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재시동하는 바이러스 코드
Wall·E happily shows that the ”broken“ software, the mental disorder of the little robot, is the viral code that reboots Earth: this time around, we evolve from memes, not genes. (p.2, Introduction: Critical Thinking, 『The Ecological Thought』)
월·E는 고장난 소프트웨어 즉 작은 로봇의 정신적 장애가 지구를 재시동하는 바이러스 코드임을 멋지게 보여준다. 이번에 우리는 유전자가 아닌 밈으로 진화한다. (p.2, 서문: 비판적 사고, 『생태적 사유』)
처음 읽은 날의 기록:
영화 《월·E》 (2008년)를 찾아봤다. 대사가 별로 없어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월·E와 이브가 우주선을 빙빙 돌며 춤을 추는 장면이 아름다웠다.
다시 읽은 날의 기록:
happily를 ‘행복하게’라고 해석하면 말은 되지만 느낌이 이상하다. 사전을 찾아본다.
행복하게, 만족스럽게, 즐겁게, 기꺼이, 운 좋게, 다행(요행)히도, 잘, 멋지게, 적절하게
‘행복하게’는 일단 탈락, ‘만족스럽게’는 부족(不足)함과 대조될 때 쓰고 싶으니 탈락, ‘즐겁게’는 영화를 안 본 사람에게 느낌을 강요하는 것 같아 탈락, ‘기꺼이’는 어려운 일을 흔쾌히 받아들일 때 쓰고 싶으니 탈락, ‘운 좋게’와 ‘다행(요행)히도’는 앞뒤 맥락 없이 쓰기 어려우니 탈락, ‘잘’은 괜찮지만 구체적인 느낌이 부족하니 탈락, ‘멋지게’ 이거다! 예술은 ‘멋’이 있어야지. 마지막 ‘적절하게’는 + 느낌이 아니라 ±0의 중립적인 느낌이 드니 ‘멋지게’로 확정.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행복’이라는 말은 평범한 것과는 다른 느낌이어서 흔히 주고받는 대화에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동화책 마지막 구절 ‘그 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반복된 기억 때문인지 주인공처럼 왕자도, 공주도, 착해서 하늘의 복을 받아 부자가 된 사람도 아니어서 나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월·E’ 영화를 보며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고, 설레고, 몽글몽글하고, 뭉클했는데 왜 ‘행복하게’라고 쓰기가 어려울까. 바로 앞에 쓴 에세이에서 평범함으로 강력하게 무장했지만 ‘행복’의 무게감에 바로 무장해제 되었다.
…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돈이 부족한 게 아닌지 확인하자
‘행복’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나싶은데 우리 조합(두동초사회적협동조합-교육부 인가를 받은 학교협동조합)의 학생조합원인 초등학생이 “나의 신조는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돈이 부족한 게 아닌지 확인하자’예요”라는 말을 했다. 순간 내 머리 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이 날아다녔다.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쓰는 거지 진짜 신조는 아닐 거야, 유튜브에서 들었을까?, 뭐라고 얘기해줘야 되지?, 너무 교과서적인 얘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꼰대? 안 돼!’
기록을 해보는 게 좋겠다 싶어 언제 행복한지 써보자고 했다. ‘피아노를 칠 때, 풍경을 볼 때, 사진을 찍을 때, 노래를 부를 때, 친구들과 있을 때,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폰 할 때(?),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다고 8가지를 술술 써내려간다. 쓴 것 중에 돈이 드는 건? 없다! 물론 피아노를 사려면 돈이 들지만 즐기는 마음은 말 그대로 마음껏이다.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냥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날 이후 한동안 아이들을 만날 때면 언제 행복한지 포스트잇에 쓰게 했다. 다른 아이들은 뭐라고 썼는지 읽어보며 음…하고 펜을 얼굴에 대고 생각하더니 쓴다.(이런 장면이 ‘행복 밈’이 아닐까) ‘아이돌 덕질 할 때, 만화 볼 때, 여럿이 합주할 때…’ 그 다음엔 행복을 다른 단어로 바꾸면 뭐라고 할지 물어봤다. ‘도파민(기분이 좋아지는 것), 획득, 성취, 성장, 음악, 함께, 평화’라고 했다. 우리가 행복할 때라고 써놓은 것을 같이 보며 완전히 혼자일 때는 언제냐고 물어봤다. 없다. 만화 볼 때 혼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화를 보려면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만화를 그리려면 종이, 펜도 있어야하고 종이 만들 나무, 나무를 키우는 햇빛, 바람, 비, 나무를 자르고 종이를 만들고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회사… 분명 혼자 만화를 보고 있지만 혼자가 아니다.
아이들이 좀더 구체적으로 쓰길 유도한다. 음악을 할 때가 행복하다고 하면 어떤 음악인지, 어떤 노래인지, 어떤 악기인지 물어보고 답하면 바로 그걸 쓰라고 했다. ‘나는 오케스트라에서 붉은 노을이라는 노래로 플룻 연주할 때 행복하다’로 고쳤다. 동생이 바로 밑에 ( )를 치고 쓴다. ‘사실 언니는 이 곡을 부를 때마다 짜증을 내면서 악기를 던지려고 하고 짜증을 낸다’(이 장면도 ‘행복 밈’) 누나를 따라 온 동생은 언제 행복한지 물으니 배시시 웃으며 ‘두친 올 때 그냥 행복하다’고 쓴다. 그냥은 강력하다.
어떤 중학생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해받을 때, 평화로울 때, 문제가 없을 때, 신경 쓸 게 없을 때 행복하다. + 세상에 부조리가 너무 많음’이라고 썼다. 또 다른 중학생은 ‘행복은 멀리 있진 않지만 그것만으로 만족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썼다. 어떨 때인지 물으니 ‘피아노를 친다면 더 잘 치고 싶고 더 잘 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순간에 만족이 안 된다’고 한다.
스토아 철학의 행복

세상과 자신에게 만족이 안 된다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생각하며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은 행복을 에우다이모니아(εὐδαιμονία, Eudaimonia), eu(좋은)+daimon(수호신/영혼)= 좋은 영혼의 상태 즉 ‘좋은 삶’이라고 했던 게 떠올라 스토아 철학을 찾아본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에우다이모니아는 인간의 번영 또는 잘 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고대 그리스어 용어를 흔히 “행복”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와 대부분의 고대 철학자들이 이해했던 에우다이모니아는 “행복(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처럼 마음의 상태나 쾌락, 만족감과 같은 감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에우다이모니아는 최고의 인간적 선이며,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바람직한 유일한 인간적 선입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고유한 역할을 꾸준히 수행함으로써 달성되는데, 이리스토텔레스는 그 역할이 이성적 사고 능력, 덕성, 그리고 탁월함을 갖추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출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AI』
행복한 삶은 자신의 본성에 맞추는 삶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정신이 건강하면서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다음으로 정신이 강하고 힘이 있으며, 또한 훌륭하게 참아내고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며, 자신의 몸과 그 주변을 돌보되 과하지 않으며, 삶을 이루는 여타 것들에 관심을 두되 추앙하지 않으며, 운명의 선물을 이용하되 끌려다니지 않을 때 만나게 됩니다. 제가 더는 말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우리를 괴롭히고 두렵게 하는 것들을 떨쳐버린 후 찾아오는 영원한 평정과 자유를 알고 있습니다. 사소하고 허망하며 헛되고 해로운 쾌락을 대신하여, 커다란 즐거움이 자리합니다. 굳건하고 변함없는 즐거움이, 마음의 평화와 조화 그리고 부드러운 관대함이 자리합니다. 허약함에서 가혹함이 나오는 법입니다.
『세네카의 대화: 인생에 관하여』 ‘제7권 행복한 삶에 관하여’ 218~219쪽
몇 번을 다시 읽으며 뜻을 생각해보게 되는 스토아철학을 아무래도 멋지게 설명해줄 수는 없겠다. 대신 나는 아이들에게 ‘언제, 뭐할 때 행복한지’ 물으며. ‘행복 찾기’를 계속 할 것이다. 즐거운 순간을 떠올리고, 다른 단어로 바꿔보고, 함께 더 깊은 생각을 하며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의 본성에 맞는 멋진 삶, 좋은 삶’, 자신만의 ‘에우다이모니아’를 발견하기를 기다릴 것이다.
조약돌 넷
기다림. 글의 초안을 쓸 때는 발견할 수 없었는데 퇴고하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겠다고 쓰는 순간 기다림이 새로운 조약돌이 되었다. 우리는 유전자가 아니라 서로의 행복을 묻는 멋진 밈으로 진화하고 있다.
추신.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이라는 소제목은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알랭 보통, 인생학교 글, 신인수 번역, 미래엔아이세움, 2022년)에서 따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