 장사로 살아가는 데 반해 원천강의 남편은 재기(再起)를 노린다. 그러나 그는 1차에 실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지혜를 통한 성공을 노렸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조술생본 〈원천강본풀이〉는 글의 내용상 아내가 어떻게 하여 ‘원천강’이라고 불리게 되었나를 말하는 이야기이다. 아기장수형 설화를 기본 모티프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되었더라도 결말은 그의 부인이 원천강이나 보며 사는 팔자가 된다.”14
강권용은 이 본풀이에서 남편은 조연이고 아내가 주연임을 명확히 하면서도 결말은 아내가 “원천강이나 보며 사는 팔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런 상황에 대한 평가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
최원오는 조술생 심방이 남긴 원천강 본풀이의 내용과 구조가 ‘아기장수설화’와 유사하다고 주장하였다.15 아기장수설화에서는 엄마의 작은 ‘실수’로 아기장수가 관군에게 살해된다. 조술생 심방이 남긴 원천강 본풀이에서는 아내의 작은 오해 혹은 불신 때문에 장차 왕이 되려고 한 남편이 왕이 보낸 사령에게 잡혀간다. 그리고 아내는 원천강이나 보며 사는 팔자가 되는데 그 팔자가 어떤 팔자인지에 대한 설명은, 이야기 속에는 없고, 연구자들의 연구에서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적지 않은 사람들 특히 사회 변혁을 꿈꾼 사람들이, 아기장수설화 속 허망해 보이는 아기장수의 좌절이 역사 속에서 반복된 민중 봉기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아기장수설화는, 영웅의 좌절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민중이 변혁에 직접 나설 수 없음을 느끼게 하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도 있다. 조술생 심방이 남긴 원천강 본풀이에서는, 남편이 사령에게 잡혀가며 아내에게 “원천강이나 볼 팔자”라는 말을 남기고, 그 후로 원천강이 아내의 이름이 되어버린다. ‘원천강이나 볼 팔자’라는 말은 ‘당신은 평생 점술서를 보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고생좀 해봐라, 쌤통이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평생 예언서의 수호자로 사시는 영예를 누리실 것입니다.’ ‘아 힘드시겠네요, 평생 예언서를 수호하셔야 되다니.’ ‘길흉화복을 미리 알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은 엄중한 것이다.’ 등등, 어떤 맥락 속에서 말하여지느냐에 따라 이 말의 뜻을 달라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방식은 아이러니[irony 반어법(反語法)]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엄마 찾아 삼만 리 너머로 보이는 것들
원천강 본풀이를 읽으며 ‘엄마 찾아 삼만 리’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만큼 ‘엄마 찾아 삼만 리’ 따위의 이야기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고, 전쟁이나 이산이나 가족해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정치체 속에서는 공감을 촉발하기 쉽다. 한국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에 쉽게 공감하는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전쟁의 상흔이 아직 충분히 지워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전쟁이나 이산이나 가족해체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원천강 본풀이에서 오늘이 여러 역경을 극복하고 부모를 만나고 여신이 되는 것을 강조하여 엄마찾아 삼만리’ 따위의 어린이용 읽을거리를 만드는 것은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이 이야기에서 ‘생태학적 운명관’을 포착하는 것 또한 대단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한편,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 인물의 이름인 오날이·장상이·매일이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읽을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이름들은 오늘·늘·하루하루라는 뜻을 가졌다. 이야기 앞쪽에서 늘과 하루하루의 오늘은 왜 읽는지도 모르는 책을 읽고 있는 시간이었고, 오늘과 하루하루는 그 시간의 지나감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그래서 오늘에게 그 의미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오늘이 그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의미라기보다는, 해소책이었다. 해소책은 결혼-재생산-돌봄의 연쇄로 추정된다. 이 연쇄 속에서 늘과 하루하루가 바빠져서 자신들의 일상 행위의 의미를 성찰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 해소책의 속내라고 할 수도 있다. 해소책은 의미추구의 해소책에 다름 아닌 것이다. 오늘은 근원[부모]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길을 떠났다. 그 갈망을 해결했을 때 부모는 그에게 춘하추동 사계절이 모두 존재하는 원천강의 성 안을 구경시켜준다. 오늘은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파악하였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나중에 세계의 변화를 미리 알려주는 기술 즉 점술에 관한 책을 세계에 널리 퍼뜨리는 일을 하게 된다. 그가 본 변화가 어떤 변화였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평가가 없는 것이다. 제주도 무교에서 미래에 대한 관심은 자녀를 낳는 것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미래에 대한 전망이고 대답이라면 늘과 하루하루가 결혼-재생산-돌봄의 연쇄로 걸어 들어간 것은 그 전망을 따른 것이겠지만, 그렇게 하면서 그들이 의미에 대한 물음과 갈증을 덮어버린 것은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원천강 본풀이에 전개와 결말이 전혀 다른 두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도 주목하여 볼 수 있다. 바로 앞에서 언급하였듯, 박춘봉 심방이 전한 원천강 본풀이가 사람들로 하여금 결혼-재생산-돌봄의 연쇄를 받아들임으로써 행위 나아가 삶의 의미에 대한 갈증을 덮어두는 것으로 결말지어졌다면, 조술생 심방이 전한 원천강 본풀이는 하늘이 내린 벌이 점술서 원천강을 읽고 평생 지켜내는 것인 아이러니로 끝맺었다. 이야기 속에서 남편은 치열하게 공부하였고 아내는 고도의 인내력을 발휘하였지만 아주 조금 더 인내하지 못한 탓에 남편을 잡혀가게 만든다. 이에 비하면 잡혀가면서 아내에게 던진 남편의 마지막 말은 용렬해 보이기도 하고 자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큰 뜻을 품고 평생 치열하게 노력한 사람이 자기 배우자에게 한 말이 고작 그런 수준이었기에 그런 식으로 말한 남편은 용렬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그를 용렬하다고 볼 것이다. 여기에서 좀 더 나가, 누구나 마음속에 그런 용렬함을 숨기고 있을 것이며, ‘나’ 또한 그러할 수 있다는 겸손한 깨달음에 이르는 사람도 없지 않을 듯하다. 남편의 마지막 말이 자조적이라 함은 그 말 속에 평생 치열하게 공부하였음에도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씁쓸한 웃음이 남편의 말 밑에 깔려있다는 것이고, 그에 더하여 아내에 대한 동정과 아내의 앞날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짙게 묻어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아내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하면서도 점술서에라도 매달려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조에는 삶의 유한성에 대한 갑작스러운 자각이 선행하였을 것 같다. 치열한 추구가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을 때 남편은 회생의 방도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자기가 처한 위기로부터 회생하기에는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와 시간이 턱없이 적고 짧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아내에게 회생의 기회를 만들라고 요구한다는 것이 염치없는 짓이리라는 인식이 그를 엄습하였을 것이다. 미세하지만 결정적인 이 모든 인식과 각성들이 섬광처럼 지나가는 와중에 남편은 ‘마음에도 없는 매몰찬 말’을 뒤틀린 분위기로 내뱉은 듯하다. 이런 말을 전형적인 아이러니 즉 반어(反語)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조술생 심방이 전한 원천강 본풀이는 전적으로 아이러니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아이러니를 보고 박춘봉 심방이 전한 원천강 본풀이를 다시 보면, 이른바 해소책을 받아들인 것을 가지고 의미에 대한 갈증이 풀어지기나 한 것으로 느끼는 것 또한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박춘봉 심방이 전한 원천강 본풀이는 소멸의 위기에 처했던 오늘이 근원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고 영원한 존재로 보이는 여신의 반열에 오르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결혼-재생산-돌봄의 연쇄를 해소책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추구를 갈음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도하였던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던, 조술생 심방이 전한 원천강 본풀이는, 전적으로 아이러니를 보여줌으로써, 마치 박춘봉 심방이 전한 원천강 본풀이에서도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는 훈련을 시켜주는 듯하였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앞서 말한 해피엔딩이 변화를 받쳐주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실상은 앞에서 본 것 이상의 많은 아이러니들이 엮여져서 만들어진 위태로운 그물망에 가까운 것일런지도 모른다. 아이러니들을 직면하는 것은 힘 빠지는 일일 것이다. 삶의 유한성을 절감하는 것과 겹칠 때는 더더욱 그러할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라면,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를 딛고 섰을 때 낙관적인 태도는 더욱 튼튼해지고, 변화는 단단하게 쌓아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원천강 본풀이를, 제주판 엄마 찾아 삼만리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다양한 각도와 심도에서 읽어보는 것은 나와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최원오] 참조.제주도 무교에서 원천강은 《원천강화주역(袁天綱畫周易)》의 준말로 사용되어 점복서나 점술서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원천강 본풀이는 점술서 또는 점술의 기원과 내력을 설명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
원천강 본풀이는 애초에 본풀이가 아니라 설화였는데, 심방의 구술에 따라 그 설화를 채록하면서 채록자가 본풀이로 분류하였다고 추정하는 연구자도 있다. 이 추정에 따른다면 이 노래를 죽은 노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
아래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카마쓰 지조, 아키바 다카시 (공편), 심우성 (역), 《조선무속의 연구》(상), 동문선, 1991. [赤松智城·秋葉隆, 《朝鮮巫俗の硏究》, 大阪: 屋號書店, 1937.] 박춘봉 심방이 남긴 이 원천강 본풀이를 요약하면서도 화소를 풍부하게 남기고, 지금 여기에서 읽기 쉽게 윤색한 요약본 하나가 다음 두 곳에 실려있다; 신동흔, ‘사계절의 땅 원천강 오늘이’, 〈신비의 세계를 찾아서〉, 《살아있는 우리신화; 우리 신들의 귀환을 위한 이야기 열두 마당》, 한겨레출판, 2004, 113~123쪽.,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 오늘이(원천강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최원오] ↩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강권용] ↩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최원오] 참조 ↩
최원오, 〈초등학교 교과서 속 설화읽기: 〈오늘이〉〉, 《옛이야기의 세계(2012년 1학기 광주교육대학교 강의)》 [http://contents.kocw.or.kr/document/lec/2012/GwangJuEdu/ChoiWonOh/9_1.pdf] 참조. 이 강의는 다음 글을 주요 참고자료로 하면서 진행된 듯하다. 최원오, 〈「오늘이」: ‘오늘이’가 아닌 ‘오늘이’ 서사의 허망함〉, 《어린이와 문학》, 2011.09. ↩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최원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최원오] ↩
〈전통시조 설날축가로 「오늘이 오늘이소서」 문화부〉, 《매일경제》, 입력: 1991-02-19 01:32:02 [https://www.mk.co.kr/news/economy/968838] 참조 ↩
〈전통시조 설날축가로 「오늘이 오늘이소서」 문화부〉, 《매일경제》, 입력: 1991-02-19 01:32:02 [https://www.mk.co.kr/news/economy/968838] 참조 ↩
아래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민속원, 1991. ↩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최원오] ↩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강권용] ↩
[네이버 지식백과] ‘원천강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최원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