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스며든 변화의 이름, 죽음

인간의 생로병사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거치는 자연의 질서다. 자연에서 꽃이 피고 지며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듯, 죽음도 소멸만이 아니라 순환의 한 과정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아도 삶과 죽음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변화의 흐름이다. 따라서 죽음을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기보다,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남은 시간을 더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 과정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왔다가 머물고 다시 돌아가는 존재다.

죽음을 공부하여 생태적인 삶을 깨닫다 –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를 읽고

현재의 우리로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문명 종말을 막을 수 없다. 이처럼 인류 문명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진 때에 우리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문명 차원에서 죽는 법을 배워야 하는 철학적 시대에 진입했다. 죽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우리의 성향과 두려움을 버린다는 것이지만, 문명의 차원에서는 특정한 생활 방식과 정체성, 자유, 성공, 진보에 대한 특정한 생각을 버린다는 것이다.

[완주의 선물] ② 다시 봄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경천의 산줄기처럼 깊고 오래 남는다. 그러나 그 그리움을 품은 채 살아가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흙을 만지고, 계절을 기다리고, 다시 싹이 올라오는 시간을 지켜보는 일. 그것은 슬픔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슬픔을 삶 속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나는 그것을 ‘애도’라고 부른다.

[진솔한 몸] ⑦ 그를 만나는 방법

언니의 병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가고, 의료의 냉정함과 가족으로서의 무력함을 겪으며 나는 삶이 붕괴되는 시간을 통과한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언니는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고 세계 곳곳에 스며든 생명 그 자체로 내게 감각된다. 아니 오히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언니의 일부가 아닐까.

[보성댁 이야기] ㉖ 나가 고생한 것이 어찌케 커피 한 잔으로 다 때워지겄어?

3년간 바깥출입을 하지 못 한 채 앓고 있던 상덕씨는 어느 아침, 생전 처음으로 보성댁에게 커피를 한 잔 타 준다. 그리고 그날 점심 식사 후 상덕씨는 세상을 뜬다. 상덕씨의 죽음을 자식들에게 알리고 난 후, 보성댁은 영정 사진으로 쓰기 위해 찍어둔 사진을 내려 먼지를 닦는다.

[신승철 1주기 추모(축)제 특집] ③ 추도사_고(故)신승철을 마음에 그리며

사랑과 돌봄, 그리고 삶을 긍정하는 이 철학자에게 죽음이란, 인간의 유한한 삶에서 드리우는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은 고정되는 것, 고착화되는 것, 더 이상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포획되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의 것이었습니다.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개념 지어버리고 고정관념을 만들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움직임이 바로 삶입니다. 죽음의 대척점에서 우리가 무한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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