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에 숙소를 나선다. 근처 공원을 거닌다. 스트레칭을 한다. 턱걸이, 윗몸일으키기도 한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한다. 아침을 잘 안 챙겨 먹었는데, 이 일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할 것만 같아 부러 먹는다.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꾸준히 스트레칭은 하지만, 근력 운동은 예전만큼 하진 않는다. 일이 끝나면 마냥 쉬고만 싶고, 일 시작 전엔 근력 운동으로 힘을 빼버리면 일할 에너지가 부족할까봐. 일종의 방어기제랄까. 보상심리 같은 것이기도 하고. 이렇게 신경을 쓰는데도 몸 이곳저곳이 신호를 보낸다. 근육통은 의외로 없다. 그것보다 관절이 아프다. 손가락 마디, 손목, 어깨, 허리, 무릎 등. 뼈들끼리 너무 친해져 있다. 거리를 좀 둬야 하는데, 자주 접히고 만나다 보니 서로 싫증(실은 염증)이 좀 났나 보다. 그냥 목수 일에 적응하는 중이려니 한다.

현장에 도착해 하늘을 올려다보면 ‘ㅅ(시옷)’이 지나간다. ‘새’가 ‘ㅅ’이 되어 ‘스윽’하고. 철새들이다. 아마 오리겠지? 기러기인가? 조류 공부 좀 해야겠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현장 일은 오죽할까. 모르는 것 투성이다. 나무도 모르고 공구도 모르고 일도 모르고 집짓기도, 사람도 모른다. 사실 모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공부하면 되고 알아가면 되니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열정이 좀처럼 살아나질 않는다는 것. 언제부터냐 하면 이 일을 하기 훨씬 전부터다. 아마 간사일 때부터? 사실 언제부터인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대상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 모든 것에 열정이 없는 건 아니다. 미랑을 나는 ‘열정’이란 단어가 부족할 정도로 사랑하고, NBA 필라델피아 경기는 열정적으로 챙겨보는 팬이고, 돈 버는 일 아닌 딴짓 하기와 지적 허영을 위한 책 읽기와 글쓰기에 열정적이니까.

이제 막 시작한 목수 일에 열정이 좀처럼 살아나질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할지 모른다. 그냥 힘들어서거나 막연해서거나 아직 ‘돈벌이를 위한 일’ 이상의 무엇을 경험・발견하지 못해서거나. 일단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힘든 것도, 막연한 것도, 어떤 재미나 매력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일이라 생각하기로.

이윽고 땅을 내려다 보면 ‘ㅎ(히읗)’이 타오른다. ‘화(火)’가 ‘ㅎ’이 되어 ‘활활’하고. 깡통 속 나무가 불이 되어 11월의 새벽을 녹인다. ‘열정이 여기에 있구나.’ 11월의 초보 목수를 녹인다. 덥힌다. 이리 불 쬐다 보면 서서히 뜨거워지겠지. 구들방 아랫목처럼. 그러고보니 내 사주엔 나무가 많다 그랬다. 근데 직업운엔 “금이나 토의 기운 혹은 화의 기운에 해당하는 직업으로 이를 중화시켜야” 한댄다. 심지어 마지막 문구는 이렇게 쓰여 있기도.. “목재나 제지 혹은 가구 등 나무와 관련된 모든 직종은 좋지 않습니다”. 왜 그런 거지? 나무의 기운이 으뜸으로 존재하면 목수가 천직이어야 되는 거 아닌가? 아, 역시 모르는 것 투성이다.
뭐 물론 사주・운세를 그리 믿는 편은 못 된다. 설령 내게 나무의 기운이 으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나무와 관련된 모든 직종이 좋지 않다면 나는 내 안의 나무를 당분간은 불태워야겠다. 구들방 아랫목처럼 서서히. 저 깡통 속 나무처럼 활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