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이 일할 수 있어!?] ② 글을 쓰듯 술 빚는 무정

‘재미없이 일할 수 있어!?’ 시리즈는 힘들어도 발랄하게 자기 일로 사는 사람들의 인터뷰다. 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매달 받는 월급을 위한 노동이 직업(職業)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회경제활동이 생업(生業)이다. 불안정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두 번째 주인공은 글을 쓰면서 술을 빚는 무정 님이다.

당연히 생업을 갖고 직장에 다녀야만 되는 줄 알았다. 계단 오르듯 차근차근 진급해서 정년을 맞아 은퇴하는 게 최고의 인생인줄 알았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라치면 가족, 친구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그걸로 밥 먹고 살 수 있니?”, “나중에 돈 벌고 해도 돼“ ”취미로 해도 돼“라는 소리가 뒤따라왔다. 매달 받는 월급을 위한 노동이 생업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회경제활동이 직업(職業)이다.

글을 쓰는 일과 술을 빚는 일이 무정에게는 다르지 않다. 자연스레 함께 따라 다닌다. 그러니 생각이 손과 입을 만나 글을 써내려가듯 술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나온 전통주가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놓을 수 없는 희망으로 취하게 한다. 인터뷰 끝에 무정은 사람들에게 하던 일을 그냥 하라고 권했다. 무정이 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짐작케 했다. 그리고는 바로 눈감을 때 후회할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시작하기를 권했다. 무정의 ‘해방’과 ‘자유’로 답답한 세상의 중력에서 벗어나 잠시의 일탈을 권한다.

고무정 : 글을 쓰듯 술 빚는 이

사진 : 유소영

무정 : 일산 사람 고무정입니다. 제가 항상 일산 사람이라고 하는 소개한 이유는 제 말과 행동이 일산에서 형성된 까닭입니다. 스쿠터를 타고 서울이나 파주, 강화도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 ‘여기부터는 고양입니다.’라는 팻말이 보일 적마다 죽어도 여기서 죽는구나 싶어 편해집니다.

있어 : 술 빚고 글 쓰는 게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묘하게 두 가지 일이 어우러집니다. 어떻게 두 가지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무정 :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공부는 안했어도 대학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전범선이 이끄는 밴드 ‘양반들’의 ‘Hymns from the Dragon Lake(용담유사,龍潭遺詞)’ 앨범 소개 글을 썼고요. 이런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기도 하고 르포를 쓰다가 에세이가 돼버리는 글들을 종종 씁니다. 술 빚는 일은 대학교 때 혼자 술을 만들다 우연하게 알게 된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에 나가 3등 한 번 하고 2등 한 번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호텔이나 소믈리에학과 나온 사람들보다 제가 성적을 더 잘 받는 걸 보고 내가 재능이 아예 없지 않나 보네 이런 생각이 들었죠? 전혀 배운 바 없는 제가 수상을 하니까 사람들이 “소속이 어디세요?”라고 묻는데 저는 전통주 전문기관에 다닌 적도 없고 따로 배운 적도 없이 그냥 테이스팅 노트를 인쇄해서 혼자 맛을 보고 도서관에서 전통주 공부를 했는데 말이죠. 마시고 이야기하는 데 재능이 없지 않았던 것 같아요 술 만드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술을 꾸준히 빚고 있습니다.

있어 : 본인의 이름을 딴 ‘무정양조’로 ‘해방’, ‘자유’, ‘임진강’이란 독특한 이름의 전통주를 생산하고 계신데요. 빚고 있는 술이 어떤 술이고 어떻게 만드는지 또 맛과 특징은 어떤가요?

무정 : 상호명을 ‘무정양조’로 등록한 게 약간 후회도 됩니다. 자의식이 좀 과잉돼 있던 20대 시절에 내 이름을 걸고 뭔가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무정양조’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침 상호를 지었을 때 해방촌에 밀주를 납품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술 이름은 ‘해방’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무정양조’를 대표하는 술 ‘해방’은 멥쌀로 만든 단양주로 탄산감이 강합니다. 일반 막걸리에 사이다 탄 것 같은 맛이라고도 하고 누룩 향이 좀 강해서 마셨을 때 이게 전통 누룩이구나, 녹진하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시중에서 구하기 가장 편한 막걸리는 맛이 다소 단조로운 반면 ‘해방’은 전통 누룩 맛이 있죠. 그리고 밀봉 후 발생하는 탄산감이 사람들이 해방감으로 다가옵니다. 캐치플레이즈 ‘해방으로 해갈하라!’처럼 마시고 넉넉하게 취할 수 있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게 1리터 병에 담아서 팝니다.

그리고 ‘자유’는 국화주로 향기롭고 녹진한 단맛이 있으면서 발효가 완전히 끝나 탄산이 없는 술입니다. 자유에 쓰는 야생국화는 쓴맛이 강해서 향기만 입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죠. 군대에 있을 때 개발한 레시피다 보니, 국가의 목적은 자유라는 스피노자의 말이 떠올라 이 나라는 지금 내 자유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생각에 이름을 ‘자유’로 붙였죠.

군복무를 임진강에서 했는데 젊은이들끼리 총 부리를 서로 겨누어도 임진강은 그저 흐르고 있더라고요. 교범에 임진강은 자연 장애물로서 우리가 적극 활용해야 될 자산으로 쓰여 있는데 말이죠. 흐르는 임진강 따라서 철책이 구불거리며 네 땅과 내 땅을 구분하느라 총부리를 맞대어도 바라도 흐를 뿐이라는 생각으로 ‘임진강’이라고 술 이름을 붙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맛있음이 강함을 이길 것이라는 생각으로 술맛이 북쪽에도 전해지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싶기도 했죠. 혹시 임진강이라는 이름으로 술을 빚고 있으면 언젠가 남북 정상회담 만찬주가 되어서 좀 먹고 살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있어 : ‘해방’ 이름을 먼저 만드셨나요? 아니면 술을 만들고 이름을 ‘해방’으로 하셨나요?

무정 : ‘해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술 맛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노하우로 이렇게 하면 이런 술맛이 날걸 알았기 때문이죠. ‘해방’이라는 이름 때문에도 좋아하시는 분들이 꽤있습니다. ‘해방’은 8도입니다. 보통 막걸리가 6도인 반면에 8도로 한 건 1리터 마시고 안 취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넉넉한 해방감과 취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8도로 만들었죠.

있어 : 전국을 돌며 양조장을 찾아 술을 마셔보셨지요. 여러 사람을 만나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술도 그럴 것 같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술이 있나요?

무정 : 다닌 곳이 약 30~40곳 정도 될 것 같네요. 강릉에서 ‘도문대작’이라는 막걸리를 만드는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도문대작’은 허균 선생님이 만든 책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미식 설명서 같은 거예요. 도축장 문간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는 뜻인데, 책의 첫머리는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 가서 맛봤던 그 방풍죽 맛을 잊지 못한다.’로 시작해요. 그래서 강릉에서 많이 나는 방풍을 넣어서 막걸리를 만들었죠. 맛이 담백하고 괜찮아서 많이 마시기도 하고 전통주 갤러리에서 일할 때 홍보주로 쓰기도 했는데 술맛은 좀 독했어요. 방풍 향이 살짝 나는 듯도 하고 감미와 산미가 잘 어울러져서 다시 맛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양조장이 없어지고 나서도 시중에 도는 술을 찾아 마시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있어 : 대학교 때 술 빚는 사람을 보고 술을 빚고 싶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술을 빚어서 친구들에게 팔았다고 하던데요. 그때가 술 빚는 일에 시작이었나요?

사진 : 유소영

무정 :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는 워크숍이라는 걸 2학기 때 하거든요. 그때 각자 하고 싶은 걸 하자라는 팀에 들어가 봤더니 제 앞에 친구가 PPT도 만들고 발표를 너무 잘했어요. 그 친구와 친하다보니 다음은 당연히 제가 할 것처럼 모두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준비를 아무것도 안했고 그냥 얘기나 한번 들어보고 천천히 생각해야지 이런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뭔가 있어 보여야 되니까 “저는 과방에서 술을 빚을 겁니다.” 이렇게 얘기 하고 워크숍 때 과방에 항아리를 갖다 놓고 이기숙 식품명인님도 모셔서 술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우고 영상도 촬영하고 그랬었죠. 그게 제 첫 양조였습니다. 그 뒤에 남들 알바하는 동안 학교 가서 팔면 팔리겠거니 해서 무작정 들고 나가서 팔아봤습니다. 그때 학교에서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그냥 오가는 학생들한테 한 잔씩 마셔보라고 하니까 “아버지 선물해야겠다.”, “어머니 막걸리 좋아하시는데.” 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2014년에 병당 1만 원 정도인데도 금방 다 팔리더라고요. 제가 한복 입고 술 빚어 파는 걸 보고 교수님들도 귀엽게 생각을 하셨는지 오며 가면서 한 잔 두 잔 마시고 좀 많이 사가시더라고요.

있어 : 보통의 대학생은 학교 다닐 때 취미로 재밌는 일을 하다가 졸업하면 직장을 갖잖아요. 직장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안하셨나요?

무정 : 많이 했죠. 지금도 잘못된 길을 가고 있나 하는 흔들림을 겪습니다. 이걸로 평생 생업을 할 수가 있는가 하는 고민들도 당연히 들지만 일이 자연스럽게 되가는 것 같아요. 제가 주체적으로 선택을 한다기보다는 많은 경우에는 선택을 당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나침반이 끝없는 떨림으로 북쪽을 견지하듯이 그냥 술 쪽을 향해 불안한 떨림을 계속하면서 술 만들고 마시고 글 쓰고 하면서 돈 안 되는 짓은 골라서 하는 중에 있습니다.

있어 : 불안한 떨림 안에 앞으로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무정 : 계속 술을 만들고 마시고,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전통주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저 자신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싶습니다. 지금은 불안한 떨림을 받아들이고 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 길을 가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이 아니자나요. 술을 만드는 일도 그렇고,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고요. 언제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통주에 관한 글을 쓰고 싶어요. 술 한 병에도 술에 담긴 수많은 서사가 있거든요.

있어 : 전통주에 어떤 매력이 있나요?

무정: 저는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오랫동안 우리가 마셔왔던 술을 찾아보며 빚고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미세한 변화들과 그것들이 결국 하나의 완성된 술로 탄생하는 과정이 너무 매력적이에요. 전통적인 방법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있어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요?

무정 : 하던 일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무덤에 갈 때 안 해서 후회할 일이라면 그 일은 해야겠죠.

있어 : 끝으로 ‘무정양조’의 술은 어디서 살 수 있나요?

무정 : 지금은 rhanwjd@nate.com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끝-

인터뷰어 : 이무열
20여년 마케팅 경험으로 전환담론을 실험하는 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에서 지역, 문화, 생업을 주제로 일하고 있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공저), 『전환의 시대 마케팅을 혁신하다』, 『협동조합 마케팅기술』, 『돌봄의 시간들』(공저)등의 글을 쓰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 특히 욕망하는 이들을 추앙하며 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즐긴다. 무엇보다, 내일만큼 아름다운 오늘을 살고 있다. happyyeori@gmail.com  

사 진 : 유소영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사람의 흔적 없는 사진은 심심하다. 일상의 흔적을 담아 인물을 찍는 사진가. Soyoung7586@gmail.com

‘재미없이 일할 수 있어!? 시리즈는 전환스튜디오 와월당에서 간간히 발행하는 생업(生業)인터뷰입니다.

이무열

지역브랜딩 디자이너. (사)밝은마을_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책을 내고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며 곧 지역브랜딩학교 ‘윤슬’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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