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목차〉 1. 서문 : Z세대가 역사를 만들다 GEN Z MAKES HISTORY 2. Z세대의 반란 — 사회정의의 기쁨을 위해 _by 타소스 타르기스 3. 스리랑카 청년들: 너희가 시작한 일을 보라! _by 조지 카치아피카스 4. 세계의 주목을 받는 방글라데시 _by 조지 카치아피카스 5. 인도네시아 계급 투쟁 관찰 _by 폴 오배니언 6. 네팔: Z세대여, 에로스 효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_by 조지 카치아피카스 7. 에로스 효과 _by 조지 카치아피카스 8. 모로코 Z세대:지나치게 인본주의적, 지나치게 인간적인 – 권위주의 국가 대 거리 운동_by 마티 몬지브 9. Z세대의 뿌리와 토대: 상식에서 정동성으로 _by 알레한드라 핀토 소피아 10. 가자 학살에 맞선 캠퍼스 점거: 반복되는 역사 _by 조지 카치아피카스 11. 도널드 트럼프, 기업 귀족층, 그리고 세계의 이스라엘화 _by 조지 카치아피카스 12. 후기: 타나토스의 효과 _ by 폴 메서스미스-글래빈 |
Z세대의 반란 — 사회정의의 기쁨을 위해
우리는 위기가 일상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산티아고에서 자카르타까지, 아테네에서 카트만두까지, 파리에서 오클랜드까지, 새로운 세대들은 거리에서 바리케이드를 쌓고 경찰과 맞서 싸운다. 그들의 요구가 충족되리라 기대해서도, 시위나 개혁을 통해 삶이 나아지리라 희망해서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삶이 점점 더 견딜 수 없게 변해가고 있다는 점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빈곤, 실업과 불안정한 일자리, 정치적·사법적 부패, 국가 탄압과 경찰 살인, 주택 및 에너지 위기, 환경 파괴와 기후 재앙, 무분별한 이윤 추구와 모든 생필품 가격 상승, 희망과 전망의 부재, 생존을 위한 일상의 불안과 슬픔, 고통, 이 모든 것이 수십 억 사람이 경험하는 글로벌 사회 조건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젊은 세대—소위 Z세대—는 자본주의를 ‘기회의 체계’ 가 아닌 배제와 소진, 삶의 가치 하락을 초래하는 메커니즘으로 경험한다.
젊은이의 반란은 지역적 현상이 아니다. 이는 소수에 의한 부의 집중, 미래 없는 소비자로 전락한 인간, ‘개발’이라는 이름의 자연 약탈이라는 착취 구조 그 자체에서 비롯된 세계적 사건이다. 보편적 지배 형태로서 자본주의는 또한 보편적 분노의 경험을 생산한다. 이 공통된 경험에서 봉기의 새로운 주체성이 탄생한다. Z세대—세계적 프롤레타리아트, 주변화되고 미래 없는 존재이면서도 상상력과 유머, 추진력, 삶과 정의, 평등,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존재들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당, 의회, 기술 관료들의 ‘진지한 정치’라는 전통적 정치는 점점 더 허 술하고 부적절하며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장 폴 사르트르가 말했듯, 우리는 에스프리 드 세리우스(esprit de sérieux)에 맞선다. 즉 ‘진지함의 정신’으로 위장한, 가능한 것의 세계적 독점 이라는 그 특정한 지배 형태에 맞선다.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이익을 외부적이고 초월 적이며 불변의 사실로 강요한다. 마치 그들의 원칙이 절대적 기술관료주의의 초월적 영역에 영원히 새겨진 것처럼 말이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이렇게 썼다. “진지한 인간은 가치라는 안락한 물질적 지지에 의지해 산다. 그는 사물을 기준으로 자신을 정의하며 의무를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는 “침묵의 명령들”—시스템 자체의 지시에 불과한 명령들—에 대한 수동적 복종을 선택함으로써 자유의 불안을 회피하는 삶이다.
새로운 세대는 이 강요된 진지함의 정신을 거부하며, 아이러니와 예술, 창조, 반란을 통해 이를 해체한다. ‘진지한 정치’가 국가와 시장의 구조에 대한 복종을 요구할 때, Z세대는 거부 와 철수, 방해, 냉소, 창조적 불복종, 군대와 경찰 세력과의 대결로 응답한다.
“진지한 정치”의 종말
“진지한 정치”는 자본주의가 정당성의 환상을 재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는 제도가 개혁될 수 있다는 신화, “성장”과 경제 지표를 통해 빈곤이 해결될 수 있다는 신화, 국가 폭력이 단지 필요한 “예외”에 불과하다는 신화를 유지한다. 이는 재앙을 정상화하는 정치다.
우리 세대는 더 이상 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정부, 정당, 기관, 기업, 국제기구— 모두 “진지함”이라는 이름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진지함은 불평등, 전쟁, 생태계 붕 괴, 병적인 소비, 집단적 정신 질환을 양산하는 기존 질서를 방어하는 것에 불과하다.
Z세대는 ‘진지한 담론’이 단순히 권력의 수사임을 이해한다. ‘책임감 있게’, ‘현실적으로’, ‘제도적으로’ 말하는 것은 그러한 언어가 빈곤과 폭력, 복종을 강요할 때 아무 의미가 없다. 체제의 현실주의는 사실 가장 위험한 환상이다. 지구가 붕괴하고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환상이다.
이러한 진지함에 맞서 Z세대는 역전을 제안한다. 아이러니, 집단성, 반항, 창조를 위한 정치. 위계도, 권력의 의식도 없는 정치. 비정치적 무관심이 아닌, 돌봄과 상호부조, 자조적 조직화를 통한 일상의 불복종을 위한 정치.
Z세대의 반란: 평행 위기의 세계 — 글로벌 갈등의 현장
2010년대 후반부터 지구 전역에 지하 저항 리듬이 고동쳐왔다. 단일한 통일 운동이 아닌, 사회 분노의 급진적 폭발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소외 계층인 젊은이 들이 빈곤, 부패, 국가 폭력에 맞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봉기들은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 경제적 질식, 사회적 불의, 정치적 기만의 조건 아래서 탄생하며, 정당에 의해 주도되지 않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된다. 비록 종종 일시적으로 패배하지만, 자유와 집단적 힘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남기며, 이는 나중에, 다른 곳에서, 동일한 이유로 다시 폭발한다.
칠레 2019: 세계적 서막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은 수십 년 만에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봉기를 촉발했다. “30페소 가 문제가 아니다, 30년이 문제다”라는 구호는 불평등과 신자유주의적 파괴에 대한 저항의 외침이 되었다. 빈민가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고, 학생과 노동자가 연대했으며, 정부는 군대와 고 문으로 대응했다. 잔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헌법 개정 절차를 이끌어냈다. 비록 새 헌법이 후에 거부되긴 했지만 말이다. 칠레는 두려움 없는 세대가 독재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강요된 침묵을 깨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이지리아 2020: 경찰 폭력에 대한 분노
#EndSARS 운동은 고문과 살인으로 악명 높은 경찰 부대에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으나, 곧 부패와 실업에 맞선 대규모 봉기로 번졌다. 수천 명이 라고스와 아부자를 가득 메우며 분노를 자발적 조직화로 전환했다. 국가 탄압은 레키 통행료 징수소 학살로 정점을 찍었다. 진압되었 음에도 #EndSARS는 청년 저항의 세계적 상징이자 새로운, 구속받지 않는 나이지리아 세대의 탄생을 알렸다.
미국 2020:‘소수자’가 사회적 다수가 될 때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는 미국 역사상 최대 사회운동인 블랙 라이브스 매터 (Black Lives Matter, BLM) 봉기를 촉발했다. 수백만 명이 경찰 폭력과 체계적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미국 의 자유주의적 이상과 불평등·착취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냈다. 선거와 비정부기구(NGO)를 통한 부분적 흡수에도 불구하고, BLM은 한 세대의 정치 언어, 시위 조직 방식, 집단적 인식에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레바논 2019-2021: 환상의 붕괴
경제 붕괴, 부패, 세금 인상은 “모두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외침을 촉발하며 지배 계급에 대한 완전한 불신을 드러냈다. 베이루트 항구 폭발은 치명적인 국가의 무책임함을 폭로했다. 탄압, 이주, 이스라엘 공습에도 불구하고 레바논 청년들은 국가를 둘러싼 모든 권력 엘리트의 도덕적 파산을 폭로했다.
홍콩 2019-2020: 초강대국과의 싸움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 반대 시위로 시작된 운동은 자유와 존엄을 위한 대규모 청년 봉기로 발전했다. 직접 행동과 수평적 조직화에 고무된 시위대는 베이징의 통제와 신자유주의 질서에 맞섰다. 세계적 연대에도 불구하고 봉기는 진압되었고, 권위주의적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구조 내에서의 해방 한계가 드러났다.
이란 2022:최전선의 여성들
“도덕 경찰”에 의한 마흐사 아미니 살해 사건 이후, 이란 청년들은 “여성, 생명, 자유”라는 구호 아래 일어섰다. 이는 성별 억압에 대한 반란일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국가 통제와 폭력에 대한 반란이었다. 처형과 체포에도 불구하고 공포는 깨졌고, 중동에서 페미니스트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인 상상력이 탄생했다.
스리랑카 2022: 발전 신화의 종말
경제 붕괴, 기아, 연료 부족이 시민들—대부분 청년—을 대통령궁 점거로 몰아넣었다. “민중 혁명”은 라자팍사 가문을 축출했으나 권력은 곧 재편되었다. 스리랑카는 수평적 자치 구조 없이는 승리가 동일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카타르시스와 일시적 안도감으로 빠르게 전락함 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2023: 불안정 계층의 사회적 폭발
연금 개혁이 촉매였으나, 진정한 원인은 소진이었다—노동이 더 이상 존엄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 청년, 노동자, 학생들이 거리를 메운 가운데, 나헬 메르주크 살해 사건 이후 교외에서 발생한 폭동은 프랑스 공화국의 인종적 균열선을 드러냈다. 부분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는 사회적 분노와 혁명적 유산이 맞부딪히는 핵심 장소로 남아있다.
인도네시아 2020-2025:미래 없는 노동

2020년 ‘옴니버스 법’은 노동 규제 완화와 ‘투자’라는 명목으로 환경 파괴를 초래하며 학생과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경찰과의 충돌은 자연과 인간 생명을 모두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의 실체를 드러냈다. 탄압에도 불구하고 생태·노동 운동의 새로운 수평적 네트워크가 등장해 환경 보호와 사회적 자결권을 연결시켰다.
2025년 8월, 자카르타, 수라바야, 발리 전역에서 물가 상승, 실업, 부패에 맞선 대규모 시위 가 재점화되었다. 학생과 노동자들은 대학과 공공장소를 점거하며 “빚 없는 삶”과 “존엄한 노 동”을 요구했다. 이 봉기는 반자본주의와 생태를 동일한 투쟁으로 인식하는 동남아시아 세대 의 등장을 확인시켜 주었다.
케냐 2024:재정 약탈에 대한 분노
케냐 청년들은 급증하는 세금과 생활비에 맞서 거리로 나섰다. 나이로비를 중심으로 한 시위는 빈곤, 실업, 엘리트 부패 사이의 연관성을 드러냈다. 정부가 세금법안을 철회했지만 수십 명이 사망했다. 케냐는 아프리카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조차 절망에 빠진 청년들의 압박을 견딜 수 없음을 증명했다.
페루 2022-2025:정치의 재창조
교사 출신 대통령 페드로 카스티요의 축출은 안데스 고원부터 리마까지 반란의 물결을 일으켰다. 농민, 원주민 공동체, 청년들은 ‘의회 쿠데타’라 규정한 사건에 맞서 새로운 헌법 제정 의회를 요구하며 단결했다. 탄압으로 100명 이상이 사망했지만, 자발적 연대 네트워크와 지역 의회는 성장했다.
2025년이 되자 식량 위기와 에너지 민영화가 대규모 시위를 재점화했다. 시위로 시작된 움 직임은 가난 속에서 자랐지만 운명론에 굴복하지 않는 Z세대가 주도하는 거대한 반국가 봉기 로 변모했다. 페루의 반란은 아래로부터의 정치 재창조를 보여준다. 자기 조직화와 상호 원조 에 기반한 공동체적 자치의 형태다.
그리스 2023:민영화와 부패에 대한 분노
57명의 젊은이를 죽인 템피 열차 참사는 국가와 기업 권력의 치명적 부패를 드러냈다. 민영 화된 철도 붕괴는 신자유주의 효율성 신화를 무너뜨렸다.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사고 가 아니라 살인이다”라고 외쳤다. 비록 짧았지만, 이 봉기는 2015년 패배 이후 무관심에 빠진 사회에서 Z세대의 정치적 귀환을 알렸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자와 극우 정치인들의 연합은 폭력, 사법적 은폐, 재벌 통제를 통해 계속해서 지배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2024-2025: 반항적 빈곤의 존엄성
폭발은 2024년 쌀, 식용유, 연료, 임대료 등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며 수백만 명을 절망으로 내몰면서 시작되었다. 세계적 의류 다국적 기업을 위해 굶주림 수준의 임금으로, 보호나 존엄 성 없이 일하며 자란 세대는 궁극적 불의를 마주했다. 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생산하는 이들 이 자신의 나라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초기 평화적 시위는 다카와 치타공 공장 밖에서 경찰이 학생과 노동자를 공격하면서 대규모 충돌로 번졌다. 존엄성에 대한 요구는 부 패, 권위주의 통치, 다국적 기업의 착취에 맞선 자유 요구와 합쳐졌다.
2025년이 되자 의류 파업은 공개적 반란으로 번졌고, 학생과 여성 노동자들이 조직 및 상 호 지원 위원회를 구성했다. 국가가 살인과 체포로 대응했음에도 이 봉기는 세계 자본주의의 깊은 균열을 드러냈다. 방글라데시의 Z세대는 자선이나 개혁이 아닌, 그들의 빈곤 위에 세워 진 체제 자체의 폐지를 요구한다.
네팔 2025:팬데믹 이후 빈곤의 폭발
2025년, 네팔의 Z세대는 카트만두 거리를 가득 메웠다. 처음에는 소셜미디어 금지령에 항의하다가, 인플레이션과 부패, 실업에 분노를 터뜨렸다. 시위대는 글로벌 금융기관에 대한 의존과 청년들의 해외 대이동을 규탄했다. 폭력적 충돌이 이어졌고, 정부가 개혁을 약속했음에도 일상적 고통은 지속되었다. 청년 주도 봉기는 정부를 무너뜨렸으며, 이는 전 세계적 절망의 패턴을 드러냈다. 직업이 아닌 생존권을 요구하는 세대의 외침이었다.
세르비아 2024-2025: 청년과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의 균열
노비사드 기차역 붕괴 사고로 16명이 사망한 후 학생 반란이 터져 나왔다. 이 사고는 국가 부패와 정치인-기업인 유착을 드러냈다. 청년들은 정의, 사회적 평등, 무료 교육을 요구했다. 정권은 유지되었지만, 이 봉기는 동유럽 청년과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사이의 갈라진 틈이 커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분열은 지역 전체로 깊어질 운명이었다.
팔레스타인 학살 반대 전지구적 운동(2023-2025): 반란으로서 연대
2023년 가자 학살 이후 테헤란에서 뉴욕, 나이로비에서 상파울루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 시위 물결이 일어났다. 수백만 명이 서방의 방조 아래 이스라엘이 자행한 학살을 규탄했다. 학생들은 대학을 점거했고, 노동자들은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기업들을 보이콧했으며, 예술가 와 학자들은 ‘중립성’의 의미를 의문시했다.
이 봉기는 비록 분산적이었지만, 세계적 상상을 산산조각 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서양 이 공개적으로 식민지 야만의 주체로 인식된 것이다. 이 운동은 연대를 넘어선 것이었다. 진실과 삶이 권력과 이윤과 충돌하는 세계 자본주의의 더 깊은 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탄압과 체포, 검열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적 저항의 불꽃은 새로운 형태의 국제주의—학살과 인종주의, 제국주의적 오만에 맞서는 존엄의 정치—에 계속 영감을 주고 있다.
불길이 지나간 뒤 남은 것은?
지난 5년간 대륙을 가로지른 봉기들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분노는 어떻게 지속적인 자유가 될 수 있는가?
대부분의 투쟁은 광범위한 수평적 구조와 급진적 변화를 위한 혁명적 프로그램 없이는 국가 와 자본이 재빨리 통제권을 되찾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칠레에서 스리랑카까지, 라고스에서 파리까지, 권력자들은 적응하고 개혁하며 약속하지만 결국 일상적 폭력을 복원한다. “진지함” 이 다시 자리 잡는다. 99% 대중은 혼란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미성숙함과 파괴 행위, “무책임 함”으로 비난받는다. 마치 사회가 영원히 부유한 아이들에게 통치당해야 하는 유치원인 양 말 이다. 권력은 새로운 얼굴, 새로운 정당, 새로운 위협, 더 많은 경찰과 함께 돌아온다. 다시 한번 “진지한” 정치 질서가 가능한 것의 폭정—1%의 경제적 이익을 강요하며 돌아온다.
그러나 모든 불꽃은 역사의 피부에 흔적을 남긴다. 청년들의 반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 은 저항의 새로운 윤리로, 연대의 네트워크와 자발적 조직, 자유주의 문화로, 우리가 거리와 바리케이드 뒤에서 살았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의 기억으로 변모한다. Z세대는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주인 없이 살기를 원할 뿐이다. 그리고 반란이 사그라드는 듯 보일 때조차, 그 흐름은 지하에서 계속된다. 다음 폭발을 준비하며.
최근 수십 년을 돌아보면 동일한 원인이 유사한 폭발을 반복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봉기는 공유된 전지구적 위기의 지역적 표현이다. 자본주의가 전지구적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유사한 저항을 낳는다. 청년들은 불공정한 체제에서 ‘일부 몫’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체제의 종말을 요구한다. 그들은 시장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관리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서 시장 자체의 제거를 위해 싸운다. 지구촌 Z세대 봉기를 하나로 묶는 것은 정당 이념이 아니라 억압의 공유된 경험이다. 이 차이 속의 통일성은 들뢰즈와 가 타리의 ‘유목적 전쟁 기계’를 떠올리게 한다. 배제된 대중들, 중심도 계층도 없지만 리듬과 창 의성, 속도로 가득 찬 존재들을. 이들은 “전쟁 기계는 국가 외부에 존재하며, 국가를 해체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썼다. 새로운 봉기들은 정확히 이런 방식으로 기능한다. 일시적인 자율지대 를 창출하고, 정상성의 체제를 깨뜨리며, 권력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이동형 저항 형태로서.
점거운동에서 Z세대의 광범위한 반란까지
2011-2012년 글로벌 점거운동은 디지털 시대의 첫 번째 큰 균열이었다.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뉴욕의 주코티 공원에 이르기까지, 이 운동들은 경제적 불평등,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시장의 독재적 지배를 규탄했다. 2008년 위기의 세대인 그들은 야영지와 집회를 조직했으며, 처음으로 글로벌 차원의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 들의 추진력은 체제 내부에 머문 정치의 한계와 충돌했다: “99% 대 1%”라는 대중적 구호는 도덕적 차원에 머물렀을 뿐 실존적 차원에는 이르지 못했다. 국가의 형태나 노동의 형태 자체를 결코 문제 삼지 않았다.
15년 후 등장한 Z세대는 훨씬 더 황폐해진 세상—따라서 훨씬 더 솔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세대는 더 이상 개혁을 ‘믿지’ 않는다. 미래의 잔해 속에서 자라난 세대다. 권력을 장악할 필요조차 없다. 권력이 이미 데이터와 알고리즘, 환경, 그리고 신체 자체로 분산되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점거운동이 도시 안에 ‘자율 공간’을 구축하려 했다면, Z세대는 네트워크화된 공동체와 분산된 운동, 일시적인 연대를 통해 영구적인 자율 상태에 산다.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봉기의 상상력이다. 더 이상 ‘공공 공간 점유’가 아니라 살아가는 경험 그 자체를 되찾는 것이다. 정치는 더 이상 시위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점거운동은 집회의 유토피아를 꿈꿨다면, Z세대는 일상적 행동의 유토피아를 살아간다. 작고 일상적인 불복종, 돌봄 공동체, 생태적 삶, 시스템과의 단절을 원한다. 더 이상 권력 장악이 아니라 소멸이다. 더 이상 선거, 사회민주주의, 위임은 없다. 의회의 완전한 소각과 민중회의(people’s assembly)의 창설이 있을 뿐이다. 항의와 개혁이 아닌, 절망자들의 봉기다.
점거자가 새로운 상징적 중심을 추구했다면, Z세대는 그런 중심 없이 움직인다. 이는 유동적이고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네트워크다. 대표되지 않으며, 협상하지 않고, 서명할 청원도 없으며 기존 질서에 희망을 걸지도 않는다. 홍콩과 미얀마에서 산티아고와 나이지리아에 이르기 까지, 반란의 형태는 동일하다. 빠르고, 창의적이며, 비계층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고, 권력을 막고, 질식시키고, 시들게 하려 한다.
들뢰즈가 말했듯, 이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직 흐르고 연결하기만 하는 욕망이다. 하 킴 베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학, 소셜미디어, 거리, 직장, 나이트클럽, 점거된 지역, 상호부 조와 돌봄의 작은 공동체 등 어디에서나 폭발하는 수천 개의 ‘임시 자율 구역(TAZ)’이다. Z세대는 감히 “미래가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내겠다.”고 선언하는 세대다.
환상 없이 반란의 과거를 바라보며
21세기 운동의 역사는 현대 사회 봉기의 한계를 가르쳐준다. 아랍의 봄은 권위주의와 마주 했고, 점거운동은 트럼프의 부상과 미국 내 파시즘의 강요로 답을 받았다. 인디그나도스 운동 은 스페인과 그리스에서 좌파의 시체를 잠시 되살렸지만, ‘가능한 것’을 관리하는 데의 참담한 실패, 좌파 정당들의 붕괴와 해체는 수백만 마음속의 희망을 죽였다. 이 모든 운동은 대중의 정당한 분노에서 태어났지만, 곧 ‘진지한 정치’의 논리에 갇혀버렸다. 반란이 지도자와 정당, 제도적 야망을 낳자마자 그 생생한 힘은 사라졌다. 위임이 돌아왔고, 대중은 곧 사생활로 후 퇴했다. 혁명적 에너지는 정부주의와 현실주의, 즉 복종으로 변질되었다.
동시에 무정부주의 단체들은 여전히 분열되고, 조율되지 않으며, 현재를 넘어선 삶을 조직할 진지한 계획이 부족했다. 수백만 명이 강압과 명령 없는 삶을 약속하는 무정부주의를 받아들이는 바로 그 순간에, 무정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내부 불일치를 관리하는 무정부주의적 방식과 무정부주의적 이상에 따라 현대 사회 생활을 조직하는 실질적 형태를 발명하는 데 실패했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미래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Z세대가 직면한 큰 도전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혁명이 새로운 체제, 새로운 정당, 새로운 권력 형태로 끝나거나 사소한 다툼, 비공식적 위계, 개인적 경쟁으로 해체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경고했듯, 무정부주의자의 임무는 혁명 이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부의 출현을 막는 것이다. 그는 “혁명은 특권을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동시에 창조하는 행위여야 한다”고 썼다. 낡은 것을 허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것을 건설하기 시작해야 한다.
기술적 소양,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킹 문화를 지닌 Z세대는 이미 계층을 초월한 자발적 조직화의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거리에서 일어나는 운동들은 수평적이고 직접적이며 급진적 평등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이 네트워크는 단순한 폭발적 순간이 아닌 창조적 정치적 힘으로 거듭나야 한다. 반란과 돌봄, 분노와 건설, 파괴와 연대를 연결하는 것이 과제다. 우리는 물질적 현실 전체를 개방적이고, 집단적이며, 필터링 없이, 어디서나 ‘자유 생중계’해야 한다.
자유 이론: 포스트–아나키즘에서 Z세대의 상상력으로
지난 35년간 수천 명의 아나키스트들은 앞선 세대의 아나키스트들이 창출한 용감한 혁명 사상을 수호하기 위해 영웅 행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현재를 해체하고 미래를 위 해 싸우기 위해 필요한 대담하고 광범위한 개념을 상상할 용기를 가진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오늘날 무정부주의자들은 행동에서는 여전히 대담하지만, 사고에서는 종종 같은 용기를 결여한다. 그리고 바로 이 혁명적 사고가 지금 무정부주의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수백만 명 이 권력에 대한 저항 행위에서 모든 것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울 뉴먼과 토드 메이, 하킴 베이, 조지 카시아피카스, 리처드 길먼-오팔스키, 크림스인크, 보이드 네트워크, 피터 겔더루스, 데이비드 그레이버, 스테븐 슈카이티스, 존 홀로웨이 등 수 많은 무정부주의자 및 반권위주의 공산주의 이론가, 출판 집단, 정치 단체, 사회 운동가들이 이 새로운 정치 형태를 조명해 왔다.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도 권력을 폐지할 수 있는, 중심이 없는 혁명적 정치 영역이다. 뉴먼은 “권력은 더 이상 우리가 전복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통해 해체해야 할 관계의 그물망”이라고 쓴다. 하킴 베이는 일시적 자율 지대 (TAZ)를 제안한다. 이는 기존 질서 안에서 발생하는 자유의 순간들로, 지배 문화를 지금 여기 에서 전복한다.
모든 자기 조직화는 상품의 권력에 대한 균열이다. Z세대는 이미 자신들만의 TAZ를 창조해 냈다. 점거 주택, 축제, 디지털 네트워크, 연대 공동체, 점거 주택 단지, 자치 작업장, 공동부 엌 등에서 말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지배하는 도시에서 저항은 종종 제스처, 비밀 신호, 게임 채팅 속 메시지, 혼잡한 교차로에서의 은밀한 만남 등의 형태를 떤다. 운동은 때로 수년간 보이지 않고 침묵한다. 미로 같은 지하 과정, 토론, 이론적 논쟁, 사회의 기초에서 개미처럼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동은 공개적 폭발과 국제적 가시성의 순간까지 지속된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했듯,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생산적 힘”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세대 의 욕망은 이미 시장 너머, 국가 너머, 이윤 논리 너머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에리코 말 라테스타가 한 세기 전 감히 상상했던 무정부주의적 자유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천적 의무다. 권위의 폐지와 지역적·국제적 연대 네트워크를 통해 삶을 공동으로 규제하고 연결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을 창설하는 것이다. Z세대는 이 자유의 약속을 갱신할 수 있다. 개인의 자의성이 아닌 공유된 자율성, 강압 없는 사회적 공존의 형태로서.
실현된 행복을 위한 투쟁
우리 세대의 과업은 자본주의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고 초월하는 것이다. 상사, 은행, 국가, 정당의 세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멈추는 것이다. 혁명은 더 이상 진지함의 위엄이 필요하지 않다. 삶의 정직함이 필요하다.
우리의 행복이 우리의 복수다. 새로운 봉기는 파괴만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노동이 생존과 결부되지 않고, 재화가 자유롭게 공유되며, 돌봄이 특권이 아닌 보편적 권리인 사회를 그려내 는 능력이다. 국경도, 성별·인종·출신·피부색·민족의 구분도 없는 풍요로운 전지구적 공동체— 공동 소유와 자발적 협동의 사회다.
Z세대는 모든 형태의 독단주의를 경멸하고 실현된 행복을, 소비, 선거 위임, 복종이라는 사 적인 환상이 아닌, 상호부조와 창의성, 자유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행성적 혼란(카오스)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일은 진지하게 꿈꾸는 것이다.
지배와 권위의 ‘진지한 정신’은 인류가 자신의 가능성을 미성숙하거나 위험하다고 여겨 스스로에게서 숨기는 방식이다. Z세대는 우리 시대 유일하게 진정으로 책임감 있는 세대다. 삶과 자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혁명은 순간적인 파괴 행위일 뿐만 아니라 세기를 넘어 인류에 대한 사랑의 행위다. 이 사랑—집단적이고 평등하며 무정부적이고 혁명적이며 한계 없는—는 오늘날 인간 세계를 위한 유일한 현실적 제안이다.
| 시인이자 연극 감독인 타소스 사그리스는 그리스 아테네에 기반을 둔 국제 무정부주의 단체 보이드 네트워크(Void Network)의 회원이다. http://voidnetwork.g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