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목차〉 . . 1. 서문 : Z세대가 역사를 만들다 GEN Z MAKES HISTORY . . 2. Z세대의 반란 — 사회정의의 기쁨을 위해 _타소스 타르기스(Tasos Sagris) . . 3. 스리랑카 청년들: 너희가 시작한 일을 보라! _조지 카치아피카스 . . 4. 세계의 주목을 받는 방글라데시 _조지 카치아피카스 . . 5. 인도네시아 계급 투쟁 관찰 _폴 오배니언 . . 6. 네팔: Z세대여, 에로스 효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_조지 카치아피카스 . . 7. 에로스 효과 _조지 카치아피카스 . . 8. 모로코 Z세대지나치게 인본주의적, 지나치게 인간적인- 권위주의 국가 대 거리 운동 _마티 몬지브 . . 9. Z세대의 뿌리와 토대: 상식에서 정동성으로 _알레한드라 핀토 소피아 . . 10. 가자 학살에 맞선 캠퍼스 점거: 반복되는 역사 _조지 카치아피카스 . . 11. 도널드 트럼프, 기업 귀족층, 그리고 세계의 이스라엘화 _조지 카치아피카스 . . 12. 후기: 타나토스의 효과 _ 폴 메서스미스-글래빈 |
2024년 방글라데시 7월 혁명은 세이크 하시나 총리와 그녀의 아와미 연맹 정권의 피비린내 나는 통치를 전복시켰다. 사태가 진정되었을 때, 1,400명 이상의 시민이 사망하고 20,000명이 부상했으며, 이 중에는 하시나가 봉기 과정에서 희생된 것으로 집계한 수십 명의 경찰과 정부 관료도 포함되었다. ‘인민의 바다’가 보여준 압도적인 용기가 없었다면 혁명은 실패했을 것이다. 2024년 8월 5일,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두려움 없이 하시나 총리의 관저로 행진하며 그녀의 사임을 요구했을 때 민중의 승리가 찾아왔다. 경찰 저격수의 실탄 사격, 헬기에서 발사된 실탄, 드론, 최루탄, 섬광탄, 물대포 등 모든 수단이 시위대를 막지 못했다. 국민의 결의는 너무나도 굳건해 육군·공군·해군 수장들은 눈물을 흘리는 하시나에게 “당신을 향해 오는 민중을 막을 수 없다”며 “도망칠 시간이 몇 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15년 간의 장기 집권 끝에 ‘아시아의 철의 여인’,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중 한 명이자 ‘최장수 여성 정부 수반’은 군 헬기를 타고 급히 국외로 도주했다. 몇 분 만에 수천 명의 군중이 그녀의 궁전 같은 저택을 점령해 모든 것을 약탈하며 기쁨에 찬 축제를 벌였다. 이후 몇 주 동안 수천 명이 더 몰려와 하시나가 자국민 살해를 모의했던 ‘악의 소굴’을 직접 목격했다. 인접국 인도에서 망명을 허가받은 하시나는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녹음 기록이 반증하고 있음에도, 그녀는 ‘반역자’들에 대한 ‘치명적 무력’ 사용 명령을 내린 적이 없고, 인터넷 차단은 정부가 아닌 시위대가 자행한 것이며, 반대 측은 오로지 경쟁 정당들로만 구성되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11월 12일, 그녀와 아와미 연맹 고위 지도자 2명은 Z세대 봉기 당시 수백 명을 살해한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때 이들은 불출석 했다. 당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아와미 연맹 당원들은 계속해서 과도 정부에 맞서 움직이고 있다.
이 봉기는 방글라데시 실존의 상당 부분을 왜곡해 온 양당 대립 구도를 청산했다. 아와미 연맹과 방글라데시 국민당(BNP) 간의 치열한 경쟁은 정부를 번갈아 가며 편파적으로 운영하게 했으나 국민을 통합하는 데는 실패했다. 2009년 세이크 하시나가 집권한 이후 편파성은 반대 인사들을 투옥하거나 더 심한 처우를 가하는 억압적 불관용으로 변모했다. 그녀의 강경 통치는 일부에게 강력한 경제적 성과를 가져다주었지만, 청년층은 성장하는 경제에서 소외되었다. 인구의 약 절반이 25세 미만이다. 청년들이 하시나에 맞서 시위를 벌인 근본적 동기는 일자리의 필요에서 비롯됐다. 하시나의 지시로 가장 안정적인 정부 직위의 3분의 1은 1971년 그녀의 아버지가 이끈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배정됐다. 전체 공무원 직위의 절반 미만이 능력에 따라 선발되도록 했다. 그녀의 할당제(quota system)에 대한 청년들의 시위는 결국 그녀의 악명 높은 발언으로 이어졌다. “만약 독립운동가의 자녀들에게 일자리와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혜택은 배신자(라자카르 razakar)의 자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발언이었다. 정부가 그들을 모욕하고 탄압할수록 시위자들의 열망은 일자리에서 해방으로 바뀌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여 결국 그들의 수와 결의는 막을 수 없게 되었다.

1990년에도 두 여당이 연합해 군사 독재자 H.M. 에르샤드에 맞서지 못하자 청년들이 국가 의 주도권을 잡았다. 1990년의 역사적 봉기는 에르사드의 투옥으로 이어졌다. 과도 정부가 집권해 민주적 개혁을 도입했으나, 8년 후 하시나가 선거에서 압승하자 새로운 독재 통치가 시작되었다.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1990년 에르샤드 타도는 네팔이 절대군주제를 타도한 지 8개월 만에 일어났다. 방글라데시의 2024년 7월 혁명 1년 후, 인도네시아인들은 새 대통령 프라보워에 맞서 대규모로 봉기했고, 네팔의 Z세대는 그들의 ‘민주적’ 정권을 무너뜨렸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 아래 국가가 침체하자, 젊은 반란군들이 네팔의 국회, 대법원, 수십 개의 정부 청사를 불태워 새로운 과도정부가 출범했다. Z 세대의 새로운 일련의 봉기에서 반란의 동시성은 명백하다.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네팔의 반군들은 공통된 종교도 없고 경제 위기 상황도 공유하지 않는다. 이들의 동시적 폭발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은 한 곳에서의 자유 투쟁이 다른 이들의 봉기를 자극한다는 점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내년 방글라데시 선거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 나라는 이미 세계적 관심의 중심에 있으며, 성공적인 새 정권이 수립된다면 전 세계 국가들의 모델이 될 것이다.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ᅵ아, 방글라데시의 역사가 주는 교훈 중 하나는 대의 ‘민주주의’가 시민 참여를 포함시키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시민의 일상생활에 숙의와 의사결정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몇 년마다 치러지는 일상적인 선거를 ‘진정한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 오래전 바바사헤브 암베드카르는 경고했다. “의회 민주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을 외면했으며…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소외된 계층의 경제적 불안을 끊임없이 가중해 왔다.” 오늘날 방글라데시에서 구상 중인 새 체제는 의회 공화국의 한계를 경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7월 봉기는 방글라데시를 전례 없는 국제적 리더십 위치에 올려놓았다. 다가올 새 체제의 성패는 세계적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 조지 카치아피카스(George Katsiaficas)의 이 글 초고는 2025년 9월 27일 방글라데시 다카의 『벵골』지에 실렸다. 그는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봉기들』의 저자다. 2010년 다카에서 1990년 봉기 기념 회의를 조직하는 데 기여했으며, BNP와 아와미 연맹 양측 대표가 참석했다. 그의 웹사이트는 www.eroseffect.com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