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탈성장들: 하며 살고 있습니다』는 총 24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각 꼭지는 경쟁하고 소비하고 성장해야지만 우리의 일상이 돌아가고 사회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과연 우리를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정신없이 변화를 촉진하는 제도 속에서 하염없이 미끄러지며 기존의 제도에 편입되지 못한 비인간동물, 1인 가구, 가족돌봄 청소년·청년, 그밖에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이들의 삶이 배제되고 있다고 외친다. 그렇다고 이 책의 화자들이 울퉁불퉁한 삶을 살고 있는, 살고 싶은 사람들이 새로운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아니다. 탈성장들 하며 살아가고 있는 24명의 발화자는 기존의 방식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 맞는 이들만 잘살 수 있는 방식임을 비판하며 모든 생명이 각자의 속도에 맞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탈성장하는 삶을 제안한다.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탈성장의 시도들을 엿볼 수 있는데 나는 특히 예술과 관련된 활동이 눈에 띄었다. 「지렁이 인간이 되기」 파트에서는 지렁이를 스승으로 삼아 지렁이가 되어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작가님의 여러 활동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길 위 보도블록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를 매일 닦아주며 비인간존재와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방식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하찮게 느끼고 단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어떤 것과 관계 맺고 교감하며 생명을 존중하는 것의 본질을 깨닫는 이 실험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나를 둘러싼 지구의 무수한 생명과 어떤 관계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한다. 길 위의 보도블록과 친해지는 게 탈성장이라고? 머릿속에 물음표가 뜨는 동시에 탈성장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예술 교육으로 탈성장을 실천하는 「마음에 씨앗심기」 파트를 읽어보자. 이 파트에서는 예술을 통해 제작 문화, 자투리 순환, 사물 돌봄을 심는 예술 창작자 집단 피스오브피스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을 수리, 수선해서 소비와 낭비를 줄이는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들은 다음 세대에도 탈성장의 삶의 방식이 도달할 수 있도록 문화 교육의 방식으로 탈성장의 씨앗을 심고 퍼트리는 것을 큰 숙제로 안고 있다. 우리도 이들과 고민을 함께하다 보면 나는 어떤 탈성장들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될 것이다.
예술과 관련된 활동 다음으로 기억에 남았던 주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비거니즘 탈성장이었다. 「반려와 함께 탈성장을 꿈꾸기」는 이 글의 주인인 ‘나’가 착취적인 약탈을 반대하게 된 계기로 반려동물과 함께 일상을 꾸려나가는 삶이 있었다고 말한다. 반려와 함께하기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 길에서 떠도는 유기견, 죽어가는 길고양이, 공장식 축산과 대량생산의 부조리함을 사랑하는 반려와 살면서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다른 생명과 소통하며 약자를 돌보는 가치를 알게 된 ‘나’는 공동체적 돌봄을 실천하고자 한다. 이 파트는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겼던 일들이 사실은 내가 사랑하는 어떤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이미 탈성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파트인 것 같다. 「반려와 함께 탈성장을 꿈꾸기」가 개인적인 시각에서의 서술이라면 「돌봄의 비거니즘은 어떻게 탈성장의 길이 되는가」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비거니즘 탈성장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환경운동의 역사도 살짝 짚어주고 탈성장으로 가는 여정엔 동물해방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농장동물, 실험동물, 전시동물을 자유에 이르게 하되, 이들을 풀어주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동물해방 과정이 수반되어야 할까. 답은 생추어리 돌봄에 있다. 자본화되고 정형화된 기성의 돌봄노동과는 결을 달리하는 생추어리 돌봄은 생명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가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다. 비거니즘 탈성장은 같이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심이 가고 그래서 ‘당신의 안녕을 자꾸만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돌봄’을 실천하는 이들의 탈성장 방식을 이해시킨다.
24개의 꼭지를 모두 소개하지 못했지만, 예시로 나온 챕터 말고도 농부의 삶이나, 사회복지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돌봄, 결혼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 우주적 관점에서 영적인 연결됨을 느끼는 샤먼과 굿에 관한 이야기 등등 탈성장과 친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책을 기반으로 탈성장을 설명하다 보니 예술적 실천, 비거니즘으로 편의상 키워드를 구분해서 탈성장이 무엇인지 소개했다. 하지만 결국 탈성장이란 경계를 넘어서 이 모든 것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사실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연결됨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결됨이란 인간 대 인간의 관계 맺기를 넘어선 인간 대 동물, 인간 대 자연, 인간 대 무생물 그리고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지구 안의 심지어는 우주 바깥의 모든 것들과 연결되는 방법을 모두를 살리는 방식으로 지속하고자 하는 실천이다. 물론 복잡한 연결 속에서 내가 혐오스럽게 여기는 것들과의 연결도 있을 수 있다. 그것 또한 알아차리고 함께 이 땅을 살아가는 생명임을 인정하는 것도 탈성장의 길인 것 같다.

탈성장은 남들이 가는 길에서 벗어나 조금은 불편하고 느리게 걷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변인들에게 조금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확신이 있다. 이들은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워지고 복잡한 맥락을 가진 이들의 삶이 뚝 잘려 설명되지 않기를 바란다. 더 많은 생명이 죽지 않고 살아가길 희망한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어낸 나도 탈성장하며 살고 싶다.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나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일은 즐겁고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무치게 외로운 감각을 느끼게 한다. 나는 이미 탈성장하며 살고 있거나, 탈성장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이 외로움과 고독함에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혹여나 지쳐버린 이들을 위해 영화 엘리오에서 나온 대사를 전하고 싶다. “특별하다는 건 때론 외로울 때가 있어. 그래도 혼자는 아니야.” 탈성장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특별해서 대단하다는 말이라기보다는 나의 상상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할 것 같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끝까지 갔으면 하는 당신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응원과 연대를 전하고 싶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이 안에서 부당함을 느끼고 더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은 인간으로서 『탈성장들: 하며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서평까지 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서 기쁜 마음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탈성장하는 방향성을 지니길 바라고 이미 자기 삶의 형태가 탈성장인데 아직 인지하지 못했더라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더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살아가길 바라며 이야기를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