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컴퍼니] ⑨ 영웅에 관하여

영웅을 신화나 종교 경전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영웅이란 어떤 존재일까? 영웅의 정의를 재해석하며 영웅성을 먼 곳의 위대한 인물에서 찾는 대신, 일상 속에서 헌신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해보자고 제안한다. 캠벨이 정의한 영웅은 자신을 넘어 타인과 더 높은 가치를 위해 헌신하며 삶의 연결성을 회복하려는 존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데올로기를 넘어 서로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며 새로운 관계와 연결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시대의 영웅이지 않을까.

하루가 다르게 세상의 균열이 개인의 삶에서도 체감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고장 상태에 대한 분석은 익숙하다 못해 뻔하게 다가오고, 사회 전반이 시장화 되어 극도의 경쟁이 만연하다는 이야기는 이제 상투적인 푸념처럼 느껴진다. 모든 가치가 매출과 이윤이라는 척도로만 평가되는 현실 속에서, 문제의식을 느끼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조차 헤아리기 어렵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대와 정파, 젠더, 권력과 불평등 등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떠나, 서로가 극단으로 치닫고자 작정한 듯 자극적인 대립과 갈등을 낳는다. 이러한 갈등으로 생긴 균열은 개인의 일상에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다. 심지어 이와 같은 사회의 문제를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했던 움직임들(협동조합, 사회적 기업)조차도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어려움에 직면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신자유주의를 모든 문제의 해답처럼 여기며 각자는 자신의 능력을 맹신했고, 우월한 개인의 성공담은 사회적 영웅담처럼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로 인해 성공을 계승하거나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심화되었다.

저명한 신화연구가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영웅을 “바람직한 목표로 향하게 하는 별자리와 같은 이미지”(캠벨, 245)라고 묘사한다. 캠벨에 따르면, 영웅은 원형적 모험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시련을 거쳐 내면의 어둠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영웅의 내적 원동력은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감지하고, 생명의 흐름을 분명히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캠벨은 영웅의 여정이 최종적으로 가리키는 삶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영웅은 자신을, 자신이 경험한 어떤 인격이나 권능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해탈을 겨냥하는 요가의 행자는 자신을 ‘빛’과 동일시합니다. 그는 일단 여기에 이르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을 섬길 뜻이 있는 사람은 이런 식의 탈출은 하지 않습니다. 구도(求道)의 궁극적인 과녁은 자기만을 위한 해탈이나 몰아(沒我)가 아닌, 동아리를 섬기기 위한 지혜와 권능을 얻는 것이어야 합니다.”1

영웅이란 흔히 신화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로만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영웅은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조셉 캠벨이 정의한 영웅은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거나 개인의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 헌신을 통해 ‘나’를 넘어선 더 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즉,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공포와 욕망을 극복하며, “자신을 버리고 더 높은 목적이나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삶”(캠벨, 233)을 실천하는 것이다.

특별한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도, 평범한 일상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진심 하나로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일 것이다. 사진 출처 : NinoSouza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 주변에도 꽤 많은 영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또는 퇴근 후 피곤함에도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꾸준한 발걸음. 드러나지 않아도 불의에 맞서고 누군가의 권리를 위해 꾸준히 행동하는 이들의 헌신을 응당 영웅적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특별한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도, 평범한 일상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진심 하나로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일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삶을 더 따뜻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갈 작은 용기를 얻는다.

지금은 적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영웅을 찾는 시대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패한 종교 이데올로기까지 만연하다. 이런 시대에서 영웅은 이데올로기나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을 위한 상징이 아니라 서로의 권리와 존엄성을 굳건히 지키며 주변과의 연결을 회복하려는 존재여야 한다. 캠벨은 ‘종교’(religion)가 ‘렐리기오’(religio), 즉 ‘다시 연결되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말한다.2 이러한 캠벨의 설명은 우리가 사는 조각난 삶과 다른 삶들이 보이지 않는 연결로 이어져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종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들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고민하는 지혜라고 이해할 틈을 허락한다.

결국 우리가 꿈꾸는 영웅성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기획에 참여한 평범한 사람들의 지혜가 연결되어 나타날 것이다. 신승철은, 생태적 지혜는 “어떻게(How)라는 문제설정과 직면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배치를 만들고 양육하며 재배치하고 때론 사라지게 하는 과정(미시정치)”(신승철, 154) 속에 발전되고 이어진다고 본다. 우리가 추구할 영웅은 거창한 이념이나 강력한 힘을 내세우기보다, 평범하지만 진심 어린 ‘연결과 돌봄’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삶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힘이며, 우리는 이미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깨달음과 공감을 통해 우리 모두가 보다 지혜로운 영웅의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참고문헌

1. 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 신화의 힘, 이윤기 옮김, 서울: 이끌리오, 2002

2. 신승철, 정동의 재발견,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2.


  1. 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 『신화의 힘』 P.12.

  2. 라틴어 religio는 ‘다시’라는 의미의 리(Re)와 ‘연결하다’라는 의미의 리가레(Ligare)가 합쳐진 단어로, ‘결합하다’, ‘묶다’의 뜻도 갖고 있다. (필자 주)

김준영

세상에 여러 얽힘, 연결망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세계기독교와 상호문화를 공부하고 있고,달리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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