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봄기운 가득한 3월입니다. 하지만 학창시절 이맘때에 대한 기억은 회색빛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 모르는 친구들과 어설프게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분명 같은 학년, 같은 반 친구들이지만 성적이나 완력으로 정해지는 서열이 아직 모호한 가운데 서로를 비교하며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눈치를 보는 어색한 시간이었습니다. 봄 햇살은 따스하지만 겨우내 식어 있던 학교 건물에는 차가운 겨울 공기가 가득 남아있어 무척이나 추웠습니다. 겉으로만 추운 것이 아니라 어색한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추위라고 할까요. 보통 이 추위는 4월 학교 담장에 라일락이 향기와 함께 피어날 때, 어느 해에는 5월 운동장 수돗가에 등꽃이 보라색 포도송이처럼 늘어질 때쯤에나 풀렸습니다. 여러분의 학창시절 3월에 대한 기억은 어떠신지요?

인공지능이다 뭐다하여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듯하지만 지금도 새 학기 3월의 교실에는 예전의 저처럼 추위를 느끼는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전히 학교는 점수로 줄을 세우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학교만 탓할 수는 없지요. 우리 사회는 남과 비교하여 서열을 정하고 줄을 세우는 데 너무나 열심입니다. 어디 회사 직원들이 성과급을 얼마나 받았는지가 일간지와 경제신문지의 메인 기사가 되는 사회가 우리 말고 또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누구 아들이 어느 대학을 갔는지, 누가 얼마를 주고 어디 아파트를 샀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 무슨 성형수술을 했는지가 언론사들의 주요 기사로 수두룩하게 올라오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이 사회의 천박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돈, 외모, 외형에서 밀리지 않는 경쟁력을 학교에서부터 만들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방에서 꽃소식이 들려오는 3월입니다. 봄이 먼저 도착한 따뜻한 남쪽은 물론이고 우리 머릿속에 추운 곳으로 자리 잡고 있는 동쪽에서도 온난한 바다의 영향을 받는 곳에선 이른 봄꽃들이 많이 피어났습니다. 아직 물기 없는 칙칙한 갈색과 회색빛으로 삭막해 보이는 산하를 조금씩 촉촉하게 물들이고 있는 봄꽃들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얻습니다. 흰색, 분홍색, 붉은색의 매화, 노란 뭉게구름 같은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복숭아꽃, 벚꽃, 목련 등 온갖 봄꽃나무들이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어우러져 펼치는 장엄하고 조화롭고 아름다운 봄의 축제 가운데로 우리들을 초대할 것입니다. 이 축제의 주인공들은 아무도 서로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꽃의 숫자나 크기나 색깔이나 모양으로 서열을 정하지도 않습니다. 아, 그런데 이들이 베푸는 축제에 우리만 초대받은 건 아닙니다. 겨우내 마른 열매로 굶주림만 면하던 박새, 동고비, 곤줄박이, 동박새, 직박구리 같은 새들과 이제 막 기지개를 펼친 꿀벌, 나비, 딱정벌레 같은 곤충들이 먼저 초대받았습니다. 사실 봄꽃나무들이 우리들처럼 남과 비교하고 서열을 정하고 줄을 세웠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초대받지 못했을 겁니다. 수만 년 동안 봄꽃의 수정을 돕고 나무와 이로운 관계를 맺어온 새와 곤충들과 달리, 우리들은 나무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꽃을 따거나 가지를 꺾거나 하여 주로 해를 끼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품이 넓은 나무는 매년 봄의 축제에 한 번도 우리를 초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3월, 봄의 축제에서는 나를 초대해준 봄꽃나무와 오랫동안 눈을 맞추려고 합니다. 예년처럼 건성으로 스쳐 지나가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차분하고 꼼꼼하게 꽃잎 한장 한장의 빛깔과 모양과 향을 살펴보고 느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남과 비교할 것 없는 나만의 빛깔과 모양과 향은 무엇인지, 나만이 피울 수 있는 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열매를 맺고자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말없이 말하는 나무와 함께 하는 깊은 시간을 통해 더 이상 회색빛 같은 3월이 아닌 장엄하고 조화롭고 아름답고 찬란한 빛깔의 3월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시도를 아이들과 함께 해보려 합니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기만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을 가진 이들이니까요. 그리고 어른들보다 훨씬 더 나무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