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과 ‘ㄹ’이 들어가는 이름
《삼국사기》1에 따르면 지증마립간이 집권하고 있던 때2에 ‘신라’라는 국명이 확립된 듯하다. 다음과 같은 역사 기록이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4년(서기 503) 겨울 10월,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羅)’는 ‘사방을 덮는다’는 뜻이므로 ‘신라’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합니다.”3
신하들이 ‘신라’를 나라 이름으로 삼자고 하였다. 신하들은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사라(斯羅)·사로(斯盧)·신라(新羅)는, 초기 신라의 중심지역을 부르는 고유 명칭을, 한자의 음을 빌어 표기한 여러 가지 경우인 듯하다. 이 이름들 외에, 서벌(徐伐)·서나벌(徐那伐)·서야(徐耶)·서야벌(徐耶伐)·서라(徐羅)·서라벌(徐羅伐) 등도 초기 신라 혹은 신라의 수도의 이름을 기록할 때 쓰인 말들이고, 금성(金城)·동도(東都)·동경(東京) 또한 그러하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이 이름들은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① 사라(斯羅)·사로(斯盧)·신라(新羅)
② 서벌(徐伐)·서나벌(徐那伐)·서야(徐耶)·서야벌(徐耶伐)·서라(徐羅)·서라벌(徐羅伐)
③ 금성(金城)·동도(東都)·동경(東京)
①은 ‘ㅅ’과 ‘ㄹ’이 들어가는 이름들이다. ②는 ‘ㅅ’이 들어가는 이름들이다. 이 이름들에 ‘ㄹ’이 변형된 상태로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다. ③은 후기 신라나 고려 이후에 쓰인 이름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여기에서 금(金)을 그 뜻인 ‘쇠’를 취하여 읽으면 금성이라는 이름도 ‘ㅅ’이 들어가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동풍(東風) 즉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샛바람이라고 부르는 데에서도 볼 수 있듯, 동쪽을 뜻하는 고유어에는 ‘ㅅ’이 들어간다고 추정하여 볼 때, 동도·동경 따위의 이름들도 ‘ㅅ’이 들어간 고유어를 의식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동이 해가 떠오르는 방향 또는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방향 혹은 땅임을 옛 사람들이 중요시하였고, 그런 관점의 중심에 있다고 할만한 ‘새로움’이라는 가치가 ③ 뿐만 아니라 ①·②에 열거된 이름들에도 내포되어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 듯싶다.
지금까지 전하여 오는 기록들을 근거로 하면, ‘ㅅ’과 ‘ㄹ’이 들어가는 이름이었으리라는 추정 이외에, 초기신라의 수도를 부르는 당대 신라 고유어가 무엇이었으며 거기에 어떤 뜻이 담겨있었는지를 추정이나마 할 수 있는 있는 근거는 매우 부족하다. 바다 건너 이웃 나라가 오래 전부터 사용하여 온 日本(일본/NIPPON)이라는 이름이 ‘해가 떠오르는 곳’임을 뜻하는 말이었다는 것과 비교하면서, ①·②·③이 아우르는 이름들이 공통되게 ‘떠오르는 새해를 처음 맞이하는 동쪽 벌판’을 조금씩이나마 연상시킨다는 주장을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주장 이외에도 다양한 근거에 의한 다양한 주장들이 아직도 경쟁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
지증마립간이 집권하고 있던 때 여러 신하들은, 초기 신라의 수도를 부르는 당대 신라 고유어가 있었음에도, 한자의 음을 빌어 그 고유어를 표기한 것들 가운데 하나인 ‘신라(新羅)’에 새삼 의미를 부여하면서 앞으로 신라를 나라 이름으로 하자고 지증마립간에게 청하였다. 의미 부여의 방식과 내용은 그 신하들의 다음과 같은 진언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저희들은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羅)’는 ‘사방을 덮는다’는 뜻이므로 ‘신라’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신(新)·라(羅) 두 글자를 접점으로 하여 신라(新羅)라는 이름에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하여[덕업일신(德業日新)] 천하를 아우르기[망라사방(網羅四方)]’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지향성을 덧입힌 것이다.
덕업일신(德業日新) 즉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한다는 것은 최고의 지배자가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덕업일신이라는 말은 ‘일신 우일신’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 말의 연원은 중국 고사이다. 중국 고대 상(商)나라의 탕왕(湯王)은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이라는 글귀를 목욕 도구에 새겨놓았다고 한다. 이 글귀는 “실로 날마다 새로워지고, 날마다 새로워지되,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탕왕은 몸을 씻을 때마다 그 글귀를 보면서 나날이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고 한다. 달리 말하자면 자기수양의 결의를 날마다 새로이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교 경전 《대학(大學)》에서 수신(修身)을 논하는 대목에 이 글귀가 인용되어있고, 이로부터 ‘일신우일신’이라는 상투적인 구호도 나오게 된 듯하다. ‘일신우일신’이라는 말의 연원을 살펴본 과정의 연장선상에 놓고 보면 덕업일신이라는 말은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함’이라고 풀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덕업이란 아버지가 왕이라서 권력을 세습한 자[군자(君)]4가 물려받은 권력 즉 힘[력(力)]이 아니라 어짐[덕(德)]을 갖추기 위하여 스스로 갈고 닦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날로 새롭게’ 달리 말하자면 쉼 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을 덕업일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5
망라사방(網羅四方)은 문자 그대로라면 ‘사방을 덮는다’라는 말이다. 사방은 전 세계 혹은 천하로 볼 수 있겠다. 망(網)은 물고기 잡는 그물이고, ‘라(羅)’는 새 잡는 그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망라는 하늘에서 물속까지 모든 곳을 덮을 수 있는 그물 혹은 그물 치기라 할 수 있고, 이때의 그물 치기를 천하와 결부시킨 것의 의미를 천하를 아우름으로 확장시켜볼 수 있다.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은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하여 천하를 아우르기’라고 할 수 있다. 지증마립간의 신하들은 나라 이름을 신라라고 정하면서 그 이름에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하여 천하를 아우르기’라는 정치적 지향성을 더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라가 서고 나서 400여년이라는 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새삼 나라의 이름을 정하려는 시도는 나라의 정치적 지향성과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 ‘천하를 아우르기’ 만을 중시하였다면, 그것은 인접한 다른 정치체들에 대한 위협과 적대 즉 다양한 수준의 폭력을 함의한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사용되는 용어로 말하자면 패권적이라거나 제국주의적이라는 비평을 받을 것이다. 지증마립간의 신하들은 이러한 망라사방 만을 강조할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그들은 그들이 제시한 정치적 지향성에서 뒷부분보다 앞부분 즉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하기’를 더 중시하였을 것이다. 군주가 권력을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덕을 쌓아 나날이 새롭게 되는 것을 바탕으로 천하를 아우르기. 이것이 신하들이 제시하고자 한 정치적 지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적 정당화
나라가 만들어진 땅을 나라의 이름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영국의 나라 이름에 브리튼이 들어간 것이 그 예다. 나라의 구성원들 혹은 지배집단 구성원들이 혈통상 비교적 단일한 경우 같은 혈통에 속하는 사람들의 집단의 이름을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아리안족의 나라라고해서 이란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 그 예다. 이에 비하면, 그것이 ‘떠오르는 새해를 처음 맞이하는 동쪽 벌판’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름이든 아니면 다른 뜻을 담고 있는 이름이든, ‘ㅅ’과 ‘ㄹ’이 들어가는 이름’은 조금 복잡한 생각을 거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의 생각은 이웃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자기네 나라가 ‘해가 떠오르는 곳’[일본(日本)]이라고 누군가가 스스로 말한다면, 햇빛이 삶에서 중요한 이웃 나라들은, 결국은 어이없어 하게 될지라도, 당장은 조금 불편해할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는 이름에 취해서 자신들이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뭉치게 되면, 이웃에 대한 폭력이 뒤따르게 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자기중심적 사고가 성찰없는 폭력행사로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생각이 다짐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큰 부작용을 수반하는 행동을 낳게 되는 경우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떠오르는 새해를 처음 맞이하는 동쪽 벌판’이나 ‘해가 떠오르는 곳’도, 망라사방(網羅四方) 즉 ‘천하를 아우르기’에 비하면 훨씬 덜 폭력적이다. 천하를 아우른다면 그 결과는 세계의 중심인 나라6일 것이다. 구성원 전체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나라는 엄청난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라는 작고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천하를 아우르는 역할을 스스로 맡았으나 엄청난 폭력 같은 것을 행사할 기회는 가지지 못한 듯하다. 신라는 삼국통일이라는 지역적 정복 작업에 수반되는 폭력을 행사하는 데에서 그쳤다.
그리고 신라는 망라사방(網羅四方) 앞에 덕업일신(德業日新) 즉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함’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최고 권력자가 쉼 없이 자기수양을 할 때 천하를 아우를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경계(警戒)를 신라라는 나라 이름 속에 새겨 넣은 것이다. 덕업일신은 망라사방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도덕적 정당화에 대한 가장 박한 평가는 그것이 결국 왕권강화를 위한 꾸밈에 불과하다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아래의 인용문을 증거로 들 듯하다.
“또 옛부터 나라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으로 칭하였고 존엄한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지금 여러 신하가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리옵니다. 임금이 이 말에 따랐다.7”

이 인용문을 두고 신라라는 말에 의미를 잔뜩 부여하면서 국호로 채택할 것을 권력자에게 권한 신하들의 의도는 권력자에게도 신라국왕이라는 새로운 칭호를 바침으로써 지배집단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함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주장하였듯, 생각이 다짐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큰 부작용을 수반하는 행동을 낳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이 다짐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사람들의 행동을 보다 성찰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권력자에게 신라국왕이라는 칭호를 바친 것은 그에게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함’을 촉구함으로써 이웃을 폭력적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 천하를 아우르는 것을 지향하도록 권하고 격려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선의(善意)를 발휘하려는 노력에 대하여 위선(僞善)이라고 하면서 냉소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더 극단적인 사람은 차라리 위악(僞惡)이 위선보다 나으며 솔직해서 멋있다고 하기까지 한다. 멀리 갈 것 없이, 내 주변을 돌아보면, 지금 여기 남한 사회의 분위기가 앞서 말한 분위기와는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누군가 가치를 오염시키고 남용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지금은 가치보다 실용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기도 하다. 지증마립간의 신하들이 신라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여 나라 이름으로 정하는 과정에는 외적으로나마 선의 즉 선한 의도 혹은 선한 의지가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것일 뿐일 수도 있다. 지증마립간 치세에 벌어진 이 일에 관한 평가는, 앞서 인용한 역사 기록의 정밀한 검토에 더하여, 세계사의 여러 장면들과 이 이야기를 비교하여 봄으로써, 구체성을 가질 듯하다. 예컨대 나치가 동유럽과 러시아를 침공을 독일인의 생활공간을 넓히기 위한 정당한 전쟁으로 규정한 것과 덕업일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망라사방을 비교하여보는 것도 무익하지 않을 듯하다.
역사에서 권력자나 정치인이 자신들의 정치적 선택과 지향성을 선한 의지와 결부시키면서 도덕적으로 정당화한 것이 말 뿐으로 그친 듯 하더라도, 어쩌면 그 말을 구성해낸 것 자체가 돌고 돌아 먼 훗날 정치에 티끌만큼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에 비하여, 위악이나 냉소가 현재의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미래의 세계에 남기는 유산은 어떤 것인지가 궁금하다면 여러 역사를 두루 살피는 것도 시간 아깝지 않은 일일 듯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제4권 〈신라본기(新羅本紀)〉 제4 ‘지증 마립간(智證⿇⽴⼲)’ ↩
재위기간 500년 ~ 514년 ↩
[네이버 지식백과] 지증 마립간 [智證⿇⽴⼲]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四年 冬十月 群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 宜矣” ↩
본래 문자 그대로의 군자(君子)가 뜻하는 바는 군주의 아들이다. ↩
그리하여 군주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쉼 없는 수양을 통하여 덕성을 함양하고자 하는 자를 수양군자(修養君子)라 하기도 한다. ↩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중국(中國)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라는 이름은 나라 이름으로써는 최고로 폭력적일 수 있는 것같다. ↩
[네이버 지식백과] 지증 마립간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群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