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한 알에서 시작된 떡갈나무숲 이야기_생태적지혜연구소

애초에 ‘생태적지혜연구소는 이런 곳이다’라고 정의 내리고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실수였다. 그것은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참 길게도 ‘설명’해 놓았다. 그러니 정의를 정의로 읽지 않고 은유나 비유로 읽기 바란다. 정의하듯이 은유하자면, 우리는 일상에서 느슨하게 암약하는 반역의 무리다. 생태적 지혜, 탈성장으로 향하는 삶의 방식, 정동, 서로 돌보는 관계망, 그리고 느리지만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이 세계의 작동방식을 고장내고, 새롭게 구성하려 한다.

한 알의 도토리는 그 자체로는 미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다람쥐가 땅 속에 묻어놓았던 도토리창고 하나를 깜빡 잊어버릴 때, 이 도토리가 다음 해 새순을 틔우며 울창한 떡갈나무 숲을 이루는 시작점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누구의 의지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람쥐의 실수와 자연의 리듬 속에서 일어나는 ‘자율적인 창안’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천이(遷移)의 과정을 故신승철 소장은 ‘떡갈나무 혁명’이라 이름 붙였다. 떡갈나무 혁명은 거대한 운동이나 선도적 주체 없이도, 아주 작고 평범한 생명에서 시작해 생태계에 불가역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다르게 살기, 그것이 바로 혁명

프랑스의 생태철학자 펠릭스 가타리는 기존의 사회운동이나 정치혁명처럼 중앙집중적이거나 영웅주의적인 접근을 넘어서, ‘분자혁명(molecular revolution)’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분자혁명이란,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 맞서는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개인의 일상적인 실천, 감정, 관계, 욕망, 말하기, 몸쓰기 등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체제에 균열을 내고 전환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작은 기계 하나가 다르게 작동함으로써 전체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네트워크 혁명’과도 맞닿아 있다. 이 사회는 일체화된 거대 구조가 아니라 작은 기계부품들이 연결된 네트워크이며, 그중 하나의 기계 부품이 기존의 반복을 멈추고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연결된 다른 기계들의 배치에도 영향을 끼치고 결국 전체 시스템을 고장내거나 심원한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시스템 전체가 완전히 고장나야만 혁명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부품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혁명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일상의 작은 실천들, 예를 들어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채식을 실천하거나, 아이와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거나, 혹은 외출할 때 텀블러와 손수건을 챙기는 것조차 작은 혁명이다. 이를 두고 가타리는 “혁명 과정에 관한 한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왜냐하면 어떤 혁명가도, 어떤 혁명운동도 없을지라도 모든 수준에서 혁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혁명을 하자는 이유이다.”(펠릭스 가타리 『욕망과 혁명』 2004, 문화과학사. p79)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생태적지혜연구소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기존 질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특이한 기계 부품이다. 그렇게 스스로가 아주 작은 혁명이 되고자 한다. 대대적인 물리적 충돌이나 급진적인 사회전복을 추구하기보다 생태적 지혜, 탈성장으로 향하는 삶의 방식, 정동, 서로 돌보는 관계망, 그리고 느리지만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이 세계의 작동방식을 다르게 구성해 새로운 삶의 리듬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우리는 도토리 한 알 같은 존재, 또는 다르게 움직이는 하나의 기계부품으로서, 거대한 변화의 촉매이자 전환의 특이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지난 2024년 6월 故신승철 소장의 1주기 추모제 행사장 벽에 조합원들이 그려놓은 그림과 구호들. 사진 제공 : 한승욱

협동조합이자 생태민주주의의 실험실

2018년 여름, 무려 34일간 지속되며 최고 기온 41℃를 기록한 폭염 속에서 “기후위기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이들이 모여서 씨앗조직을 만들었고, 이듬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혜와 정동(affect)을 연구하고 글로 나누는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이 출범했다. 11명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이 모임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활동가, 예술가, 종교인, 주부, 교사, 학생들이 하나둘 함께하면서 2025년 현재 약 160여 명의 조합원이 활동하는 꽤 큰 규모의 공동체가 되었다.

생태적지혜연구소는 다양한 사유의 경로를 개척하고, 대안적인 가치를 담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지혜 생산자 협동조합’이다. 물론 모든 구성원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미나에 참여하거나, 단톡방에서 누군가의 말에 하트를 눌러주는 일조차도 ‘주체성 생산’의 일부로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떤 방식으로든 지혜 ‘생산자’이자 삶의 구성자라고 말할 수 있다.

연구소는 글쓰기, 연구, 강의 등 조합원들의 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일종의 플랫폼 구조를 갖고 있지만, 플랫폼을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생각하기보다, 공유를 창출하기 위한 마주침과 관계망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창립 선언문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는 플랫폼처럼 공유재를 약탈하고 채굴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유재를 생산하고 보호하며 돌보는 방향을 지향”한다.

이런 철학에 맞게, 우리는 조직 운영의 틀로 ‘협동조합’을 선택했다. 민주적인 의사 결정, 권력의 분산,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역할, 살림살이의 경제라는 협동조합의 가치가 우리 취지와 가장 잘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협동조합이라는 제도 역시 현실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틀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꾸준히 보완하고 우리에게 적합한 새로운 대안적 방식을 실험해가고 있다. 현재까지 상근자 없이, 조합원들의 자율적 실천을 통해 이 조합을 함께 운영해오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 실천의 증거이다.

쓰고, 게재하고, 출판하라

생태적지혜연구소는 출판과 미디어를 기반으로, 조합원들이 연구자이자 필자로서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실 ‘돕는다’기보다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배치를 만든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함께 기획하고, 집필하고, 청탁하고, 편집‧교정도 하고, 출판사에 넘기기 전까지 일일이 조합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직접 일하는 일종의 가내수공업에 가깝다. 그렇게 6년 동안 웹진 《생태적 지혜》(https://ecosophialab.com)를 꾸준히 발행해왔으며, 공동저작으로 『플랫폼자본주의와 배달노동』(2021), 『낭만하는 공동체 넘어서기』(2022), 『탈성장을 상상하라』(2023), 『돌봄의 시간들』(2023), 『근본파와 현실파 넘어서기』(2024), 『탈성장들: 하며 살고 있습니다』(2024) 등을 함께 발간했다.

생태적지혜연구소가 기획하고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써낸 책들. 사진 제공 :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알렙출판사, 북코리아.

웹진 《생태적 지혜》는 #공동체 #기후위기 #탈성장 #정동 #돌봄 #커먼즈 #생태 #생명 #대안경제 #기본소득 #페미니즘 #비인간존재 #소수자 #자율주의 #구성주의 #생태민주주의 등의 키워드를 기반으로 1개월에 4회 발행된다. 조합원뿐 아니라 생태에 관심 있는 누구나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고, 무료로 읽고 자유롭게 인용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이는 “지식은 사회적 생산물이며, 사적으로 독점되어서는 안 되고 널리 공유되어야 한다”는 지식공유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연구소가 운영하는 세미나 또한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다함께 지혜를 모으는 자리로서 무료로 진행된다. 단, 강의의 경우에는 누군가 자신의 지혜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투여한 시간과 노력을 고려해, 수강자에게 소액의 수강료를 받고 강사료로 지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모든 운영 방식은 연구소가 지향하는 커먼즈(commons) 운동의 실천이며, 동시에 우리가 추구하는 ‘생태적 지혜’의 가치를 삶 속에서 구현하려는 노력이다.

좋은 질문이 곧 생태적 지혜!

생태적 지혜는 공유지에 싹튼 지혜, 연결망의 지혜라고도 불린다. 삼림, 하천, 바다, 갯벌 등의 공유지와 민중들이 접촉하면서 만들어냈던 집단지성, 아이디어, 노하우, 암묵지와 같은 것이다. 생태적 지혜는 종합, 전일성, 연결과 접촉 등의 원리로 구성된다. 농부, 어부, 주부, 산파 등은 공유지로서의 삼림, 하천, 바다 등과의 접촉과 연결, 신체변용을 통해서 저장, 종자, 요리, 발효, 식생, 재생, 살림, 되살림, 순환 등의 지혜를 만들어냈다. – 생태적지혜연구소 소개글 〈생태적지혜의 지도제작〉 중

이러한 전통적 지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더욱 관심을 두는 것은 미래적 지혜이다. 이는 지나친 과학기술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 속에서 적정기술, 녹색기술, 친환경기술 등 새로운 도전과 실험, 창조와 모험을 요청하는 지혜이다.

우리는 ‘생태적 지혜는 이런 것이다’라는 고정되고 정해진 답이 아닌 ‘어떻게 생태적 지혜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주목한다. 지혜를 생산하는 것은 바로 색다른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궁금증, 알고자 하는 욕망이 게으른 몸을 일으켜 세우고, 실수로 발을 삐끗하더라도 어쨌든 다시 길을 찾아 나서게 하고, 중간에 길이 끊겨 돌아오거나, 영 낯선 곳에 표류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치가 곧 지혜임을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문제제기에 단 하나의 답이라는 근대적 세계관을 우회해서, 지혜란 “하나의 문제제기가 갖고 있는 여러 개의 대답을 지도화, 횡단화, 놀이화하는 소수자들의 사상이며, 생명‧생태적 연결망에서 싹트는” 것이라 이해하려 한다. 애초에 정답이란 없고, 그때그때 배치에 따라 움직이다가, 운이 좋으면 한꺼번에 여러 개의 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요행을 바라기도 하면서 말이다.

조직도는 6년째 계속 구성 중

故신승철 소장이 “생태적지혜연구소는 완성형이 아닌 늘 과정형이자 진행형이며, 그러므로 모임이나 조직으로 틀을 갖기보다 배치, 행렬, 동적 편성으로 관계망을 갖는다”고 했던 말처럼, 조직도는 6년째 미완인 채 매년 바뀌고, 책임이나 역할 분담도 들쑥날쑥하다. 그렇게 더듬거리고 주춤거리고 기웃거리는 게 우리의 방식이다. 그래서 매사에 느리고 미숙할 수밖에는 없다. 그 가운데서도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아마도 ‘관계망’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누가 누구와 만나느냐, 어떤 주제로 만나느냐, 그날의 구성원 중 단 한 명만 바뀌어도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와 완전히 다른 소통의 장이 열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배치가 만들어내는 신비한 생태계이다. 그래서 생태적지혜연구소는 조합원 각자의 역량을 모두 더한 것 이상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다르게 상상하고, 누군가는 다르게 실천한다. 그 차이를 통해 더 풍부한 지혜의 생태계가 조성된다. 이리저리 조직도를 바꾸며, 다양하고 실천적인 관계성좌를 만들어내는 것이 곧 우리의 지혜 생산 과정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혜를 ‘소유’하는 자들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들이다.

그동안 조합원들과 함께 나눈 공동체 밥상들. 우리는 협동조합이지만, 자본을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기 위해 모인 ‘돌봄의 공동체’, 즉 서로를 살리는 보살핌을 중시하며 그것을 통해 생산되는 관계망이 가장 중요한 부부(富)가 되는 공동체이다. 사진 제공 : 생태적지혜연구소

질문의 공동체, 돌봄의 공동체

우리는 연구자이자 활동가이고, 돌보는 이들이자 배우는 이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연구소’라는 이름은 단순한 학문적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함께 사유하는 질문의 공동체를 뜻한다. 이미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다르게 구성하며, 그 속에서 서로의 생각과 삶을 엮어가려 한다.

생태적지혜연구소와 동거하고 있는 반려종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달공, 모모, 또봄, 길동. 사실 고양이들 외에도 화분과 액자, TV, 노트북 등 연구소의 사물들도 반려종 아닌 게 없지만 말이다. 사진제공 : 생태적지혜연구소

동시에 우리는 협동조합이지만, 자본을 모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돌보기 위해 모인 돌봄의 공동체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익이 아니라 관계이며, 경쟁이 아니라 연결이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관계망이야말로 이 시대 가장 값진 부(富)라고 믿는다.

물론 ‘공동체’라는 말이 지닌 폐쇄성과 동질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 단어에서 가능성보다 한계를 더 먼저 읽는 비판적 시각이 우리 내부에도 존재한다. 우리에게 공동체란 하나의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함께-살아가기의 과정, 즉 돌봄을 기반으로 서로를 반려종 삼아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실험적 실천이다. 그것이 ‘공동체’이든 ‘공생체’이든 혹은 ‘얽힌 존재들’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생태적지혜연구소는 작고 평범한 도토리 한 알이다. 이 하찮은 힘으로 오늘날의 이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삶을 바꾸는 작은 실험들, 가내수공업처럼 둘러앉아 만드는 웹진과 책,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세미나와 강좌와 토론회들, 공동체 밥상과 소소한 동네 모임을 이어가면서, 땅 속에 뿌리내리고 싹을 틔워서 천천히 가지를 뻗어갈 것이다. 어느 날 우리는 볼 것이다. 도토리 한 알이 떡갈나무 숲이 되는 천이(遷移)의 광경을. 우리는 그 도토리 한 알이다.

이 글은 영등포산업선교회 2025년 하반기 현장심방 핸드북에 실린 글의 수정본이며, 발행기관의 동의를 받아 웹진 《생태적지혜》에 재게재한다.

별난

느리게 천천히 작동되는 시간, 차 한 잔과 고양이의 재롱이 있는 작은 삶의 영토, 그곳에서 생각하고 재발견하고 토론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더 풍부해지고 다양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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