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 일상의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었던 종교문화
별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문화는 세계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중국에서 발생 발전한 도교에서는 칠정(七政), 곧 일(日)·월(月)·목성(木星)·화성(火星)·토성(土星)·금성(金星)·수성(水星) 등 칠성(七星)을 인간의 길흉화복을 맡은 별로 보고 이를 칠원성군(七元星君)이라고 하였다.1 중앙 유라시아의 기마 유목 집단들은 이동 방향을 가늠할 때 별에 의지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에게 별은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칠성(七星)’을 “비 또는 인간의 수명과 재물을 관장한다는 신(神)2”이라고 정의한다. 비·수명·재물 이 모두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니, 결국 한국 문화 속에서 칠성은 삶에서 중요한 것을 얻으려는 혹은 잃지 않으려는 간절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기대는 신격으로 자리잡는다. 시대 변화에 따라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신격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 태조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칠성에게 빌었다는 설화3가 그 예다. 칠성 신앙이 삶의 전반에서 작용했다는 예가 될 것이다. 칠성 신앙은 민간 신앙이기도 했지만, 대웅전 뒤에 칠성각을 세우는 등 한국 불교와 같은 주요 종교의 체계 속에 자리잡음4으로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표인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찰의 중심 공간인 대웅전 뒤에 칠성각을 배치한 것은 비불자(非佛者)들이 대웅전 앞을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에 동화되기를 바란 의도라고 볼 수 있다.”5 이를 보면 칠성 신앙이 불교의 교세 안정화에 활용된 것일 수도 있고, 그만큼 칠성 신앙이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사랑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사진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집마다 장독대가 있던 시절에, 깨끗하고 차가운 물 한 그릇을 올려놓고 매달 7일, 17일, 27일에 주부가 목욕재계하고 자손들을 위해 칠성님께 비는 것6이 이 신앙을 대표하는 행태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올리는 물을 칠성신의 신체(神體)로 여겼다고 하며, 물과 관련된 동물인 용이나 뱀을 칠성신의 신체로 생각하기도 하였다고 한다.7 이것들이 가까이 있는 칠성이라면, 돌은 비교적 가까이 있는 칠성의 신체 가운데 가장 항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을 밖 일곱 개의 바위를 칠성신의 신체로 삼고 그곳에서 칠성고사를 지내거나, 고인돌을 칠성의 신체로 삼아 고인돌 일곱 개를 칠성바위라고 부르는 경우가 그 예라고 한다.8 이처럼 암석을 칠성신의 신체로 활용하는 것을 표인주는 “암석이 지닌 항구성과 별이 지닌 생명성”이 결합된 것이라고 정리하였다.9 여기에서, 별은 칠성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칠성 신앙과 관련하여, 용·뱀·돌·별 등등의 물적 특성이나 연원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연구하여볼 수도 있겠지만, 유한한 인간이 유한성을 뛰어넘은 것으로 보이는 항구성과 생명성을 연상시키는 것에 의지하는 한 행태로 대하는 것도 유익할 듯하다. 따라서, 사람이 죽었을 때, 시신을 일곱 매듭으로 묶어서 ‘칠성판’ 위에 올려놓는 풍습에 대하여 설명하고 그 풍습을 따라 의례를 행할 때, 그 과정을 신비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설명 가능한 행태로 바라보면서, 유한자로서의 인간이 항구성과 생명성에 기대는 행태의 의의와 한계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듯하다.10
이렇듯 칠성 신앙은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바람과 연관지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상의 모든 것과 관련된 종교문화라는 면에서 훨씬 더 중요한 듯하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칠성은 삶에서 중요한 것을 얻으려는 혹은 잃지 않으려는 간절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기대는 신격이다. 사람들이 ‘잃지 않으려는’ 것들은 대개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칠성은 그런 것들과 광범위하게 연관되어있는 신격인 것이다.
칠성의 일곱 아들이 신이 되기까지
강원도와 경상도 권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칠성의 일곱 아들이 칠성신이 되는 과정의 이야기 즉 ‘칠성풀이’가 무교의례의 일부분으로 전승되고 있다. 함흥의 살풀이, 평양의 성신굿, 제주도의 문전본풀이 등이다. 칠성풀이는 칠형제가 칠성신으로 좌정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내륙지방 칠성풀이를 종합하고 요약한 내용을 ‘일곱 쌍둥이 칠성신(칠성풀이)’라는 제목으로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11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 어느 땅에 칠성님이 살고 있었다. 등에 별 모양으로 일곱 개의 점이 있어 그렇게 불리었다. 칠성님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는데, 그 용모와 재주에 걸맞는 짝을 찾기가 어려웠다. 세상천지를 두루 수소문한 끝에 지하국 매화부인을 아내로 맞게 되었다. 칠성님이 세 번 청하여 혼사가 이루어졌다. 칠월이라 칠석날이 혼인날이었다. 둘이 꿈결 같은 나날을 지내는데 세월이 흘러가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걱정이었다. 칠성님은 삼대독자 외아들이고 매화부인은 사대에 무남독녀 외동딸이라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한량없었다. 궁리 끝에 매화부인은 제일 명산을 찾아가 신령님께 정성껏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을 들인 지 석달 열흘 만에 신령님의 점지로 아이를 잉태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아이를 생산하는 날, 진통 끝에 아이를 낳았는데 나온 아이가 모두 일곱이었다. 아내가 아이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들은 칠성님이 좋아라하며 아이 이름 지어줄 양으로 한 손에 붓대를 들고서 우르르 달려왔다. “아니 이게 웬일이냐? 괴이한 일이로다. 까막까치 날짐승도 새끼 일곱이면 많다고 하는데 사람이 되어 아기 일곱을 낳았구나. 산모까지 여덟일세.” “여보시오 칠성님, 공 드릴 제는 무슨 맘이고 공 드려 낳은 자식 보기 싫단 말은 웬일입니까. 나는 이 세상 하직하고 염라대왕한테로 갑니다. 하늘나라 용예부인이 아름답다니 그리로 새장가나 가시구려.” 매화부인은 저 태어난 지하국으로 내려가 연당석 깊은 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매화부인이 죽자 칠성님이 유모를 들여 아이들을 떠맡겼다. 칠성님은 아이들 돌볼 생각을 하지 않고 하늘나라 용예부인한테 후실 장가를 가버리고 말았다. 일곱 형제가 자라나 일곱 살이 되어 어머니 아버지를 알고자하자 유모가 아버지는 칠성님이고 어머니는 지하국 매화부인이며, 칠성당에 정성 올려 일곱을 낳은 후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 저승으로 가고 아버지는 하늘나라 용예부인한테 후실장가를 갔다고 알려주었고, 일곱 형제는 그 길로 아버지를 찾아 먼 길을 나섰다. 그때 칠성님은 후실 장가는 갔어도 앉으나 누우나 밤이나 낮이나 숨은 근심을 속이지 못하고 있었다. “여보시오 서방님, 무엇이 걱정이오? 은이 필요하면 은을 쓰고 금이 필요하면 금을 쓰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내가 두고 온 전실 자식이 칠형젠데 동지섣달 설한풍에 백설이 흩날릴 때 아무리 추운들 누구더러 춥다 하며 오뉴월 여름 불같이 더운 날에 아무리 더운들 뉘더러 덥다 하리까.” “안 할 걱정을 무척이나 하십니다그려.” 그때 뜻하지 않게 쌍둥이 일곱 형제가 집으로 들이닥치며 소리를 쳤다. “아버지! 저희가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용예부인은 기가 딱 막히고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고 일곱 아이 간을 내어 먹여야만 고칠 수 있다는 점괘를 꾸며내었다. “아버지, 정 그렇거든 우리 간을 꺼내가세요.” 칠형제가 아버지를 이끌고 뒷동산에 올라 스스로 제 몸을 찌르려 하는데 난데없이 금사슴 한 마리가 펄쩍 뛰어 나타났다. “이봐라 이 아이들아, 너희들이 무슨 죄로 간을 내놓는단 말이냐. 내가 너희 어미로다. 황천에서도 차마 이 모양을 못 보고 뛰어왔다. 내 몸을 갈라서 간을 꺼내 계모한테 바치고 그 본색을 드러내거라.” 금사슴은 아이들이 말릴 틈도 없이 뾰족한 나뭇가지로 뛰어올라 목숨을 끊었다.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사슴의 배를 가르자 조그만 간이 일곱 개가 나왔다. 용예부인은 간을 먹는 척 하고는 그 간을 먹으니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난다하였지만 곧 그것이 아이들을 죽게하려는 간계였음이 들통났고, 마른하늘에서 갑자기 벼락이 내리쳐 벼락을 맞은 용예부인은 그 자리에서 두더지가 되어서 땅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칠성님은 매화부인의 명복을 비는 제사를 올리고 일곱 형제를 거두어 정성껏 돌보았다. 일곱 형제가 한날 한시에 죽은 후 그 영혼이 밤하늘의 별이 되어 빛나게 되었으니 북두칠성이 그 별이다. 칠성신은 인간세상을 두루 내려다보면서 불쌍한 이들에게 복을 주고 오래 살도록 보살펴준다.”12
부끄러움을 아는 미성숙의 신
이 이야기는 아이가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13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 여자는 두드러지게 수난을 겪는 존재이면서도 사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사악한 여자가 계모로 등장하기에 계모담의 일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여자들의 이런 모습과 대조적으로 남자 특히 아버지는 분별력을 상실한 어리석은 존재로 나타난다. 아버지가 어리석고 계모가 간악하지만 결국 흉계는 드러난다. 간악한 용예부인14이 징계되고 착한 매화부인이 되살아나는 것은 설화에서 흔히 보이는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상계와 지상계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무속신화에 자주 나타나는 공간 구도이다.15 그런 만큼 어쩌면 이 이야기는 뻔하다고 치부할수도 있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보편적이며 중요한 교훈이나 정보를 담고 있다고도 하겠다. 권선징악 역시 그러한 이야기 아닌가. 실제 세상에서 선이 승리하지 못할수록 이야기에서는 권선징악이 강조되지 않는가. 그러므로 신화에 권선징악이 드러나는 것은 중요한 징후이며, 칠성풀이는 뻔하기 때문에 중요하고 가치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 부차적으로 살펴볼 면이 있다. 이야기 속 아버지의 행태 말이다. 이야기 속 아버지는 분별력을 상실한 어리석은 존재 같다. 달리 표현하자면 미성숙한 존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도 나름의 미덕이 있으니.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고 자신을 바로잡으려고 시도는 한다. 미성숙은 큰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대부분의 존재는 미성숙한 면이 있다. 그러니 미성숙 자체를 문제삼기보다는 미성숙을 면하려 하지 않는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 더 중요할 듯하다. 이렇게 보았을 때, 칠성이 되는 일곱 형제의 아버지 칠성님의 행태에서 현저하게 드러나 있는 분별력을 상실한 어리석은 모습에도 주목하여야겠지만-비록 미미하다해도-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는 모습에도 주목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성이란, 삶에서 중요한 것을 얻으려는 혹은 잃지 않으려는 간절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기대는 신격이었다. 그러므로 일상 전반에 칠성신앙은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중요한 신격의 아버지는, 지극히 미성숙하나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주목할 만한데, 상당히 오랫동안 한국인에게 영향을 주어 온 신앙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격이 미미하게나마 부끄러워하고 후회할 줄 안다는 것은, 그 반대일 경우와 비교하여볼 때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예컨대 스승을 따라 배우는 수양론을 기반으로 하는 유교의 도의문화는, 스승을 완벽한 존재로 상정하고, 배우는 자는 설혹 자신이 실수를 저지르는 미성숙함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겉으로라도 수양을 완성한 것처럼 꾸미는 부작용을 빚을 수 있다. 특히 수양군자에게 정치참여와 집권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구조 속에서라면, 수양 자체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이 수양의 정점에 달한 자인 것처럼 외양을 꾸미는 일이 만연하였을 것 같다. 더 현실적으로 보면 권력을 지향하는 자들은 비록 자신이 아직 어느 정도의 수양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음에도 겉모습이라도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른 것처럼 꾸미지 않으면 지배집단으로부터 따돌림 당할 수 있었으므로, 꾸밈에 힘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허례허식’·‘체면’ 따위의 말이 이렇듯 겉으로 꾸며야만 따돌림 당하지 않는 풍조의 폐단을 이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미성숙한 데다가 후회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는 군자가 있다면 그는 유교적 도의문화 속에서 쉽게 따돌림 당하고 손가락질 받지나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완성형인 것처럼 꾸미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유교적 도의 문화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해도, 허례허식이나 체면 차리기가 아직 남아있고, 따돌림과 손가락질이 만연하고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 민족의 전통 신앙에서 이런 유교 문화의 폐단을 완화시킬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다면 지극히 다행스러울 것이고, 이 글에서는 그러한 시도를 하는 셈이다. 칠성신앙이 이야기도 현시대의 눈으로 볼 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수양론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의 도의문화와 비교하여 볼 때에는 유교의 도의문화가 가지지 못한 미덕을 가진 면도 있는 것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세계에서는, 미성숙하기는 하지만 후회할 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존재가 허용되는 것이, 모든 사람이 수양할 수 있다고 보는 유교의 입장을 잘못 이해하여 자기가 조금이라도 덜 수양한 존재로 남들 앞에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허례허식에 빠지고 체면 차리는 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풍조가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것을 걷어내는 데 기여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옛 이야기 속에서 현대의 우리가 본받을 지점을 찾고, 되새겨 보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신(七星神)’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류종목] ↩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七星)’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七星)’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七星)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 [七星] (한국민속신앙사전: 가정신앙 편, 2011. 12. 15.)[집필: 표인주 ↩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 [七星] (한국민속신앙사전: 가정신앙 편, 2011. 12. 15.)[집필: 표인주]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 [七星] (한국민속신앙사전: 가정신앙 편, 2011. 12. 15.)[집필: 표인주] ↩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 [七星] (한국민속신앙사전: 가정신앙 편, 2011. 12. 15.)[집필: 표인주]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 [七星] (한국민속신앙사전: 가정신앙 편, 2011. 12. 15.)[집필: 표인주] ↩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 [七星] (한국민속신앙사전: 가정신앙 편, 2011. 12. 15.)[집필: 표인주]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일곱 쌍둥이 칠성신(칠성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이 요약과 같은 요약이 다음 자료에도 들어있다; 신동흔, ‘슬픈 운명의 일곱쌍동이’, 〈신화 속의 부모와 자식〉, 《살아있는 우리신화》, 한겨레출판(주), 2004, 204~213쪽. ↩
[네이버 지식백과] ‘일곱 쌍둥이 칠성신(칠성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
심부담(尋父譚)이라 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박경신] 참조 ↩
용예부인이 아닌 옥녀부인이 계모로 등장하는 칠성풀이도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칠성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박경신]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