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어느 날 월요일
말 털갈이 하는 달_ 수 족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_ 아라파호 족
기다리는 달_ 호피 족
이름 없는 달_ 주니 족

피아노를 쳤다. 오래간만이다. 스케일을 하고, 모차르트의 자장가와,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쳤다. 피아노를 치면, 나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정리되지 않은, 학교에서의 나를 만났다. 약간은 외롭고, 놓으면 안 될 거친 밧줄을 잡고 때로는 그 밧줄과 이야기 하는.
오늘 쳤던 곡들은 학교에 있을 때 시작해 아직 완성시키지 못하고 잠시 놓아두었던 곡들이다.
그 다음에는 밧줄이 보였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놓아버리면 안 된다는 것만 아는. 밧줄을 잡을 때면 열이 오르고 금세 끈적이게 되는 내 연약한 손을 기억해냈다. 그때의 내 손이,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내 손이 다시 보였다.
19살, 왜 내게 불쑥 ‘이름 없는 것들의 노래’라는 말이 떠올랐을까. 어쩌다 불쑥, 집 앞에 평소에는 이름도 모르고,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쇠별꽃을 매일 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일까. 그 때의 나와, 시간들은 지금 내게 어떻게 남아 있나.
내가 오늘 문득, 피아노 의자에 앉은 것은 무언가가 그리워서 그랬던 것 같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더듬더듬 쳐가는 동안, 잠시 잊었던 내가 다시 떠오르며, 강하다고 생각 했던 나의 무거운 껍질이 툭 떨어졌다. 떨어지고 보니, 그저 힘없는 껍질이었다.
오랜만에 있는 줄도 몰랐던 슬픔이 느껴졌다. 작게 숨죽여 우는 무언가가 들린다. 바닥에 흐른 누군가의 붉은 피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도살장, 어느 이름 없는 돼지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피아노를 칠 때, 더듬더듬, 놓치지 말고 계속 끝까지 읽어낼 때, 어떤 음악이 나오는데, 그게 왠지 이 세상에서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끈 같다. 나는 조금은 슬퍼지며 더듬더듬 건반을 누르고, 페달을 누른다.
피아노 의자에 앉았을 때는, 아침부터 들어온 바람과 빛이 방 안에 머물고 있었다.
빛은 서서히 사라진다.
밤이면, 어둠과 어둠에 식은 공기가 내 방 안을 채운다.
나는 주로 형광등으로 방 안을 채운 어둠과 공기를 잊으려고 한다. 하지만, 잠자기 직전, 형광등을 끄고, 노란 빛을 내는 작은 등을 켤 때 그 어둠이 보이는데, 그때 불안한 나는 사라지고 아무것도 입지 않아도 의연하게 존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왔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에 따라 나는 무언가 바뀌고 있다.
보였던 것이, 보였다가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건반을 더듬으며, 그것이 나타나고 사라지도록,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