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컴퍼니] ⑥ 할 수 있는 일

갑갑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허무와 비난을 넘어 삶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한다. 신승철은 스피노자의 철학을 통해 우리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타자를 향한 관계의 구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임을 강조한다. 그는 삶의 유한성이 죽음의 수용을 넘어, 더 다채롭고 풍부한 삶을 향한 열망과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할 수 있음'에 대한 맹목적 신념이 아니라 '할 수 없음'에 대한 겸손한 인식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내려놓음이 필요한데, 이는 종결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결국, 유한한 세상 속에서도 사랑과 변용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삶과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으며, 이는 삶의 긍정적 전환과 영원성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할 수 있음의 절대화는 바로 타자를 파괴한다. 타자와의 성공적인 관계는 일종의 실패로 여겨진다. 타자는 오직 ‘할 수 있을 수 없음’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한병철)1

한국 출신의 독일 철학자 한병철은 우리가 타자를 마주하는 방식에서 흔히 착각하는 ‘할 수 있음’의 신화에 반문한다. 그는 ‘가지다’, ‘알다’, ‘붙잡다’를 ‘할 수 있음’의 동의어로 보면서 우리의 사랑이 타자를 소유하고, 상대방을 내 편의대로 긍정하는 순간, 그가 순식간에 존재에서 대상으로 전락하는 지점을 유심히 살핀다. 그는 타자를 진정 살리는 순간은 ‘오직 할 수 있을 수 없음’을 통한 새로운 관계 맺기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할 수 있을 수 없음’이라는 단어는 형용모순이다. ‘있다’와 ‘없다’라는 충돌하는 낱말을 나란히 놓았다. 타자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 모순적인 말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내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멈출 때 나는 타자를 알기 시작한다.”

강력한 권한에 눈먼 자들에 의해 우리의 일상이 흔들리는 집단적인 경험. 사진출처: pixabay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손을 움직이고, 몸을 쓰고, 누군가와 눈을 맞추는 아주 평범한 행위의 연속. 그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쉽게 잊히지만, 거기에서부터 우린 삶을 시작하고 만들어 간다. 또 ‘나’라는 존재는 일상에서 단순히 ‘개인’을 드러내는 경계선이 아니라 관계의 장소가 된다. 내 몸이 기억하는 움직임과 다른 몸이 직간접적으로 닿거나 마주치는 순간 속에서 우리는 삶을 이루는 관계의 기반을 만들어 간다. 누군가의 손길, 눈빛, 목소리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은 작지만 강렬하다. 이 흔적들이 모여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이 평범함을 ‘일상’이라고 부른다.

2024년 12월 3일 이후로 우리는 일상을 제대로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차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헌법마저 송두리째 무시한 ‘할 수 있음’을 광적으로 착각한 이들이 저지른 사태에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한다. 심지어 이 일은 개인이나 집단 정도가 아니라 한 나라를 통째로 헤집어 놓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보다 강력한 권한을 쥐고 있는 한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타자(국민)를 걱정할 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를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자신의 호의와 보살핌을 다른 사람이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착각을 넘어선 망상을 가진 이가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행위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요동친다.

사실 이런 류의 사람, 그러니까 타자를 자신의 ‘할 수 있음’을 통해 만들어지는 대상쯤으로 대하는 사람은 우리 주위에도 흔히 있다. 그들도 자기 확신에 가득 차서 ‘남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타자를 파괴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할 수 있다’는 착각에 한 번 빠져들면 당사자는 이 자체의 위험성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작년 말 법적으로 윤석열의 직무가 정지되는 순간을 염원하며 모인 여의도 광장에서 한 야구팬은 ‘촛불’과 ‘응원봉’을 든 이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선 세대가 보기에 지금 청년들에게 절박함이 부족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런 세대입니다. 민주주의의 드넓고 푸른, 여러분이 일궈낸 결실에서 삶을 꿈꾼 세대입니다. 절박함이 아니라 사랑으로 연대하는 세대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많은 이들을 여기서 만났습니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 농민, 이주민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잊을 것입니까. 여러분, 오래된 노래라고 함께 부르지 않을 겁니까. 신나는 음악이 덜 나온다고 광장을 뒤로할 겁니까. 밤이 길어진다고 지쳐 떠날 겁니까. 우리는 연대, 단결, 투쟁 또한 기쁘게 배워갈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2

수많은 이들이 운집한 광장에서도 타자를 자신의 ‘할 수 있음’의 영역에서 이해하려는 사람이 과연 없었을까? 자신이 알고, 붙잡은 인식 체계 위에서 타자와 만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여전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지나면서 발견한 사실은 자신의 ‘할 수 있음’이 아니라, 내가 도저히 알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자각한 채 새롭고 낯선 흐름에 몸을 내맡기고,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는 점이다.

틀에 박힌 집회용 노래만 반복되던 광장의 플레이리스트에 K-pop이 추가되었고, 촛불의 빛깔은 저마다의 팬심을 가득 담은 색색의 응원봉으로 다양해졌으며, 세대와 성별로 확연히 구분되던 집회 성격은 어느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발언자가 말했듯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절박함이 아니라 사랑으로의 연대였다. 우리는 이제 ‘할 수 있음’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시대를 지나 우리는 서로의 낯섦 앞에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연습을 시작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을 수 없는’ 상황과 자리에 기꺼이 서보기를 택했으며, 이를 통해 타자를 알고, 붙들고, 돕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교집합을 찾기 힘든 사람들이 한데 모여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배웠다. 우리는 그렇게 모욕적일 만큼 순식간에 무너진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나의 ‘할 수 없음’을 통해 새로운 ‘할 수 있음’의 영역과 만나고 있다.

12월 초부터 이어진 갑갑한 현실. 모두가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치고 바꿔야 하는지 감지하지만, 그 누구도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허무와 비난을 넘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이유는 우리의 긍정과 활력의 새로운 방향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신승철은 은사님의 장례식장을 다녀오며 받은 숙제가 ‘허무가 아니라,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소개하면서,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발견한 대목을 이렇게 풀어낸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일갈합니다. ‘자유인은 죽음을 사유하지 않는다. 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라고 말이지요.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인식은 죽음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수용이 아니라, 더 특이하고 더 다채롭고 풍부한 삶을 살아가려는 삶의 욕망과 열망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스피노자에게 유한성은 바로 특이성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겠지요.”3

사랑과 변용을 통해 보는 또 다른 삶.
사진 출처: truthseeker08

긍정과 사랑의 한계를 짓는 일은 역설적이지만, 자신의 영역과 구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 타자를 향한 구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는 ‘할 수 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유한함과 ‘할 수 없음’에 대한 정직한 인정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바로 그때, 내가 알지 못했던 낯섦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내가 상대방을 가지지 못했다고, 또는 다 알지 못한다고 착각해 빠지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다. 신승철은 이를 ‘내려놓음’이라고 소개한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종결 지점이 아니라 시작점입니다.”4

‘할 수 있음’이 왜곡되어 무너진 희망을 다시 쌓아 올리기 위해 우리는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지극히 ‘할 수 없음’에 대한 겸손한 인정이 씨앗이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은 비루한 현실을 넘어설 진정한 ‘할 수 있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유한함을 사랑으로 바꿔 말할 수 있을까? 신승철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인다.

“이렇듯 유한한 세상이지만, 사랑과 변용을 통해 보면 다른 삶, 다른 생각, 다른 세상이 언제든 가능합니다. 또한 그것은 사랑을 자기 원인으로 하는 영원성의 약속입니다.”5


  1.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김태환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5), 41.

  2. 유지영, 선대식, “‘7시 24분, 윤석열 직무 정지… 200만 환호 “막힌 속 뻥 뚫려’ [범국민촛불대행진 – 최종신] ‘가 204’ 발표 순간 응원봉 흔들며 감격… ‘반대 85, 잊지 않겠다'”, 오마이뉴스, 2024. 12. 15.

  3. 신승철,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서울: 사우, 2019), 128.

  4. 신승철(2019), 130.

  5. 신승철(2019), 130.

김준영

세상에 여러 얽힘, 연결망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세계기독교와 상호문화를 공부하고 있고,달리기를 좋아합니다.

댓글 1

  1. ‘할 수 없음’에 대한 겸손한 인정이 씨앗이 된다는 문장이요. 무력함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는 말 같아서 몹시 힘이 됩니다.
    한 해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잘 읽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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