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과 건강] ④ 이상화된 건강을 추구하는 과정들: 신성장동력으로서 헬스케어 산업

헬스케어 산업은 '완전히 안녕한 상태'라는 이상적인 건강 개념과 신자유주의적 자기관리 담론 속에서 성장해왔다. 과거에는 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제약/의료기기 산업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일상적인 건강관리와 관련된 '라이프케어' 영역까지 확장되며 국가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 성장을 위한 정책 지원, 의료비 증가에 대한 대응, 그리고 끊임없이 더 나은 건강을 추구하는 사회적 욕망과 맞물려 계속 가속화되고 있다.

WHO가 정의하는 것처럼 건강을 ‘완전히 안녕한 상태’로 간주할 때, 건강은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자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어떤 목표점이 된다. 질병이 있더라도, 완전하지 않더라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큰 무리가 없지만, 어떤 완전한 상태에 약간이라도 부족함이 있으면 그건 개선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실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적인 상태를 목표로 두는 것에는 성장주의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자기관리 담론 속에서 건강은 개인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과정에서 헬스케어 산업은 건강관리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고, 건강관리 담론의 확산과 더불어 헬스케어 산업이 성장하였다.

신성장동력으로서 헬스케어 산업

현실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적인 상태를 목표로 두는 것에는 성장주의가 내재되어 있다. 사진출처 : digitale.de

헬스케어 산업에는 질병의 치료, 예방, 건강관리, 재활 등 전 영역에 걸친 의료서비스와 제약산업, 의료기기산업, 디지털 헬스케어가 모두 포함된다. 더 나아가서는 실버세대 안부/복약/긴급출동, 혈압/혈당/체중/운동/식이관리, IoT 활용 영유아 미세먼지/화학물질 관리, 웨딩/여행/상조, 운동/식사제공, 간병/요양/상조/의료 안내서비스 등 일상의 영역에서의 서비스를 포함하는 라이프케어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1

건강관리를 명분 삼아 성장한 헬스케어 산업은 어느새 국가의 신성장동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처음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건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을 때는 보건의료의 발전을 위한 제약산업과 의료기기산업이 중심이 되었다. 1995년 이전 자료를 찾기 어렵지만, 1995년 보건복지부 업무계획에서부터 보건산업의 육성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여겨졌다.2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산업정책으로서 헬스케어가 다루어지기 시작했는데,3 IT가 발달하는 흐름속에서 IT와 헬스케어를 결합하여 디지털헬스, e헬스를 육성하고자 하는 계획도 2006년부터 수립되었다.4 그 시기부터 신산업, 신성장동력의 목록에 바이오헬스는 주요 영역으로 늘 포함되어 있었다.

바이오헬스 영역에서는 꾸준한 시장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3년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규모는 13조 5,381억 달러였으며, 그 중 의료서비스가 10조 7,639억 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5 2030년에는 시장규모가 19조 4,268억 달러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국내 바이오헬스 시장규모는 2023년 2,159억 달러로, 시장점유율 1.6%를 차지했으며, 세계에서는 1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6 2019년에 비해 2023년의 바이오헬스 시장규모는 연평균 5.8% 성장하여,7 같은 기간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인 4.6%를 보였던 2021년 한국의 경제성장률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심지어 경제성장률이 –0.7%였던 2020년에 바이오헬스 분야는 무려 11%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즉, 저성장 시대에 국가가 신성장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만큼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헬스케어 산업을 추동하는 동력들

헬스케어 산업은 정부의 기술개발 지원정책과 산업육성 정책에 힘입어 성장하였다. 그리고 정부가 헬스케어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주요 논거는 1)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기 위함, 2) 건강과 관련된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 3) 보건의료의 발전을 위함 등이다. 특히 아이리스 보로위(Iris Borowy)와 장 루이 아이론(Jean-Louis Aillon)도 제시하고, 전 청와대 공무원이 이야기하듯 의료비의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필수적이다.910 즉, 보건의료의 발전 자체가 경제성장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의료의 상업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2000년대 이래로 있어왔으나, 의료상업화가 막아지지 않고 더 심해지기만 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보건의료의 발전과 헬스케어 산업 성장의 공생관계를 심화시켰던 것은 보건의료가 내재하고 있는 건강에 대한 관점이다. 건강에 대한 여러 관점들 중 보건의료, 특히 생의학(Biomedicine)은 건강을 ‘질병이 없는 상태’로 간주한다.1112 건강을 이렇게 바라볼 때, 모든 질병들은 치료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질병이 아니었던 것을 질병으로 간주하게 되는 병리화 현상과 맞물리면서 치료의 대상이 되는 ‘질병’은 무한히 증식하고, 보건의료 발전과 보건산업 육성의 주요 기반이 된다.

질병이 아니었던 것을 질병으로 간주하게 되는 병리화 현상과 맞물리면서 치료의 대상이 되는 ‘질병’은 무한히 증식하고, 보건의료 발전과 보건산업 육성의 주요 기반이 된다. 사진출처 : cottonbro studio

헬스케어 산업은 보건의료를 넘어 일상적 건강관리, 운동과 식이, 간병과 요양, 건강기능식품과 의료보조기기 등과 관련된 산업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이런 영역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을 향상하고 삶을 보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영역들은 전통적으로는 비시장 영역에서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지던 일들이거나, 혹은 그 영역에서의 전문성을 가진 개인에게 의존하던 일들이다. 또한, 전통적인 보건의료의 영역들은 아니었지만 어느 새 시장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관련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건강과 관련된 일상적인 일들이 비시장 영역에서 이루어질 때와 시장 영역에서 상품으로 거래될 때의 차이는 한계를 받아들이느냐, 넘어서고자 하느냐 하는 부분일 것이다. 비의료적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은 질병의 치료를 넘어선 건강향상과 건강관리 담론의 확산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건강관리 담론은 건강에 대한 규범주의적 접근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는 즉 스스로의 삶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1314 이에 따라 건강에서 사회 환경과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예방과 건강증진 담론의 확장은 사회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주거, 복지, 녹지조성, 화학물질 규제 등 사회정책의 발전 속도와 규모보다 이와 관련된 시장의 성장 속도와 규모가 더 컸다. 건강관리 담론의 확산과 시장의 성장이 같이 맞물리면서 건강은 끊임없이 더 향상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비의료적 헬스케어 산업은 더 나은 건강을 향한 욕망을 추동하였고, 건강관리 담론의 확산은 건강하지 않은 몸에 대한 불안을 야기하였다.

더 나은 건강을 향한 과정으로서 헬스케어 산업

이처럼 더 나은 건강을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 더 많은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지향, 보건의료 발전의 필요성 등은 헬스케어 산업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주요 논거가 되었다. 그리고 보건의료와 경제성장은 공생관계에 있고, 건강추구와 보건의료 발전을 명분으로 삼아 성장하는 헬스케어 산업은 다시금 신성장동력이 된다.

물론, 산업 발전이 아닌 방식으로 건강을 추구하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의료상업화 비판의 대안으로 공공의료가 제시되고 있고, 건강관리의 상업화의 대안으로 사회정책의 수립과 실행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와 건강관리를 모두 공공정책으로 지원하더라도 질병의 완전한 치료와 건강의 끝없는 향상을 추구하는 담론이 존재하는 이상은 재정, 기술발전 등 자원의 투입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여전히 경제 성장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즉, 이상화된 건강 지향이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을 추동하고 있으며, 그런 지향 자체에도 성장주의가 내재되어 있다. 적정 건강, 적정 건강관리, 적정 보건의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1. 이행신 & 김우선. (2018). 2018 라이프케어산업 정책수요도출 및 통계기반 구축. 보건산업진흥원.

  2. 보건복지부. (1995). 보건복지백서.

  3. 산업자원부. (2005). 2006년도 업무계획.

  4. 산업자원부. (2006). 2006년도 업무계획.

  5. 보건산업진흥원 & 보건산업통계. (2025). 2025 글로벌 바이오헬스 시장규모(2019~2030).

  6. 보건산업진흥원 & 보건산업통계. (2025). 2025 글로벌 바이오헬스 시장규모(2019~2030).

  7. 보건산업진흥원 & 보건산업통계. (2025). 2025 글로벌 바이오헬스 시장규모(2019~2030).

  8. 지표누리 국가발전지표. (2025.08.25.). 경제성장률.

  9. Borowy, I. & Aillon, J., (2017). Sustainable health and degrowth: Health, health care and society beyond the growth paradigm. Social Theory & Health, 15, 346-368.

  10. 이진석. (2015.07.31.). 의료개혁의 이상과 현실… 이재명 정부를 위한 변명. 오마이뉴스

  11. Boorse, C. (1975). On the distinction between disease and illness. Philosophy & public affairs, 49-68.

  12. Boorse, C. (1977). Health as a theoretical concept. Philosophy of science, 44(4), 542-573.

  13. Nordenfelt, L. Y. (1995). On the nature of health: An action-theoretic approach. Springer Science & Business Media.

  14. Nordenfelt, L. (2007). The concepts of health and illness revisited. Medicine, Health Care and Philosophy, 10, 5-10.

이 원고는 2023년 8월 30일에 제 9차 국제 탈성장 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도연

생태건강돌봄연구소 소장. 보건학 박사, 탈성장 석사과정 중. 건강돌봄의 생태적 전환에 대해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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