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운동, 제3의 길을 찾아라 –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을 읽고

머레이 북친의 ‘사회적 생태론’은 오늘날의 생태위기가 사회문제, 특히 인간 간의 권력문제에서 왔다고 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반자본주의적 지역자치 생태공동체의 연대 운동이라는 ‘코뮌주의’를 통해 사회문제와 생태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에릭 올린 라이트의 ‘자본주의 잠식하기’ 모델과 비교해보면, 한국 기후운동에도 깊은 통찰들을 준다.

부제 : 북친과 에릭 올린 라이트의 전략 비교를 통한 한국 기후운동의 전망 찾기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은 저자 ‘머레이 북친’의 대표적인 글 네 편을 모은 책으로, 이는 주로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걸쳐 발표된 글들이다. 추천사를 쓴 정치학자 채효정의 설명에 따르면, 글이 쓰인 때는 “금융자본주의 질서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던 시기”1라고 하는데,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라는 배경을 알고 나니 조금 더 이해가 쉬워지는 듯하다.

머레이 북친 저, 『착취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경제학-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 선언』 (동녘, 2024)

이 책은 머레이 북친의 핵심 사상인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를 중심으로 쓰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의 사상들인 사회주의, 아나키즘, 생디칼리즘 등을 예로 들어 비교하면서 이들 사상을 때론 긍정하기도 때론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기반 지식이 많지 않은 필자로서는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본 글에서는 책 내용을 전반적으로 소개하기보다 한국의 기후운동 발전에 생산적 논의가 되기를 기대하며, 에릭 올린 라이트2의 ‘자본주의 잠식하기’ 전략 모델들과 함께 비교하며 살펴보려 한다.

우선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이 책에서 저자는, “사회적 생태론은 오늘날의 생태문제 대부분이 뿌리 깊은 사회문제에서 비롯됐다는 확신에서 출발”3하며, 생태문제는 “인류 전체의 장기적 이해관계와 기업 권력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인간들 간 관계 방식에 대한 고찰은 생태위기를 다루는 데 핵심”4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회적 생태론의 “기본 의도는 사회와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 회복을 통해 이성적이고 생태적인 사회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한다.

코뮌주의는 “과거 급진 정치학에 내재하던 가장 해방적인 경향들을 종합한 것”5으로, “반자본, 반시장의 지역자치 생태공동체의 연대 운동만이 사회문제와 생태문제 해결의 유일한 통로”6라는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민 자치의 전통인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근현대 서구의 도시 자치 운동, 파리코뮌의 전통을 현대화하여 나름의 대안정치 이념인 ‘리버테리언 지역자치주의’를 주장”7한다고 역자의 글에 잘 설명이 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마을공동체나 시골에서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국가 권력을 대체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급진적이고 혁명적으로 보인다.

그럼 이번에는 ‘자본주의 잠식하기’ 전략의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 본 전략에 관해 살펴보도록 한다.

이 전략을 제안한 에릭 올린 라이트는 분석마르크스주의의 세계적 권위자로 계급 분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현실적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대안적 정치경제 체제를 연구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다섯 가지 전략이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중요했다고 하는데, (자본주의) 분쇄하기, 해체하기, 길들이기, 저항하기, 벗어나기 라는 전략들이다.

우선 ‘분쇄하기’는 자본주의를 파괴하고 잔해를 쓸어내고 대안을 건설하는 혁명가들의 고전적 전략논리로, 20세기 혁명의 결과로 볼 때 효과가 없었고 실패했다고 본다. ‘해체하기’는 민주사회주의 모델로 “국가가 지휘하는 개혁을 통해 위부터 시작해 사회주의를 점진적으로 도입한다는 구상”으로, 국영과 민영의 ‘혼합경제’가 특징이다. 여기서는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대체하는 단순한 파괴적 단절의 순간은 없”으며8, 점진적 해체와 대안 건설의 과정이 진행된다. ‘길들이기’는 보통 ‘사민주의’ 국가들에서 인간적 자본주의를 구현한 것으로 포괄적 사회보험, 높은 과세와 공공재 확충 등의 내용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를 그대로 두면 막대한 폐해를 낳기 때문에 “이런 폐해를 상당히 중화할 수 있는 대항적 제도들을 건설할 수 있다”9는 전략이다. ‘저항하기’는 “국가의 외부에서 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스스로 국가 권력을 획득하려 시도하지 않는 투쟁”10을 말한다. 다시 말해, 국가의 행동을 봉쇄하면서도 국가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사회운동, 불매, 시위 등 국가 외부에서 발산되는 여러 형태의 저항을 말한다. ‘벗어나기’는 자본주의의 약탈에 대응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 중 하나로, 오늘날 대개 개인주의적 라이프스타일로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정치학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반자본주의의 한 형태로 인정하기 쉽지 않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이 전략에도 더욱 평등하고 민주적 생활 방식의 공동체들이나, 자본주의에 맞서 대안적 경제 형태를 구축한 협동조합 등의 사례들은 의미가 있다.

라이트는 저항하기와 벗어나기라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상향식 기획과, 길들이기와 해체하기라는 국가 중심적 하향식 전략을 결합하는 새로운 전략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를 ‘자본주의 잠식하기’ 라고 한다. 마치 외래종이 새로운 서식지에 들어와 조금씩 잠식해 가다가 나중에는 그곳 생태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전략이다. 결국 분쇄하기를 제외한 길들이기, 해체하기, 저항하기, 벗어나기 모두 필요하며, 이를 ‘잠식하기’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럼 여기서 이 두 책이 한국의 기후운동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2019년을 본격적인 기후운동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현재는 크게 두 그룹으로 양분되어 있다. 궁극적 지향점은 비슷한 것 같지만, 한 그룹은 체제전환을 내세우며 상대적으로 급진적으로 보이고 다른 그룹은 그보다는 대중지향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의 서문을 쓴 머레이 북친의 딸 ‘데비 북친’은 사회적 위기에 대한 기존 대응 방식이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인 ‘점진적 개량주의’는 의도와 달리 기후생태위기를 야기하는 사회구조의 동학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다른 하나인 ‘전통적 급진사상’은 유토피아냐 야만사회냐의 선택만을 종용하며 과거 사회주의 좌파의 역사적 오류들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한 물간 노동계급 중심의 마르크스주의’라고까지 한다. 이는 에릭 올린 라이트가 ‘분쇄하기’ 전략을 혁명가들의 고전적 전략으로 언급하며 실패했다고 평가한 것과 맥이 닿아있다. 어찌 보면 위 두 그룹은 거칠게 본다면 현재 기후운동의 두 그룹과 닮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즉 사회적 생태론은 이 두 방향이 아닌 제 3의 길을 제시한다고도 할 수 있다.

북친의 ‘코뮌주의’는 언뜻 ‘벗어나기’ 전략과 비슷해 보인다. 특히 “카탈루냐 경제 내에서 협동조합 구조를 구축하여 자본과 맞서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는”11 스페인의 ‘카탈루냐 통합 협동조합’은 코뮌주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뮌주의의 목표가 “경제를 자치체의 통제 아래 두는 데 있다”라든지, ‘민회’라는 자치체가 “모든 생산 기업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든지, 자치체의 의회가 “도시생활과 관련한 모든 의사결정의 장소이자 토론의 장”이라든지 하는 점들은 기존의 대안으로 언급되는 공동체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코뮌주의는 권력의 문제에 관여한다는 점이 다르다. 게다가 여러 지역자치체들이 민주화되면 이후 서로 연합하여 동맹을 맺고, “민회와 연방 의회를 통해 나라 전체의 경제와 정치에 대한 통제권 확보”에 나서는 것까지를 내다보는 매우 거대한 구상이라는 점도 그렇다.

“불만에 찬 프티부르주아의 도움 없이는,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하는 시도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일말의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 사진 출처 : Colin Lloyd
 

또 한 가지 시사점은 중간계급에 대한 주장이다. 머레이 북친은 “새로운 혁명운동이 과거로부터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광범위한 중간계급을 설득해 새로운 민중적 기획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불만에 찬 프티부르주아의 도움 없이는,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하는 시도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일말의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라며 중간계급의 설득을 매우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한국 기후운동의 두 그룹의 주요 대상 중 한쪽 그룹은 대중을, 다른 한 그룹은 기후위기의 피해자나 당사자들로 보인다. 대중은 계급적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타겟이 되는 계층은 관심이 높은 활동가나 시민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의 피해당사자를 주 대상으로 삼는 그룹은 아무래도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활동가들이거나 사회적으로 권력을 갖지 못한 약자들일 가능성이 높고, 이들은 중간계급보다는 대체로 더 하위계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대중친화적 그룹이 그나마 가까워 보이지만, 두 그룹 모두 북친이 강조한 중간계급 설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또한 정치를 바라보고 대응하는 점에서도 두 그룹은 달라 보인다. 한쪽은 대체로 선거에 개입하여 기후위기에 대응할 의원들을 만들려 하고, 다른 한쪽은 현 구조에서 기득권에 포섭되어 그린워싱에 이용될 의원들을 내기보다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방향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친은 〈코뮌주의 프로젝트〉에서 대중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최소 강령’, 리버테리언 사회주의 하에서 인간 삶의 모습이 어떨지를 보여줄 ‘최대 강령’, 그리고 거기로 가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담은 ‘이행기 강령’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2 즉 하루아침에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기보다 대중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면서 우리가 가야할 비전을 제시하고, 그곳에 가는 과정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상사회가 법제화를 통해 도달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는 현 체제 내에서의 제도 개혁을 말하는 것으로,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라고도 불리는 라이트의 ‘길들이기’, ‘해체하기’ 전략과도 통한다. 라이트는 이를 ‘공생적 변혁’이라고 표현했는데, “체제가 좀 더 순조롭게 운영되게 만드는 동시에 나중에 진행될 변혁을 위한 공간을 확대”13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물론 라이트는 이를 포함해 네 가지 모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저항하면서 현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누군가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제도를 개혁하면서 당장의 변화를 통해 현재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면서 틈새를 만들고, 누군가는 체제 밖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대안을 보여주고, 누군가는 그 틈에 체제를 점차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현 기후운동을 돌아보면, 한 쪽은 체제 내 개혁만을, 다른 한 쪽은 급진적 저항만을 외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북친이 주장하는 내용에도, 라이트가 주장하는 내용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북친이 말하는 ‘정치’에 대한 부분이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정치라고 부르는 대부분은 ‘국정’이란 개념으로, 국정은 의원, 판사, 관료, 경찰, 군대 등으로 이루어지기에 제대로 된 의미가 아니라고 한다. 사회적 생태론이 말하는 정치란, “20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의 민주적 폴리스에서 이루어졌던 정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민회의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정책을 마련하는 것을 뜻한다”14고 한다. 진정한 정치는 시민, 민회에 의한 풀뿌리 직접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장의 제도개혁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시야가 거기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보통 ‘저항’과 ‘대안’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회적 생태론의 관점으로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고 저항하여, 코뮌주의로의 대안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이는 단지 급진적이라고 해서 가능하지 않고, 또한 제도 개혁만으로도 불가능하다. 역사적 실패를 교훈 삼으면서도 양자를 새롭게 종합해 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머레이 북친의 사상과 에릭 올린 라이트의 전략은 매우 중요한 통찰을 준다고 생각된다.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는데, 이 부분은 직접 두 책을 읽으면서 채워갔으면 한다. 그리고 ‘압정’처럼 한편으론 뾰족하게, 다른 한편으론 평평하게 기후운동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1.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 머레이 북친, p.185.

  2.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Wright, 1947-2019). 사회학자. 마르크스주의자. 미국의 분석적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사회 계층화 와 자본주의에 대한 평등주의적 대안적 정치경제 체제를 연구했다. 국내 번역된 저서로 『리얼 유토피아』,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등이 있다.

  3.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 머레이 북친, p.17.

  4.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 머레이 북친, p.18.

  5.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 머레이 북친, p.7.

  6.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 머레이 북친, p.172.

  7.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 머레이 북친, p.172.

  8.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에릭 올린 라이트, p.79.

  9.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에릭 올린 라이트, p.81.

  10.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에릭 올린 라이트, p.87.

  11. 『미래는 탈성장』 마티아스 슈멜처 외, p.294~295.

  12.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 머레이 북친, p.166~167 참조.

  13.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에릭 올린 라이트, p.95.

  14.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 머레이 북친, p.60.

김영준

기후위기를 극복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예술의 힘을 믿으며 '월간 기후송'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싱어송라이터. 교육의 중요성을 고민하는 기후환경강사이면서, 종교(신앙)의 힘을 아직 믿는 기후위기기독인연대 활동가, 그리고 정치에 희망을 버리지 않은 녹색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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