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덕 씨가 80살이 된 해, 추석 명절에 자식들이 와서 북적북적하게 지내다 돌아가고 2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침을 먹고 난 보성댁이 설거지를 하는데 상덕 씨가 전기주전자에 물을 받아 갔다.
“커피 드실라요? 나가 설거지 마치고 해줄 건디.”
“이, 나가 자네 커피 한 잔 타 줄라고.”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상덕 씨가 보성댁에게 커피를 타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보성댁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양반이 왜 저런다냐. 왜 생전 안 하던 짓을 하는 거지. 살다 봉께 벨 일이 다 생기네.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자, 상덕 씨는 이미 커피를 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믹스에 설탕 두 숟꾸락 더 넣으면 되는 거 맞제?”
“옴마, 언제 나 커피 입맛도 그러고 알고 있었다요. 살다 봉께 이런 날도 있네 와.”
그렇게 보성댁은 상덕 씨가 타 준 커피를 맛있게 잘 먹었다. 그렇게 앉아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보성댁은 세탁기에 빨래 넣어 둔 게 생각나 세탁기를 돌리러 갔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청소를 하고 텃밭에 나가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를 몇 개 따 평상에 놓인 채반에 던져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빨래를 다 널고 나니 열두 시가 다 되어가서 점심을 차려야겠다 생각했다.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데도 시간을 꽤 빨리 지나갔다. 추석이 2주 전에 지났지만 날씨는 은근히 더워 국수를 삶았다. 얼음을 조금 넣은 물에 콩가루와 소금, 설탕을 넣고 열무김치와 함께 상을 차렸다. 국수를 원체 좋아하던 보성댁은 맛있게 잘 먹었지만 상덕 씨는 반도 못 먹고 남겼다.
“어찌 이리 째끔밖에 안 드시오?”
“이, 어째 입맛이 없네. 그만 먹을라네.”
하는 수 없이 상덕 씨가 남긴 상을 들고 나왔다. 점심 먹은 것은 설거지가 간단해 금방 치우고 방으로 들어가니 상덕 씨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어매, 속도 안 좋은 양반이 밥 묵고 어째 금방 든눠부렀다요.”
보성댁의 말에 상덕 씨가 눈을 뜨는데 그 눈이 보성댁을 보지 않는 것 같았다. 옴마, 어딜 본다냐? 보성댁이 뒤를 돌아 봤지만 그냥 거긴 창문이고 창 밖에 별다른 것이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상덕 씨를 돌아본 보성댁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니, 이 양반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평소에 동생처럼 서로 의지하고 지내던 세레나 씨에게 전화를 했다.

“어이, 세레나 씨 얼렁 좀 와 봐. 회장님이 좀 이상하네.”
“회장님, 회장님.”
세레나 씨가 상덕 씨를 불렀다. 상덕 씨가 고개를 돌려 눈을 떴지만 역시 그 눈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입을 달싹거리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병자성사를 얼른 청해야 쓰겄는디요.”
“안 그래도 사무장한테 전화해 놨네.”
“이 그러믄 곧 오시겄구만요.”
* * *
원래도 그리 건강한 편이 아니었지만 위출혈, 신장염, 심장질환 등으로 몇 달 사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상덕 씨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바깥출입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성당에도 가지 못 하게 되었다, 그래도 화장실 걸음은 가능해서 누워 대소변을 받아내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처지가 되어 버렸다. 한 달에 두어 차례 신부님이 찾아와 봉성체를 해주는 것으로 성당에 가지 못 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시간이 3년간 지속되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상덕 씨는 짜증이 늘었다. 그전 같으면 “허 참, 사아람이…” 하고 말던 일들에 버럭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쓰고 나믄 여기 책상에 두라고 나가 했는가 안 했는가! 멫 번을 말해야 쓴가!”
“밥이 왜 이래? 수십 년을 해 온 밥을 아직도 물을 못 맞추는가?”
“이건 왜 이리 싱겁당가? 소금이 아까운가? 이거 간 하나를 딱딱 못 맞추는가?”
안 그러던 사람이 짜증을 내며 말을 하니 더 아프게 느껴졌다. 처음엔 저 영감이 나한테 밥을 얻어먹으려고 저러나 못 얻어먹으려고 저러나 싶었다가 좀 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40대 때에는 순천 아랫장까지 14킬로미터를 자전거를 타고 오가던 사람이 이젠 집에서 5분 거리 성당에도 못 가니 얼마나 갑갑하겠는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그렇게 성당에 못 가는 게 나 때문인가? 왜 나한테 화풀이를 하지? 내가 만만한 건가? 하는 생각에 울컥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같이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고 헌신하는 것이 덕목이라고 가르쳤던 친정아버지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기억하며 남편에게 화를 내지 않고 헌신하려 노력했다.
그런 상덕 씨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셋째딸 미자였다. 어느 일요일 미자가 위에 좋다는 밤꿀과 과일을 사서 찾아왔다. 보성댁이 좋아하는 닭도 사와서 같이 점심으로 먹으려고 백숙을 준비했다. 미자와 보성댁이 부엌에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는 중에 상덕 씨가 나와서 보성댁을 불렀다.
“어이, 오늘 주보 안 갖고 왔는가?”
“이? 주보? 거기 방에 없소?”
“안 보인디?”
“옴마? 어디가 있으까? 거기 텔레비전 옆에 있는가 좀 찾아 보씨요.”
“아, 없당께 그러네. 뭘 가꼬 오믄 좀 제대로 챙게노믄 안 되겄는가? 나가 몇 번이나 말했어?”
상덕 씨가 버럭 소리를 지르니 미자가 놀란 듯 상덕 씨를 쳐다봤다. 미자의 눈길을 느꼈지만 상덕 씨는 내친 김에 보성댁에게 계속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 먼 말을 흐믄 좀 멩심을 해야 쓸 거 아닌가? 도대체 정신을 어디따 빼놓고 다니는 거여? 나 원,”
말을 이어가려는데 미자가 나섰다.
“아버지 그만 좀 하세요. 왜 엄마한테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내세요? 별로 큰 잘못도 아니구만.”
딸의 말에 상덕 씨는 자신이 과하다고 느낀 건지 움찔하고 혼자 궁시렁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딸이 따라 들어왔다. 기실, 미자가 보성댁에게 성질을 부리는 상덕 씨를 처음 본 건 아니었다. 몇 차례, 상덕 씨의 행동을 봐오다가 오늘은 좀 말해야겠다 싶었는지 따라 들어와 TV 앞에서 주보를 찾아 펼쳐든 상덕 씨 앞에 앉았다.
“아부지, 왜 엄마한테 그러고 성질을 부리세요? 엄마가 아부지 생각을 얼마나 하는데요. 자식이 팔남매나 되어도 엄마처럼 아부지 챙기는 사람이 있어요? 아부지 그러고 엄마한테 성질부릴 때마다 꼭 서양호 같애요.”
서양호는 미자의 남편이다. 그동안 보성댁을 통해 미자의 남편이 미자를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던 터다. 제 처보다 벌이도 적고 학력도 딸려서인지 종종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괴롭힌다는 말을 들어 왔었다. 그런데 보성댁에게 화를 내는 상덕 씨의 모습이 그런 지 남편하고 비슷해 보인다는 말은 상덕 씨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는지 순순이 자신의 문제를 인정했다.
“금메, 안 그래야 쓰 꺼인디 말이다.”
순순이 인정하는 상덕 씨의 말에 미자도 더 이상 긴 말을 하지는 않았고 준비한 백숙을 함께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오늘에 이른 것이다.
* * *
“회장님, 저희 왔어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보성댁이 나가 마루로 나가는 문을 열어보니 성당 사무장과 신부님이 마루로 올라오고 있었다.
“오매, 신부님 오셨네요, 이. 얼른 들어오시씨요.”
서둘러 신부님을 방으로 모셨다. 상덕 씨의 눈은 이미 먼 곳을 보고 있어 일반적인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고해성사 단계는 생략하고 바로 병자성사를 주었다. 상덕 씨가 병자성사를 받은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달랐다. 보성댁은 이제 상덕 씨를 보내줘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신부님이 병자성사를 주고 나가며 무슨 일 생기면 다시 연락하라고 했다. 아직 ‘무슨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보성댁은 자식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 나다. 아무래도 느그 아부지가 심상찮다. 니 올 때까지 기다리실랑가 모르겄다. 얼렁 서둘러 출발하는 거이 좋겄다.”
큰아들과 먼저 통화를 한 후 둘째 아들에게 전화를 하는 중에 세레나 씨가 보성댁을 불렀다.
“안나 자매님, 얼른 오세요. 회장님이……”
방으로 들어가니 상덕씨는 마지막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눈을 반쯤 뜬 채로 아니면 반쯤 감은 채로 상덕씨의 숨이 멈췄다.
“아이고 회장님……”
세레나 씨가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지만 보성댁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침착하게 상덕 씨의 눈꺼풀을 쓸어 감기며 둘째 아들과 통화했다.
“아이, 느그 아부지가 이제 가실랑갑다. 얼렁 와야 쓰겄다.”
셋째 아들, 큰딸…… 순서대로 팔 남매에게 전화를 마치고 나니 어쩐지 맥이 풀려 일어설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상덕 씨 옆에서 벽에 기대고 앉아 신부님한테 전화를 했다.
“예, 신부님. 시몬 씨가 갔네요. 예.”

신부님과 통화를 마치고 흐느껴 우는 세레나 씨 옆에서 보성댁은 멍하니 상덕 씨를 내려다 봤다. 그러다 상덕 씨의 코 밑에 손을 대 봤다. 숨결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상덕 씨는 미동도 없었다. 아, 진짜 갔구나. 이 양반이 자기가 갈 줄 알고 나한테 생전 처음으로 커피를 타줬구나. 참, 그 커피 한 잔으로 그동안 내 고생을 다 보상했다고 생각한 건가? 어림도 없어 이 양반아. 나가 당신하고 50년 넘게 삼스로 고생한 것이 어찌케 커피 한 잔으로 다 때워지겄어? 점잖고 말이 없던 사람이었던 만큼 살갑고 다정스러운 면은 도대체가 없었다. 영정 사진을 준비해 두려고 사진 찍으러 갔을 때 사진사가 서비스로 부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각각 영정 사진을 찍은 후 둘이 같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사는 보성댁을 앉게 하고 상덕 씨를 그 옆에 서게 했다. 보성댁 옆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상덕 씨에게 사진사의 주문이 들어 왔다.
“선생님, 거 손을 사모님 어깨에다 살짝 좀 얹어 주세요.”
그러자 그런 종류의 행동이 어색했던 상덕 씨는 나직하게 쓰읍 하며 보성댁의 어깨에 마지 못해 손을 올렸다. 어깨에 올려진, 내켜하지 않는 손의 느낌과 가까이 있는 탓에 들렸던 쓰읍 소리에 보성댁은 이 양반에 성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느라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볍게 웃음이 지어졌다. 사진사는 그 웃음을 맘에 들어 하며 사진을 찍었다. 영정사진용으로 찍어둔, 두 사람 각각의 사진을 내려 쌓인 먼지를 닦고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도 내렸다. 보일 듯 말 듯 미소지은 보성댁의 어깨에 손을 얹은 상덕 씨의 얼굴은 못 마땅해서인지 긴장해서인지 경직되어 있었다. 그 사진의 먼지를 닦으며 보성댁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