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이 드디어 장가를 들었다. 제 친구들은 이미 다들 혼인을 하여 자식을 하나씩 둘씩 낳아 기르며 가장 노릇을 하고 있는데 정식은 스물일곱이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 하고 있었다. 1970년대만 해도 스물일곱까지 장가를 가지 못 하고 있는 사람은 노총각으로 여겨졌다. 없는 살림에 자식 하나 혼인시키는 것도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상덕씨와 보성댁은 애를 끓이고 있던 차에 중매가 들어왔다. 딸만 셋 있는 집안의 큰딸이어서 형제가 많은 집이면 좋다는 게 그쪽 집에서 내건 조건이었다. 아 그러니까 팔남매가 있는 이 집이 안성맞춤 아니냐며 순천에서부터 밤골로 한달음에 쫓아온 누갈다씨가 너스레를 떨었다.
보성댁이 직업군인으로 복무 중인 큰아들에게 한번 시간 내서 오라고 했고 저쪽 부모와 당사자인 큰애기, 이쪽에선 보성댁 부부와 큰아들이 함께 만났다. 커다란 눈망울이 순박해 보이는 고운 큰애기였다. 말도 많지 않고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이쪽을 한 번씩 건너다 보다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순진해 보여 보성댁의 마음에 들었다. 큰아들도 맘에 들어 했다. 저쪽 집에서도 신랑감이 듬직하고 시부모가 점잖아서 좋다고 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혼인식을 치르고 보성댁의 집에서 첫날밤을 치르고 없는 살림이라 신혼여행이랄 것도 없이 관사가 있는 군부대로 떠났다. 그저 둘이 아무 탈 없이 잘 살기를 바라며 떠나보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남은 자식들과 집안 살림과 씨름을 하며 지내며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사진출처 : Min An
“회장떡! 회장떡!”
건너편에 사는 지면장댁이 보성댁을 찾았다.
“아, 아주머니 오셨어요?”
“이이, 저 전화, 전화 왔어.”
“예? 전화요? 어디서요?”
“이, 집이 메느리여 메느리……”
전화온 걸 알려주러 오느라 뛰어 왔는지 지면장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옴마! 그래요 얼렁 갑시다 얼렁.”
그러고는 보성댁은 지면장댁보다 앞서 뛰어 달렸다. 건너편 집이라지만 넓은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큰길을 건너서 가는 곳이라 제법 거리가 되었다. 지면장댁 대문으로 들어가 안방 앞으로 가니 열린 방문으로 전화기 옆에 내려져 있는 수화기가 보였다.
“여보세요. 이, 아가 나다.”
“아, 어머니 별 일 없으셨어요?”
“이냐이냐, 그래 느그도 벨 일 없고?”
“네, 어머니. 저희들 이번 주말에 가려고요”
“이? 토욜에 온다고? 왜? 먼일 있냐?”
며느리가 온다는 말에 보성댁은 반가우면서도 걱정부터 밀려왔다. 먼 날도 아닌디 멀라고 올라고 흘끄나? 생각하는데
“아니요오 어머니 생신이 곧 돌아오잖아요.”
“이? 나 생일? 이이 얼마 안 남긴 했다 이.”
“저 시집오고 어머니 첫 생신이니까 찾아뵈어야지요.”
오메오메 생긴 것도 얌전하고 행동도 조신하드만 맘 쓰는 것까장 저라고 이쁠끄나.
“아이고 힘든디 멀라고 꼭 올라개쌓냐. 안 와도 괜찮은디.”
반가운 마음과는 다른 말이 나오는데
“아니에요. 어머니. 저 사람이랑 토요일에 같이 갈게요. 그럼 그때 봬요. 어머니. 이만 끊을게요.”
“이이 그래그래 알았다. 이”
뒤따라 들어와 옆에 앉은 지면장댁이 물어 왔다.
“메느리가 뭐랴? 먼일 있댜?”
“아, 아니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배시시 나와 얼른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 했다.
“나가 생일이 곧 돌아온다고 우리 메누리가 온다고 안 하요. 이”
이렇게 말을 할 때 보성댁의 얼굴을 자랑과 행복으로 가득 찼다.
“오메, 시어매 첫 생신이라고 오는갑네. 먼디서 오니라고 고생이 많겄다.”
“금메 말이요. 안 와도 된당께 저라고 꼭 온다고 흐네요. 전화 받아줘서 고맙소, 예”
집으로 돌아오는 보성댁의 발걸음은 날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보성댁은 본인 생일상을 받아본 적도 차려본 적도 없었다. 혼인을 한 이후 보성댁의 삶은 남편에게 맞춰졌고 자식들이 태어나면서는 자식들에게 조금 맞추기는 했지만 보성댁 삶은 중심은 늘 남편이었다. 그래서 남편 생일이 돌아오면 생선 한 마리라도 더 구워 상에 올렸고 나물 반찬이라도 무쳐서 상을 차렸다. 가난한 살림이라, 하고 싶은 만큼 걸게 차리지는 못 했지만 가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도 생일이 돌아오면 소고기는 못 넣어 바지락미역국이라도 끓여 상을 차렸지만 자신의 생일에는 미역국도 올리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역국이 올라오면 아, 오늘 누구 생일이지? 묻기는 했지만 미역국마저도 없으면 아이들도 엄마 생일을 모르고 지나가 버렸다. 위로 셋이 사내 아이여서인지 딱히 엄마 생일이라고 챙기는 경우도 없었다. 그런데 며느리를 얻고 나니 그 며느리가 시어머니 생신이라고 그 먼 부산에서부터 오겠다는 것이다. 내 자식이 팔 남매나 되어도 어느 놈 하나 챙기는 놈이 없더니만, 이 맛에 며느리들을 보는 건가 보다 생각하며 보성댁은 설레는 마음으로 주말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를 하고 퇴근하고 점심 먹고 출발하려면 느지막이 오려니 했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학교 갔다 오전 수업 끝내고 온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엄니, 엄니!”
“옴마, 먼소리다냐? 아이 느그 오빠가 그새 왔는갑다. 얼릉 나가 봐라.”
딱히 보성댁의 말이 아니더라도 미자와 성식이가 벌써 일어나 문을 열고 있었다.
“옴마, 엄마! 큰오빠랑 새언니 왔어요. 어서 오세요.”
“오메 어찌 벌써 왔냐. 밥들은 묵었냐? 아이 선자야. 얼렁 가서 밥이랑 국이랑 떠 와라. 잉.”
둘러앉아 밥 먹던 자리가 수선스러워졌다. 밥 먹던 상을 잠시 옆으로 치우고 큰아들 내외의 큰절 인사를 받았다.
‘다음엔 그냥 인사를 받드라도 오늘은 첨인께 큰절 받아야제.’
속으로 생각하며 보성댁은 인사를 받았다. 그 사이 선자가 밥 두 그릇과 국 두 그릇, 수저 두 벌을 챙겨서 쟁반에 들고 들어 왔다.
“이, 밥 왔다. 얼렁 그리들 앙거서 밥 먼저 묵자. 이 앙거라 앙거.”
다들 다시 밥상 앞으로 둘러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이 근디 어찌 요로고 빨리 왔다냐? 오늘 출근 안 했냐?”
“예, 이 사람이 길 멀다고 오늘 휴가 내라고 해서 휴가 내고 아침에 출발했어요.”
“이, 그랬구나. 아적에 일찍 나오니라고 애썼겄다. 얼릉들 밥 묵어라.”
큰딸이라등만 얌전하기만 한 게 아니라 속도 짚고 그르네. 우리 큰아들이 장개를 잘 갔네 이렇게 생각하며 밥을 먹었다. 세상에서 자신이 며느리를 제일 잘 얻은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난 며느리는 밥상부터 들고 일어섰다.
“아이 느그 언니 피곤하다. 상은 느그들이 치와라. 느그 새언니 좀 쉬게.”
선자는 선선히 네 하고 밥상을 들고 나갔지만 며느리도 가만히 있지 못 하고 같이 밥 먹은 자리를 치웠다. 딸들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며느리는 가져온 짐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 입고 부엌으로 나갔다.
“아이, 나가 같이 흘끄나.”
보성댁은 걱정이 되어 부엌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어무니. 그냥 양념이 어딨는지만 말씀해 주시고 들어가 계세요. 제가 흐믄 되어요.”
“이이 알았다. 장이랑 소금은 요깄고 꼬치가리는 요고고 이, 마늘은 여깄다. 또 뭐가 필요흐냐?”
“음, 이게 설탕이지요? 참지름은 요고고, 뭐 더 필요흔 거 있으믄 여쭐게요. 들어가 계세요.”
“오냐 오나 알았다. 글믄 애써라 이. 아이 느그들도 새언니 도와서 같이 좀 해라.”
그래봐야 딸들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마늘이나 까고 준비한 재료를 씻는 정도가 다였다. 그래도 엄마 생신이라고 올케 언니가 와서 음식을 이것저것 하는 걸 보며 잔치 기분이 나는 걸 재미있어 하고 부엌에서 같이 복닥거리고 있었다. 보성댁은 늘 부엌에서 밥을 해서 차려주며 지내다가 차려주는 밥을 먹겠다고 앉아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도 같고, 이게 꿈인가 싶기도 했다. 문득 큰아들이 처음 전기밥솥을 사왔을 때가 생각이 나기도 했다.
“엄니, 요기다가 쌀 씻어 담가가꼬 요렇게 전기를 딱, 꽂고 여기를 딱, 눌러놓으면 밥이 알아서 다아 된다요. 뜸도 지가 알아서 다 흐고 긍께 인자 밥솥에 불때고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당께요. 근디 밥 흐는 동안에는 뚜껑 열믄 절대로 안 돼요. 아시겄죠?”
직업 군인이라 PX에서 한 번씩 새로운 가전제품이 나오면 이렇게 큰아들이 하나씩 사서 가져왔다. 선풍기, 텔레비전, 전기밥솥, 냉장고. 그렇게 보성댁의 집에도 큰아들 덕에 새로운 가전제품이 생길 때 보성댁은 아들 키운 덕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제대로 먹이지도 못 하고, 지 친구들, 고등학교 다니고 대학 가는 친구도 있을 때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 한 큰아들에게 이렇게 덕을 보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한 마음이었다. 마음 한켠에 있는 미안한 마음을 지워 버리지 못 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런 큰아들을 장가 보내고 그 큰며느리가 차려주는 생일 밥상을 받게 되니 기쁘고 고마운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신에게 안겨주고 곧 누군가 뺏어가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들이 어디 있나 궁금해 아들들이 쓰는 방에 가 보니 큰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방에는 막내 성식이가 숙제를 하는지 공책을 앞에 두고 뭔가를 쓰고 있었다.
“아이, 큰 성 어디 갔냐?”
“모르겄는디요?”
큰형하고 18살 차이나는 막내 성식은 겨우 기저귀 떼고 걸음마 시작할 무렵 집을 떠난 큰형이 늘 어렵고 어색했다. 누나랑 형들이 큰오빠, 큰성 하면서 반기는 걸 보며 아 큰성이구나 하면서도 낯설어 형에게 얼른 말을 붙이지 못 했다. 오랜만에 만난 큰형이 어린 동생이 귀여워 이런 저런 말을 걸면 우물쭈물 부끄러워하며 대답도 잘 하지 못 했다. 그래서 큰형이 방에 같이 있지 않고 나간 게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가 와서 물어보니 자신이 나쁜 맘을 먹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서 찾아 보까요?”
“아니 냅둬라. 어디 바람이나 쐬러 나갔는갑다.”
그러고는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섰다. 집 뒤로 돌아 텃밭 있는 쪽으로 가니 상덕씨와 큰아들이 같이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 멋흐고 있냐?”
가까이 가보니 큰아들은 낫을 들고 풀을 베고 있었다.
“방안에서 흘 일도 없고 심심해서 풀 좀 비고 있어요.”
“이, 그냐. 더운디 나왔냐.”
“아버지 혼자 밭에 계신께 나와 봤어요.”
“이, 그래 고맙다.”
그러고 있는데 미자가 왔다.
“엄마, 아부지, 큰오빠. 밥상 다 차렸다고 들어오시래요.”
“이, 벌써 다했다냐. 예 정식이 아부지 들어갑시다. 정식이 니도 그만 흐고 손이랑 발이랑 시츠고 들어가자.”

사진출처 : SenuScape
그러고 보니 해가 슬쩍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보성댁으로서는 생각지 못 했던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소불고기에, 잡채에, 전에, 갖은 나물에, 소고기 들어간 미역국에 보성댁이 자신의 생일에 차려본 적이 없는 밥상이 차려져 있고 며느리는 밥을 쟁반에 담아 옮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기다리느라 수저를 들지 못 한 채로 침을 삼키고 두 눈을 반짝이며 밥상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보니 팥시루떡도 한 접시 올려져 있었다. 밥상을 보며 나가 살다보니 요런 세상도 살아 보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구, 머 요로고 많이도 채랬다냐. 아가, 니가 이거 하느라 욕봤다. 고맙다. 잘 묵을게.”
“별 말씀을요. 맛있게 드세요.”
“자, 밥 묵기 전에 기도 먼저 해야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다 같이 식사 전 기도를 바치고 수저를 들었다. 상덕씨와 보성댁, 큰아들이 함께 상을 받고 며느리와 아이들은 좀 더 큰 상을 두고 둘러앉았다. 일 년 가야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소고기를 본 아이들은 볼이 미어지게 밥을 뜨고 고기를 먹었다.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그야말로 와구와구 먹어대는 아이들을 보자 잘 먹이지 못 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허천나게’ 먹어대는 아이들이 며느리 보기에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밥을 먹으며 보성댁은 속으로 ‘사람만 얌전한 게 아니라 음식도 매시랍게도 하네. 우리 아들 장가 잘 갔다. 메느리 잘 얻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생각했다. 보성댁이 생전 처음 받은 생일상의 음식을 ‘와구와구’ 먹어대던 아이들 중 미자는 과식을 했는지 배가 아프다고 인상을 찡그리고 신트림을 해대다 보성댁이 손가락을 따주고 가스활명수를 한 병 먹이고 나자 진정이 되었다.
‘흐흥,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생전 못 먹던 걸 모처럼 먹으니 탈이 나버리는구만.’ 누워있는 미자의 배를 쓸어주며 보성댁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