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 조각모음] ⑩ 모꼬지 노래, 그리고 일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儒理) 이사금(尼師今)’에는 모꼬지와 노래가 주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길지 않은 그 기사를 되풀이해 읽다보면, 일에 관한 이야기, 특히 왕명에 따라 행한 여자의 고된 일에 관한 이야기가 보인다. 그 이야기들이 얽히면서 빚어낼 수 있는 다양한 상상과 추론을 펼쳐본다.

8월 한 가운데 벌어진 모꼬지

가배(嘉俳)1라는 낱말이 있다. 이 낱말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儒理) 이사금(尼師今)’2에 나온다. 원문 번역은 아래와 같다.3

“9년(서기 32) 봄, ① 6부의 이름을 고치고 성을 하사하였다. …… 또한 관직에 …… 17등급을 두었다. …… ② 임금은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두 편으로 나누고, 임금의 두 딸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려 편을 짜게 하였다. 이들 두 편은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새벽에 큰 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여 밤 열 시경에 끝냈다. 그들은 8월 15일이 되면 길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헤아려서,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에 사례하였다. 이때 노래와 춤과 여러 가지의 놀이를 하였는데, 이 행사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③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는 소리로 “회소, 회소!”라고 하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우아하여, 뒷날 사람들이 이 곡에 노랫말을 붙이고,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하였다.”4

②에 의하면, 아직 작은 나라였던 신라의 세 번째 임금이, 신라의 수도이기도 하고 작은 나라 신라 그 자체이기도 하였던 서라벌 사람들을 두 편으로 나누고, 가을 7월 16일에 길쌈(옷감 짜기)를 시작하게 해서, 8월 15일이 되면 생산량을 겨루고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에 사례하도록 하였다. 이때 노래와 춤과 여러 가지의 놀이를 하였는데, 이 행사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가배는 한자의 음을 빌어서 행사의 이름을 적은 것이다.

지금 가배는 음력 8월 15일로 ‘추석(秋夕)’이라고도 하고 ‘한가위’라고도 한다. 추석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이다. 음력 8월 15일은 달이 가장 밝은 보름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秋夕’이라는 한자에서 그런 연상이 바로 되지는 않는다. 중국에서 중추(仲秋) 혹은 월석(月夕)이라는 말이 한국에 오면서 합쳐져 추석이라는 말이 되었을 수도 있다.5 여하튼 한국에서의 추석은 달 가장, 밝은 보름날의 가을 밤이다.

회소곡은 단지 일의 고단함을 표현하는 노래였을까? 사진출처: arodsje

가배(嘉俳)는 ‘가배’라는 옛 우리말을 한자의 음을 사용하여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中央]이라는 말과 ‘애’[日]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배’라는 말은 ‘가운뎃날’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추정된다. 여기서 비롯된 한가위는 가배(嘉俳), 가위, 가윗날과 함께 추석을 일컫는 말이다. 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 또는 가을의 가운데를 의미한다. 한가위의 ‘한’은 ‘크다’라는 뜻이다. 즉 ‘한가위’는, ‘크다’는 말과 ‘가운데’라는 말과 ‘날’이라는 말을 합친 것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란 뜻이다. 그날은,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기도 하고, 보름이라 달 밝은 가을밤을 떠올리는 날이기도 하다.6 이런 추론이 맞다면 가배는 한가위이며, 이는 음력 8월 만월(滿月)이 뜨는 보름날 열리는 모꼬지로, 이를 굳이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는데, 양자 사이에는 종교적인 면에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실려 있는 고려시대의 월령체(月令禮) 속요 〈동동(動動)〉에도 가배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남아있다; “팔월 보름날은 가배(嘉俳)날이지만 님을 뫼시고 함께 지내면서 맞을 수 있다면야 오늘이 참 가배다울 텐데.”7 조선 후기 한양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는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8 이런 기록들을 보면, 가배는 한가위이며 이 말은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사용되었던 듯하다.9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儒理) 이사금(尼師今)’을 쓴 사람은 신생국가 신라에서 8월 한 가운데 벌어진 어떤 모꼬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기록한 것이다.

‘기억하라’일까 ‘모이세’일까 ‘아쉽도다’일까?

한가위에 대한 이두식 표현으로 가배를 접하고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회소곡(會蘇曲)에 대하여도 들어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위의 ③을 다시 보자; “이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는 소리로 “회소, 회소!”라고 하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우아하여, 뒷날 사람들이 이 곡에 노랫말을 붙이고,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하였다.” 이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儒理) 이사금(尼師今)’에서 가배에 관한 기사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기록이다. 여기에는, 회소라는 노랫말이 슬프고도 우아하다는 평가는 있지만, 정작 그것이 어떤 뜻인지 설명해 주는 바가 없다. 그리하여 이 뜻을 연구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들을 내놓았다.

㈀ “이 노래는 개인적·서정적인 내용이 주조를 이루는 가악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노래의 명칭인 ‘회소’에 대하여서는 ‘아소/아소서(知)’로 풀이하는 견해와 ‘모이소(集)’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다.”10

㈁ “그 의미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으나, 서글픈 심정을 표현한 감탄사로 추정된다. ‘會’를 훈차(訓借)라고 파악한다면 ‘모이소[會/集]’, ‘만나소/맛소[逢/遇]’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會’에 ‘알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고 ‘아소[知]’의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도 있으며11, 실망의 심정이 담긴 ‘아쉽다’, ‘아깝다’의 의미로 이해하여 ‘아(습)소[惜]’를 차자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1213

㈀과 ㈁을 종합하면, 회소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여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 각각을 구호화 할 수도 있다.

* ‘아소/아소서(知)’ → ‘기억하라’

* ‘모이소[會/集]’·‘만나소/맛소[逢/遇]’ → ‘모이세’

* ‘아(습)소[惜]’ → ‘아쉽도다’

한편 ㈀에서 이 노래가 개인적이라고 한 것은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였다”는 기사 내용에 주목한 설명이다. 왕이 모든 여성을 두 편으로 갈라서 옷감 짜기 경쟁을 시켰다면 그 뒷풀이에서 불린 노래는 집단적인 성격의 노래일 것 같은데, 기사에는 한 여자가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한 여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로 끝났을까? 아니면 진 편에 속하는 많은 혹은 모든 여자의 마음을 대변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어떤 사람은 앞의 의문 자체가 집단주의적 발상의 산물이라고 볼 듯하다.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는 소리로 노래하였음을 역사가 기록한 것은 개인의 각성 특히 여자의 각성이 시작된 것을 귀하게 여겨 후세에 전하기 위함이었을 수 있다. 이런 엇갈리는 해석을 회소의 의미에 대한 추정들과 연결시키면, 가배에서 한 여자가 회소곡을 부르는 그림에는 여러 가지 색을 입혀볼 수 있게 된다.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이어진 일

한편 ②에는,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매일 새벽부터 밤 열시 경까지, 두 편으로 나뉜 여자들이 옷감 짜는 일을 열심히 경쟁하였다고 적혀있다. 역사가는 신라에서 길쌈이 본격화되었음을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이런 기록을 했을 것이다. 내가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儒理) 이사금(尼師今)’를 읽을 때, 가장 먼저 주목했던 것은 길쌈이었다. 길쌈을 해서 옷감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벌거벗다시피 하고 다니던 사람들이나 짐승 가죽을 덮어쓰고 다니던 사람들이나 풀잎을 엮어 두르고 다니던 사람들은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시작되는 것은 역사에 기록될 만큼 중요한 사건 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리가 한 목소리로 하나의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무리 속 어느 한 사람 특히 여자가 홀로 노래를 불렀다. 하필 그는 길쌈 경쟁에서 진 편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 노래 속에는 한자의 음을 빌어 ‘회소’라고 기록하게 되었던 말이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기억하라’·‘모이세’·‘아쉽도다’ 등등 단일하지 않은 해석의 여지를 아직도 남기고 있다. 꼬박 열흘 동안,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경쟁적으로 옷감 짜서 많은 사람들이 옷을 입을 수 있게 하였건만, 경쟁에서 져서 이긴 편에게 잔치를 차려주는 수고까지 더 해야 했던 편에 속한 한 여자가 부른 노래 속에서 회소는 진 편의 노력도 ‘기억하라’는 의미였을 수 있다. 그게 아니고, 옷감을 경쟁적으로 짜는 일이 무척 어려웠지만 보람되었다는 생각에 그 보람을 ‘기억하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한편, 역사는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매일 새벽부터 밤 열 시경까지, 두 편으로 나뉜 여자들에게 옷감 짜는 경쟁이 요구되었다는 것 또한 기록한 것이 명백하다. 이런 점에 주목하면, ‘회소’는 여자만 강제 노동에 동원하는 세상을 뒤엎기 위해 ‘모이세’를 외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요컨대,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儒理) 이사금(尼師今)’에 보이는 가배와 회소곡에 관련된 이야기는, 옷감 짜기의 시작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여자가 홀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이야기이로 볼 수도 있고, 강도 높은 노동과 그것에 동원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여러 면을 생각해보면, 역사가가 왜 이런 식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기록을 남겼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간략한 기록의 이면을 탐구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궁금증의 해소와 탐구는, 지금 여기에서 당연하다거나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심층에 관하여 궁금증을 가지고 탐구하여 세계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여주는 힘을 기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역사 속의 모꼬지와 노래의 이면을 살펴보고 모꼬지와 노래에 가려졌던 힘겨운 여성 노동을 건져 올려 직면하고 난 후의 세계관은 그 이전의 세계관과는 깃털만큼이라도 달라져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가배(嘉俳)는 커피(coffee)가 아니지만, 커피를 연상시킨다. 19세기말 한때 커피를 ‘가배’라고 했기 때문이다. 1885년 커피를 처음 접한 조선 사대부 윤치호는 한자의 음을 빌려 커피를 가비(加菲)[coffee]와 가배(加琲)[café]로 적었다고 한다. 1898년 독립신문은 커피를 한글로 ‘카피차’라고 적었다고 한다. 1910년경 프랑스인 부래상(富來祥)[Plaisant]이 제공한 커피를 맛본 한양 사람들은 이 검은 색과 쓴 맛의 차를 ‘양(洋)탕(湯)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한국에서도 ‘고히(コーヒー/Kōhī)’라는 일본식 명칭이 점차 통용되었다고 한다. 커피라는 이름이 한국에서 통용된 것은, 광복 후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한때 한국에서 커피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 코피는 고히가 사라지고 커피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잠시 사용된 말인 듯하다. 허동현, 〈[허동현의 모던타임스] [34] 쓰디쓴 ‘양탕국’이 ‘국민 음료’ 되다〉, 《조선일보》, 2012-11-29 참조

  2. [네이버 지식백과] ‘유리 이사금 [儒理尼師今]’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에 따르면, 재위기간은 AD 24년 ~ 57년이다.

  3. 번호 ①·②·③은, 원문에는 없었으나, 글쓰는 사람이 붙인 것이다. 아래는 ②·③의 원문이다. “王旣定六部 中分爲二 使王女二人 各率部內女子 分朋造黨 自秋七月旣望 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 乙夜而罷 至八月十五日 考其功之多小 負者置酒食 以謝勝者 於是歌舞百戱皆作 謂之嘉俳 是時 負家一女子 起舞嘆曰 會蘇 會蘇 其音哀雅 後人因其聲而作歌 名會蘇曲”

  4. [네이버 지식백과] ‘유리 이사금 [儒理尼師今]’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5. 음력 8월 15일을 추석이나 중추절이라고 부르는 것은 근본이 분명하지 않은 말이라는 주장이 있다; “중국에서는 가을을 셋으로 나눠 음력 7월을 맹추(孟秋), 8월을 중추(仲秋), 9월을 계추(季秋)라고 불렀는데 그에 따라 8월 보름을 중추라 했다. 그래서 우리도 예전 ‘중추절’이라 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추석’이라는 말은 5세기 송나라 학자 배인의 『사기집해(史記集解)』에 나온 “추석월(秋夕月)”이란 말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추석월”은 천자가 가을 저녁에 달에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명절과 잘 맞지 않는 말이란 생각이다. 더구나 중국 사람들조차 이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한다.” 김영조, 〈‘추석’보다는 신라 때부터 써온 ‘한가위’가 좋아〉, 《우리문화신문》, 2023-09-10

  6. 정혜인, 〈추석 ‘한가위’로 불리는 이유는? ‘한가위’ 무슨 뜻?〉, 《아주경제》, 2019-09-11 참조

  7.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가배’, [집필:김명자]

  8. 김영조, 〈‘추석’보다는 신라 때부터 써온 ‘한가위’가 좋아〉, 《우리문화신문》, 2023-09-10

  9. “가배의 어원에 대한 또 다른 설도 있다. 신라시대 길쌈대회에서, 진 편은 이긴 편에게 잔치를 베풀게 되므로 ‘갚는다’는 뜻에서 나왔을 것으로 유추하기도 한다. 진 편이 이긴 편에 베푸는 잔치나 놀이로서 갚는다는 뜻에서 ‘갑다(보=報, 가=價)’의 전성명사(轉成名詞)인 ‘가뵈’가 ‘가위’로 된 것이라는 설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가배’, [집필:김명자]

  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회소곡(會蘇曲)’, [집필: 김승찬]

  11. 梁柱東, 『增訂 古歌硏究』, 一潮閣, 1965, 19쪽 참조

  12. 徐在克, 〈嘉俳攷〉, 『大邱敎大論文集(人文科學篇)』, 1965, 57~58쪽 참조

  13.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가배의 유래’ 각주 003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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