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컴퍼니] ③ You ca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이 글은 옷을 사는 원칙과 기후위기에 대한 성찰을 연결한다. ‘소비’ 습관의 원칙이었던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은, 기후위기와 섬유 산업의 문제를 고려하면서 단순한 소비가 아닌 삶의 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문제를 정동 자본주의로 환기하면서, 우리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으나 이런 모순된 시대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속 가능한 소비가 아닌 삶을 선택하는 것을 제안한다.

지난달 국제회의 참석차 스웨덴에 다녀왔다. 회의 참가도 의미 있었지만, 처음 가보는 스웨덴에 대한 기대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스웨덴에서 시작된 몇몇 패션과 디자인 브랜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현지에서 옷을 사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내가 그 브랜드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그들의 디자인적 요소 때문이었다. 주로 무채색의 색상을 사용하고, 질리지 않는 단순한 디자인으로 한 번 사면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자주 사 입던 브랜드였다. 그러나 막상 현지 매장에 가보니 한국에서 파는 제품이 대부분 진열되어 있었고, 가격 차이도 거의 없거나, 오히려 더 비싼 경우도 있었다. 이것이 자국 브랜드의 글로벌 시장 경쟁력 때문일 수도 있고, 스웨덴의 높은 부가가치세(25%) 때문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아쉬운 마음으로 빈손으로 매장을 나왔다.

옷을 살 때 나름의 원칙이 있다면, 오래 입을 수 있는 소재나 디자인을 찾는 것이다. 사진출처 : Priscilla Du Preez

옷을 살 때 나름의 원칙이 있다면, 오래 입을 수 있는 소재나 디자인을 찾는 것이다. 이는 내가 쇼핑에 큰 취미를 두지 않기 위한 나름의 장치일 수도 있고, 유행에 따라 샀다가 짐이 되어버린 수많은 옷이 준 교훈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만의 스타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쉽게 사지 않고, 오랫동안 비교하고 고민하며 고른다. 일관된 스타일을 고수하다 보니 옷장에는 비슷한 계열의 색상과 디자인의 옷들이 여러 벌 걸려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 원칙에 하나의 조건을 더했다. 바로 “오래 입을 수 있는 = 지속 가능한 옷”이라는 개념이다. 사회와 환경의 변화, 그리고 기후위기는 내가 입는 옷 한 벌에 대해 많은 생각과 성찰을 하게 만든다. 섬유 원재료에서 면직, 염색, 제조, 유통에 이르는 과정까지 한 벌의 옷이 만들어지고 판매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단순히 디자인이나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작은 실천으로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지속 가능한 옷에 대한 고민이 ‘소비’ 자체를 성찰하는 기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여러 문제 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슈가 섬유 문제다. 생산과 소비 사이의 복잡한 제조와 유통 사슬의 문제, 화려한 옷 뒤에 숨겨진 다양한 대륙과 나라(주로 글로벌 사우스)에 위치한 섬유 공장의 현실과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섬유로 인한 미세 플라스틱과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기준이 단순한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도 직결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정동 자본주의는 이 지점에서 소비를 통해 자본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삶을 방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승철은 오늘날 정동 자본주의가 대안 세력의 원리들을 자본이 대부분 흡수해버림으로써 대안 세력이 위축되었다고 지적하며, “대안 세력의 원리를 모방한 자본은 친환경, 에코, 녹색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등장했다. 대안 세력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 불릴 만한 자본의 행태다. … 자본주의는 이제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작동한다. 탈성장과 기후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서 대안 세력이 말하고 실천할 것을 자본이 대신하는 기묘한 상황이 도래했다”라고 말한다. 동시에 플랫폼이 ‘끼리끼리 문화’를 유발해 외부를 배제하고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상황은 결국 제3세계의 기후 불평등 문제나 기후 난민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신승철, 『정동의 재발견』, 모시는사람들, 2022, 316-317쪽.)

가끔은 옷 한 벌을 사는 일조차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져야 하는 시대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나오미 클라인의 말처럼, 우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다. “우리는 기후 행동을 방해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가속화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으며, 아무리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고 해도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 자본주의 대 기후』,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2016, 231쪽.)

기후위기와 관련된 여러 문제 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슈가 섬유 문제다. 사진 출처 : Francois Le Nguyen

양자택일이 불가능하고, 모순을 견뎌야 하는 시대적 현실 속에서 그저 순응하며 살다 후회만 남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원칙은 단순한 소비의 기준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미국 속담에 “You ca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말이 있다. 겉모습만 보고 속을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우리가 가진 원칙이 그럴듯해 보일 때, 이 말을 떠올리면 어떨까.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사기 위한 원칙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기회로 전환되었던 순간처럼, 우리는 보다 깊은 성찰과 행동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출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과 공동의 노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김준영

세상에 여러 얽힘, 연결망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세계기독교와 상호문화를 공부하고 있고,달리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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