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 : 강세기
새해가 밝았습니다. 핸드폰이 스마트해진 이후로는 예전처럼 새 다이어리를 장만하여 주소록을 옮겨 적는다든지, 벽에 새 달력을 걸며 중요한 일정들을 미리 넘겨본다든지 하는 일이 없어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조금은 줄어든 듯합니다. 그래도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며 품는 기대는 변함이 없어 늘 새해 아침이면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를 흥얼거리며 새로이 결심을 다지곤 합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뉴스나 SNS에 소개된 새해 결심 순위를 보니 다이어트, 체중관리, 운동과 같은 ‘건강 챙기기 결심’이 압도적 1위입니다. 2위는 재테크 · 저축하기 등의 ‘경제적 다짐’, 3위로는 자격증 · 어학 공부하기와 같은 ‘자기계발 목표’가 올라 있더군요. 그 밖에 금주, 금연, 채식 등과 같은 ‘건강한 일상 루틴 만들기’,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 보내기, 새로운 인맥을 만들 수 있는 모임 참여하기와 같은 ‘관계 형성과 개선을 위한 다짐’ 등이 새해 결심의 단골 항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새해 결심을 하셨는지요?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확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니 세상은 그렇다 치고 나 스스로부터 하룻밤에 달라지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급진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 마음은 너무나 조급하여 시간이라는 속도를 참아내지 못합니다. 사흘이나 지났는데도 달라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고생스럽고 피곤하게 하고 있는 지금의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새해 결심은 작심삼일이 되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새해를 맞아 이렇게 삼일마다 결심을 세웠다 허물기를 반복하며 동동거리는 동안 나무는 죽은 듯 잠든 듯 고요히 제 자리에 서 있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겨울 추위 속에서 아무 것도 없이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저 나무는 불과 두 달만 지나면 새로이 꽃을 피워내고 푸른 잎을 키워낼 것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땅 위에서 꼼짝 안고 서서 변화의 조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텅 빈 마른 가지를 가지고 나무는 어떻게 새로운 봄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나무는 자기의 시간을 잘 분별하여 때에 맞는 삶을 살아냅니다. 나무는 우리에게 ‘자기’의 시간을 분별하라고 조언합니다. 넓은 잎을 가진 참나무가 늘 푸르른 잎으로 사랑받는 소나무를 부러워하여 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다면 참나무는 다음해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얼어 죽거나 목말라 죽을 것입니다. 증산과 발산을 적게 하도록 표면적을 최소화한 가는 바늘 모양의 잎을 가진 소나무와 달리 넓은 잎을 가진 참나무는 겨울에 구하기도 어렵고 구하더라도 몸 안에서 얼어붙어 몸을 터뜨려버릴 물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뾰족한 바늘잎을 가진 소나무가 부드럽고 커다란 잎으로 인기가 많은 참나무를 부러워하여 넓은 잎을 달고 있다면 소나무도 겨울을 넘기지 못하겠지요.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듯이 소나무도 참나무도 다른 나무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소나무는 소나무로 참나무는 참나무로 자기의 삶을 삽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하며 ‘나의 삶’이 아닌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을 살아가느라 불행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무는 말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삶이나 다른 이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살라고요.

사진 제공 : 강세기
또 나무는 우리에게 자기의 ‘때’에 맞는 삶을 살라고 조언합니다. 자기의 시간을 사는 나무는 다른 이들의 시간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겨울 속에서도 자기의 삶을 살기에 따뜻한 온실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다른 초목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 첫 뿌리 내린 곳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살아가기에 자신이 난 자리를 탓하거나 처지를 불평하거나 남의 환경을 부러워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늘 속에서 햇빛을 찾아 어렵게 낸 가지가 바람에 부러질지라도, 많은 이의 주목을 끄는 화려한 꽃은 아닐지라도 오직 자신만이 피워낼 수 있는 자기의 꽃으로 열매를 맺으며 그저 나무는 자기의 장소에서 자기의 시간을 따라 자기의 속도로 살 뿐입니다.
폐품수집상의 아들로 태어나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교수가 된 강상중 교수는 불치의 신경증을 앓던 아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아픔을 겪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좌절과 슬픔에 잠겨 있을 때 한 순간 2만 명에 가까운 생명을 삼켜버린 동일본 대지진을 연이어 경험합니다. 지옥과도 같은 절망과 고통 속에서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한 그의 책 『살아야 하는 이유』(사계절, 201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는 좋은 과거를 축적해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는 것. 지금이 괴로워 견딜 수 없어도, 시시한 인생이라 생각되어도, 마침내 인생이 끝나는 1초 전까지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별히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특별히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지금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다는 것.” (191쪽)
나무는 겨울에 봄가뭄 걱정, 봄에 여름장마 걱정, 여름에 가을태풍 걱정, 가을에 겨울추위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반대로 봄이 되면 겨울을 이겨낸 자신을 자축하듯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봄에 피운 꽃에서 열매를 잉태하며, 가을이면 여름에 얻은 열매 속에서 익힌 씨앗을 뿌리고, 겨울이면 지난 계절 수고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휴식에 들어갑니다. 나무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오늘을 즐기며 삽니다. 나무는 말합니다. 욕심도 두려움도 내려놓고 오늘을 살라고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 살도 빼고, 돈도 많이 모으고, 자기 계발에도 원하는 성과를 이루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무의 조언을 따라 자기의 시간을 잘 분별하여 때에 맞는 삶을 잘 살아내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과거를 위해 아름다운 오늘을 쌓아보겠습니다.
나무의 삶에 빗대어 다시금 겸허한 마음으로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네요
인생철학이 담긴 글ᆢ감사히 담고 갑니다^^
우리는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하며 ‘나의 삶’이 아닌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을 살아가느라 불행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무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오늘을 즐기며 삽니다
마음에 와 닿는 말이네요
범진 오늘도 즐기며 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