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동화] ④ 6월의 나뭇잎들은 어떤 빛을 머금을까

아이와 할머니는 신호등 앞에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며 바람을 맞는다. 뒤흔드는 바람에도 흔들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듯이.

문득 이들이 너무 아름다워, 조금 뒤로 물러서서 이들을 바라보았다.
사진 출처: Hiep Duong

버스에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한 어느 할머니가 비닐 보따리를 들고 타셨다. 내 옆에는 어느 아이가 앉아 있다. 태권도복을 입은 마른 남자 아이었다. 셋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비가 오기 직전 하늘에는 짙은 구름과, 사람들 사이에는 진한 바람이 땅을 쓸며 지나간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아이와 할머니의 얼굴에 신호등의 빨간 불빛이 어른어른 비친다. 이들은 아무 말 없이, 휴대전화도 들지 않고 그저 가만히 기다린다. 이 어둠을, 바람을 바라본다.

아이와 할머니는 신호등 앞에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며 바람을 맞는다. 뒤흔드는 바람에도 흔들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듯이. 바람은 이들을 향해 불고, 이들은 바람을 향해 서있다.

문득 이들이 너무 아름다워, 조금 뒤로 물러서서 이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신호등을 건너, 언덕길 빌라골목으로 들어간다. 할머니는 옷가지가 가득 담긴 커다란 파란 봉투가 무겁다.

“할머니, 제가 들어드릴게요.”

“괜찮아요, 이렇게 쉬었다 가면 돼요. 고마워요.”

나는 바람을 맞으며 언덕 등성에 있는 집으로 걸어간다. 지친 다리로 걷다가 창문 사이로 노란 빛이 새어나오면 왠지 그 안에 나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만 같아 기뻐진다.

다시 바람이 분다.

밀려오는 어둠에 저항하는 빛을, 6월의 나뭇잎들이 한껏 머금었다.

*

만약 네타냐후가, 군인들이 잠시라도 멈추어 서서 아이의, 여자의, 노인의 눈을 바라본다면,

멈추어라, 너는 참 아름답구나.

규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언젠가부터 제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계절 동화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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